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1)
흑호방은 한강부 경내에 있었다. 진동이 뜬금없이 선천경 무사를 두 명이나 대동하고 나타나자, 진씨 가문이 자엽수유를 바치러 온 줄 알고 한껏 들떠있던 방주 조대해는 기분이 상해 물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 선천경 무사를 둘씩이나 끌어들여 우리한테 싸움이라도 걸어보겠다는 거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대해가 두 명의 선천경 부방주에게 손짓으로 지시하자, 이내 흑호방 수하들이 벌떼처럼 다가와 진동 일행을 포위했다. 그러나 초휴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조대해에게 인사를 건넸다.
“조 방주, 나를 못 알아보시겠소?”
그 말에 조대해가 초휴를 찬찬히 훑어보다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초휴? 장씨 가문을 풍비박산 냈다던 그 초휴?”
“응? 내가 벌써 그리도 유명해졌나?”
초휴가 미간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하자 조대해는 말없이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장씨 가문은 산양부의 별 볼 일 없는 현지 유지에 불과했고, 흑호방과의 거리도 멀어서 서로 얽힐 일도 없었다. 그러니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조대해가 장씨 가문의 소식을 아는 게 이상할 일이었다.
그러나 지난번 경매 대회에서 장씨 가문에 비전함을 뺏기고 난 조대해는 생각할수록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씨 가문은 경매 대회에서 줄곧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뭘 잘못 먹기라도 했는지 화통하게 나온 모양새가 못내 뜬금없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산양부 쪽의 동향을 주시해오다가, 뜻밖에도 장씨 가문이 멸문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멸문의 흉수가 그날 장송령의 뒤에 존재감 없이 서 있던 그 젊은이, 바로 초휴라는 사실이었다.
사실 조대해는 집 지키는 늙은 개나 다름없던 장송령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조대해가 생각하기에 장송령이 그 나이 먹도록 유일하게 잘한 건, 아들 하나 잘 키워서 파선검파에 들여보낸 것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여러 세력이 얽혔어도 서로 포용하며 지냈던 것은 산양부가 별로 다툴 이권도 없는 작은 동네여서 그런 것이다. 만약 장씨 가문이 한강부에 있었더라면 장송령은 진작 사방에서 공격당해 여덟 번은 멸문당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해도 초휴 혼자서 장씨 가문을 풍비박산 냈다는 사실이 조대해는 못내 찜찜했다. 장백도마저 초휴의 손에 죽어서 장씨 가문의 씨가 말라버렸다는 것을 조대해가 모르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 사실도 알았더라면 조대해의 찜찜함은 지금보다 몇 배나 더 덩치가 불어나 있었을 것이다.
마침내 조대해가 수하들에게 병기를 내려놓게 한 다음, 냉랭하게 얼어붙은 눈빛으로 초휴를 바라보며 말했다.
“장씨 가문을 무너뜨린 장본인을 몰라보면 실례겠지.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온 거요? 이제는 진씨 가문을 위해 나설 참이신가 보네?”
“나는 진씨 가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소. 그저 내 친구가 저들과 친분이 있어 우연히 돕게 된 것뿐이오.”
“그 말인즉슨 진씨 가문을 위해 나설 생각은 아니라는 건가?”
“내가 왜 그래야만 하오? 자기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는 자엽수유를 내가 어떻게 보호하라고.”
그 말에 진동이 욱하여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옆에 있던 여봉선에게 제지당했다. 초휴는 진동이 그러든가 말든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실력이 없으면 재물이 화를 불러온다 했소. 그런데도 지킬 능력도 없고 내놓을 마음도 없이, 그저 죽어라 껴안고만 있으니 이 모양이지. 그렇게 주제 파악을 못 하다가는 정말로 죽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오. 그래서 나는 조 방주와 연합작전을 하나 추진해 볼 생각인데, 귀하의 의향이 어떨지 모르겠군. 이 작전이 우리 둘과 진씨 가문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말을 가져다줄 것 같다는 말이오.”
“무슨 작전인지 한번 말해보게.”
조대해가 궁금해서 미끼를 물자 초휴가 담담히 말했다.
