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88)
588화 포상
“그럼 대대적으로 정마대전이 촉발되는 것마저도 감수하실 생각이셨던 겁니까?”
“그건 아니지. 정도 대문파들을 건드리긴 하되 과도하게 선을 넘진 않는다는 생각이었으니까. 부옥산 일전이야 오대검파가 감히 마도의 조화천마기를 이용해 우리를 도발해서 벌어진 싸움이었니 문제가 다르지만 말이네.”
저무기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는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우리 은마가 배월교 측에 감사해야 마땅하지 싶어. 그간 배월교가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힘을 비축해온 덕에 정파 놈들을 혼내줄 수 있었잖은가. 물론 그로 인해 정파의 표적이 되기도 했지. 즉, 지금 정도 종문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적은 두더지처럼 숨어있는 우리 은마가 아니라 바로 배월교일 거란 말일세.”
* * *
파산검파에서의 일은 일파만파 강호 전역으로 퍼져갔다.
임엽이 또 일을 터뜨렸을 뿐 아니라, 그간 잠잠했던 현룡자가 다시 등장해서 저무기와 한바탕 붙었다는 사실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임엽이 제아무리 대단해도 십 년 전 강호를 들었다 놨다 했던 현룡자한테 비교할 수준은 못 되었다.
현룡자, 이 미치광이는 옛날 강호에서 온갖 대형 사고를 치고 십 년을 갇혀있었다. 그런 자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강호인들도 있었지만, 그가 했던 짓을 여전히 기억하며 이를 박박 가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진검공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현룡자의 재등장은 임엽이 진검공을 격퇴하고 허행에게 중상을 입혔다는 의외의 소식과 함께 강호를 진동케 했다.
일단 진검공은 파산검파 장문인이다. 동급 고수들 사이에서 그리 높이 평가받지 못하는 실력이지만, 명색이 한 종문의 수장으로 나름 강호에서 손꼽히는 거물급 인사로 통해왔다. 그런 자가 임엽에게 가뿐히 나가떨어진 것이다.
허행의 경우는 더 참담했다. 지난번 소범천에서 임엽에게 당한 것만으로도 체면을 구길 대로 구긴 상태였다. 당시 그가 임엽의 용호방 순위를 높여줬노라는 세간의 비아냥까지도 감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먼젓번 경우는 임엽이 허행에게 중상을 입히자마자 도주했었다.
해서 그가 한순간의 부주의로 습격을 당한 거라는 둥, 제대로 정면승부를 했으면 당연히 그가 임엽을 누르고도 남았을 거라는 둥, 임엽의 비열함을 욕하고 허행의 불운을 동정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그러나 파산 정상에서 그런 세간의 평가를 완전히 뒤엎는 뜻밖의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그 많은 무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임엽은 진검공을 이미 격퇴한 상태에서 보란 듯이 허행을 묵사발 내버렸다. 이 일은 실로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그 결과, 풍만루는 임엽의 용호방 순위를 삼 위에서 이 위로 올렸고, 그 바람에 종현은 순위가 한 계단 뒤로 밀려났다. 종현이 실력이 그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화려한 전적을 올리지 못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이번 일로 가장 크게 손해를 본 건 허행이 아닐 수 없었다. 졸지에 한 몸 바쳐 임엽이 용호방 이 위로 오르는 걸 밀어준 격이 되었으니 말이다.
공연히 파산검파까지 쫓아가 남의 일에 나섰다가 좋은 소리를 듣기는커녕, 게도 잃고 구럭도 잃은 꼴이 되어버렸다.
본의 아니게 임엽의 순위 상승에 있어 한몫한 그는 대광명사에서 요양 중에 그 소식을 듣고 너무도 격분해서 피까지 토한 끝에 상세가 가중되고 말았다.
강호의 일설에 의하면 원래 풍만루는 대광명사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임엽을 이 위로 올릴 생각까지는 아니었다고 한다. 임엽이 마도 출신인지라 정도 인물들과 동등하게 대우할 필요가 없기도 해서였다.
하지만 미치광이 현룡자가 친히 동제 남량성의 풍만루 총루까지 달려가 버티고 앉아서는, 허튼 꼼수 필 생각은 접고 강호 정보조직으로서 본연의 책무를 다하는 게 신상에 좋을 거라고 바락바락 을러댔다는 것이다.
