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87)
587화 미쳤군!
한마디로 현룡자는 도인과 광인의 경계가 매우 모호한 인물이었다. 무슨 일이건 간에 자기 기분과 입맛대로 해치우려 드는 것이, 후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면모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원래 천사부가 그를 보낸 목적은 은마와의 일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의 즉흥적인 판단은 졸지에 은마와 대광명사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선택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임엽의 실력에 더럭 흥미가 일면서 이번에는 자기가 직접 그와 맞붙으려 들었다. 한마디로 언행에 일관성이라고는 없는 것이다.
현룡자가 감옥에 갇혀있을 때 천사부 내에서는 그의 옥살이를 십 년 더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유는 내보내면 또 사고를 칠 게 뻔하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그러나 장도령이 자기 사제를 힘껏 옹호한 덕분에 예정대로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제 버릇 개 주겠는가. 풀려나서 첫 임무를 받자 제 버릇 남 못 주고 이처럼 또 광기를 부리는 것이다.
기진맥진한 임엽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서 있는 걸 본 현룡자가 눈썹을 치켜뜨고 후속 동작을 취하려 했다. 순간 어디선가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룡자, 너무 오래 갇혀있어서 광기가 더 심해진 게야? 기운이 다 빠진 후배한테 어찌 그리 독하게 손을 쓰려 드는가. 염치가 있어야지.”
마기의 소용돌이와 함께 나타난 저무기가 초휴를 보호하듯 등지고 섰다.
초휴는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자기가 죽어 나가도록 위서애 등이 나 몰라라 구경만 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긴 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삼백 년 전의 원한을 대신 풀어주려고 고생을 할 게 아닌가. 게다가 그 과정에서 그로서는 역부족일 거물급 고수들을 상대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워낙 자기 안전을 남의 손에 맡기는 걸 꺼리는지라, 은마권 선배들이 숨어서 지원할 가능성이 있을 거로 생각하면서도 자력으로 끝까지 버텨보려 용을 쓴 것이다.
저무기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현룡자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뭔가가 생각났는지 이마를 ‘탁’ 치며 떠들어댔다.
“오호라, 누군가 했더니 북연한테 쫄딱 망한 나라의 그 복도 지지리 없는 황자 양반이시구먼. 저무기라고 했던가? 당신 말이 다 틀린 건 아니야. 나한테 염치라곤 개미 똥만큼도 없는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염치가 밥 먹여 주나? 그딴 걸 가져서 뭘 할 건데?”
현룡자가 표독스러운 말발로 아픈 곳을 찌른 바람에 저무기는 분을 참느라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현룡자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다니면서도 맞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건 본인 실력이 고강하기도 하거니와, 천사부라는 든든한 뒷배를 둔 덕이라 봐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상대를 잘못 고른 듯했다.
“현룡자 이놈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저무기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옛날 젊은 시절의 ‘위공자(魏公子)’ 저무기는 성정이 너그럽고 호탕한 호걸로 유명해서 강호에 벗도 많이 두었다.
하지만 현재의 ‘묘월법존’ 저무기는 마도인들의 뇌리에서조차 손속이 잔혹하고 무자비한 냉혈한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방금 현룡자가 비아냥댄 것이 고의적인 도발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저무기는 한순간에 폭발했다. 한 손을 크게 휘젓자 허공에 마기가 응집되며 핏빛을 머금은 둥근달이 보일 듯 말 듯 떠올랐다.
그러나 이도 잠시. 그것이 훅하고 떨어진 순간, 살기 어린 광풍이 포효하며 마기가 사방에서 휘몰아치니 더 없이 위력적이었다.
이에 현룡자가 움찔하며 전광석화처럼 물러나더니 손을 쓱 한번 휘저어 물동이만 한 두께의 거대한 벼락 다섯 줄기를 일으키며 오기합일(五氣合一)을 이루어냈다. 곧이어 음양의 조화를 이룬 뇌정벽력의 힘이 격렬히 터져 나와 한순간에 그 혈월(血月)을 격멸시켰다.
한번 손을 휘저은 것뿐인데 천사부의 비전절기인 오뢰정법(五雷正法)이 너무도 가뿐히 시전된 것이다.
그러자 저무기의 수중에서 기이한 병기 하나가 떠올랐다. 일견 도인 듯 아닌 듯한 것이, 조각달 같은 모양새였다. 상판에 사악한 핏빛이 투영되어 빛나는 그것은 지금의 저무기를 있게 한 신병 ‘묘월(妙月)’이었다!