“매우 간단하오. 지금 자엽수유를 둘러싸고 삼파전이 벌어진 바람에 진 가주는 지킬 자신이 없어서 이것을 내놓기로 하였소. 하지만 거저 내놓게 되면 진씨 가문의 입장에서는 손해가 막심하지 않겠소?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것이, 우선 우리가 조 방주와 연합하여 삼산파와 유씨 가문을 해치우는 거요. 그리고 자엽수유는 조 방주 당신이 갖고 삼산파와 유씨 가문의 재산은 전부 진씨 가문이 갖는 거요. 나와 여형에게는 그저 그 두 세력의 수련 자원만 양보해주면 족하오. 나와 여형은 몸담은 문파가 없다 보니 부족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 자엽수유는 단약이 아닌 영약이라서 그걸 단약으로 제련하려면 또 누군가를 찾아가 부탁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꽤 성가신 일이고 말이지. 그래서 우리는 자엽수유는 포기하기로 합의를 보았소. 그러니 이미 단약으로 제련된 수련 자원만 우리 몫으로 주면 되는 거요.”
조대해가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하다가 초휴를 날카롭게 쳐다보며 말했다.
“괜찮은 계획이긴 한데, 우리가 뭣 때문에 당신들과 손을 잡아야 하지? 우리 흑호방의 힘만으로도 그 비전함을 차지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데 말이야.”
그러자 초휴가 불쑥 손을 뻗더니 일기관일월의 살기(煞氣)를 손가락 하나에 응집시켰다. 그러고는 흑호방 대청의 돌기둥 둘레를 닿을 듯 말 듯 한 바퀴 긋고 지나가자, ‘콰광’하는 굉음소리와 함께 둘레가 한 아름이나 되는 그 기둥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놀라운 것은 그가 손가락으로 긋고 지나간 부분이 칼로 자른 것보다도 더 깔끔하게 절단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초휴가 태연히 말했다.
“우리와 손잡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실력 때문이지. 우리가 도우면 당신은 순조롭게 나머지 두 세력을 처리할 수 있겠지. 그러나 우리가 필요 없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이곳을 나가 삼산파나 유씨 가문을 찾아갈 거거든. 나와 여형의 실력이라면 어느 쪽을 돕건 간에 그쪽의 승산이 확고해질 테니까. 이만하면 충분한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군. 또 이번에 우리가 흑호방을 제일 먼저 찾아온 성의도 참작해주면 좋겠소. 자엽수유는 지금 진동의 수중에 있소.”
조대해는 깔끔히 잘려나간 기둥의 절단면을 보자 안색이 변했다. 자신도 돌기둥 하나쯤 주먹으로 때려 부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처럼 내력을 응집시켜 멀쩡한 돌기둥을 생으로 잘라내는 건 난생처음 보았다. 저렇게 강력하고 예리한 내력이 사람 몸에 닿는다면 칼을 쓸 필요도 없이 가슴과 배가 갈라져 죽고 말지 않겠는가.
조대해는 비전함과 돌기둥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결국 심경에 변화가 생겼는지, 파안대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초 형제는 아까 내 말을 고깝게 생각하지 마시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떻게 흑호방 혼자 그 두 무리를 상대하겠는가. 당신들과 손을 잡겠소.”
장씨 가문을 난도질한 것만 봐도 초휴가 선량한 인물이 아닌 건 분명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일에 제삼자가 끼어드는 것이 조대해는 못마땅했다. 하지만 초휴가 다른 세력과 손잡는 건 더더욱 싫었다.
흑호방이야 실력이 받쳐주니 초휴와 연합을 거부할 수 있어도, 가장 약체인 유씨 가문은 그의 도움을 받아들일 것이 뻔했다. 그리고 초휴와 여봉선이 유씨 가문과 손을 잡을 경우, 이긴 거나 다름없던 흑호방이 가장 낭패스러운 입장이 될 게 확실했다. 조대해가 호의적으로 나오자 초휴도 다소 공손해진 말투로 응수했다.
“흑호방과 우리가 연합하면 진 가주는 논외로 하더라도 선천경만 다섯인 셈이요. 실력으로 충분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겠지. 기수를 잡으려면 그가 탄 말부터 쏘고, 도적 떼를 잡으려면 그 우두머리부터 잡으라는 말도 있소. 내일 진 가주로 하여금 삼산파 장문인들과 유씨 가주 형제를 집으로 불러들이게 합시다. 그때 우리가 앞에서 몰아세우면 조 방주는 수하들과 함께 뒤를 치시오. 그 다섯은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겁니다. 우두머리들이 죽고 나면 흑호방의 힘으로 두 세력의 잔당들을 쓸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지 않겠소?”
