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10)
610화 비바람 오려 하니 나무에 바람 이는구나!
향을 올린 도사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사형들도 들으셨겠지만 임엽이 초휴라는 소식으로 온 강호가 떠들썩합니다. 초휴는 소범천에서 우리 순양도문 제자를 죽였고, 진양자 사형마저 그자의 손에 숨졌습니다. 이런 치욕을 당한 이상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두 연명해서 장문께서 나서시기를 청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순양도문 제자들을 이끌고 관중형당을 쓸어버립시다!”
그는 순양도문의 무도종사 허양자(虛陽子)였다. 진양자의 사제 격으로 평소 진양자와도 사이가 좋았다.
순양도문 무사들은 성정이 불같은 편이다. 진양자의 죽음만으로도 그들은 엄청나게 분노했고 은마의 거점을 공격하여 앙갚음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순양도문의 장문은 다른 제자나 장로들에 비하면 그래도 좀 이성적이었다. 그는 순양도문 혼자의 힘만으로 은마와 싸우기는 벅차다는 것을 잘 알았다.
은마권의 거점 몇 곳은 뿌리 뽑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근골을 상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고, 반대로 순양도문이 받는 손실과 피해가 더 클 게 뻔했다. 해서 장문은 문도들이 나서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초휴가 강호 전체를 갖고 논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도 순양도문이 나서지 않는다면 온 강호의 웃음거리가 될뿐더러, 구천에서 무슨 면목으로 진양자를 대하겠는가?
순양도문의 장로들은 허양자의 말에 흥분한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로 그때, 꾀죄죄한 차림새의 중년 도사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좌중을 둘러보며 껄껄 웃었다.
“사질(師姪)들, 회의 중이었나?”
허양자가 미간을 찡그렸다.
“다운자(多雲子), 무슨 일이오?”
허양자뿐 아니고 다른 도사들 역시 달갑잖은 표정이 되었다.
다운자는 순양도문 전체에서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지만 배분은 높아서 그들보다도 한 항렬이 위로 순양도문의 장문, 그리고 이제 수명이 거의 다해가는 뒷산의 윗세대 고수들과 같은 배분인 것이다.
선대 장문이 임종 때 다운자를 관문제자(關門弟子, 문을 닫고 들어간다는 의미의 마지막 제자)로 삼았기 때문이다. 정작 다운자는 선대 장문의 가르침을 들은 적조차 없었는데도 말이다.
처음에는 다들 다운자에게 경천동지할 재능이나 능력이 있겠거니 여겼다. 하지만 그는 마흔에야 천인합일 경지에 올랐다.
아주 많이 떨어지는 실력은 아니었지만, 순양도문의 관문제자라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다. 실력만 약하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입만 열면 배분 타령을 하고 다녔다.
그들을 볼 때마다 사질이라고 부르며 하대하니, 다들 속으로는 화가 났으나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다운자가 웃었다.
“장문 사형이 그러시더군. 소문이 쫙 퍼졌으니 자네들이 분명 초휴를 찾아가려 할 거라고. 가도 막지는 않겠지만 장문 사형의 폐관을 방해하지는 말라고 말씀하셨네.”
허양자는 껄껄 웃었다.
“역시 장문께서 내 성질머리를 잘 아시는군요. 반드시 초휴의 머리를 가지고 돌아와 진양자 사형의 영전에 올리겠다고 전해 주시구려!”
다운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 전해 주지. 하지만 다른 말씀도 하셨다네. 사람을 너무 많이 끌고 가지 말고 자네 밑의 제자들만 데려가라고 하셨어. 그리고 초휴의 세력이 아무리 약해도 우리 순양도문이 먼저 나서서는 안 된다고 하셨네. 그간 솔선수범은 실컷 했으니 이번에는 멍청하게 앞장서서 달려들지 말라는 얘기지.”
허양자는 그의 말을 들은 것인지 만 것인지 대충 손을 내저었다.
“됐소, 장문께 알았다고 전해 주시구려.”
다운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허양자의 태도를 보니 전혀 귀담아듣지 않은 것이 뻔하지 않은가.
“허양 사질, 장문의 말을 흘려듣지 말게. 자네 미간에 검은빛이 도는 게 아무래도 이번엔 흉조일 듯하네.”
허양자는 코웃음을 쳤다.