그의 손동작에 따라 허공에 걸린 묘월이 금방이라도 피를 토할 기세로 사방에 살기를 뿜어댔다. 과연 현룡자가 난 인물이 아닌가. 단지 몇 마디 말로 저무기를 이토록 열 받게 만든 걸 보면 말이다.
이 두 사람 모두 무도진단경의 정점을 찍은 인물이다. 저무기는 은마권 가운데 진화련신의 경지에 들어설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평가받는 고수였다.
현룡자 또한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는 현재 노천사를 대신해 천사부를 이끌어가는 장도령을 능가할 정도로 기염을 토했던 인물이니, 그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할지 가늠이 가능할 터였다.
한마디로 이번 일전은 두 사람이 생사결을 벌이지 않는 이상, 쉽게 승부가 날 싸움이 아닌 것이다. 방금 혈월과 뇌광이 충돌하여 폭발을 일으키자 사방 백 장 반경 내 천지 원기가 죄다 이들의 교전 중에 소멸하면서 힘의 공백 지대가 생길 정도였다. 이처럼 엄청난 격돌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심장이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치열하게 수십 합을 겨룬 끝에 결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출수를 거두었다. 언제 진화련신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이 둘의 실력은 그야말로 박빙이었다.
현 상황에서 정말로 승부를 내려고 하면 생사가 달린 양패구상의 격전으로 치닫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저무기는 미친놈의 도발에 휘둘려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싶진 않았다.
그건 현룡자 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미치광이 소리를 듣고 다니는 처지지만, 그건 처세방식이 비상식적이라는 것일 뿐, 자기 목숨 귀한 줄도 모를 정도로 미치지는 않은 것이다.
저무기가 현룡자를 힐긋 째려보더니 코웃음을 날렸다.
“천사부가 네놈을 세상에 내보내기로 결정한 것을 곧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이다. 네놈의 정신 나간 짓거리가 결국은 천사부를 파멸에 이르게 할 테니까.”
이에 현룡자가 해맑게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하! 모두가 시종일관 머뭇거리고 고민만 하며 살면 대체 무슨 낙으로 한세상 살란 말인가. 좀 더 아슬아슬 자극적으로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텐데?”
저무기가 지그시 그를 노려보더니 담담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미쳤군!”
하긴 미친 자와 이처럼 오래 엉켜 싸운 자신도 별로 제정신은 아니리라. 저무기는 가슴의 상처를 움켜쥔 채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허행을 보고 눈에 살기를 띠었다. 하지만 그에게 손을 대는 대신 냉랭히 웃으며 으름장을 놓는 데 그쳤다.
“허행, 오늘 운 좋은 줄이나 아시오. 저 미치광이가 불쑥 나타나 휘젓지만 않았어도 당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어. 임엽이 죽이지 않았더라도 내가 죽였을 테니까!”
저무기는 성격에서 초휴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일단 무슨 일인가를 해야겠다고 결정한 이상, 결행에 옮기는 게 매우 과감했다.
허행이 여기까지 따라와 훼방을 놓지만 않았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나, 임엽의 목숨까지 노린 괘씸죄는 죽어 마땅했다.
하지만 현룡자가 끼어든 지금 자기가 허행을 죽였다가는 자칫 천사부만 좋은 구경시키는 격이 될 테니, 그를 죽이지 않기로 마음을 돌린 것이다.
허행은 곧 죽어도 의기만은 살아서는 당당히 받아쳤다.
“흥, 죽일 테면 죽여봐라! 그런다고 해서 내가 눈이나 깜박할 줄 알았더냐? 이 간악한 마도 놈들, 언젠간 네놈들 인생도 종 칠 날이 올 것이다!”
허행은 그저 허장성세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대광명사에서 배출된 화상들이 성격상 다소 극단적인 면이 있긴 하나, 죽는 게 두려워 비겁하게 구는 소인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허행은 믿는 바가 있었다. 여기서 자기가 죽게 되면 사형들과 방장이 이 원수를 열 배로 갚아줄 것이라고 말이다!
이로써 현장 정리를 대충 끝낸 저무기가 초휴를 돌아보며 말했다.
“훌륭히 잘 해주었다. 위 선배께서 네 공로를 치하하려고 기다리시니 이만 가자꾸나.”
