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14)
614화 주마연맹
북연 황궁을 떠난 초휴는 잠시도 쉬지 않고 관중형당으로 말을 타고 내달렸다.
위서애는 이미 관중형당에 와 있었다. 조승평, 나삼총 등 초휴를 따라 구천산 복수 임무를 수행했던 무사들과 함께였다.
그들은 여전히 초휴에게 감복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초휴의 진짜 정체를 알자 경악했음은 물론이다. 정말 비범한 대인 아니신가.
한 사람이 두 가지 신분을 지니는 거야 이상할 게 없었다. 은마에 그런 사람이 적은 것도 아니니까. 그러나 한 사람이 두 가지 신분으로 용호방 일 위와 이 위에 동시에 올랐다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삼총 등만이 아니라 육 선생이 데려온 무상마종의 무사들도 있었다. 무상마종은 위서애의 수하라고 할 수는 없었고, 그저 위서애와 사이가 좋다고 말할 수는 있는 정도였다.
그러니 이런 시기에 무상마종이 육 선생과 무사들을 보내준 것만으로도 위서애와 초휴의 체면을 적잖이 살려 준 셈이었다. 이건 초휴로서는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빚이었다.
위서애를 만난 초휴는 북연 황제 항륭에게 말했던 조건을 털어놓았다. 위서애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선참후계라도 하는 게야?”
항륭 앞에서 초휴는 자신이 은마의 대표인 것처럼, 최소한 위서애 계열의 대표인 것처럼 굴었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항륭의 긍정적인 대답을 받아낸 다음 위서애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선참후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초휴는 웃었다.
“위 선배님, 그런 사소한 데에 마음 쓰지 마십시오. 항륭에게 한 말은 구두 약속에 불과합니다. 만일 선배님께서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북연의 지원을 받는 일은 그만두고 거래를 폐기하면 그만입니다.”
그러자 위서애는 나삼총 쪽을 흘깃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나 같은 늙은이야 어디서 살건 다 똑같지. 하지만 저 젊은이들은 가문의 전통 때문에, 혹은 우연히 기연이 맞물려 은마에 들어와서 나의 수하가 되었다. 내가 저들을 키워주지는 못할망정 망칠 수는 없지 않으냐. 저들은 나를 따르느라 어둠 속에서 쥐처럼 숨어 살았다. 출수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이 아예 못 쓰게 되는 법이지. 그러니 차라리 너와 함께 북연에 가서 앞날을 걸어 보는 것도 좋겠지.”
나삼총과 그 외의 사람들이 얼른 위서애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위 선배님!”
그들이 은마에 들어온 이후 출수한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은마의 규칙 때문이기도 했고 위서애 휘하에서는 별로 할 일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들은 한창 장년에 접어들었고 틀어박혀 폐관 수련에만 몰두할 나이는 아니었다. 온종일 어둠 속에 숨어 얼마 안 되는 수련 자원을 움켜쥐고 고된 수련을 하느니, 차라리 초휴와 함께 세상에 뛰쳐나가 쓸고 다니는 편이 나았다.
위서애를 향한 그들의 인사는 그동안 위서애의 보호, 그리고 위서애가 그들의 바람을 이루어 준 것, 두 가지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 * *
연동 낙평군, 취의장.
평소에도 취의장을 오가는 무사들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연맹까지 만들어지자 취의장을 찾는 무사들은 파도가 밀려오는 듯했다.
이 광경을 보는 섭인룡은 자신도 모르게 감회에 젖었다. 동류가 죽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세운 취의장의 기반과 이렇듯 성대한 위세를 모두 물려주었을 게 아닌가.
‘동류가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중년에 자식을 잃는 것보다 더한 비통함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섭인룡은 이내 비통한 기색을 갈무리했다. 지금은 슬픔에 잠길 때가 아니었다. 그는 이번 거사로 취의장의 이름을 천고에 남길 결심을 했으니 말이다.
그때 천인합일 무사 하나가 와서 보고했다.
“장주, 거의 다 모인 것 같습니다.”
섭인룡은 손을 내저었다.
“극북표설성과 연서 평요 황보세가는 안 왔나?”
그는 고개를 젓더니 머뭇거렸다.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극북표설성은 우리 취의장과 원수지간이니 아마 안 오지 않겠습니까. 연서 평요 황보세가는 머릿수를 좀 채워 달라는 요청 정도야 들어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황보세가 노야를 모셔 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섭인룡은 미간을 찡그렸다. 정말 오지 않는다니 의외였기 때문이다. 그는 두 군데 다 필경 오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극북표설성이 섭인룡과 원수지간이기는 했으나 이번 일은 북연 정도 무림 전체가 나서는 판이 아닌가. 극북표설성이 빠질 이유가 없었다.
