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22)
622화 만검귀종
서북귀는 류공원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류공원은 이미 창란검종 장문이었고 ‘일검침강’의 이름으로 전 강호를 뒤흔들었다. 위군 정도가 아니라 강호 전체를 통틀어도 이름난 고수로 풍운방에 올라 명성이 자자했다.
그때 서북귀는 무얼 했던가. 위군 무림의 밑바닥에서 굴러먹고 살기 바쁜 낭인 무사 나부랭이였다.
류공원을 보았을 때 자신이 그 자리에 서겠다는 생각은커녕 우러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도 바로 직전까지 방자하게 패악을 부렸지만, 막상 류공원을 마주하니 서북귀의 마음에는 무의식적으로 경외감이 생겨났다.
류공원이 그를 응시하며 담담히 말했다.
“내가 폐관을 너무 오래 했던 모양이군. 위군이 누구의 땅인지도 모르는 종자들이 생겨났으니 말이지. 창란검종을 치겠다고 했나? 서북귀, 주제에 간도 크구나! 옛날 위군에 주둔했던 북연 상장군 방용천도 못 한 일을 네가 하겠다고?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류공원의 기세 앞에 서북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창란검종은 위군에서 오래도록 명성을 쌓아왔고, 눈앞의 류공원은 강호에서 으뜸가는 고수 중의 하나였다. 비록 나이가 들었다지만 그 기세만은 서북귀로서도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류공원이 손 가는 대로 장검을 빼 들더니 땅에 내리꽂으며 냉랭하게 말했다.
“우리는 같은 위군 출신이고, 위군을 대표하는 세력이라 할 수 있지. 해서 노강방이 굴기할 때 우리 창란검종도 방해하지 않았다. 창란검종은 다른 세력을 포용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 관대함을 유약함으로 보았다면 슬픈 일이 아닌가! 너는 아직 젊어 혈기왕성할 나이이니 기회를 주겠다. 만일 내 일검을 받고도 네가 살아남는다면 이번 일은 그것으로 끝내도록 하자. 그럴 수 없다면 지금 당장 너 스스로 뺨을 치고, 여기서 썩 꺼져라!”
류공원의 강렬한 눈빛에 몰린 서북귀의 손이 미미하게 떨렸다. 류공원의 일검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일검침강이라는 별호로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비록 같은 무도종사였으나, 바로 그 때문에 서북귀는 무도종사 무사들가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알았다. 류공원의 일검은 창란강을 잠시나마 가를 정도다.
그 검을 자신이 받는다고? 그러고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죽지는 않더라도 폐인이 되고 말 것이다. 제 손으로 자기 뺨 한두 대 때리는 것이 창피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 자신과 노강방 자체에는 별 손해가 없지 않은가.
서북귀는 막 뺨을 치려고 이를 악물다가, 문득 뭔가 생각난 것처럼 고개를 쳐들고 참마도를 꽉 쥐었다. 그는 류공원을 바라보며 대소했다.
“늙은이가 수작을 부리는구나! 그래, 나 역시 위군 출신이다. 류공원 당신의 기질이 어떤지, 창란검종이 어떤 놈들인지 훤히 안단 말이지! 창란검종이 위군을 독차지하던 동안 언제 남을 받아들였다는 건가? 류공원 당신은 늘 과감하고 강경한 자세 일변도였어. 언제 남에게 기회를 준 적이 있었나? 이제 창란검종이 겉은 멀쩡해도 속은 비었으니 우리 노강방이 떨쳐 일어선 것이다. 류공원 네놈이 이미 늙어빠져 싸우지 못할 지경이 아니라면, 내게 무슨 기회를 주겠으며, 따귀 좀 때리는 정도로 날 놓아줄 리가 없을 텐데?”
서북귀의 냉소와 함께 참마도에서 흉악한 핏빛이 터져 나왔다. 일도를 내리치자 흉악하기 그지없는 핏빛 살기가 포효하며 류공원에게 쏟아졌다.
