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16)
616화 저지
이번에는 허도 역시 헛소리를 늘어놓지 않고 얌전히 허운을 따라 대광명사를 나섰다. 허도는 평소 못 미더운 태도로 건들거리기만 했으나, 대광명사와 관련된 중요한 일을 망칠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길을 떠나니 아무래도 허운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사형. 은마의 그 애송이는 정신이 나갔답니까? 관중형당이나 잘 지키고 있을 것이지 감히 북연의 적진 속으로 뛰어들다니요? 그렇게 빨리 죽고 싶답니까?”
허운이 담담히 말했다.
“상대가 어리석다고 속단하면 안 돼. 그런 일을 벌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야. 우리가 취의장까지 가기도 전에 저쪽에서 먼저 찾아올지도 모르지.”
허도가 자신의 대머리를 긁적거리며 막 뭐라 말하려는데, 홀연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과연 허운대사는 신통하시오. 오랜만에 보니 망념천대자재경(妄念天大自在經)에 증진이 있었나 보구려.”
검은 옷을 입은 위서애가 눈을 가늘게 뜨고 길가에 서 있었다. 마치 햇볕을 쬐러 나온 평범한 노인 같았다. 저무기는 그 뒤에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허운과 허도를 바라고 있었다.
허운은 위서애를 보더니 염불을 외웠다.
“아미타불, 위 옹이셨구려. 부옥산 정마대전 당시를 제외하면 오래도록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거로 아오만. 위 옹께서 직접 나서시다니, 초휴를 정말 높이 보시는 모양이구려.”
허도는 이상한 눈치로 허운을 쳐다보았다. 그의 사형은 승려이기는 했으나 ‘아미타불’ 네 글자 외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성품이었다.
허운은 자신이 진정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만날 때만 그 인사를 했다.
‘당장이라도 땅속에 묻힐 것 같은 저 늙은이가, 사형이 그리도 중히 여길 정도로 두려운 존재란 말인가?’
위서애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은마가 몰락한 지가 벌써 언제요? 될성부른 싹을 찾기는 정말 어렵더군. 대광명사의 종현을 노리는 세력이 있으면 대광명사에서도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소? 허운, 돌아가시오. 우리 마도가 정도 무림에 이토록 오랜 세월을 억압당해 왔으니, 이제 슬슬 나와서 햇볕을 쬘 때도 되지 않았소.”
“동제, 북연, 서초에 은마의 근거지는 하나도 없소. 중립 지역인 관중형당에서나 머리를 좀 내밀겠다는데 그것조차 막으려는 거요? 무슨 일이든 최소한의 여지는 남겨 두어야지, 너무 지나치면 곤란한 법이야.”
허운은 담담히 말했다.
“이왕 몰락했으니 계속 몰락해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위 옹, 당신은 옛날 구천산 싸움의 유일한 생존자이니 그 싸움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잘 아실 테지. 구천산 오대천마 중 네 명이 죽었고 다른 마도 무사들도 무수히 죽고 다쳤소. 만일 당신들이 공공연히 곤륜마교 부흥의 기치를 내걸지 않고 계속 참고 숨어 살기를 선택했으면 그리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았을 거요. 땅속에 숨어 있으면 살 수 있고, 머리를 내밀면 죽는 것이지. 초휴가 그런 짓을 저지르도록 방임하는 것은 그를 돕는 게 아니라 해하는 일이오. 그가 정말로 정도 무림이 용인할 수 있는 선을 깨뜨린다면 움직일 사람은 비단 나 하나가 아닐 것이오!”
그러자 가늘게 뜨고 있던 위서애의 눈이 크게 열리더니, 비할 데 없이 예리한 빛이 드러나고 기세 역시 거세게 치솟았다. 바람 앞의 촛불 같던 늙은이가 순식간에 그 옛날 천하에 비바람을 불러온 마도의 거물로 변한 것이다.
“왜 참지 않느냐고? 지난 세월 동안 우리 은마는 늘 땅속에 사는 쥐새끼란 소리를 들었지. 쥐 노릇을 계속하다가는 정말 겁쟁이 쥐새끼가 되어 버릴 게 아닌가! 이 늙은이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젊은이들에게 기개도 보여주고 모범이 되어야 하지 않겠소? 나 같은 늙은이마저 죽음을 겁낸다면 은마에 무슨 희망이 있겠나? 독고 교주가 살아 돌아오셔도 우리 같은 폐물은 거들떠보지 않으실 거요.”
