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96)
596화 사랑 때문에
방살을 겨냥한 관사우의 돌발적인 출수는 확실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것도 몰랐던 예전이라면야 자기 여인을 보호하려는 마음은 당연할 터였다. 철면판관도 사람인 이상, 어찌 마음이 쇳덩이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매경령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난 상태였다. 그녀가 관중형당으로 숨어들었다는 것, 그것도 관사우를 보호막으로 삼았다는 것은 사악한 목적을 품은 게 아니고 뭐겠는가. 그런데도 매경령이 아닌 방살을 공격하다니,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넋을 잃고 어찌할 줄을 모르는 방살과는 달리, 양공도는 반응이 빨랐다. 그가 수중의 쥘부채를 휘두르자 강기가 예봉(銳鋒)으로 화하더니, 금속성 마찰음을 일으키며 방살을 방어했다.
다행히 관사우의 일격을 받아내긴 했지만, 충격으로 양공도 몇 발짝이나 물러나야 했다. 그는 저리다 못해 마비된 손목을 어루만지며 상대를 치켜세웠다.
“신통구변이라······, 과연 명불허전이구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난 방살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관사우를 노려보며 항의했다.
“당주, 왜 저한테 이러십니까? 설마 저 요녀가 당주를 완전히 홀린 겁니까?”
이에 양공도가 냉소를 터뜨렸다.
“방 수령, 그러기에 내가 뭐라 합디까? 설마 아직도 모르시겠다는 거요? 관 당주는 매경령에게 미혹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단 말이오. 심지어 우리보다도 더 일찌감치!”
순간 매경령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관사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의문이 가득 찬 어조로 물었다.
“처음부터 내 정체를 알고 있었다고요? 차녀대법에 걸린 게 아니라?”
그러자 관사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당신이 나에게 온 첫날, 시험 삼아 차녀대법으로 내게 영향을 끼치려 할 때부터 알아보았소. 초광가 대인이 기이한 공법들을 많이 남겨 주셨는데, 그중 정신비법에 대항해서 심지를 굳건히 다잡게 도와주는 것도 있었다오. 해서 차녀대법이 내게는 아무 효과가 없었지.
잠시 침묵 끝에 매경령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 오랜 세월을 어째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요? 시종일관 내 말이라면 다 들어주며 마치 차녀대법에 걸려든 양 행동하셨잖아요?”
관사우가 장탄식을 내뱉었다.
“처음에는 뚜렷한 확신이 없이, 그저 심증뿐이었소. 당분간 그대를 내 곁에 두고 의도가 무언지, 대체 어느 세력이 관중형당에 악의를 품고 그대를 보낸 건지 알아낼 생각이었소. 어둠 속에 숨은 적을 밝은 곳으로 끌어내어 일망타진할 작정이었지. 하지만 갈수록 내 마음이 바뀌더군······. 그대는 정말 내 마음을 몰랐단 말이오? 한시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내 마음을.”
매경령이 소스라치게 놀라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줄곧 고분고분한 관사우의 태도만 보고 자신의 차녀대법이 효과를 발휘한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타인의 마음에 대한 차녀대법의 장악력과 감지력이 워낙 강력하니 실수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관사우가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악의를 품었더라면 차녀대법으로 응당 감지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초휴 앞에서도 자기가 관사우를 쥐락펴락할 수 있노라 감히 큰소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게 차녀대법 때문이 아니라 그의 진심이었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양공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 점을 간파하고는 의아했었소. 당주가 아무 여인한테나 빠져 정신 못 차릴 위인이 아닌데 말이지. 물론 성녀 대인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건 사실이오. 그러나 독 가시를 품은 장미라고나 할까. 웬만한 사람이라면 손을 댈 꿈도 못 꿀 무서운 꽃이 아닌가.”
“관 당주, 지금 이게 자멸 행위나 다름없다는 걸 알기나 하시오? 감히 마도의 요녀를 곁에 두고 자기 여자라고 인정할 생각을 하다니, 나중에 저승에 가면 관중형당의 역대 선조들을 무슨 낯으로 뵈려 하오? 초광가 거협은 또 어떻고?”
관사우가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여전히 동요 없는 표정으로 답했다.
“정겁을 겪어내는 게 어디 그리 쉽겠소? 그 누가 ‘정(情)’이라는 글자를 확실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일신에 지닌 능력은 죄다 관중형당에서 배운 거요. 지금의 지위와 권세도 초광가 대인께서 주신 것이지.”
