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92)
592화 전승(傳承)
독고유아가 남긴 영상은 그의 기량이 정점에 달했던 시절에 두 가지 최강 절기를 출수했던 광경을 담은 것이니, 그것을 봤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기연이자 행운인 셈이었다.
다만 마천경에서 겪었던 여러 기이한 일들과 자신과 관련한 은밀한 비밀들에 생각이 미치자, 엄청난 행운을 누린 것을 알면서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위서애가 자기 일인 양 흥분해서는 연신 떠들어댔다.
“하긴 멸삼련성전은 별거 아니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 교주께서 창안하신 절기이긴 해도 근원은 그 교파에 있으니까. 하지만 홍진표묘참은 엄연히 교주님의 비전절기 중 하나이니라. 그 절기를 전승하였으니, 이제 너는 명실상부한 독고 교주님의 정통 전인이 된 셈이야. 곤륜마교의 후예에 불과했던 종전보다 한 단계 더 위상이 올라간 것이지.”
그러나 흥분도 잠시. 위서애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당분간은 홍진표묘참을 쓰지 않는 게 좋겠어. 마천경에서 네가 그걸 배워 나온 걸 다른 자들이 알면 곤란해질 수도 있을 테니 말이야. 은마에 속한 자들의 마음이 다 내 마음 같지는 않거든. 그들의 인심도 많이 변했어. 그걸 익혔다고 해서 저들이 당장 너를 곤륜마교의 적통 계승자로 인정하여 납작 엎드려 절하지는 않을 테니까.”
“지금으로서는 그저 실력을 쌓는 데만 매진하는 게 좋겠다. 실력만 받쳐준다면 너의 신분이 뭐건 간에 아무도 너와 맞상대하려 들지 못하겠지. 허울뿐인 신분이 아니라 실질적인 실력으로 저들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현 상황은 물론, 초휴 개인에 대해서도 위서애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위서애나 저무기를 막론하고 홍진표묘참이나 멸삼련성전을 그에게서 뺏을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없었다.
두 사람 모두 그런 근시안적인 부류가 아니었다. 게다가 두 절기는 엄연히 독고유아가 초휴에게 남긴 것이다. 그 영상이 사라졌으니 아무도 당시 초휴가 봤던 장면들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초휴가 주고 싶다고 해서, 또 그들이 바란다고 해서 공유할 수 있는 절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두 사람도 마천경에 들어갔던 적이 있으나 초휴가 보았던 것들을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초휴 만이 독고유아에게 선택받은 존재임을 뜻했다. 자기 몫이 아닌 것을 강제로 탈취하려 들었다가 좋게 끝난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초휴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 실력이 독고 교주님의 발밑에도 미치지 못하는지라 영상을 봤어도 단편적으로 엇비슷하게 흉내나 내면 모를까, 당분간 제대로 시전하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엇비슷한 게 어디냐. 그것만도 대단한 거지. 독고 교주님의 전승 무공이라면 일할의 공력만으로도 그 위력이 엄청날 거야.”
초휴가 불쑥 물었다.
“아 참, 위 선배님. 혹시 은마에 독고 교주님의 초상화 같은 게 있는지요? 없으면 그분이 어떻게 생기셨는지······. 기록 같은 건 없습니까?”
저무기가 의아하여 되물었다.
“아니, 마천경에서 교주님의 영상을 봤다면서? 그런데도 그 생김새를 모른다는 거야? 무슨 질문이 그런가?”
초휴가 겸연쩍어하며 답했다.
“영상 속 교주님의 얼굴이 너무 모호해서 제대로 보질 못했거든요. 교주님의 절기를 일부라도 전승하니 그분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서 그럽니다.”
위서애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분이 마도 전체를 통솔했던 마주이셨긴 하나, 자신의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상으로 남기는 걸 꺼리셨거든. 설령 당시는 있었어도 오백 년이나 지났으니 남은 게 없을 거야. 오백 년이 적은 세월은 아니니 말이지. 그분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죄다 수명이 다해서 죽은 지 오래일 테고. 적어도 은마권에서는 그분의 모습을 본 일이 있는 자가 없어. 물론 강호 어딘가에 별의별 해괴망측한 비법으로 수명을 연장해온 고수가 있을지는 모르지. 하지만 은마에는 그런 고수가 없는 게 확실해.”
