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19)
619화 부축 좀 해 주십시오
허언은 매 순간 긴장을 유지하며 매경령의 환술을 방어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싸움이 거듭될수록 피로가 가중되었고, 이제는 섭인룡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허언이 섭인룡을 구하려다 매경령에게 가로막혀 쩔쩔매는 사이에 상대를 격퇴한 사람이 있었다. 육 선생과 싸우던 연회남이 아니라 거령방의 방대통이었다. 사실은 방대통의 실력이 연회남보다 강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의 상대가 다소 약한 탓이었다.
류홍엽은 본래 무도종사 중에도 비교적 약한 축이었다. 전승받은 무도도 강한 편이 못되는지라 실력의 한계가 뚜렷했다.
먼젓번 초휴와 싸울 때도 몇 합 만에 패했던 그가 거령방주 방대통을 상대로 이만큼 버틴 것은 사실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거령방의 에는 역대 거령방의 백여 가지 무공이 집대성되어 있었다. 비록 강호에 널리 이름난 무공들은 아니었으나 그리 위력이 약하지는 않았다. 몇십 합 만에 류홍엽은 중상을 입고 피를 토했다.
류홍엽을 처리한 방대통은 무의식적으로 초휴와 섭인룡 쪽을 바라보았다.
섭인룡이 다급하게 외쳤다.
“방 방주, 도와주시오!”
방대통이 막 나서려는데 초휴가 싸늘하게 말했다.
“방 방주, 본래 우리 사이에는 아무 원한이 없었소. 오늘 주마연맹에 참가한 것까지는 상관없소. 지금이라도 물러나면 아무 일 없었던 셈 치겠다는 말이오. 하지만 그러지 않겠다면, 나는 패퇴하여 어둠 속에 숨더라도 거령방과는 반드시 끝장을 볼 거요. 내 앞길을 막으면 당신 일가를 다 죽이겠다는 소리외다! 방 방주, 잘 생각해 보시오. 지금 여기서 일을 벌이면 앞으로 평생 처자식과 일가 남녀노소, 거령방 심복들 곁에 꼭 붙어살아야 할 거요. 나는 그들이 눈에 띄는 족족 모두 죽여버릴 테니까!”
가슴이 서늘해진 방대통은 더 나서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멈칫했다.
초휴가 그간 보여준 성격과 실력이라면 정말 그러고도 남았다. 정면으로 대적해도 이길 자신이 없는 상대 아닌가.
‘그런 적이 체면이고 뭐고 내던지고 어둠 속에 숨어 시시각각 자신을 물어뜯으려 노린다면?’
눈앞에서 이와 발톱을 드러내는 맹호보다 어둠 속에 숨어 언제 덮쳐올지 모르는 독사가 더 두려울 수 있는 법이다.
방대통이 멈칫하는 사이 섭인룡은 위험에 빠져 하마터면 초휴의 도에 목이 달아날 뻔했다. 그는 노호했다.
“방대통! 머리가 어떻게 된 거요? 주마연맹에 참가한 이상 퇴로는 없소! 마도 요물의 말을 믿으면 어떡하오! 지금 이곳을 떠난다 해도 초휴는 당신을 그냥 두지 않을 거요! 지금 여기서 다 같이 이 자를 죽여야지, 무슨 놈의 뒷일까지 생각한단 말이오?”
거령방은 줄곧 어정쩡한 상태였다. 쇠퇴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발전하지도 않았다. 이는 방대통 본인의 성격과 큰 관련이 있었다.
그는 확실히 과감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했다. 이미 주마연맹에 참가했으면서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초휴가 협박한다고 망설이다니, 섭인룡 아니라 누구라도 이를 갈면서 원망하지 않겠는가.
초휴의 천마무가 충천한 마기를 품고 연거푸 휘둘러졌다. 심마륜전대법이 펼쳐지며 진혼유명곡으로 변하여 끊임없이 섭인룡을 어지럽게 만들고 계속 그의 힘을 깎아 먹었다.
천인합일인 초휴는 섭인룡처럼 이름난 무도종사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만으로도 이미 극한에 다다른 상태였다. 만일 방대통이 끼어들었다면 승패는 어떻게 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방대통이 망설이는 그 짧은 순간, 섭인룡의 몸에는 이미 여러 군데의 상처가 생겼다. 방대통은 그것을 보고서야 이를 악물고 초휴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섭인룡이 말한 대로 그에게 이미 퇴로는 없었다. 초휴의 말이 사실이건 아니건 지금은 도박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섭인룡이 이기고 초휴가 죽는 쪽에 거는 것이다.
“죽어라!”
