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17)
617화 항무
“옛날에 들은 바가 좀 있을 뿐입니다. 초휴는 사실 연동 땅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니까요. 그자는 옛날부터 수단이 악랄했고 행동 방식이 대담하고 과감해서 범상한 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강호에 뛰어난 인재는 많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출세하고 싶어 하지만 약간의 운이 모자라지요. 초휴가 지금 그 자리까지 간 것은 정말 운이 따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항무가 흐흐하고 웃었다.
“운이라. 운으로 잠시 높은 곳까지 갈 수는 있겠지. 하지만 계속해서 운이 좋기는 불가능하네. 초휴가 순전히 운 덕분에 지금의 위치까지 온 건 아닐 거야. 나도 궁금하군.”
항무는 문득 은나화를 바라보았다.
“은나화, 자네는 왜 안 먹나? 내가 일부러 남만에서 빠른 말로 운반해 오게 시킨 거란 말일세. 이 향초 하나가 취선거의 십리표향보다 더 비싸다고. 양기를 보하는 데도 아주 좋다네.”
은나화는 자신의 손에 들린 향초를 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후야······ 아니, 장군, 거짓말 마십시오. 우리 어머니가 남만 출신이라 저도 어려서 남만에서 자랐습니다. 향초는 나무 가득 열리는 것이라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남만 사람이라면 다들 밥 먹듯이 먹는단 말입니다.”
항무가 무슨 헛소리냐는 듯이 혀를 찼다.
“비슷하게 생긴 게 효과가 좋다는 말 모르나? 온 태의에게 물어봤더니 그렇게 말하더라니까. 보라고, 이렇게 누렇고 굵고 길쭉하니 딱 봐도 양기에 좋을 거 아닌가.”
은나화는 하릴없이 향초를 바라보았다. 분명 어려서 자주 먹던 것인데 항무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그다지 목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그야말로 뭐라 할 말이 없지 않은가.
옛날 진산군 상장군이던 시절, 그는 수단이 독하고 음침하기로 유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짐호라는 별호를 얻었겠는가.
그러나 항무 휘하에 들어온 이후 은나화는 갑자기 가치관이 무너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엉뚱하기 그지없는 서릉군 대장군은, 자신이 뭔가 계책을 내놓을 때마다 힘으로 모든 것을 짓눌러 버렸다.
힘이 어느 한계 이상으로 강해지면 어떤 음모나 계책도 무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목도할 때마다 은나화의 세계관도 같이 무너지고 말았다.
은나화가 그래도 후야의 체면을 봐서 향초를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이고 있는데, 별안간 황보세가 저택의 대문이 열리더니 제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족히 천 명은 되어 보이는 데다 기세가 사뭇 흉흉했다.
제일 앞에 선 사람은 화려한 금색 옷을 입은 노인으로 수염과 머리가 모두 하얗게 세어 있었다. 몹시 늙기는 했으나 자세가 꼿꼿하여 무시 못 할 위엄이 흘러나왔다.
그 노인 뒤에 무도종사급 고수가 세 명 서 있었다. 개중 하나는 소범천에서 초휴와 만났던 황보유명이었다.
황보씨는 구대 세가 중 가장 신중하고 얌전한 곳이었다. 물론 지금은 실력이 강하지 못해서 조용히 참고 사는 쪽을 선택한 것이었으나, 이들도 전성기 시절에는 구대세가의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상수 영가와 다투었었다.
지금 황보세가가 전성기에 비해 쇠약하다고는 해도 가문에 진화련신인 노야가 있었고, 실력이 제법 되는 무도종사도 세 명이었다. 이 정도면 구대 세가 중에서는 이미 강한 축에 들었으나, 황보씨들 자신은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황보세가 노야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항 후야께서 오셨구려. 무슨 일로 군대를 이끌고 우리 황보씨를 포위하신 거요? 그간 우리는 조정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른 바가 없소. 조정이 황보씨를 건드리려 할 때는 명분과 이유가 있어야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황보세가는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울 수도 있소! 여기서 우리 황보씨가 답을 듣지 못할지도 모르나 언젠가는 다른 무림동도들이 답을 받아낼 것이오!”
황보 노야는 조정에서 다짜고짜 이유도 없이 자신들을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북연 조정이 점잖아서가 아니라 그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조정의 강점은 머릿수에 있었다. 그렇다면 강호의 강점은 무엇인가?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강호라는 사실이 그것이었다.
