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13)
613화 칼 한 자루
항륭은 화가 치솟아 도리어 웃었다.
“정말 웃기는 소리로군. 애송이 녀석이 짐에게 합작을 논한다? 네게 그럴 자격이 있더냐? 은마의 위서애쯤 되면 또 모르겠다만 말이지. 짐이 하루에 얼마나 많은 공무를 처리하는지, 얼마나 많은 국가 대사를 결정해야 하는지 아느냐? 너는 짐의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기군망상(欺君罔上)이 어떤 처벌을 받는지 모르진 않을 테지! 아니면 네가 은마 사람이라 짐이 너를 못 죽일 거라고 감히 생각하는 것이냐?”
마지막 한 마디를 뱉을 때, 항륭에게서 터져 나온 기세와 살기는 초휴마저 속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사실 항륭은 무도를 거의 익힌 바가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황족이었던 사람이, 황자 시절에 조금 익혔다면 몰라도 즉위한 이후에 수련할 시간 같은 게 어디 있었겠는가?
무도는 그저 몸을 강건히 해 주는 수단 정도로 여기고, 단약 따위 물건으로 수명이나 연장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매일 공무를 처리하느라 너무 마음을 졸였기 때문에 수명을 늘린다고 해 봐야 얼마 되지 않았다. 반대로 동제 여호창처럼 평범한 자는 속 끓일 일이 없으니 오래 살고 있는 것이다.
실력으로만 보자면 초휴가 손가락만 가볍게 튕겨도 항륭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항륭은 평생 온 천하에서 싸움을 벌이며 살아왔다. 그의 손에 간접적으로 죽어 나간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제왕의 손이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많은 피가 묻어 있는 것이다.
북연 황실에 충성하는 무도종사가 이 광활한 건물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잠복해 있겠는가. 초휴가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제일 먼저 목숨을 빼앗길 터였다.
초휴는 신중하게 말했다.
“폐하, 고정하십시오. 은마권에서 제가 후배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발언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폐하께서 원하시는 바를 압니다. 저를 없애고자 하는 자들은. 바로 폐하께서 없애고 싶어 하시는 자들과 같은 종류입니다.”
항륭은 홀연히 격노를 거두었다. 살기를 사방으로 마구 뻗치던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평온한 어투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
초휴는 공수를 올렸다.
“옛날 폐하께서는 북연 무림과 손을 잡고 함께 동제에 대항하셨습니다. 대단한 묘수였지요. 무도에는 국경이 없으나, 무사들의 종문에는 국경이 있습니다. 동제가 북연을 멸망시키면 북연 무림 세력 역시 동제 무림의 압박을 받게 됩니다. 해서 조정과 무림이 손을 잡아 동제를 공격해서 물리쳤고, 이는 폐하께서 등극하신 이래 가장 눈부신 업적이었습니다.”
항륭의 낯빛이 다소 나아졌다. 초휴가 말한 것은 그로서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북연은 건국 이래 오랜 세월 동안, 항륭의 선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동제에 억압당해 왔다. 하지만 그의 치세에 이르러 완전히 판세가 뒤집혀서 동제에 반격을 가했고, 심지어 큰 타격을 안겨 주었다.
비록 북연의 저력은 아직 동제에 비할 바가 못 되었으나, 그 위업으로 인해 세상에서는 이미 북연이 동제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대국이라고 공인하고 있었다.
초휴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그 후의 후유증에 대해서도 아실 줄로 믿습니다. 조정은 강호 종문과 연합하여 동제와 맞섰고, 이후 적잖은 이득을 그 종문들에 나눠 주어야 했지요. 북연 무림 종문들은 오만하고 사나워져서 이제 북연 조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폐하도 잘 알고 계시겠지요. 북연 무림은 이제 너무 커졌다는 것을요.”