취의장의 위세를 더해주는 게 싫더라도 그들 자신의 명성은 고려해야 했다. 백한천은 그리 우둔하고 속 좁은 인간이 아니었다.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연서 평요 황보세가 쪽은 섭인룡이 직접 서신을 써서 이해득실을 설명한 바 있었다. 황보씨는 오랜 세월 숨죽여 살아왔으니 이제 존재감을 떨칠 때도 되었다.
그리고 황보세가 측에서도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신용을 지키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섭인룡은 얼굴을 찌푸린 채 말했다.
“일단 기다려 보세. 하나는 북지에 있고 하나는 연서에 있으니 사람 수가 많아서 늦어지는 것일지도 모르지.”
두 시진 가까이 더 기다렸으나 두 가문이 올 기미는 없었다. 반면 취의장은 이미 들끓는 솥 같아서 다들 못 참겠다는 태세였다. 섭인룡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더는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됐다. 더 기다릴 것 없이 연맹 회의를 바로 시작하지.”
섭인룡은 몸을 돌려 취의장으로 들어섰다. 끓는 솥 같았던 사람들이 섭인룡을 보자 공수를 올렸다.
“섭 장주!”
섭인룡은 소매를 떨치고 곧장 중앙의 높은 대로 올랐다.
“오백 년 전, 곤륜마교가 온 강호에 화를 불러일으켜 마도는 흥성하고 정도는 쇠약해졌소. 우리 정도 무림이 가장 힘겨웠던 시절이라 할 수 있겠지요. 다행히 진무교 장문 영현기 선배께서 마교 교주 독고유아를 참살하고, 또 무수한 정도 선배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운 끝에 곤륜마교를 멸망시켜 천하를 깨끗이 했던 것이외다.”
“그러나 지금 마도 일맥은 권토중래할 기세올시다. 초휴는 두 개의 신분으로 강호를 횡행하며 악랄하고 끔찍한 일을 무수히 저질렀고, 수많은 무림동도가 그의 손에 끔찍하게 죽었소. 지금 그자는 관중형당을 장악하고 은마의 힘을 무림에 떨치려 합니다. 옛 선배들께서 목숨을 내던지고 뜨거운 피를 뿌려서 마도 도적들을 철저히 박멸하셨건만, 우리 세대에 와서 그들이 다시금 강호를 어지럽히게 둔다는 게 말이 되겠소?”
“오늘 이 자리에 대광명사 금강원 상좌 허언대사, 신무문 연회남 문주, 거령방(巨靈幫) 방대통(方大通) 방주 등, 많은 분이 와 주셨으니 이 섭인룡, 감격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금 동제 무림에서도 한창 연맹이 조직되는 중이오. 관중형당을 공격하여 천하의 악한 초휴를 죽이는 일에 우리 북연 무림이 뒤질 수는 없지 않소이까!”
“옳소!”
아래쪽에서 왁자하게 호응이 일었다. 특히 군소 세력 무사들은 더욱 흥분한 모양새였다.
사실 그들 대부분은 마도 박멸 따위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섭인룡이 그들에게 한 약속만은 매우 솔깃했다.
명성을 얻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초휴가 장악한 관중형당을 무너뜨리면 그곳에 있는 수련 자원과 보물의 절반은 그들의 몫으로 주겠다는 것이었다.
상석에 앉은 대문파들의 경우, 대광명사는 그런 자잘한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신무문 역시 체면을 지켜야 했으므로 그런 일로 다투려 하지 않았다. 물욕을 지닌 것은 거령방 정도였다.
거령방 방주 ‘거령신장(巨靈神將)’ 방대통은 우람한 체구의 중년인으로, 겉보기에는 우락부락하고 거칠어 보였으나 사실은 매우 주도면밀했다.
사실 거령방은 취의장이 조직한 이번 연맹에 참여하지 않아도 무방했다. 초휴와 아무 은원이 없기 때문이다.
거령방에 소속된 사람 수는 많았으나, 주로 표국이나 운송 일로 돈을 벌면서 삼국을 오갔을 뿐, 특정 국가에 속한 세력이 아니었다.
그러나 방대통의 눈에 이번 일은 거령방에 주어진 큰 기회였다. 거령방이 강호에 명성을 떨칠 기회 말이다.
인화육방은 비교적 약하고 강호에서 중시 받지 못하는 세력이다. 해서 다들 발전책을 모색하고 있었다.
개중 가장 강한 세력은 천하맹이었다. 진청제는 무쇠 같은 주먹으로 천리강산을 손에 넣었다. 천하맹은 그 한 사람만 남아도 버틸 수 있을 터였다.