“고작 그 정도 수양으로 무슨 점괘를 본다고 그럽니까. 능력도 없으면서! 그런 재수 없는 말은 꺼내지도 마시오.”
그렇게 내뱉은 허양자는 곧장 일어나서 나가 버렸다. 남겨진 다운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탄식했다. 장문은 폐관 수련 동안 많은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으나, 순양도문에는 그렇지 않은 자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순양도문만이 아니라 대광명사도 마찬가지였다.
임엽, 아니 초휴의 칠마도에 중상을 입었던 허행은 폐관하고 요양 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초휴의 소식을 듣자 화가 치솟아, 달마원의 제자들을 데리고 관중형당으로 쳐들어가 복수하려 했다. 이에 금강원 상좌 허언과 나한원 상좌 허홍이 그를 가로막으며 거듭 충고 아닌 충고로서 경고했다.
“혼자 간다면 몰라도, 달마원 제자들을 다 데려가려면 방장이나 허운 사형께 말씀드리고 허락을 받아야 할 것 아닌가? 자네도 일원의 상좌인데 이리 제멋대로 굴면 어떡하나. 방장께서 노하시면 상좌 자리도 빼앗길지 모르네.”
허행은 노기가 등등했다.
“방장은 폐관 중이시고, 허운 사형은 늘 대국만 따지시지 않나. 허락하지 않아도 기어이 나서겠다면 어쩔 텐가? 선참후계하면 될 거 아닌가 말이야! 일단 갔다 온 뒤에 말씀드리겠네!”
허언과 허홍은 어쩔 도리가 없어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파산에서 초휴의 칠마도에 중상을 입은 후로 허행의 분노는 점점 심해져 갔다. 쉽게 화내는 성마른 사람이 되었으며 고집도 세졌다.
하지만 허언과 허홍은 죽으라고 그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 대광명사의 계율이 무슨 어린아이 장난이란 말인가.
허행이 계속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정말로 달마원 상좌 자리를 박탈당할 수도 있었다. 달마원에 무도종사가 허행만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다른 자들의 실력이나 경력이 좀 부족할 수는 있으나, 잠시 자리를 맡는 정도는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자네들은 참 오지랖이 넓군그래. 원한이 있으면 복수를 하고 원통한 마음을 푸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겁먹지 말고 해치워 버리게. 허행 사제, 이 사형이 응원해 주지!”
두 사람은 고개를 들었다. 누추한 승복을 걸친 채, 술병을 홀짝이며 좋은 구경거리 났다는 듯이 보고 있는 사람은 공집선당 상좌 허도였다.
허언이 화를 냈다.
“허도 사형! 지금 타오르는 불씨에 기름을 퍼부으시는 겁니까? 그리고 술은 왜 또 훔쳐 드세요? 아니지, 그렇게 당당하게 대놓고 드시는 건 또 뭡니까. 당장 가서 허운 사형께 고하겠습니다!”
허도는 술이 담긴 호리병을 흔들어 보였다.
“허언 사제, 또 그러는구먼. 호리병에 술만 담으라는 법 있나? 이건 설탕물일세. 본래 아무것도 없건만 어디에 먼지가 묻으랴? 자네 마음에 술 생각이 있으니 호리병만 보면 술을 떠올리는 거겠지. 나는 마음에 술 생각이 없으니 술을 마신다고 한들 찬물이나 똑같다 그 말이네.”
허언과 허홍 모두 질렸다는 얼굴이 되었다. 허도와 말싸움을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이들은 다시 허행을 붙들고 만류했다. 그때 어린 사미가 들어와서 알렸다.
“상좌님들, 취의장 장주 섭인룡이 찾아왔습니다.”
승려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허행마저 초휴를 치러 가겠노라 발버둥 치던 것을 멈추고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섭인룡이 대광명사에는 왜 왔단 말인가?’
다른 문파에서 대광명사를 찾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불종 일맥과 관련 있는 문파가 대다수였다. 취의장은 북연에 있기는 하지만 대광명사와는 별 교류가 없었고, 섭인룡은 지금까지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허도는 문간에 기댄 채 느긋하게 말했다.
“만나자고 왔으니 들여보내거라. 대광명사가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쓰겠느냐?.”
사미가 끄덕이고 나가더니 섭인룡을 데리고 들어왔다.