섭인룡은 중상을 입었음에도 후퇴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건곤능운수를 극한까지 펼치자 음양의 두 기운이 손바닥에 모여들면서 초휴의 천마무를 옭아매고, 아예 초휴마저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방대통의 일권이 닥쳐오는 순간, 검은 인영이 난데없이 초휴의 뒤에서 튀어나와 커다란 입을 벌렸다. 끔찍한 아귀가 포효하며 등장한 것이다.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사악한 힘은 방대통마저 통째로 삼키려 들었다.
방대통은 조금 전까지 류홍엽과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가 류홍엽보다 강하기는 했으나 무도종사와 격전을 벌이는 와중에 다른 곳까지 살필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섭인룡과 초휴가 싸우는 광경을 볼 수는 없었다. 그 사악한 것이 눈앞에 나타나 무엇이든 삼켜 버리고 심지어 자신마저 집어삼키려 들자, 방대통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 대응 방법을 생각하려 했다.
그러나 방대통이 물러나는 순간 섭인룡은 선혈을 왈칵 토하고 말았다. 칠할은 힘을 과도하게 써서 내상을 입은 때문이었고, 삼할은 방대통 때문에 울화가 치솟아서였다.
그 순간 섭인룡은 깨달았다. 남에게 기대느니 자신이 나서는 편이 나았다. 연맹이란 것이 보기에는 강대해 보일지라도 멍청이들이 뒤에서 다리를 걸고넘어지면 자기편을 해칠 뿐이지 않은가.
생사가 걸린 이 순간에조차 방대통은 위험을 피하려 들었다. 겁쟁이도 이런 겁쟁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방대통이야 여길 떠나면 그만일지 몰라도 섭인룡은 그 때문에 완전히 한계에 달하고 말았다.
물론 방대통이라고 일부러 섭인룡을 엿먹이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의 본성이 소심한지라 무의식적으로 나온 반응이었을 뿐이다.
그는 겉보기에는 큰 몸집에 사나워 보였고, 별호 역시 강맹하기 그지없는 거령신장이었다. 그러나 사나운 외모 속에 지극히 예민하고 소심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아주 작은 일에서조차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하고 신중을 기하는 인물이었다.
방대통의 그 신중함이 결국 섭인룡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 짧은 순간, 초휴는 마지막 한 가닥 원신의 힘을 끌어모아 멸신전을 날렸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천자망기술을 쓸 필요조차 없었다. 섭인룡이 이 화살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원신이 중상을 입는 바람에 섭인룡은 신음을 토했다. 하지만 그는 정신을 잃지 않고 억지로 버텨냈다.
온몸의 기혈을 아까 망가진 팔에 불어넣은 뒤 손날을 세워 내리쳤다. 격렬한 혈기가 거대한 칼날처럼 초휴에게 닥쳐들었다.
원신이 중상을 입었음에도 섭인룡은 의지력만으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기혈의 힘까지 통제하고 있으니 정말 놀랍도록 강인한 심지가 아닌가.
그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초휴에 대해 상세한 조사를 했다. 초휴가 마혈대법을 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기혈이 끓어오르는 것을 막을 만큼 힘이 충분하지 않다면, 초휴를 상대로 정혈을 태워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해서 생각해낸 방법이 이것이었다. 섭인룡은 남은 모든 힘을 그 일격에 걸었다. 정혈을 태운다면 죽지는 않을 수도 있고, 후에 요양하여 회복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전신의 기혈을 한쪽 팔에 응집시켜 터뜨린다는 것은 그 팔을 자르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이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폐인이 되는 것이다.
그 일격 앞에 초휴는 다급하게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섭인룡의 오른손이 불쑥 그를 휘어잡자 초휴 주변의 공간이 그대로 굳은 것처럼 변했다. 천지 원기가 초휴의 등에 엉겨 붙어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어 그를 가로막았다.
비범한 실력의 무도종사가 기혈의 모든 힘을 폭발시키면 얼마나 강한 위력을 발휘할까? 초휴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아마 강호에도 아는 사람이 얼마 없을 터였다. 섭인룡 수준의 무도종사가 그토록 치명적인 방법으로 목숨을 걸고 달려들 만한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일순간 초휴의 뇌리에 수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기실 그에게는 아직 여러 수단이 있었지만, 얼마나 강한 힘을 발휘할지 초휴로서도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확신이 없더라도 섭인룡의 목숨을 건 일격을 받아내야만 했다. 초휴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 없이 천마무를 들어 올렸다.
가벼운 움직임이었으나 마치 산 하나를 들어 올리는 듯했다.
초휴는 기이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그가 통제할 수 없는 무공이었다. 심지어 슬쩍 본 것만으로도 충격을 받아 피를 토했던 극강의 기술이었다.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그 무공의 기풍을 한 가닥만이라도 빌릴 수 있다면 족했다.
‘단 한 가닥만이라도!’
도의가 거세게 솟구치고, 기세는 격렬하게 휘몰아쳤으며, 힘은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천지를 찢어발기는 바다의 울음이 모든 것을 삼키는 듯했다.