북연 조정의 세력이 강하다고 해도 정도를 넘어서면 북연 무림 전체가 분노할 것이다. 북연 무림이 모두 힘을 합치면 왕조를 바꾸고 북연 황실의 성을 갈아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조정이 정말 아무 명분도 없이 황보씨를 멸족시키려 든다면 치러야 할 대가가 상당할 터였다.
입술이 사라지면 이가 시린 법, 황보세가 정도 되는 세력이 조정의 말 한마디에 멸족당한다면 황보씨보다 못한 종문들이 어찌 될지는 뻔하지 않은가. 해서 황보 노야는 조정이 그렇게 어리석은 일을 할 리는 없다고 믿었다.
항무가 대소했다.
“황보 선배님, 오해하셨습니다. 얌전히 있는 황보씨를 조정이 뭐하러 건드리겠습니까?”
황보 노야는 코웃음을 치고는, 갑옷을 두른 서릉군 정예를 가리키며 날카롭게 말했다.
“그럼 이 자들은 다 뭐요? 이렇게 대단한 기세로 설마 무슨 구경이라도 하려고 오셨단 말씀이오?”
항무가 일어서더니 껄껄 웃었다.
“가을 하늘은 높고 바람은 시원한데, 이 근처 풍경이 이리 아름다우니 구경하기에 딱 좋지 않습니까?”
문득 항무는 뭔가 생각난 것처럼 향초를 또 하나 꺼내서 황보 노야에게 휙 던지며 자랑하듯 말했다.
“남만 특산인데 보양에 아주 좋답니다. 황보 선배님 같은 어르신에게 그저 그만일 것 같습니다.”
황보 노야의 몸에서 무형의 강기가 일어나더니 향초는 그대로 으깨져서 걸쭉해지고 말았다.
“후야, 말 돌리지 마시오. 쓸데없는 농담도 말고! 대체 뭘 어쩔 생각이오?”
자신이 준 향초를 황보 노야가 무안을 주듯이 으깨버리자 항무의 안색이 순식간에 음침해졌다.
“좋게 넘어가 주려 했더니만! 향초가 받기 싫으면 칼을 받는 수밖에 더 있겠나. 이건 폐하의 명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황보세가 사람은 연서 평요를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명을 어기는 자는 누구든 죽을 것이다!”
그러자 황보 노야는 분노가 극에 달해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는 소리! 황보씨가 어디를 갈 때마다 당신들에게 일일이 보고해야 한단 말이오? 조정은 황보세가를 잡아 가둘 생각이오?”
“폐하의 명이니 어길 생각일랑 하지 마시오. 당신들을 아주 오래 가둬 놓지는 않을 거요. 좀 기다리시오.”
황보 노야의 미간이 확 좁아졌다. 뭔가 눈치를 챈 것이다.
“얼마나 기다리란 말이오?”
항무가 동쪽을 가리켰다.
“취의장에서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황보 노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아무래도 취의장에 벌써 일이 난 것이 분명했다. 그는 항무를 노려보았다.
“조정에서 어떻게 초휴 같은 은마의 마두를 감싸러 나설 수가 있소? 설마 폐하는 초휴의 신분, 그리고 은마가 어떤 자들인지를 모르신단 말이오? 아니면 당신이 독단으로 이러는 건가?”
항무가 웃었다.
“황보 선배, 어떤 일은 알고도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할 때가 있지요. 그래야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거든. 알아듣게 말씀드리자면, 조정은 당신들이 정도이든 마도이든 신경 쓰지 않소. 그저 말을 듣는가 안 듣는가가 중요하지. 당신들 황보씨도 시험을 받을 때가 온 거요. 그러니 내 말대로 집 안으로 돌아들 가시오. 우리는 취의장 싸움이 끝나면 즉각 군대를 이끌고 떠날 테니까.”
황보 노야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
“안 듣겠다면?”
항무가 흑룡연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기세가 극한까지 치솟자 하늘의 구름마저 움직이는 듯했다. 기세만으로도 저무기 수준의 무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했고, 진화련신까지는 고작 문턱 하나 남은 수준이었다.
“안 듣겠다면 나도 더는 늙은이 앞에서 예의 차릴 필요가 없겠지. 내 향초를 돌려받아야겠다!”
사실 황보 노야는 아주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응신삼경(무도진단-진화련신-천지통현) 에 도달한 사람은 대부분 절정급 거물들이다. 무도진단부터 종사로 불리는 것도 강호인이 오랫동안 보아온 고수이기 때문이었다.
천지통현에 이른 존재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대다수가 지존방에 오른 최절정 고수였으며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었다. 그러니 진화련신은 풍운을 일으키는 고수이자 강자였다.