일년도 지나지 않았건만 섭인룡은 십여 년쯤 늙은 것 같았다. 머리는 온통 하얗게 세었고 몸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섭인룡은 허도 일행을 보자마자 한마디 말도 없이 곧장 무릎을 꿇었다.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보는 가운데, 그의 목소리는 침중하기만 했다.
“마도 도적 초휴가 강호를 무법천지로 만들고 있습니다. 부디 대광명사가 나서서 상황을 해결해 주시길 바랍니다. 정도 무림이 연합하여 사마외도를 척결하고 천하를 깨끗이 해야 합니다!”
섭인룡이 무릎을 꿇자 허행 등은 깜짝 놀랐다. 섭인룡이 이토록 저자세로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대광명사의 실력이 강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섭인룡은 무도종사였고 취의장 장주였으며 풍운방에도 이름이 오른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다짜고짜 자신들에게 무릎을 꿇으니 순간 허도마저 아연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허언은 얼른 섭인룡을 부축해서 일으키려 했다.
“섭 장주, 이러지 마십시오. 마도를 제거하는 것은 우리 대광명사의 당연한 본분이니 이러실 것 없소.”
섭인룡은 일어서지 않고 고개만 가로저었다.
“제가 온 것은 강호를 위해서일 뿐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제 불쌍한 아들 동류가 초휴의 손에 참혹히 죽었는데도 아비가 되어서 진짜 원수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이렇게 슬프고도 황당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야 초휴 놈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천인공노할 일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수법이 대담하고 악랄합니다. 장래 반드시 마도의 거물이 되어 강호에 큰 화를 입힐 겁니다. 지금 그자를 죽이지 않으면 일평생 저에게는 복수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취의장의 세력은 미약하고 초휴는 은마의 빼어난 준걸이니, 필경 은마의 보호를 받고 있겠지요. 죽이고 싶어도 저 혼자로는 방법이 없단 말입니다.”
허언이 미간을 찌푸렸다.
“섭 장주, 대광명사에서 당신의 복수를 위해 나서 달라는 거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저의 원한이야 당연히 제 손으로 갚아야지요. 제가 바라는 것은 대광명사의 위명을 빌려 마를 주멸하는 북연 주마연맹(誅魔聯盟)을 조직해, 초휴 그 마두를 죽이려는 것입니다! 초휴는 악랄하기 이를 데 없는 짓을 벌이고 다녔습니다. 지금 없애지 않으면 장차 정도 무림에 큰 우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취의장의 위명으로는 연맹을 조직하자는 말을 해 봐야 비웃음이나 사겠지요. 해서 대광명사에 도움을 청하러 온 것입니다. 대광명사를 맹주로 받들고, 북연 무림의 모든 정도 고수들이 관중형당을 공격하여 그 마두를 주멸하는 겁니다!”
허언 등은 모두 미간을 찌푸렸다.
‘섭인룡이 이런 말을 할 줄이야.’
사실 초휴 사건이 터진 이상 대광명사로서도 그와의 은원을 매듭짓기는 해야 했다. 초휴의 손에 죽은 대광명사 제자도 이미 한둘이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초휴에게 복수하고 싶어 하는 허행도, 허언이나 다른 사람들도, 섭인룡이 말한 것처럼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은 없었다.
허언이 생각 끝에 말했다.
“섭 장주, 지금은 말씀하신 바에 답을 드리기 어렵소. 이건 매우 중대한 일인데 방장은 지금 폐관 중이십니다. 망념선당 상좌 허운 사형께 여쭤본 후에야 결정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내가 다녀올 테니 일단 기다리고 계시지요.”
섭인룡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제야 일어섰다. 그는 대광명사 제자의 안내를 받아 접객실로 향했다.
섭인룡이 떠나자 허언이 입을 열었다.
“갑시다. 가서 허운 사형께 말씀을 드려 보지요.”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려는데 뒤에 있던 허도가 웃음을 터뜨렸다.
“섭인룡은 만만히 볼 놈이 아니로군. 입만 열면 마도를 주살하자고 떠들면서 정작 제 마음속에 심마가 들어 있지 않은가.”
허언과 다른 사람들은 허도의 말을 대강 무시했다. 허도는 얌전히 있는 법이 없었고 온종일 미치광이처럼 중얼거리고 다녔다. 해서 아무도 그가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고, 허도와 진지하게 현안을 상의하려 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