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23)
623화 기이한 진단
심백은 류공원을 종문 안으로 부축해 모셨다. 류공원이 그간 강호에서 일어났던 일을 쭉 들려주자 심백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초휴는 그의 원수였다. 초휴의 손에 하마터면 영영 폐인이 될 뻔했다.
하지만 그 원수가 지금은 온 강호를 뒤흔들며 풍운을 일으키고 있었고, 심백 자신은 여전히 무명의 무사일 뿐이잖은가.
이야기를 끝낸 류공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쩌려느냐? 너는 이제 만검귀종을 터득했다. 관중형당으로 가서 초휴에게 복수하겠느냐?”
심백은 잠시 생각하다가, 뭔가 생각난 것처럼 침착하게 말했다.
“복수는 언제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창란검종은 너무 쇠약해져 서북귀처럼 하찮은 자들조차 찾아와 도발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창란검종의 이름이 다시금 강호를 진동하게 해야 합니다. 북연 연맹은 이미 궤멸했다니, 저는 동제의 남창 하후세가를 찾아가겠습니다. 우리 위군은 본래 동제의 속국이었으니까요.”
류공원은 자애로운 눈길로 심백을 바라보았다. 종문의 앞날을 고려한다는 것 자체가 심백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니, 류공원으로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심정이었다.
옛날의 심백이었다면 분명 충동적으로 초휴부터 찾아가 복수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심백은 마음속의 원한과 감정을 억제할 줄 알았다.
종문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이제는 마음 놓고 창란검종을 그에게 맡길 수 있지 않겠는가.
“나를 일으켜다오. 그리고 제자들을 전부 소집해라.”
심백은 잠시 망설였다. 어렴풋이 무슨 일인지 짐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키는 대로 창란검종 제자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제자들을 내려다보며 류공원이 말했다.
“나는 늙어서 검을 들 수 없게 되었다. 이 나이에 서북귀처럼 기고만장한 소인배한테 밀리는 꼴을 당하다니 선조들께 부끄럽구나. 우리 창란검종이 내 대에 이처럼 쇠약해진 것은 더더욱 부끄럽다. 그러나! 다행히 심백이 선조들께서 남기신 신공과 비법을 터득하여 무도한 적을 참살했다. 심백이라면 우리 창란검종을 이끌어 다시금 위군에 우뚝 서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나는 장문의 자리를 심백에게 넘기고 물러나려고 한다.”
제자들은 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장문이 자리를 넘겨주신다고?’
심백은 이리될 줄 대강 짐작하고 있었으나, 막상 현실로 닥치자 견디기 힘들었다.
“사부님······.”
류공원이 힘없이 손을 내저어 울먹이는 제자들을 만류하더니 굳건한 어조로 말했다.
“검을 받아라!”
심백은 잠시 망설인 끝에 결국 무릎을 꿇고 류공원이 건네는 패검을 받아들었다.
“이 검의 이름은 백홍(白虹)으로, 강호명검보 팔십칠 위에 올라 있다. 옛날 우리 창란검종 육대 조사께서 친히 주조하신 검이다. 흰 무지개가 파도를 부수듯 거리낌 없이 나아가는 검! 본래 백홍은 신병이었지만, 사고로 영성이 일부 손상되어 이제는 완전한 신병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강호의 병기는 그 자체의 힘이 아니라 주인이 어떻게 쓰는가로 이름을 날리는 것이다. 검왕성의 경예(驚鯢)는 검왕성의 주인만을 위해 준비된 검이며, 용호산의 승사(勝邪)도 천사의 패검이다. 그러나 백홍은 내 손에서 특별히 이름을 날리지 못했구나. 이제부터는 네 손에서, 너와 백홍 모두 강호에 이름을 크게 떨치길 바란다.”
심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백홍을 건네받는 순간, 류공원이 돌연 심백의 손을 콱 움켜잡더니 지극히 정순한 진기를 심백의 체내로 불어넣기 시작했다.
“사부님!”
심백이 고함을 질렀지만 류공원은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 심백의 실력은 류공원보다도 강했다. 그러나 류공원은 무도종사였고 또 심백의 사부이기도 했다.
그가 갑자기 이렇게 나오자 심백도 일순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는 짧은 순간, 류공원은 마지막 한 가닥의 진기까지 전부 심백에게 전해주었다.
그를 무도종사로 만들어 줄 수는 없었으나, 체내의 힘을 더 순수하게 바꾸어 곱절로 단련시켜준 것이었다.