취의장 역시 천하맹과 비슷하게 섭인룡 한 사람의 명성으로 지탱되는 곳이었다. 섭인룡이 죽지 않는 이상 취의장 하면 강호인들이 알아주는 이름이었다.
풍만루는 정보 거래 전문이었으니 그리 실력이 강할 필요가 없었다.
강산각은 멀리 남해 땅에 있다. 소문으로는 세력을 잃은 황족 무리가 만들어낸 방파라고 하는데, 중원 무림의 다툼에 끼어드는 일이 거의 없어 실력을 알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개방은 온 강호에 퍼져 있었다. 더럽고 지저분해 보이는 거지 중 누가 진짜 거지고 누가 개방의 고수인지를 식별하기는 쉽지 않았다
개방의 실력은 언제까지나 수수께끼였다. 언제나 폐관 중이라는 방주는 그렇다 치고, 개방은 오랫동안 한 번도 다 같이 모인 적이 없었다.
육대 방파를 하나씩 헤아려 보면 실력이 제일 약하고 뚜렷한 목표도 없는 세력이 거령방이었다. 지금이야 사람이 많지만 무슨 일이라도 터졌다가는 가장 먼저 육방에서 이름이 빠질 세력도 거령방이었다.
해서 방대통은 섭인룡이 초청하기도 전에 자청해서 연맹에 참가했다. 거령방도 정도 종문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명성을 얻고자 한 것이다.
방대통이 일어섰다.
“옛날 마도가 강호를 어지럽힌 것이 불과 수백 년 전 일이니, 그 교훈을 우리 모두 잊어서는 안 될 것이오. 우리 거령방은 비록 강호의 밑바닥에서부터 굴기했지만, 강호의 안위에 누구나 책임이 있다는 도리를 잘 알고 있소. 섭 장주가 우리를 불러모으셨으니 장주께서 연맹 맹주를 맡아 명령을 내린다면 그대로 따르겠소이다!”
섭인룡의 입가에 알아채기 어려운 미소가 스쳤다.
방대통이 영리하게도 그에게 꽃가마를 태워 주고 있지 않은가. 방대통 자신이 맹주 자리에 앉을 기회가 있을 리 없으니, 그렇다면 섭인룡을 맹주로 밀어주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단 사양했다.
“이 자리에는 강호의 쟁쟁한 무도종사며 대문파의 고수들이 즐비합니다. 제가 어찌 감히 나서겠습니까.”
허언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 연맹은 섭 장주께서 제의하신 것이니 당연히 맹주 자리에 앉으셔야지요. 대광명사는 실전에만 나서겠소이다.”
연회남은 맹주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방대통과 대광명사 허언이 모두 겸손한 자세로 나오자 그 또한 눈치껏 처신할 수밖에 없었다.
“제 생각에도 섭 장주가 맹주를 맡는 게 옳은 것 같소이다.”
섭인룡이 겸손한 사양의 언사로 답하려는 순간, 취의장 대문이 벌컥 열렸다. 이에 섭인룡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누가 이렇게 예의 없이 군단 말인가? 연맹 회의를 진행할 때는 누구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이미 분부했건만!’
그러나 열린 대문에서 진한 피비린내가 확 닥쳐오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무슨 상황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 것이다. 갑자기 취의장 밖에서 마기가 퍼져나오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하늘의 해를 가리듯 취의장 전체를 감싸 버렸다.
초휴는 마혈대법에 빨아 먹혀 빼빼 마른 시체가 된 취의장 무사 둘을 아무렇게나 내던지며 웃음 지었다.
“정도 인간들은 정말 가식적이기 짝이 없다니까. 맹주 자리 하나 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꼴이 참으로 가관 아닌가. 속으로는 저마다 하고 싶으면서 입으로는 딴소리를 한단 말이지. 이제 그쯤하고, 여기 초휴가 친히 납셨으니 날 죽이고 싶으면 얼마든지 덤벼라!”
초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당아 등의 관중형당 수하들과 나삼총 등의 은마 무사들이 취의장 담장 위로 일제히 뛰어올랐다. 취의장에 모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눈에 살기가 흘러넘쳤다.
취의장을 둘러싼 마기는 갈수록 강대해졌다. 공수원이 만든 진반이었다. 아주 대단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기척을 숨겼다가 일시에 강렬한 마기를 방출해서 상대를 위압하고 마공 사용자의 힘을 증강해 주는 효과가 있었다.
한껏 기세를 올리던 정도 연맹 쪽이 오히려 일순간에 포위당하고 만 것이다. 다들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일이 반대로 돌아가는 거지?’
섭인룡은 초휴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초휴! 네놈이 감히!”
아들의 ‘진정한’ 원수가 눈앞에 나타났는데 산 채로 씹어 삼키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게다가 그는 초휴가 이런 상황에서 선공을 취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