“허운, 대광명사에서 내가 이길 자신이 없는 자는 단 둘뿐이오. 하나는 당신네 방장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허운 당신이지. 다들 망념천대자재경이 선종과 밀종의 정수를 융합한 것이라 하던데, 어디 오늘, 이 늙은이에게 한 수 가르침을 베푸시구려!”
말이 떨어지자마자 위서애의 몸에서 하늘을 뚫을 듯한 마기가 솟구쳤다. 쇠약해 보이던 육신에서 모두를 경악하게 만드는 힘이 폭발했다. 내딛는 걸음마다 천지가 어두워졌고 내지르는 일권은 마와 신을 동시에 놀라게 할 듯했다.
허운은 한숨을 쉬고는 경문을 외웠다. 웅얼대는 범어 소리가 은은히 퍼져나가며 금빛 불광이 그의 전신을 감쌌다.
허운이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하나의 영역이 만들어지는 듯했다. 허운이 지나치는 곳은 모두 그의 영역이 되었다. 한 걸음이 불토(佛土)요, 다음 걸음이 중천(重天)이었다.
하나는 옛 구천산 오대천마 중 유일한 생존자로, 부족한 힘으로도 강호를 뒤흔들며 정도 무림 전체를 상대로 싸웠던 존재였다.
다른 하나는 놀라운 재능을 타고나서 대광명사의 망념선당 상좌가 되었고, 그 위세는 방장마저 압도할 정도였다. 그런 두 사람이 싸움에 임하는 기세란 그야말로 경천동지라 할 만했다.
허도는 호리병을 갈무리하고 저무기를 향해 웃어 보였다.
“멀뚱히 서서 뭐하시오? 우리도 붙어 봅시다. 빨리 끝나야 신경을 쓰지 않을 테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도의 몸을 불광이 감쌌다. 진지할 때라고는 없던 그였으나 지금의 모습은 장엄했다. 항마인의 인결을 맺자 부처가 마를 굴복시키고 만계를 진압하는 듯, 놀랍도록 강맹하고 호쾌한 위세가 드러났다.
저무기도 차갑게 웃었다. 핏빛 달이 그의 뒤에 떠올랐다. 저무기는 도를 지니지 않았으나, 이 혈월을 칼날로 삼아 천지를 찢어발길 수 있었다.
진화련신 고수 둘과 무도진단의 절정 고수 둘이 싸우니 천지가 울리는 듯했다. 작은 산 하나가 무너진대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 * *
이들이 싸우는 곳에서 백 리가 떨어진 장소, 극북표설성 성주 백한천 역시 취의장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돌연 그를 막아선 자가 있었다. 방호와 그 휘하 기련 철기였다.
먼젓번 취의장은 연동 무림과 연합하여 기련 철기를 궤멸하려 했다. 그러나 초휴의 계략으로 극북표설성이 끼어들었고, 결국 취의장과 기련 철기 모두 큰 손실을 보았다. 이득을 챙긴 것은 극북표설성뿐이었다.
백한천은 방호를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방호, 고작 기련 철기 정도의 힘으로 북연 무림과 은마의 일에 끼어들겠다고? 죽는 게 그토록 소원인가?”
방호가 냉소했다.
“죽고 싶냐고? 극북표설성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나? 저번에는 임엽, 아니, 초휴가 날 도와주었지. 이 방호는 무식한 놈이고 북방 삼십육대도 역시 까놓고 말해서 도적 떼일 뿐이다. 그러나 도적이라도 도의는 지킬 줄 알아야지. 남의 도움을 받아 놓고도 모르는 척한다면 형제들부터 나를 무시하지 않겠나. 얘들아, 그렇지 않으냐?”
“맞습니다!”
방호 뒤에 선 기련채 도적들이 너도나도 소리를 높이니 그 기세가 비범했다. 백한천은 미간을 찡그렸다.
“헛소리! 그렇게 죽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 주마!”
그가 손짓하자 극북표설성 무사들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극북표설성은 뭐라 해도 칠종팔파에 드는 강호의 대문파였다. 기련채 같은 도적 무리와 비하면 훨씬 강할 수밖에 없었다.
* * *
그렇게 북지에서 싸움이 벌어질 무렵, 연서 땅 황보세가의 저택은 검은 갑옷을 입은 북연 병사들로 포위되어 있었다.