결국, 협박을 감당하지 못한 풍만루는 원리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서 임엽을 이 위로 올린 것이다. 물론 현룡자가 그렇게 한 이유는 절대 임엽의 편을 들려는 게 아니라, 내친김에 대광명사에 한 방 더 확실히 먹이고 싶어서였다.
이처럼 순위 변동 뒤에 숨겨진 일화들까지 알려지자 이해관계가 없는 낭인 무사들마저 이 일에 적잖이 흥미를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일부 정도 종문들은 이일을 단순한 흥밋거리로만 보기 어려웠다.
잠시 방심한 틈에 마도 출신의 임엽이 순식간에 용호방 이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는 게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역대 용호방 일 위 가운데 마도 종문 출신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극소수에 불과했어도 있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호방은 정도 무림의 독무대나 다름없다고 봐야 했다. 거기다 풍만루가 알게 모르게 마도 출신을 홀대하는 경향까지 더해지면서, 최근 백 년간 용호방 정상에 올랐던 마도 준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임엽이 강호에 등장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 위에 올랐다는 건, 머지않아 일 위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시사하는 게 아닌가.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장승정이 용호방을 떠났다고는 해도 아직 초휴가 건재하니, 임엽에게 쉽사리 일 위 자리를 내주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초휴가 정통 정도 출신이 아니고 평소 행실이 악랄하기 그지없다는 게 문제이긴 해도, 적어도 마도인은 아니잖은가. 그가 버티고 있는 한, 용호방 일 위는 여전히 정도 무림의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게 중인들의 생각이었다.
* * *
한바탕 강호가 들썩인 것도 모른 채, 초휴는 저무기를 따라 은마의 어느 은신 지부로 향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은마권 전체를 통틀어 고정적인 회합 장소 하나 없이, 다들 각자도생하기에 바빴다.
종문에 몸담은 이도 있고, 단독으로 활동하는 자도 있으며 더러는 제자들을 거느리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은마 신분을 숨기고 살았다. 그들 중 근거리의 한두 명이야 찾아낼 수 있을지 몰라도 일거에 그들 전체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어쩌다 큰일이 생겨야 위서애와 같은 대선배가 나서 장소를 선정한 후, 연락이 닿는 동도들을 그곳으로 불러 모으곤 했다. 이번 회합을 위해 위서애가 선정한 장소는 서초 모처의 숨겨진 밀실로,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별개의 독립공간에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상고시대의 한 고수가 이런 밀실을 조성했다는데, 그런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는 아무도 모른 채, 전설로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강호에는 이런 공간이 적지 않았다.
이 밀실은 진법의 힘으로 철저히 은닉된 채, 세상과 단절되어 있어서 웬만해서는 발각될 리 없었다. 서초는 은마권한테는 위험의 소지가 다분한 곳이다. 배월교도, 천사부도 사실 은마에게는 모두 위험한 존재였다.
해서 이처럼 외부인의 눈에 띌 염려가 없는, 극도로 은밀한 장소를 마련한 것이다. 어찌나 철통같이 보안을 꾀했던지, 은마 중에서도 최소한 나삼총, 조승평 등과 같은 실력과 지위의 고수들만이 들어갈 자격을 가졌다.
이윽고 대오를 해산시킨 후 저무기는 초휴 등 소수의 인원만을 데리고 첩첩산중으로 들어섰다. 이윽고 반나절 동안 험한 산길을 누빈 끝에, 족히 다섯 사람이 손을 맞잡아야 에워쌀 거대한 아름드리나무 앞에 다다랐다.
저무기가 수인을 결한 순간, 나무 표면에 거대한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무기가 앞장서서 들어가자 모두 뒤를 따랐다. 입구 내로 몸을 기울이자 눈앞에 검은 광망이 번쩍 스치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그곳은 중앙부에만 미약한 불빛이 어른댈 뿐, 사방이 암흑천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다 암흑 일색인 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나마 은은히 옅은 초록빛을 발하는 흑영(黑影)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띄엄띄엄 허공에 걸려 있는 듯 보였으니 말이다.
자세히 보니 그건 개개의 높은 단이었고, 단상마다 우뚝 솟은 청동 왕좌에는 사람으로 추정되는 그림자가 하나씩 앉아있었다. 그 왕좌마다 뒤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시립해 있었으나, 그들의 세세한 이목구비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 청동 왕좌에는 기세를 은폐하는 효능이 있는 듯했다.