그 결과 류공원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일순간 얼굴에 주름이 가득 펴지더니 말라붙은 고목 껍질처럼 죽음의 기운이 가득해졌다.
“사부님!”
심백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류공원을 바라보았다. 사부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얼마간 요양을 하면 한동안은 더 살 수 있는 상태인데 말이다.
류공원은 손을 내저으며 힘없이 말했다.
“무사 된 자가 구차하게 침상에서 연명하다 숨이 끊어지는 건 슬픈 일이지. 나는 이미 틀렸다. 네 마지막 길을 지켜 줄 힘조차 없구나. 내가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니 이것을 받고 강호로 나아가라.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우리 창란검종의 위명을 드높이거라. 그리되면 이 류공원은 저승에 가서 선조들을 뵈어도 결코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말이 끝나자 심백을 붙들고 있던 류공원의 손이 힘없이 떨어지더니, 그의 호흡도 영원히 멈추었다.
“사부님!”
줄곧 냉담했던 심백의 눈가에 처음으로 눈물이 흘렀다. 다른 창란검종 제자들도 대성통곡하며 장문을 불렀다.
류공원의 평생은 어떠했던가. 청년 때는 의기양양했고, 중년 시절은 패도적이었으며, 만년에 들어서는 신중하게 인내하며 살았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그가 창란검종을 위해 한 모든 일은 자신이 남긴 유언 그대로였다. 그는 창란검종의 선조들 앞에 떳떳할 수 있을 터였다.
* * *
관중형당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북연을 공격할 때는 그래도 모두가 흥분한 상태였다. 그때는 자신들이 사냥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공격해 올 적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고, 심지어 적의 숫자조차 모르는 채 포위당한 사냥감 신세 비슷했다. 기분이 좋다면 이상할 상황이었다.
초휴는 꼬박 하루를 집중하여 자신의 상태를 거의 최절정으로 회복했다. 그는 계속 폐관하면서 예기를 쌓아두지 않고 곧장 위서애를 찾아갔다.
위서애의 부상은 풍불평에게 맡겨도 단번에 낫기 어려웠다. 어느 정도 정양할 시간이 필요했다.
초휴는 그를 위해 관중형당 안에서 요양할 만한 곳을 마련해주었고, 위서애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태도 표명이었다. 비록 중상을 입었지만 진화련신의 고수인 자신이 여기 있어 주겠다는 뜻이었다.
초휴가 관중형당을 지켜내지 못하더라도 목숨을 보전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은마의 규칙이 잔혹하다지만 한 번 실패했다고 죽음으로 갚아야 할 정도는 아니니까.
문을 두드리자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거라.”
초휴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위서애는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좌선하며 요양하는 게 아니라 침대에서 향로를 켜고 좋은 차를 우려다 책을 읽는 중이었다. 유유자적 한가한 노인 같았다.
초휴는 힐끗 그 책을 쳐다보았다. 도, 불, 마의 경문은 아니고 무공 비급도 아니었다. 표지에 거친 글씨로 ‘용서하세요, 공자님’이라고 쓰여 있었다.
‘연애소설인가?’
초휴는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위서애 같은 진화련신 고수가, 옛 오대천마로서 강호를 뒤흔들던 마도의 거물이 저런 책도 보나?’
위서애는 기침을 뱉더니 책을 한구석으로 던졌다. 그는 낯빛도 바꾸지 않고 물었다.
“바쁠 텐데 왜 왔나. 무슨 불안한 일이라도 있는 게야?”
초휴는 위서애와 마주 앉아 고개를 저었다.
“제가 택한 길이고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불안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냥 위 선배님께 여쭙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뭔데?”
“무도진단경에 관한 겁니다.”
위서애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아는 게 전혀 없나?”
초휴에게 사부가 없다는 것은 그도 알았다. 그러나 초휴는 그동안 기연도 많이 얻었고, 이제 관중형당을 손에 넣었으니 관중형당의 무공 비급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볼 수 있지 않은가.
관중형당은 역대로 적지 않은 무도종사를 배출했다. 초광가나 관사우 같은 이들은 진단경에 든 후 자신의 깨달음을 기록으로 남겼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초휴도 진단경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마땅할 터였다.
“볼 만한 자료야 있습니다만 관중형당에 없는 것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인체의 잠재력은 무궁합니다. 대부분 무사는 모든 경지의 힘을 극한까지 비축하고 다음 경계를 뚫지는 않습니다. 강대한 힘을 얻어도 성취에는 한계가 있지요. 저 역시 무도를 수련하면서 모든 경지마다 완전무결하다고 할 정도까지 수련을 쌓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경지 내의 한계까지는 가 보고 싶습니다. 저 자신의 한계 말입니다.”
