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91)
591화 의심
고수의 출수를 보고 깨우침을 얻는 건 강호 무사들에게 흔한 일이다. 초휴만 해도 진청제의 철권 출수를 보고 그 권의를 엇비슷하게나마 깨달아 흉내 내지 않았던가.
마천경에서 본 모든 게 아리송하기만 했으나, 그래도 한 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방금 그 두 차례의 출수를 배워서 시전할 수만 있다면 자신에게 엄청난 이점으로 작용하리라는 사실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한 그는 천자망기술을 극대치로 시전하여 인과의 변환을 일으켰다. 뇌리에서는 직전에 보았던 독고유아의 출수 장면이 연속으로 재생되었다.
그 출수를 가능케 했던 힘의 본질을 하나하나 파고들어 분석하려는 시도였다. 이 시도에 효과가 있건 없건, 이해를 할 수 있건 없건 간에 그는 오로지 천자망기술에 힘입어 그 출수 장면을 뇌리 깊숙이 되새기려고 했다.
이에 따라 정신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과도하게 소모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듭 되새긴다고 몰랐던 것이 이해되기에는, 그와 독고유아 간의 격차가 너무도 컸다.
그러나 이때 초휴가 체화시키지 않고 남겨두었던 도온이 돌연 흐물흐물 해체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발생한 기이한 기운이 천자망기술과 합쳐지면서 소모된 정신력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천자망기술 역시 천지와 인과를 들여다보는 전형적인 도가 공법인 것이다. 해서 도온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위화감 없이 상생효과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아까만 해도 이해되지 않았던 두 초식이 천자망기술의 분석 하에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물론 뭐가 뭔지 아직 잘 알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천자망기술이 제아무리 강력한 분석력을 가진들 초휴보다 몇 단계나 우위인 막강 무도를 낱낱이 파헤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도온의 힘이 뒷받침된 천자망기술로, 두 초식이 남긴 잔영을 이어진 낱장의 그림처럼 마음속에 단단히 새겨 넣을 수는 있었다. 이렇게 해두면 적어도 잊어버리는 일은 결코 없을 터였다.
도온의 힘이 맹렬히 쏟아져 나오자 그의 몸 전체는 아까의 기이한 느낌에 점점 더 깊숙이 빠져들었다. 이 느낌에 취하여 깨닫지 못하는 사이, 주위의 모든 게 점차 붕괴하기 시작했다. 마치 물에 젖은 화폭처럼 색채마저 옅어져 갔다.
허공에 떠오른 독고유아가 초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빛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광채가 번뜩이고 있을 뿐, 모호한 그 얼굴에서는 아무런 표정을 엿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흑점으로 변하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주위의 모든 것이 허공 속에 사라진 가운데, 천자망기술과 도온의 융합이 일궈낸 기이한 기운 속에 빠져든 그는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천자망기술을 수련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천자망기술을 시전하려면 강력한 정신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건 맞지만, 정신력이 강하다고 해서 천자망기술의 시전 효과도 덩달아 강해지는 건 아니다. 오로지 돈오(頓悟)만이 천자망기술의 효과를 키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길다면 긴 지난 세월 동안 초휴는 대부분의 무공을 정상급 경지에 올려놓을 만큼 수련했다. 심지어 대성이 요원할 줄만 알았던 쾌만구자결도 종내에는 구인합일(九印合一)을 이루지 않았는가.
그러나 천자망기술만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무른 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번 기연을 계기로 도온의 힘이 천자망기술에 유입되면서 확실히 진일보하게 된 것이다.
* * *
이 무렵 밖에서는 저무기가 위서애에게 전음으로 말을 걸고 있었다.
“선배님, 초휴가 과연 안에서 무엇을 얼마나 얻게 될까요?”
“자네도 안에 들어가 봤으니 짐작할 텐데. 자네가 천인합일 시절이었을 때와 지금 녀석의 실력을 비교해보면 대충 가늠이 되지 않겠나?”
그러자 저무기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렇게 단순 비교를 하면 제가 손해지요. 저는 소싯적 무도에 대한 이해나 견식, 채신머리 등등 뭐하나 신통했던 게 없었으니까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천박한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교주 대인께서 남기신 글자체 몇 가지만 발견했더랬지요. 그걸 연구해서 마기의 응용에 대한 얕은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고요. 지금 생각하면 손해 본 감이 없지 않습니다. 무도종사가 되어서 들어갔더라면 훨씬 많은 걸 깨우쳐서 나왔을 테니까요.”