초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기는 했으나 내심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자기가 봤던 것이 환시나 착시가 아니었을까, 자기가 정말로 독고유아와 닮았을까를 확인하고픈 마음이 강했던 것이다.
이때 저무기가 화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지난번 공수원에게 인괴뢰 제작을 부탁했잖은가. 다 완성되었다고 육진이 알려주더군. 진작 말해준 건데 당시 자네가 임무 수행 중이어서 내가 미처 이야기를 못 했네. 지금 나와 함께 가보세. 인괴뢰 제작을 완전히 마무리 지어야지.”
공수원의 손놀림이 이처럼 빠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인괴뢰와 관련해서는 위서애까지 나설 필요가 없으니, 저무기는 초휴만을 데리고 공수원의 처소로 향했다.
* * *
사실 그에게는 고정적인 처소 같은 게 없었다. 마땅한 자재가 있는 곳이면, 곧 그의 처소가 되곤 했다. 서초에서 작업을 마친 그는 여전히 서초 모처에 있는 은마의 밀실에서 초휴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휴와 함께 며칠간 걸은 끝에 저무기는 작은 촌마을의 한 저택으로 들어섰다. 공수원은 바로 그 저택의 지하에 은신하고 있었다. 어두운 통로 내로 들어서자 짙은 피비린내가 훅하고 덮쳐왔다.
저무기가 똥 씹은 얼굴로 지하 밀실에 들어서자, 희미한 등불 아래 시신의 잔해와 잡다한 자재 등이 마구잡이로 나뒹구는 꼴이, 천만 대군이 쓸고 지나간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원래는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을 공간을 공수원이 이처럼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열이 뻗친 저무기가 볼멘소리를 냈다.
“공수원! 여기는 우리 은마가 회합 시 사용하는 공동 공간이라고 누차 말했을 텐데? 여기서 난장판 만들지 말고, 외지고 조용한 곳으로 이 쓰레기들을 옮겨 가라고 했잖나. 그런 데서 자네 마음대로 만판 어지른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테니 말이지. 이렇게 도살장만도 못한 꼴을 만들어 놓으면 뒤에 온 사람들은 어떻게 이곳을 쓰라는 거야?”
이에 공수원이 별말을 다 듣겠다는 듯 입을 비쭉대며 받아쳤다.
“거참 까탈스럽기는! 그간 자네들이 손에 묻힌 피만도 얼만데, 새삼 시신 나부랭이들이 꺼림칙하다고 난리야? 염려 말라고. 갈 때는 싹 다 치워놓고 갈 테니까.”
이어서 그가 초휴에게 눈을 돌리며 투덜댔다.
“사람을 이렇게나 오래 기다리게 만들어? 진작 다 만들어 놓았으니 와서 한번 보라고.”
초휴는 공수원을 따라 안쪽 깊숙이 들어갔다.
공수원이 손을 휘젓자 전신이 흑포에 싸인 인영 하나가 걸어 나왔다. 머리에 쓰고 있던 검은 삿갓을 벗기니 안류년과 똑 닮은 생김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생전과는 달리 눈빛은 멍하고 표정도 없었으며 몸에서 생기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공수원이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무도종사급 괴뢰를 내가 한두 개 만들어 본 것도 아니니 성능에 대한 건 마음 푹 놓아도 좋아. 좀 있다가 인괴뢰를 조종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네. 인괴뢰는 반드시 정신력으로 조종해야 해. 그러나 소모가 그리 크지 않고, 특히 자네 정도의 정신력이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걸세.”
“자네는 정신력에 대한 수련이 깊으니 인괴뢰에게 온갖 미세한 표정과 다양한 동작을 부여하는 것까지도 가능할 거야. 남들 눈에는 완벽한 진짜 인간으로 보일 거란 말이지. 이제 그 아귀도 화신을 내어놓아도 좋아. 인괴뢰가 용기(容器)인 격이니, 그 화신을 이 안에 담아놓게.”