“내 말인즉슨, 지금의 나 자체가 관중형당이나 다름없다는 얘기요. 내가 당주 취임 후 일궈낸 성과만 따져도 조직에 하등 부끄러울 게 없소. 초광가 대인의 당부도 저버린 일이 없소. 해야 할 소임은 떳떳이 다 했으니 나 관사우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 꿀릴 게 없단 말이오! 사랑하는 여인 하나 지켜주지 못한다면 내 어찌 강호에 당당히 발을 붙이고 설 수 있을까.”
“양공도, 그대가 오늘 무슨 흉악한 수작을 꾀하건 간에 관중형당 내에서는 죄다 개수작이고 헛소리밖에 안 될 거라는 걸 명심하시오. 분명히 말하건대, 매경령은 나의 정실부인이오. 마도의 요녀니 뭐니 하는 소리를 지껄여봤자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요. 감히 믿을 수도 없을 테고!”
여기까지 말한 그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근엄히 물었다.
“여기 자리한 사람들 가운데 관중형당 내에서 마도 사람을 본 자가 있는가?”
소습 등은 가슴이 싸하다 못해 심장이 멎는 듯했으나 이내 격렬히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은 그들에게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한꺼번에 소화해야 할 정보량이 너무 많다 보니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관사우가 저리 나오는 이상, 그를 수장으로 모신 처지로서 최상의 선택지를 고르는 데 길게 고민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무조건 관사우 편에 서면 되는 것이다.
관중형당 내에서 실력이나 위신 면에서 관사우의 말은 곧 법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그 어떤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을 태산 같은 존재가 아닌가. 그가 매경령을 비호한다 해도 관중형당의 그 누가 반대는커녕, 감히 일언반구 불만의 말을 입에 담겠는가 말이다. 이 일이 밖으로 새어나갈 시 과연 강호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한 문제는 당장 이들이 고민하는 범위 안에 들어있지도 않았다.
양공도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관 당주, 과연 그 패기 하나는 알아드려야겠소이다. 이제 관중형당에서 당주의 위상은 초 거협의 위상에 버금갈 정도요. 역대로 관중형당의 설립자를 제외하면 초 거협과 관 당주 두 분의 신망이 가장 높을 테니 말이오. 그러나 문제는 말이지요······. 매경령 하나야 비호할 수 있다 칩시다. 하지만, 또 다른 마도의 ‘거물’은 어찌하시겠소?”
양공도가 돌연 괴이쩍은 미소를 짓더니 초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누가 이미 알려드렸는지는 모르겠소이다만, 용호방 일 위인 초휴, 관중형당의 자랑스러운 준걸로서 조직의 명예를 드높인 초휴에게 숨겨진 이중 신분이 있답디다. 얼마 전 홍풍곡에서 천명도 넘는 무림인을 참살했던 마도의 신예가 실은 그였다지요? 바로 입엽 말이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좌중은 마치 정지화면이 된 양 멈춰버렸다. 이건 매경령이 마도의 성녀라는 폭로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지 않은가.
‘용호방 일 위와 이 위가 동일 인물이라고?’
아니, 그보다도 접점이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는 초휴와 임엽이 어디로 봐서 동일 인물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초휴는 담담한 표정으로 양공도를 바라보았다. 사실 매경령의 신분이 폭로되는 순간, 자기 정체도 노출될 위험이 있지 않을까 내심 우려하던 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걱정하던 것이 금방 현실이 되어버렸다. 매경령과 더불어 초휴의 이중 신분마저 드러난 걸 보면 은마에서 배신자가 나왔다고밖에 설명이 안 되었다.
하지만 밀고자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줄곧 마도인이었던 매경령은 언제 발각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그녀와는 달리, 초휴는 처음부터 철저히 별개의 두 인물로 행세하지 않았는가.
마도권에서 임엽의 정체를 아는 이는 육 선생과 위서애 일파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배신했으리라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았다.
그들이 초휴를 해칠 생각이었다면 그동안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지금으로서 유일하게 세워봄 직한 가설은 그들이 순간의 실수로 수하 등에게 초휴의 신분을 누설했고, 그 수하가 배신했다는 정도랄까.
양공도는 초휴를 향해 웃으며 빈정댔다.