지난날 용호방 오 위까지 올라 실력을 인정받았던 저무기는 은마에 합류한 이후로 조직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그 공로에다 위서애의 천거까지 더해져 마천경에 세 시진을 머물 기회를 부여받았던 것이다.
그러니 인제 와서 다시 들어가는 건 어림없는 일이었다. 초휴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지금 마천경에 들어가고 싶어 번호표를 받아들고 대기 중인 자들이 한두 명인가 말이다. 그런 판국에 한 사람이 두 번씩이나 들어가는 걸 은마의 수뇌부들이 허락할 리가 있겠는가.
“시간이 다 되었소. 이제 나와야 하오.”
누군가가 소리 높여 말하자 위서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여러 명이 달려들어 진법을 가동하자 입구가 다시 열리며 초휴가 튕겨 나왔다.
입구가 폐쇄되었고 진법이 발했던 광채도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초휴가 우두커니 한복판에 선 채 얼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표정이 몽롱한 게 시간개념도 혼란스러운 듯했다.
‘그새 벌써 여섯 시진이 지났다고?’
위서애가 단상에서 내려오더니 망연자실한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고 있느냐? 이만 가자.”
위서애는 그가 마천경에서 무얼 얻었는지 급히 물어보려 하지 않았다. 여기는 보는 눈도 많은 데다 은마권이 한마음 한뜻인 것도 아니라서, 이런 일일수록 은밀히 얘기를 나누는 게 신상에 좋을 터였다.
밀실에서 벗어난 위서애 일행은 또 다른 단독 밀실이 위치한 장원으로 들어섰다. 다른 이들을 죄다 물린 뒤에야 위서애가 물었다.
“그래 안에서 뭘 좀 건졌느냐?”
초휴가 잠시 머뭇거렸다. 두 사람한테 본 것을 사실대로 다 털어놓아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였다.
선험자들의 경우와 너무도 달라서 자기가 본 게 꿈인지 아닌지도 판단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 기이한 현상들을 말하고 조언을 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일부는 빼고 말할 생각이었다.
자기 눈이 착각을 일으켜 독고유아를 전생의 제 모습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 모습을 똑똑히 본 거라고 확신하기도 어렵기도 했고 말이다.
게다가 영상 속 독고유아와 자신과의 연관성, 그리고 마주(魔主)는 죽지 않는다고 쓰여 있었던 석판처럼 자기 신상과 관련된 은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좀처럼 남을 못 믿는 초휴였지만, 그래도 위서애는 신뢰하는 편이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너나없이 사심을 품은 여타의 원로들과는 달리, 마도 역사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는 최고령 원로로서 그는 늘 마도 일맥 전체를 진심으로 생각해왔다.
초휴 쪽에서 먼저 은마권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지 않는 한, 그도 전심전력으로 초휴를 지원해 줄 것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헌신적인 인생의 대선배로는 담연대사도 있었다. 물론 막판에 가서 초휴에게 사기를 당한 경우라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초휴도 그 일에 대해서라면 켕기는 구석이 있긴 했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까지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판단하기에 이원 같은 머저리에게 무공을 전승하느니 자기한테 넘기는 편이 훨씬 결과가 좋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담연대사나 위서애 같은 미더운 선배라 할지라도 본인의 운명과 같은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숨길 생각이었다. 아무리 허물없이 친할 사이일지라도 말이다. 물론 그렇게나 가까이 지낼 사람이 있다는 전제에서이겠지만······.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머릿속으로 대충 정리를 끝낸 초휴가 운을 떼었다.
“선배님께서 알려주셨던 물건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독고 교주님의 영상을 보았지요. 교주님이 철황보라는 세력과 교전하는 내용이었는데, 상대편 고수를 단칼에 참하시더니 활과 화살을 응집하셔서 단 한 발로 철황보를 무너뜨리시더군요. 정말로 엄청난 절기였습니다. 하지만 깨우침이 얕은 얻은 지금의 저로서는 그것을 흉내도 못 낼 것 같습니다. 혹시 옛날에 실제로 그런 싸움이 있었습니까?”