초휴는 옛날 북연에 있을 때부터 무림과 조정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알고 있었다. 공동의 적 앞에서는 손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놓고 싸우지는 않더라도 여러 가지 추잡한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조정은 자신이 통치하는 영토의 절대적 통제를 원했고, 반면 무림 세력은 절대적 자유를 원했다. 연남 신무문 같은 종문만 해도, 연남 땅에서는 무엇이든 신무문 일가의 마음대로였고. 조정은 한쪽에 물러나 구경이나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건 조정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북연은 본래 기반이 튼튼하지 못했다. 해서 동제의 용기금군 같은 황실 직속 무장세력을 동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항륭은 일세의 패왕(霸王)이었다. 북연 무림이 우쭐대거나 심지어 조정을 도발한다면, 설령 힘이 부족하다 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해서 북연 각지의 현주부 주위에는 거의 어디나 북연군이 주둔해 있었었다. 북연 무림 세력이 분수를 모르고 설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북연은 국경에 투입할 힘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마침 지금은 삼국이 평화롭게 발전해 나가는 단계인지라 일시적이기는 해도 싸움이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항륭은 초휴를 응시하며 차갑게 말했다.
“네가 나를 대신해서, 말을 듣지 않는 무림의 종문들을 손봐 주겠다는 뜻이냐? 초휴, 짐이 같은 실수를 두 번 할 것 같으냐? 우리 북연이 위급에 처했을 때 짐은 북연 무림과 손을 잡았다. 동제를 격퇴하기는 했으나, 결과적으로 북연 무림의 힘은 너무 커지고 말았지.”
“지금 짐이 너희 마도와 합작을 하면 북연 무림은 억누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도가 기회를 틈타 일을 벌이면 어쩐다는 말이냐? 앞문으로 이리를 내쫓았더니 뒷문으로 범이 들어오는 격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되면 북연은 강적을 맞이하게 되겠지. 옛날 짐이 북연 무림과 손잡기로 했던 것은 상황이 실로 위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위기에 놓여 있지도 않은데 짐이 왜 너희처럼 위험한 마도 무리와 손을 잡겠느냐?”
항륭의 힐문에 초휴는 여유 있는 태도로 대답했다.
“폐하, 틀렸습니다. 은마와 연합하시는 것은 안전한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은마에는 안정적인 거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무림 종문들은 북연에 자리 잡고 있어서 폐하가 그들을 완전히 억누르기 어렵습니다. 그들의 기반 자체가 북연에 있기 때문입니다.”
“은마가 어떤 상황인지는 폐하도 아시겠지요. 부평초 같은 신세입니다. 폐하가 저희와 합작하신다면 저희는 폐하의 손에 들린 한 자루 칼이 될 것입니다. 북연 조정은 저희를 보호하고, 저희는 폐하가 원하시는 대로 사람을 죽일 겁니다.”
“그저 그뿐입니다. 언젠가 이 칼을 쓰다가 질리시거든 그냥 버리셔도 상관없습니다. 악명을 쌓을 일 또한, 모두 저희에게 미루셔도 됩니다. 조정은 여전히 조정일 것이며 저희는 북연의 이익에 털끝만 한 위협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옆에 서 있던 항충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협상을 이렇게 하는 법도 있나. 자기 편의 열세와 결점을 모두 말해 버리다니, 제 발로 곤경에 뛰어드는 격이 아닐까?’
항륭은 눈을 가늘게 뜨고 초휴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표정 없는 그의 얼굴에서는 그 무엇도 읽어낼 수 없었다.
잠시 후 항륭이 말했다.
“언젠가 짐이 정말 네 말대로 은마를 저버리거나 아예 죽일 것은 걱정되지 않느냐?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는 신세가 될지 모르는데?”
초휴는 담담히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로서는 걱정됩니다. 하지만 은마권은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연 조정이 강하다 한들, 옛날 은마를 없애려고 손을 잡은 정도 종문들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외람된 말씀을 드리자면, 쉽게 모이는 자들은 쉽게 흩어지는 법입니다.”
“폐하께서 그들을 쓰기 싫으시다면 말만 하시면 됩니다. 은마권은 알아서 제각기 떠날 것입니다. 그래도 폐하께서 굳이 끝장을 보시겠다면 까닭 없이 적만 늘리시는 셈이지요. 저는 북연 조정의 힘을 빌려 이번 재난을 넘기기 위해 왔지만, 북연 조정이 휘두를 칼을 전해 드리려고 온 것이기도 합니다. 은마라는 이 칼을 쥐시겠다면, 폐하께서 누구를 지목하시든 제가 나서서 없애겠습니다.”
항륭은 답하지 않고 한참 침묵하더니, 홀연히 웃었다.