위군에서 류공원의 위엄이란 실로 엄청났다. 서북귀 역시 그를 마주하자 즉각 위압감을 느끼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할 지경이 되지 않았는가.
그러나 서북귀 역시 노강방쯤 되는 세력을 일으킬 정도였으니 아주 어리석지는 않았다. 마지막 순간 그는 깨달은 것이다. 류공원이 허장성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물론 그 역시 류공원이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완벽하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언젠가는 도박을 걸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맞아떨어지면 창란검종과 류공원의 쇠약한 진면목이 드러날 테고, 위군은 완전히 그와 노강방의 차지가 될 터였다.
서북귀가 도를 휘두르자 류공원은 땅에 꽂았던 검을 쥐었다. 얼굴에 늙고 피로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온몸의 강기를 끌어모아 검을 휘둘렀다. 일검침강의 검의만은 여전하여 사면팔방에서 풍운이 일었으나, 그 힘은 너무 적어서 이미 강을 가르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도와 검이 맞부딪는 순간 류공원은 참마도에 밀려 십여 걸음을 물러났다. 선혈을 왈칵 뱉은 그는 결국 온 힘을 잃고 말았다.
“장문!”
창란검종 제자들이 경악하여 소리 질렀다. 그들은 방금 본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류공원이 서북귀의 일도에 당해 피를 토하다니, 이럴 리가 있는가.
류공원은 하릴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검을 든 손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본래 그는 아직 한동안은 더 버틸 수 있을 나이였다. 그러나 소범천에서 두광신이 죽은 뒤 창란검종의 모든 부담은 모조리 류공원 한 사람의 몫이 되었다.
온갖 잡다한 근심·걱정이 류공원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러다 수련할 때 호흡이 불안정해지면서 경맥에 손상이 가고 말았다. 선천경의 무사도 하지 않을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조금 전, 류공원이 내보인 기세는 정말로 허세고 일종의 도박이었다. 결과적으로 도박에 실패해서 실력의 밑바닥까지 내보이게 된 것이다.
서북귀는 크게 웃으며 다시 도를 휘둘렀다. 이제부터 위군에 창란검종 따위는 없다. 오로지 노강방만 존재할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창란검종 뒷산에서 홀연 경악스러운 검기가 솟아났다. 곧장 하늘을 뚫고 오르는 검기의 기세에 모든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눈길을 주었다. 절망이 가득했던 류공원의 얼굴에 갑자기 뭔가 떠오른 것처럼 희망이 빛이 가득했다.
검기가 폭발하더니 흰옷의 인영이 그 기운에 휩싸여 내려왔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창란검종과 노강방 무사들의 검이 덜덜 떨렸다.
검은 마치 진정한 제 주인이 나타났다는 듯, 그들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검기에 둘러싸인 인영이 한 손을 내젓자, 무수한 장검이 하늘을 찌를 듯한 검기를 두르고 서북귀에게 날아들었다.
그것은 구천(九天)을 아우를 기세의 만검귀종이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류공원은 자신이 죽기 전에 그런 기분을 체험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무한한 검기가 서북귀의 도세를 연달아 부수고 무너뜨렸다, 서북귀의 눈이 공포와 당황으로 가득 차더니 손에 들었던 참마도가 깨져나갔다.
검기가 치고 들어온 순간 그는 울컥 피를 토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이 자는 누구인가? 그동안 창란검종의 고수라고는 류공원 하나뿐이었는데 어디서 이런 자가 튀어나왔단 말인가?’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서북귀는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서북귀는 과감하게 순식간에 기혈을 불태우더니 가장 빠른 속도로 산 아래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자신이 데려온 노강방 사람들마저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인영이 가벼이 손을 휘젓자 무수한 장검과 검기가 수십 장 크기의 거대한 검으로 화하여 허공을 베었다. 일검침강과는 다른 힘이었으나, 그 위력만은 일검으로 창란강을 갈랐던 절정기의 류공원에 뒤지지 않았다.
“안 돼!”