“나는 매경령보다 자네가 훨씬 더 놀라워. 초휴, 강호 전체를 보기 좋게 속여넘긴 기분이 어떤가? 용호방 일 위와 이 위가 동일 인물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는 말이네. 그러나 세상에 완전무결한 일이란 있을 수 없지. 제아무리 감쪽같이 은폐한 줄 알았어도 종국에는 다 밝혀지는 법이란 말이지. 지난날 자네가 청룡회 전임 천죄 타주였던 단천랑에게 쫓겼던 당시에도 용기금군을 사칭하지 않았던가. 그 일을 아는 자들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던 것뿐이야.”
득의만면한 양공도의 미소를 보면서 초휴는 슬그머니 이를 악물었다. 양공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내가 태자 전하를 도와 용기금군의 일부를 관리하게 되었을 때, 자네가 용기금군의 명의로 백호당에 도움을 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러나 당시 백호당 타주는 죽은 뒤였고 나머지 놈들은 실력이 변변치 않아 책임을 묻기도 그렇더군.”
“해서 더 깊이 따지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을 뿐이야. 하지만 내가 원래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말이지. 당시 백호당 분타의 생존자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알아본 결과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네. 자네가 용기금군 이름을 팔아먹었을 때 써먹었던 이름이 바로 임엽이었더군!”
이에 초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받아쳤다.
“강호에 동명이인이야 얼마든지 있소. 당시 그저 생각나는 대로 아무 이름이나 갖다 댄 거외다. 그게 그리도 이상하오?”
양공도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하고 말았을 거야. 하지만 나는 의심도 많은 데다 궁금한 건 좀처럼 못 참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해서 특별히 자네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봤다네. 그랬더니 자네와 임엽 간에 비슷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더라고. 말버릇과 행동거지부터가 너무도 비슷했단 말이네. 게다가 자네가 나타난 곳에는 임엽이 나타나지 않았어. 반대로 임엽이 나타난 곳에는 자네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지.”
초휴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소한 실수 하나가 엄청난 재앙을 부른 격이 아닌가. 양공도는 여유만만하게 계속 말을 이었다.
“소범천에서도 적잖은 무사들에게 물어보았었네. 다들 이구동성으로 자네와 임엽이 동시에 나타난 걸 본 적이 전혀 없다더군. 심지어 용호방 준걸들이 떼로 장승정과 겨룰 때도 임엽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
“한 가지 증거를 더 대볼까? 임엽이 부상당할 때마다 자네는 번번이 폐관 중이었네. 자네가 언제 폐관에 들어갔는지는 관서 지역 포졸들을 통해 알아낼 수 있었지. 자네가 들어앉아 있을 때마다 예외 없이 임엽은 활개 치고 다녔단 말일세.”
“한 번의 우연이야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겠지. 그러나 이처럼 우연이 계속 겹치면 누구라도 의심을 하게 되는 법이네. 초휴, 아니 임엽! 인정하겠네! 연기력에 있어서 자네가 저 성녀보다도 단연 고수라는 걸 인정해주겠다는 말이네!”
초휴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듣고 보니 누가 자기를 배반해서가 아니라 노출될 빌미를 자신이 다 흘리고 다니지 않았는가. 하지만 엎지른 물을 도로 주워 담을 방법은 없었다.
양공도의 말마따나 감쪽같이 은폐한 줄만 알았던 일도 종국에는 다 밝혀지게 마련인 것을. 초휴가 좀 더 신중히 처신했더라도 언젠가는 이리되고 말았을 터였다.
특히 임엽이라는 이름은 완전히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것이었다. 전생에서 써왔던 이름이니 그럴 만도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백호당과의 일도 부득이한 경우였다. 당시 백호당 타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사칭 건은 이대로 끝나고 넘어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백호당도, 용기금군도 소상히 이 일을 따지려 들지 않았던지라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공도가 매의 눈으로 일의 상관관계를 밝혀내어 초휴의 이중 신분까지 까발릴 줄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양공도가 눈에 힘을 주며 한껏 목소리를 깐 채 관사우에게 말했다.
“관 당주, 매경령이야 덮어준다 쳐도 저 초휴인지 임엽인지 모를 놈은 무리 아니겠소? 하나는 음마종의 성녀요, 다른 하나는 은마의 기대주로서 그 악랄함이 강호를 진동시킨 사악한 존재요. 남들 눈에는 관중형당이 졸지에 마도의 소굴로 보이게 생겼다는 말이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