초휴가 서 있는 곳에서는 왕좌에 앉은 이들의 기세를 전혀 감지할 수 없었고, 얼굴도 하나같이 모호하게 보였다.
저무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삼총 등과 함께 단상 위로 올라 어느 왕좌 뒤에 섰다. 이들이 자리를 잡자 그 왕좌로부터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강호를 한바탕 뒤흔든 승전보를 여러분도 들어서 알고 계실 거요. 은마의 눈부신 기대주 임엽이 우리를 대표해 삼백 년 전의 복수를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왔소. 저들을 상대로 대승을 거둠으로써 우리 은마가 다시 강호에 우뚝 설 기반을 마련해준 것이오. 감히 말하오만, 지금 은마권을 통틀어 임엽만 한 귀재가 또 있을까 싶소. 심지어 명마권까지 따져봐도 그렇소. 저쪽에 혈교 내단까지 삼켜가며 요사스러운 공법을 익힌 젊은 놈이 있다고는 하나, 그리고 배월교에 성녀가 있다고는 하나, 둘 다 우리 은마의 임엽만은 못 하오!”
초휴는 목소리만 들어도 그자가 위서애임을 알 수 있었다. 단상 위를 한 바퀴 에워싸고 앉은 왕좌의 주인들은 은마권에서도 위서애와 맞먹을 위상과 실력을 갖춘 거물급들이 분명했다.
단상 위의 왕좌 수만 봐도 강호인들이 짐작하는 수준 이상으로 은마의 세력이 막강함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왕좌들은 전부 다 차지는 않고 일부가 비어있는 듯했다. 빈자리의 주인들이 약속을 잡고도 안 온 건지, 아니면 이미 명을 다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위서애의 말이 끝나자 단상 위 누군가가 실소를 터뜨렸다. 왕좌에 앉은 이들은 명실상부한 은마의 원로들이었다. 그 뒤에 선 자들은 각자의 제자나 수하들, 또는 입장을 같이하는 자들일 터였다. 위서애와 저무기의 관계처럼 말이다.
초휴는 일전에 육 선생이나 저무기가 들려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삼백 년 전 원한을 청산할 적임자로 위서애가 임엽을 추천해 적극 밀어붙였고, 그 일방적인 처사가 일부 원로들의 불만을 샀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임무는 은마권 동도들에게 생색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데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다들 너나없이 자기 휘하의 사람한테 그 임무를 맡기고 싶지 않았겠는가.
물론 임엽이 아닌 다른 인물이었다면, 그 정도로 잘 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어차피 이번 임무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했다. 아까 저무기가 말했다시피 명단의 삼분지 일만 처단했어도 성공으로 간주 될 일이었으니까.
이런 까닭에 원로들 대다수가 서로 자기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기려 했으나 위서애에게 빼앗긴 것이다.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인 만큼, 구천산 오대천마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그가 가진 결정권이 크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인제 보니 저들 중 많은 수가 위서애의 독단적인 결정에 불만을 품은 듯했다. 방금 실소가 터져 나온 방향을 위서애가 힐끗 노려보더니 냉랭히 말을 이어갔다.
“연맹의 일을 논의하는 중차대한 자리에, 어느 잡것이 감히 잡소리를 내는가. 기본적인 법도도 모르는 게야? 각자 아랫것들 단속 좀 잘 시키시오. 힘에 부쳐서 못하겠으면 나한테 말씀하시구려. 대신 처리해 줄 터인즉!”
말과 함께 위서애의 일신에서 마기가 요동치며 위세를 발하기 시작했다. 겉으로만 봐서야 영락없는 상노인네지만, 그는 엄연히 구천산 오대천마의 일원으로 정도 무림 전체에 대적했던 마도의 거두인 것이다.
그런 인물의 격노는 삽시간에 좌중을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쥐죽은 듯 조용해진 사방을 둘러보더니 그가 근엄히 힘주어 말했다.
“이번에 임엽이 세운 공로에 대해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을 거요. 해서 그 옛날 독고 교주께서 남기신 마천경을 열두 시진 동안 임엽에게 개방할 것을 제안하고 싶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찍소리 안 하고 있던 수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노호성을 터뜨렸다.
“그건 절대 불가하오!”
그들 중 일부는 급기야 분을 못 이겨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