탄천멸지칠대한, 파해(破海)!
눈앞의 모든 것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듯했다. 천지 원기마저 도의 기운에 찢겨나가 한참을 아물지 못했다. 섭인룡의 몸 역시 그 일도에 찢겨나갔다.
섭인룡의 숨이 끊겼다. 그의 몸은 완전히 둘로 갈라졌다. 땅에 쓰러진 뒤에야 대량의 피가 솟구쳐 나왔다.
그는 목숨을 건 최후의 일격을 펼쳐보지도 못했다. 그러기도 전에 초휴의 칼을 맞은 것이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으리라.
그 일도의 효과는 초휴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힘 역시 완전히 생각 밖이었다. 도저히 사람이 감당할 만한 힘이 아니었다. 그것은 천지의 위력이었다!
이 무공을 익힌 사람들이 하나같이 비명에 죽었을 만도 했다. 사람의 몸으로 천지의 위력이 담긴 도법을 쓰는 것은 하늘의 힘을 훔치는 것과 같지 않은가. 당연히 하늘의 노여움을 살 테니 곱게 죽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
초휴는 아직 비명에 죽을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그 일도를 내리치고 나자 온몸 구석구석에 미약한 균열 같은 것이 생겼다. 마치 떨어져 깨진 도자기 인형처럼 말이다.
초휴가 익힌 구소연마금신과 대금강신력으로도 그 강대한 힘을 버텨낼 수는 없었다. 초휴의 온몸 균열에서 피가 배어 나와 방금 피 웅덩이에서 건져낸 듯, 끔찍하기 짝이 없는 몰골이 되었다.
방대통에게 몸을 돌린 초휴의 얼굴에 문득 미소가 걸렸다. 온몸이 핏빛으로 물든 가운데 치아만 눈처럼 희어 음산한 느낌을 주었다.
“방 방주, 패를 잘못 골랐어! 사람이 평생 하는 수많은 선택 중에는 일가의 목숨이 달린 선택도 있지. 안타깝게도 당신의 선택은 완전히 틀렸어!”
방대통은 두말하지 않고 몸을 돌려 도망쳤다. 간이 작아서가 아니라 섭인룡과 자신의 실력 차이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섭인룡이 죽었으니 연맹은 무너진 거나 다름없었다. 돌아가서 초휴의 보복을 막을 궁리나 해야지, 여기 남아 있어 봐야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하지만 방대통은 알지 못했다. 초휴는 지금 한 발짝을 옮기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어서 허세를 부린 것뿐이었다.
그런데 설마 방대통이 이렇게 버럭 겁을 먹고 도망칠 줄은 몰랐다. 허세를 부릴 방법이 아직 수십 가지는 더 있는데 말이다. 사실 이건 방대통의 간이 작아서만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거론했다시피 그의 성격이 원래 신중하기 짝이 없어서였다. 초휴가 그의 코앞에서 공성계를 썼더라도 방대통은 떠볼 엄두조차 못 냈을 것이다.
이제 섭인룡은 죽었고 방대통은 도망쳤다. 주마연맹은 그야말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것이다. 특히 실력이 떨어지는 군소 세력들은 싸울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서 다들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육 선생과 싸우던 연회남 역시 어쩔 수 없이 탄식하고는 곧장 몸을 돌려 물러났다. 연회남으로서는 섭인룡의 죽음에 착잡한 감회가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북연은 동제만큼 크지 않아서, 북연 무림의 뛰어난 인물들 간에는 대부분 교분이 있었다. 연회남과 섭인룡 사이가 벗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적도 아니었고, 서로를 잘 알고 지냈다.
섭인룡은 능력도 있었고, 실력도 있었고, 야심은 더 컸다. 애석하게도 시운이 따르지 않아 여기서 죽은 것이다.
애초에 섭인룡이 주도한 연맹이었다. 섭인룡이 죽은 이상 대광명사가 있더라도 초휴 일당의 상대는 될 수 없으니 연회남도 물러나야만 했다. 그가 도망치자 육 선생은 기분이 개운하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취의장의 모두가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치자 허언도 이를 악물었다가 크게 외쳤다.
“대광명사의 제자들은 즉각 후퇴하라!”
허언은 허행과는 달랐다. 그는 속으로는 아무리 달갑잖아도 냉철한 이성을 우선하는 인물이었었다. 여기서 계속 싸우다가는 마를 주멸하는 것이 아니라 개죽음을 당할 뿐이었다.
취의장 측이 완전히 패퇴하여 정도 무림인들이 싹 도망치자, 초휴의 사람들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들이 이긴 것이다.
매경령이 미소지으며 다가왔다. 다소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내 짐작이 틀렸네요. 난 당신이 도박을 감행하는 줄 알았더니, 정말 자신이 있었던 거로군요.”
초휴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친 얼굴로 매경령을 돌아보았다.
“부축 좀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