병사들의 대오 한가운데, 지극히 화려한 흑룡연(黑龍輦)에 이무기가 수 놓인 검은 장포 차림의 중년 무사가 누워 있었다. 그는 느긋하고 대범한 자태로 하품을 해 가며 느릿느릿 향초(香蕉, 바나나)의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북연 땅에서 서초 남만의 특산인 향초를 먹는 것은 가히 군왕에 비할 만한 사치였다.
사실 그는 황족이었다. 그가 탄 흑룡연 역시 본래는 황제만이 탈 수 있었다. 다만 지금 북연에서는 흑룡을 숭상하지 않으니, 그가 흑룡연을 타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북연 사람 대부분은, 황족 전부가 모반해도 그만은 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심이 없는 것 이전에, 그만큼 게으른 인물인 것이다.
북연 황족인 그의 이름은 항무(項武)로, 방계 황족인지라 혈연으로 따지면 너무 멀어서 중용 받기 힘든 인물이었다. 심지어 작위조차 일개 후에 불과했다. 봉지가 북연 임평부라서 그의 봉호는 임평후(臨平侯)였다.
어렸을 때부터 항무는 무도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일가가 중용 받지 못했던 터라 그 역시 북연 황실에 홀대당했다.
결국, 항무는 강호에 뛰어들어서 여기저기를 휩쓸고 다녔다. 해서 다소 이름이 알려졌을 때야 북연 황실의 눈에 띄어 황실로 소환되었다.
항륭은 일세의 명군답게, 자신이 유능한 인물에게 소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서 항무에게 충분하고 걸맞은 대우를 해 주었다.
친히 황족 일가의 윗배 고수를 찾아 항무를 가르치도록 하고 그를 황제의 아우로 삼았다. 진국오군 중 서릉군(西陵軍)을 그에게 맡겼고 대장군으로 봉했으며 심지어 작위도 왕으로 올려 주려 했다.
그러나 항무는 거절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조상님이 남겨주신 것을 버릴 수는 없다는 게 거절의 이유였다. 후손이 후작위를 보물처럼 지키느라 왕위를 거절했다는 것을 그 조상이 알았다면, 화가 나서 관뚜껑을 쪼개고 뛰쳐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항무는 항륭의 명령으로 황보세가를 막으러 온 것이었다. 정보에 따르면 황보씨 측에서는 오래도록 폐관하며 은거했던 노야까지 나설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항륭이 항무를 보낸 것이다.
황보세가의 노야는 진화련신의 실력자라고 했다. 항무는 아직 진화련신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거의 접근한 상태였다.
그를 가르친 북연 황족 어르신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치국의 도략에 있어서는 역대 북연의 제왕 중 항륭에 비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도의 재능을 놓고 말한다면 역대 북연의 황족만이 아니라 온 강호를 통틀어도 항무는 최절정에 속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런 항무가 행차해서 북연 조정의 압력을 몸소 가하고 있으니, 황보세가가 제정신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는 자명했다.
항무 곁에서 갑옷을 차려입은 우아하고 기품있는 무도종사 하나가 곤란해하고 있었다.
“후야(侯爺, 후작의 존칭)······.”
항무는 그에게 향초를 하나 건넸다.
“여기서는 장군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
고상한 중년인은 어쩔 수 없이 향초를 받아들었다.
“장군, 폐하께서 초휴와 합작하기로 하신 건 맞습니다만, 황보세가를 막으라고만 하셨을 뿐입니다. 그러나 장군은 황보씨 저택을 아예 포위하셨으니, 좀 지나치지 않습니까?”
항무는 향초를 한 입 베어 물더니 웃었다.
“지나치다고? 폐하가 왜 초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은마와 손을 잡으셨는지 아는가? 무림 세력들이 선을 넘어서, 슬슬 손을 봐 주고 버릇을 들일 때가 됐기 때문일세. 포위 정도가 아니라 더 심하게 굴어도 뭐라고 하지 않으실 거란 말이네. 참, 은나화. 옛날에 초휴와 만난 적이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이 난리를 치는 것을 보면 인물이긴 한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이 우아하고 고상해 보이는 중년인은 옛날 연동의 진산군 상장군이었던 ‘짐호’ 은나화로, 무도종사 실력자였다.
옛날 초휴가 청룡회 살수로서 요가장을 멸문시켰을 때, 진산군 사람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 초휴는 청룡회의 일개 살수에 불과했고 은나화는 이미 무도종사 경지에 가까운 상장군이었다.
그는 초휴를 약간 조사해 보았을 뿐,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그 뒤로 은나화는 무도종사의 경지에 들었고 진국오군 중 서릉군 부장으로 발령되었으니 초휴와는 더 접점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해서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