황보 노야는 그 경지에 다다랐으나 아직 죽음이 가까울 정도로 노쇠하지는 않았다. 그가 집안에서 십여 년을 폐관한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최후의 시간을 활용해서 마지막까지 황보세가가 가는 길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황보세가에는 진화련신인 그가 버티고는 있었으나, 그 아래 세대는 평범했고 젊은 층에도 빼어난 인물이 없었다. 그러니 가문이 약해진 이 시기를 넘길 수 있도록 자신이 일족을 보호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황보 노야가 유약한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항무 같은 후배가 방자하게 구는 것도 모자라 먼저 출수하려고 든다면 어떻게 참아 넘기겠는가?
순간 칠흑색의 반룡창이 흑룡연에서 튀어나와 항무의 손에 들렸다. 창 한 자루를 내찔렀을 뿐인데 일순간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들며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했다.
용이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반룡창이 황보 노야를 향해 짓쳐 들었다. 반룡창에 달린 용 머리의 눈이 핏빛 살기로 번뜩이는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듯했다. 항무가 든 그 반룡창은 신병임이 분명했다.
황보 노야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신광이 엉긴 시선이 향하는 족족 모든 강기가 사라지고 항무의 창끝에 어려 있던 기이한 형상도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항무의 창 자체는 강대한 힘을 지닌 채, 여전히 황보 노야의 가슴을 찔러 들어오고 있었다. 창이 지나치는 곳마다 대지가 갈라지고 폭음이 터져 나오며 위세가 강맹하기 이를 데 없었다.
황보 노야는 코웃음을 쳤다. 그는 곧장 손을 내밀어 천 근을 뽑아낼 듯한 힘으로 항무의 창을 쥐었다.
금빛 강기를 폭발시키며 다른 손으로 창대를 후려갈기자 그 타격에 항무가 나가떨어졌다. 그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몇 장은 될 듯한 구덩이가 파였다.
항무가 껄껄 웃었다.
“이게 황보세가의 비기라는 인원신목(湮元神目)인가? 어떤 강기나 원기도 모두 인멸해 버린다고 들었소. 재미있군. 극북표설성의 빙백신목보다 나은 것 같아.”
비록 방금 일 합에서 항무가 밀리기는 했으나, 두 사람의 경지에는 한 단계만의 차이뿐이었다. 항무가 보여준 실력 역시 놀라운 것이었다.
항무는 크게 웃으며 다시금 창을 휘둘렀다. 평소 게으르게 늘어져 있는 그가 진정으로 흥분하는 것은 바로 이런 순간이었다.
* * *
북연 땅 전체가 싸움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눈치챈 세력도 있었다. 그러나 감히 누구도 이 국면을 타개하려고 뛰어들지는 못했다.
다들 이런 상황에서는 초휴가 관중형당을 지킬 방어책을 만들 궁리뿐일 거라 여겼다. 그러나 대담하게도 선공을 할 줄이야. 더군다나 선공을 취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조정까지 끌어들였으니 상황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지 않은가.
해서 동정을 눈치챈 세력들은 모두 취의장에서 전해져 올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만일 초휴가 이긴다면 그냥 모르는 척할 셈이었다.
주마연맹이니 뭐니해도 자신들과는 아무 관련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만일 취의장이 이긴다면 그들도 기세에 편승해 관중형당을 공격해서 명성과 이득을 챙겨야 할 게 아닌가.
그러니 이제 모든 것은 취의장 싸움의 결과에 달려 있었다. 물론 위서애 등이 다른 세력을 막을 수 있을지도 관건이었다. 만일 다른 자들이 섭인룡을 지원하러 오는 것을 막지 못하면 초휴는 위태롭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쯤 섭인룡도 극북표설성 등의 세력이 초휴에게 저지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싸늘하게 말했다.
“그자들은 안 와도 그만이다. 잔당이나 좀 놓칠 뿐, 초휴 너는 살아서 취의장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네가 가진 패는 이것이 전부겠지. 동제 쪽은 속도가 느리기는 하나 거리는 멀지 않다. 네놈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는 관중형당은 멸망할 것이다.”
“쥐새끼처럼 땅속으로 숨었으면 한동안은 죽이기 어려웠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관중형당의 기반을 포기하기 싫어서 싸움에 나선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짓이었다. 초휴, 너의 칠마도는 인간의 칠정육욕을 끌어내지. 언젠가 너의 탐욕 때문에 죽게 되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느냐?”
이에 초휴가 답했다.
“탐욕? 세상 사람들에게 탐욕이 없었다면 오래전에 천하가 태평해졌겠지. 하지만 내가 여기서 죽을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