“너희 강호인들은 늘 가식적인 도리를 따지는 것을 좋아하지. 마교와 결탁한 자는 강호의 쓰레기라 하더군. 그렇다면 마교와 결탁한 조정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초휴의 얼굴에도 웃음이 걸렸다. 일이 성사되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조정이 하는 일을 결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상대를 ‘전향’시키는 거라고 해야겠지요.”
항륭이 일어섰다.
“전향이라……. 아주 좋군. 솔직히 말하지. 짐은 능력 있는 자를 쓸 뿐, 정인지 마인지는 상관치 않는다. 초휴, 이번 일은 짐이 도와주겠다. 그러나 북연 조정이 내줄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다. 네가 은마를 대표한다지만 은마가 너를 지키기 위해 모든 힘을 동원할 리는 없겠지. 그러니 우리 북연 조정도 힘닿는 만큼 도울 뿐, 전력을 다하지는 않을 것이고, 전력을 쓸 수도 없다. 네가 살아남는다면 방금 짐에게 한 이야기도 유효한 것이고, 만일 죽는다면 너의 재수 없는 입을 탓해야 할 테지.”
초휴는 공수를 올렸다.
“폐하, 안심하십시오. 세상에 저를 죽이려 하는 자는 산더미 같습니다만 이렇게 잘만 살아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한 초휴는 곧장 인사를 올리고 황궁을 떠났다.
“열셋째야, 너도 물러가 보아라.”
항륭이 담담히 말했다. 항충은 고개를 끄덕이고 예를 올린 다음 황궁에서 빠져나갔다.
항충이 떠난 후에야 항륭이 입을 열었다.
“국사, 어찌 생각하시오? 짐이 초휴 및 은마와 합작하는 것이 좋은 선택일까?”
그늘진 구석에서 도포를 입은 노인이 걸어 나왔다.
그 도포는 아주 기괴했다. 칠흑 같은 검은색에, 등에는 도가에서 흔히 보이는 음양태극운문 따위가 아니라 요사스러운 음양무상도(陰陽無常圖)가 그려져 있었다.
흑백무상이 지극히 요사한 각도로 서로의 머리와 꼬리를 물고 태극을 만드는 형상이었는데, 보면 볼수록 비할 데 없는 사기가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노인은 염소 같은 수염을 길렀고 눈썹이 높이 솟았는데, 왼손에는 검, 오른손에는 불진을 들었고 약간 등이 굽어 있었다.
그는 항륭의 뒤로 오더니 듣기 거슬리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신이 그자의 얼굴을 보니 반골의 상입니다. 게다가 대단한 야심을 지니고 있어서 주인에게 해를 끼칠 것입니다. 그자를 쓰시려거든 조심하셔야 합니다. 은마도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신도 전에 그자들과 접해본 일이 있습니다만, 곤륜마교를 부흥시키려는 미치광이들입니다. 그들과 합작하려면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셔야 합니다.”
항륭은 별 대답 없이 웃었다.
“제 주인을 해할 것이다? 국사, 천하에 짐이 쓰지 못할 자는 없소. 옛날 양공도 역시 인재였고 그의 야심 역시 결코 초휴보다 작지 않았지. 그러나 짐의 말 한마디에 결국 북연에서 쫓겨나지 않았던가. 그나마 그자가 북연을 위해 애쓴 바가 있고 공로가 있었으니 짐이 사정을 봐 준 것이지, 아니면 살아서 북연을 떠났을 것 같소?”
늙은 도사는 고개를 더 깊이 숙이며 얼른 말했다.
“폐하의 말씀대로입니다. 폐하는 천명을 받은 분이시니 초휴가 제아무리 흉악한 반골의 상이라도 폐하라면 다스리실 수 있지요.”
항륭은 뜻 모를 웃음을 흘리더니 천천히 거닐며 말했다.
“국사, 안심하시오. 초휴 및 은마와의 합작은 그저 무림 세력을 진압할 때 북연이 입을 손실을 줄이기 위한 것이오. 초휴는 은마의 사람이지. 짐은 그들을 절대 믿지 않소. 국사야말로 짐의 심복이오.”
“감사합니다.”
고개 숙인 도사의 눈에 기이하고 날카로운 빛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