“당연히 일도 아니고말고. 자네가 하자는 대로 다 함세.”
조대해가 시원스레 맞장구를 치자 초휴도 공손히 예를 표했다.
“그럼 화끈한 연합작전이 되길 바랍니다.”
조대해도 입을 헤벌쭉 벌리며 손을 모아 답례해 보였다.
“나 역시 호쾌하게 일이 마무리되길 바라오.”
덕담을 나누자마자 초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봉선과 진동을 이끌고 흑호방을 나섰다. 흑호방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진동이 따졌다.
“초형, 처음에는 그 세 패거리를 죄다 쓸어버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뜬금없이 흑호방과는 왜 손을 잡겠다는 겁니까?”
이에 초휴가 그를 힐끗 째려보며 대꾸했다.
“그야 내가 놈들을 속인 거지. 자네가 속은 걸 보니 저들도 완전히 속았겠군. 먼저 두 세력을 쓸어버린 후 마지막에 흑호방을 칠 걸세. 나와 여형, 그리고 자네 부친까지 합세하면 설마 흑호방 세 놈을 못 잡을까?”
그러자 진동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옆에 있던 여봉선은 묵묵히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초휴의 입에서 나온 말들치고 참말인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진씨 가문이 자기를 이용할 마음이 없기만을 바랐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이 어떤 참혹한 결말을 맞게 될지는 뻔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흑호방에서는 부방주가 조대해에게 묻고 있었다.
“방주, 정말로 초휴와 손잡으실 작정이오? 그런 자를 믿어도 되겠습니까?”
이에 조대해가 자신의 박박 깎은 머리통을 어루만지며 코웃음 쳤다.
“믿기는 개뿔을 믿어! 자네가 속은 걸 보니 그놈도 속았겠군. 그놈이 삼산파나 유씨 놈들한테로 갈까 봐서 그걸 막은 걸세. 자네도 산양부 장씨 가문을 알지? 큰아들이 서초 파산검파 제자로 들어갔다던 그 집안 말이야. 초휴가 바로 그 집안을 풍비박산 낸 장본인이야. 일전에 경매 대회에서 초휴가 장씨 문중의 사람인 척하며 장송령을 앞세워 내 비전함을 가로챘거든. 그러고는 눈 깜박할 새에 장씨 가문을 작살냈다. 이렇게 속셈이 독사 같은 놈을 상대할 때는 당연히 미리 조심을 해두어야 하는 거네.”
조대해가 겉으로는 무식한 도적 떼 두목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세심하고 신중한 자였다. 산양부 경매 대회를 계기로 장씨 가문의 심상치 않은 낌새를 감지하자 수하를 파견해 산양부의 동향을 염탐하게 했고, 그 결과 장씨 가문이 초휴에게 멸문 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정말로 우둔한 자였다면 선천경이 셋이나 있는 흑호방에서 어떻게 방주 자리를 꿰찼겠는가.
“그럼 우린 이제 어찌합니까?”
부방주의 물음에 조대해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 돌기둥 봤지? 그건 초휴가 우리를 협박한 거야. 그놈이 두려운 건 아니지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구먼. 우리도 대책을 세워야 할 거고 말이야. 지금 바로 허중양(許重陽), 그 늙은이를 좀 만나야겠어. 듣자니 최근에 거령방(巨靈幇)에서 쫓겨나 한강부로 돌아왔다더군. 늙은이가 한심하기도 하지. 그냥 한강부에서 일인자 행세를 하며 떵떵거리고 살았으면 좀 좋아? 굳이 기껏 일궈놓은 방파를 해산시키고 인화육방 가운데 하나인 거령방으로 기어들어 가더니, 얼마 되지도 않아 파벌싸움에 말려들어 쫓겨났잖아. 그 융통성 없는 성질머리가 한강부에서나 통했지, 인화육방에는 씨도 안 먹혔을 것이 뻔하지. 자기 발등을 스스로 찍어도 정도껏 찍었어야지. 그래도 모자란 머리에 비해 실력이야 출중하지. 한강부에 있을 때도 이미 내강경에 이른 상태였으니, 지금쯤 외강경에는 이르지 못했어도 거령방에서 뭔가 대단한 걸 배워오긴 했을 거야. 그 늙은이가 아직 실력은 쓸 만할 테니, 결정적인 순간에 출수하게 하면 초휴가 농간을 부려도 막을 수 있을 게야.”
끝
ⓒ 봉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