서북귀가 절규했다. 그는 아직 위군의 제일 고수가 되지 못했다. 무도종사 경지에 들어선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죽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서북귀가 무한한 혈기와 살기를 거대한 칼날처럼 뭉쳐 휘둘렀으나, 강을 가르고도 남을 일검의 힘 앞에는 처참하게 깨져나가고 말았다.
피 안개가 하늘 가득히 흩뿌려졌다. 서북귀는 그 일검에 베여 시신조차 보존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었다.
이윽고 엄청난 일검을 휘두른 그 인영이 류공원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해 일으키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부님, 제자가 늦었습니다.”
류공원은 입을 벌리고 소리 없이 웃다가 울컥 선혈을 토하고 말았다.
“사부님!”
심백은 놀란 표정으로 류공원을 바라보며 즉각 그의 등에 손을 올렸다. 따스하고 웅대한 진기가 류공원의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류공원은 손을 내저으며 힘없이 말했다.
“그럴 것 없다. 나는 이미 수명이 다했으니 대라신선이 와도 회생할 수 없을 게다. 하지만 기쁘구나. 정말로 기쁘다. 무수한 창란검종의 조사들께서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네가 해냈어. 하늘이 우리 창란검종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래 이제 진단경에 들었느냐?”
심백의 눈에 비통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아직 한 발짝이 모자랍니다. 무도진단을 어떻게 응집시켜야 할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계속 궁리해 보려다 바깥의 동정이 심상찮은 듯해서 일단 출관한 것입니다.”
그에 류공원은 잠시 넋이 나간 듯했다. 얼굴에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이 되었다.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천시로다, 천명이로다!’
무도 수련에서 초반 경지를 뚫는 것은 별 위험이 없다. 사고가 생길 위험이 높은 것은 무도진단을 응집해 내는 마지막 단계를 남겨놓은 상태에서였다. 확률이 크게 높지는 않아도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인 건 분명했다.
창란검종 정도 되는 문파라면 무도진단의 응집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선배들의 다양한 경험이 전해지는 게 당연했다.
천사부 같은 최정상급 종문에도 특수한 진단의 응집 방식이 전승되고 있다. 장승정의 뇌명금단이 그런 사례였다.
그러나 심백은 폐관하러 들어갔을 때 천인합일에도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자는 심정으로 들어갔으니 무슨 무도진단 응집을 따지고 있었겠는가.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바깥에서 서북귀가 출수하는 낌새를 느낀 심백은 이것저것 따질 겨를 없이 일단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류공원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욕심이다. 하긴 여기까지 해낸 것만도 쉽지 않은 일이지. 천인합일로서 무도종사를 베다니, 지금 강호에서 너만큼 해낼 수 있는 젊은이는 얼마 없을 것이다. 이미 무도종사가 된 장승정을 제외하면, 정도 무림의 공적이 되다시피 하여 얼마 전에 섭인룡을 죽인 초휴 정도겠지.”
심백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장승정이 무도종사가 되었습니까? 그리고 초휴는 섭인룡을 죽였다고요?”
심백이 막 창란검종에서 하산했을 때 그의 목표는 장승정이었다. 그때의 심백이 그토록 패기만만했던 건, 오만해서가 아니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기 때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에게 잔혹한 일격을 날렸다. 그는 장승정과 맞서보기도 전에 초휴의 손에 폐인이 되고 말았다.
그 초휴가 지금은 풍운방의 고수이자 취의장 장주인 섭인룡을 죽여 강호를 뒤흔들었다니. 심백은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놓쳐 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류공원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심백이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던 강호의 한 시절을 놓쳤다고 생각했다.
특히 소범천에서 장승정이 젊은 준걸들과 싸우며 뇌명진단을 응집해 내고 진단경에 든 것은 천사부에서 몇백 년을 두고 자랑할 만한 일이었다.
심백의 재능과 심성으로 보아, 별 탈 없이 성장했다면 장승정까지는 아니라도 초휴처럼 장승정에게 도전하는 사람 중 하나는 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하늘은 공평했다. 심백의 두터운 기초는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다. 아직 진단경에 들어서지는 못했지만, 그의 만검귀종은 이미 대부분의 진단경 무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실력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