줄곧 담담하기만 하던 위서애와 저무기가 초휴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뭣이 어째? 정말로 독고 교주님이 남기신 영상을 보았다는 게야?”
그간 마천경에 다녀왔던 이들치고 그곳에서 독고유아의 전승을 얻기를 갈망하지 않는 자는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기대하는 심리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설령 전승을 얻는 건 언감생심이라 쳐도, 하찮은 깨달음이나마 얻어 나오길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일 터였다. 그러나 초휴는 자그마치 독고유아가 남긴 영상을 보았다질 않는가. 정말로 그곳에 그런 게 있었다면, 그간 다녀왔던 자들은 잠재력이나 기연이 부족해서 그걸 보지 못한 것일까?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힌 위서애는 이전과는 뭔가가 달라진 눈빛으로 초휴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운이 트였구나! 참으로 보통 행운이 아니야! 교주님이 남기신 영상은 전승과 다를 바 없다. 네가 봤다는 건 아마도 교주님의 독문 절기였던 홍진표묘참(紅塵飄渺斬)과 멸삼련성전(滅三連城箭)일 테고 말이야.”
“멸삼련성전은 ‘파멸의 화살’ 내지 ‘사바의 화살’이라고도 불리지. 네가 본 건 실제로 과거에 있었던 싸움이다. 곤륜마교 초창기에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어. 당시 철황보는 강호 정상급의 막강 세력이었다. 기괄 진법에 능했고 병기 주조와 연체공법에서도 탁월했다. 특히 그들의 성채는 백만 대군으로도 함락시킬 수 없는 철옹성으로 유명했느니라. 지금으로 따지자면 현무문, 신병각, 그리고 반쪽짜리 대광명사를 한데 합쳐 놓은 거에 버금가려나.”
“당시 일을 먼저 벌인 건 철황보 측이었다. 저들이 곤륜마교의 마사(魔使) 한 명을 죽이고도 사과는커녕 교주님께 악다구니를 써댔거든. 이에 교주께서 친히 나서시어 단칼에 철황보 보주인 철천군(鐵千軍)을 죽이고, 영원히 함락되지 않으리라 여겨졌던 철황보마저 화살 한 발 만에 무너뜨려 강호를 전율케 했었다.”
“당시 교주께서 사용하셨던 병기가 바로 곤륜마교의 지존 마병인 ‘소루일야청춘우(小樓一夜聽春雨)’였다. 이것으로 교주께서 홍진표묘참을 시전하니, 이 두 구절을 이어 ‘소루일야청춘우 마도홍진표묘참(小樓一夜聽春雨 魔刀紅塵飄渺斬, 깊은 밤 작은 누각에서 봄비 내리는 소리를 듣다가, 마도로 세속의 아득함을 참하네)’라는 시구도 생겨났지.”
“듣자니 천하를 통틀어 교주께서 마도로 표묘참을 시전하는 공격을 막아낼 자는 영현기 하나뿐이었다더군. 한마디로 당시 강호 전체를 통틀어 최강의 살초였다고 보면 되겠지.”
“그렇군요.”
초휴는 놀랍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위서애는 말을 이었다.
“멸삼련성전은 교주님이 역외의 어느 교파에서 습득하신 거다. 그 교파는 불종과 연관이 있는 데다 실력도 막강해서 지금의 도불 양맥에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더군. 저들은 중원으로 진출해서 전도하려다가 도불 양맥과 부딪히기도 전에 곤륜마교의 심기를 건드렸지. 이에 교주께서 저들의 본거지까지 몸소 쳐들어가시어, 그 교파의 고수들을 모조리 참살해버리셨다더군.”
“그 과정에서 멸삼련성전을 차지하신 것이지. 그건 교파에서 신봉하던 삼대 주신(主神) 중 하나인 파멸의 신 사바의 활과 화살인데, 아수라족이 세운 삼련성이 그 한 발에 무너졌다더군. 해서 ‘삼련성을 멸한 화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게지.”
“그 교파는 혈기를 바쳐 사바 신에게 제사를 지내야 주신의 힘을 끌어다 그 화살을 쏠 수 있었다더구나. 그러나 마도의 선조들도 감히 교주 대인의 젯밥을 얻어 드실 자격이 없는 판국에, 대인께서 그따위 이국의 신을 왜 모시겠느냐? 해서 본인이 직접 사바 신으로 화하여 그 화살을 쏘신 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