“현재의 강호에서 천인합일에서 저와 비길 만한 자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무도종사의 경지에는 제가 모르는 것이 잔뜩 있겠지요. 전에 소범천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상고 시대 영보관의 도사들은 무도진단에 들면 영보하광을 응집할 수 있었다고요. 근래의 일로는 장승정도 뇌명금단을 응집해 냈고, 소문에는 대광명사에도 칠보사리(七寶舍利)를 만들어낸 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도에는 특별한 무도진단을 응집해 내는 방법이 없는지요?”
위서애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그는 초휴를 바라보며 침중하게 말했다.
“특별한 무도진단을 만들고 싶다고? 신중하게 생각하거라. 특이한 진단을 응집해도 위력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 그냥 금상첨화라고나 할까, 질적인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야. 반면 위험은 매우 크다.”
“장승정이 만들어낸 뇌명금단도 마찬가지야. 뇌명금단을 응집하는 방법 자체는 어렵지 않고 실전된 비법도 아니라서 천사부 무사 대부분이 마음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천 년 동안 뇌명금단을 만들어낸 사람은 장승정 하나뿐이지. 얼마나 어려운지 알만하지 않느냐?”
“장승정이 어떻게 뇌명금단을 만들어냈는지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으냐.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는지는 네가 직접 보았으니 말이다. 평범한 무도진단에 비해 뇌명금단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너나 종현이 진단경에 든다면 장승정과 크게 차이 나지는 않을 게야. 그 때문에 위험을 무릅쓸 가치는 없다는 말이다.”
초휴가 나직하게 답했다.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보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더 중요한 일도 있잖습니까. 저는 남보다 뒤떨어지기 싫을 뿐입니다. 더 강해질 수 있다면 어떤 기회라도 놓치기 싫습니다. 지금 상황은 일종의 재앙이고 겁(劫)이지요. 하지만 겁이 기연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극복할 수만 있다면 환골탈태하듯 실력이 크게 늘 겁니다.”
위서애는 초휴를 응시했다.
“극복하지 못하면?”
초휴는 손을 내저었다.
“대체로 저는 이기기도 전에 질 걱정부터 하는 것이 버릇이 있었습니다. 항상 살길을 미리 준비해놓고 일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앞만 보고 용맹하게 나아가야 할 때도 있지 않겠습니까. 뒤를 돌아보지 말고, 말입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굳혔습니다. 선배님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위서애는 초휴를 한참 바라보았다.
“네가 꼭 그 길을 선택해야겠다면 나도 더 말은 않겠다. 생각이 확고하다면 해야겠지.”
위서애는 공간 비전함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곤륜마교의 무도진단 응집에 관한 책이다. 내 큰형님께서 남기신 것인데, 곤륜마교의 원본이지. 독고유아 대인께서 친히 쓰신 것이라고도 하는데 불멸마단(不滅魔丹)을 응집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위서애의 큰형님이라면 옛날 구천산 오대천마의 우두머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곤륜마교의 적통 후계자였으니 그런 책을 갖고 있는 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책의 내용을 대략 훑어본 초휴는 다소 놀랐다.
“불멸마단을 응집하려고 시도했던 사람이 있습니까?”
위서애는 고개를 저었다.
“곤륜마교가 멸망한 후, 일부는 사라졌고, 일부는 곤륜마교를 공격한 정도 무림의 손에 떨어졌고, 또 나머지는 마교 무사들 손에 남았지. 큰형님은 곤륜마교의 적통이었기에 이것을 보셨으나 포기하고 시도해보지 않으셨다. 너도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너무나 어렵거든. 천인합일 경지의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제 세월도 한참을 흘렀으니 아무도 하려는 사람이 없게 되었지.”
“초휴야, 너는 독고 교주의 전승을 물려받았다. 그것은 화가 될 수도 있고 복이 될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이것을 익히기가 쉬울 테니까. 하지만 그 결과는 잘 생각해야 할 게야. 만일 실패하면 지금 이룬 경지와 기초까지 타격을 받을 수가 있어.”
초휴는 고개를 끄덕이고, 비전을 들고 자신의 폐관 장소로 돌아갔다. 책을 살펴보노라니 천천히 머릿속에 계획이 떠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