이어서 그가 수신호를 보내자 나삼총 무리가 그를 따라 하산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그들도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허행 같은 고승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지 몰라도, 범속한 그들은 여기서 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분명 압도적인 승세로 임무 완수를 코앞에 두고 있었건만, 생각지도 못한 무도종사들의 등장으로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줄 알고 얼마나 식겁했던가.
뒤에 남은 현룡자는 저무기가 무리를 이끌고 떠나는 걸 지켜만 볼 뿐 막아서지는 않았다. 막을 능력이 있어야 막을 게 아닌가.
물론 누군가가 도와주면 가능할지는 몰라도 진검공 저 폐물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현룡자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음에도 진검공은 이제야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저 야차 같은 무리가 마침내 물러갔다. 비록 향가를 통째로 잃었으나 파산검파만은 그리 큰 손실 없이 지켜낸 것이다.
하지만 이로써 모든 상황이 정리된 건 아니었다. 현룡자가 불쑥 진검공에게 물었다.
“내가 허행을 죽이면 자네는 어떨 것 같나?”
진검공의 얼굴에 간신히 되살아났던 핏기가 또 가시고 말았다. 허행이 여기서 죽으면 파산검파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지 않은가. 진검공이 넋이 나간 표정이 되자 현룡자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하하하! 농담 좀 해본 걸 갖고 뭘 그리 놀라나. 원숭아, 넌 어찌 된 게 변한 게 하나도 없냐. 매사에 그리 진지하기만 해서야 천수나 제대로 누리겠느냐?”
진검공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당하다가는 아무래도 제 명대로 못 살지 싶었다.
* * *
하산하는 도중 저무기가 임엽에게 단약 하나를 건네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녀석이 제법이란 말이지. 정말 잘 해냈어. 나와 위 선배님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해냈다!”
초휴가 그 단약을 삼키자 단전에서부터 뜨거운 기류의 흐름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온몸에 퍼져갔다. 그 흐름을 타고 손상되었던 부분이 서서히 복구되면서 힘도 채워졌다. 잠시 뜸을 들인 후 그가 물었다.
“그럼 저 선배님과 위 선배님은 제가 어찌할 줄 예상하셨습니까?”
“사실 제거할 세력들의 명단을 자네에게 건넬 때만 해도, 위 선배께서는 자네가 정말로 저들을 남김없이 쓸어버릴 거라고는 기대도 안 하셨거든. 워낙 세력들의 위치가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 순간이동이라도 하면 모를까, 단시간 내 모두를 처단하는 건 무리라는 걸 우리도 알았지. 나 같았어도 못 해냈을 거야.”
“사실 이번 임무는 그저 은마의 존재감을 피력하는 데 의의를 둔 것이었어. 일의 관건이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었다는 얘기지. 해서 자네가 그 세력들을 삼분지 일, 그러니까 한 나라의 세력들만 처리해도 자네의 임무는 성공한 셈이었어. 이로 인해 대문파들을 끌어들이게 되면 자연히 내가 나서 마무리를 지을 생각이었으니까. 내 선에서 어려우면 위 선배님께서 나서시면 될 테고 말이야.”
“하지만 자네가 이렇게 깔끔히 해치울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 홍풍곡 일전은 참으로 대단했어. 계략을 써서 놈들이 모조리 제 발로 모이게 한 다음 일망타진하는 수법이라니! 아주 잘했어. 정말 대단해. 덕분에 우리도 수고를 덜었네.”
말하는 어조는 담담했으나, 초휴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한껏 들떠 있었다. 그야말로 대견해 죽겠다는 눈치였다.
은마에는 여러 계파가 혼재했고, 연배 높은 고수들 가운데 실로 강하기 그지없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더러 머리를 써서 어떤 일을 처리하라고 하면 다들 단순 무식하게 밀고 나갈 줄이나 알았지, 제대로 명쾌히 처리하는 자는 찾기 어려웠다.
이 문제를 두고 저무기와 위서애는 진작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었다. 저무기가 판단컨대, 작금의 은마는 뭐든지 부족했다. 실력도 부족하고 고수도 부족했다. 가장 부족한 것은 지모와 실력을 겸비한 일당백의 능력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임엽은 은마에 있어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저무기의 설명에 초휴는 눈이 커졌다.
은마에서 이번 일을 그렇게까지 크게 키울 심산이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