“다만 주의할 점이 하나 있어. 그 아귀도 화신의 진령이 여간 사나운 게 아니야. 그러니 놈이 너무 많이 삼켜버리도록 내버려 두지는 말게. 한계치를 넘도록 삼키면 인괴뢰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릴 수도 있거든. 그렇게 되면 아비도 화신이 자네한테 해야 끼치지 못하더라도, 자칫 자네의 통제에서 벗어나 달아나버릴지도 모르니까.”
초휴가 고개를 끄덕인 후 아귀도 화신을 방출했다. 그러나 요사한 아귀가 밀실 한가운데 나타나서, 이 안의 모든 걸 집어삼키기라도 할 기세로 사악하기 그지없는 숨결을 마구잡이로 뿜어댔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저무기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놈은 세상의 온갖 사기(邪氣)와 악기(惡氣)를 응축시켜놓은 사악의 화신으로, 단순한 마의 수준을 넘어서 악운을 안길 불길한 존재였다.
이를 본 공수원이 진법 한 더미를 깔아놓더니 초휴로서는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제어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결국,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아 성공리에 아귀도 화신을 괴뢰 안에 봉인할 수 있었다. 이마에 맺힌 구슬땀을 닦으며 공수원은 흡족한 듯 말했다.
“휴, 이제 끝났네. 그나저나 초휴, 분명히 말해둘 게 있어. 내 사전에 무상 수리라는 건 없네. 이후로 인괴뢰에 무슨 문제라도 생겨서 나한테 고쳐달라고 할 때는 필히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네.”
초휴는 노여움을 느끼기는커녕 순순히 그러겠노라 답했다. 일한 만큼 돈을 주고받는 방식이 피차에 깔끔한 거야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이처럼 똑 부러지는 성격으로는, 인정을 주고받아 셈을 치르는 게 관행처럼 되어있는 강호에서 살아가기가 녹록치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건 은마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네가 나를 도와준 만큼 나도 너를 도와주겠다는 논리인 건데, 얼핏 당장 돈이 안 들어 편하고 훈훈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고두고 문제의 소지를 낳을 수 있다. 그러느니 공수원처럼 자로 잰 듯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게 현명하지 않겠는가.
* * *
인괴뢰를 넘겨받은 초휴는 저무기와 헤어져 관중형당으로 향했다. 관중형당의 녹을 먹는 처지이니 잠시라면 몰라도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는 건 곤란했다.
게다가 관사우가 불쑥 그를 찾을지도 몰랐다. 물론 자신이 부재중일 경우, 관사우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매경령이 한 번 정도는 수습 해주기야 하겠지만.
초휴는 관중형당으로 복귀하고도, 즉시 사람들 앞에 나서는 대신 다시금 자기 몸에 대해 세세한 점검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 문제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고 전투력도 부쩍 증강되었으며, 전반적으로 몸 상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았다. 지금이라면 무도종사 경지에 이르기 이전의 장승정하고 단독으로 맞붙어봄 직할 정도였다.
하지만 마천경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은 시종일관 그의 마음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가실 줄을 몰랐다.
특히 막 마천경 내에 들어섰을 당시 그의 심지를 뒤덮었던 기이한 기운의 실체를 몰라 답답했다.
‘천명불패, 마주불사’라고 쓰인 석판이 쪼개져 그의 심지를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누가 알겠는가.
다만 자신의 이 몸뚱이와 독고유아 간에 무언가 연관 관계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 연관성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으나, 단순히 전승으로만 연결된 관계는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래턱을 매만지며 골똘히 생각하던 그의 입에서 불쑥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점술사라도 찾아가서 알아봐달라고 해야 하려나?”
자고로 점술의 도는 현묘하기 그지없다. 때문에, 이를 최상의 경지까지 터득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에 통달한 대표적인 예로 대광명사 인과선당의 상좌와 천사부 장가에서 노천사 정도 연배의 고수를 들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초휴를 도와준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막상 도와준다고 해도 초휴 쪽에서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어떻게 저들 앞에 밝힐 수 있겠는가. 심지어 그 은밀한 부분이 대관절 무엇인지도 잘 알 수 없는 이 판국에 말이다.
그러나 북연에 원길이라는 이름의 점술사가 꽤 용하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 서초에 머물고 있다던데, 이참에 그를 한번 찾아가서 알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