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31)
631화 남자의 직감
막천림의 말대로였다. 사소루는 일견 냉담한 인물처럼 보일지 몰라도 자신이 인정한 친구에게만은 진심으로 대했다.
초휴와 여봉선은 둘 다 그의 친구였다. 진청제에게 좀처럼 부탁하는 일이 없던 사소루가 이번에는 결국 청을 넣은 것이다.
진청제는 제자의 간청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는 사소루 한 사람만 데리고 서초에서 관중형당에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큰길을 향했다.
그리고는 길목에 대충 천막을 쳐 놓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몇 잔 마시다 보니 영 성에 차지 않았다. 해서 사소루를 시켜 십여 리 떨어진 마을에서 술을 두 단지 사 오도록 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자 그곳을 통과하려는 두 무리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하나는 고릉 동가였고 다른 하나는 파산검파였다.
고릉 동가는 개산제 일로 초휴와 여봉선에게 원한이 있었고 파산검파와 초휴의 원한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일전에 초휴가 파산검파 문전까지 쳐들어와 하마터면 장문 진검공까지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그 초휴가 어려움에 빠졌다고 하니, 고릉 동가와 파산검파로서는 부리나케 달려가서 괴롭히는데 한 손 거들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들은 서로 연락한 적이 없었으니 길에서 마주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어쨌건 일단 만났고 서로의 목적도 일치하니 함께 관중형당으로 향하기로 했다.
그러나 들뜬 기분이 가시기도 전에 그들은 길 한가운데 천막을 펴놓고 앉아 술을 마시던 진청제와 맞닥뜨렸다. 진청제를 본 순간 고릉 동가 가주 동제곤과 파산검파 진검공의 안색이 동시에 변했다.
서초에서 진청제와 친분을 맺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청제는 애초에 친우로서 사귈 만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청제는 술잔을 든 채 그들을 곁눈으로 힐끗 보았다. 그는 냉소하더니 동제곤에게 손가락질했다.
“당신, 고릉으로 썩 꺼져!”
그러더니 다음은 진검공에게 손가락질했다.
“당신은 파산으로 꺼져버리고!”
고릉 동가와 파산검파의 수많은 제자 앞에서 삿대질과 함께 꺼지라는 말을 들었으니, 두 사람은 모욕감으로 낯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분노가 치솟았으나 화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들은 진청제의 성격을 잘 알았다.
두 사람이 힘을 합한들 진청제의 주먹을 몇 대나 받아내겠는가?
자신의 말에도 두 사람이 그대로 서 있는 것을 본 진청제는 눈을 가늘게 뜨며 싸늘하게 말했다.
“꺼지라는 말 못 들었나? 나는 똑같은 말을 두 번 하는 걸 싫어한단 말이다!”
진청제가 몸을 일으켜 한 발짝을 내딛자 지면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마치 용이 땅속에서 몸을 뒤트는 듯했다. 그 위세에 동제곤과 진검공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동제곤은 두말하지 않고 즉각 제자들을 이끌고 떠났다. 개산제 때 동제곤은 진청제에게 목까지 졸리지 않았는가. 해서 진청제에 대한 그의 두려움은 뿌리가 깊었다.
진청제는 출수하기 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미친놈이었다. 정말로 그를 죽일지도 몰랐다.
동제곤이 가 버리자 진검공으로서도 온 서초에 명성이 진동하는 진청제와 혼자 맞서는 배짱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그 역시 기가 죽어서 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단 한마디 말로 무도종사 두 사람을 겁에 질려 물러나게 한 것이다. 그것도 강호 노랫말에 이름이 실릴 정도의 세력을 말이다. 진청제의 위세는 그 정도로 놀라웠다.
사소루가 옆에서 말했다.
“사부님, 관중형당에 가서 초휴를 도울 생각은 없으십니까? 여 형도 거기 있는데요.”
진청제는 다시 앉아 술 단지를 기울이더니 담담히 말했다.
“초휴 그놈의 잔꾀가 너보다 훨씬 많지. 다 생각해 둔 계책이 있을 테니 네가 걱정 안 해도 될 거다. 여봉선 그 녀석은 고지식하다만 운이 워낙 좋은 데다가 너희 같은 친구도 있으니 크게 고생할 일은 없을 거야.”
“초휴를 도울지 말지는 그 녀석의 선택이니 그것도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 초휴 그놈을 위해 서초 세력을 막아준 것만으로도 나는 내 도리를 다한 셈이다. 관중형당까지 가는 것은 절대 안 돼! 도와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도와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지금 정도와 마도의 관계는 아주 미묘한 상황이란 걸 알아야지. 우리 천하맹은 줄곧 중립을 유지해 왔는데 그곳에 가서 어느 편에 서라는 말이냐? 그리고 너도 알 테지. 이만큼 시간이 지났는데 정도와 마도에서 손꼽는 고수가 몇 명이나 나왔더냐? 위서애와 허운뿐이다.”
“위서애가 나선 것도 그가 초휴의 뒷배이기 때문이지. 은마권에서 그가 초휴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자라더군. 그리고 허운이 나선 것은 초휴가 대놓고 북연을 공격한 이상 북연 최대 종문인 대광명사가 가만있으면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초휴가 얌전히 관중형당에 있었더라면 허운도 나서지 않았을 거야. 정마 양측 모두 이번 일이 너무 커지지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그치도록 자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진청제는 손을 뻗어 손가락을 술잔에 담갔다. 파문이 연이어 일더니 진동이 점점 커지면서 결국 술잔이 터져나가고 말았다.
“지금 상황은 이 술잔 속의 술과 비슷하다. 휘젓는 사람이 없으면 풍랑이 일지 않지. 어떻게 싸우든 밖으로 넘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반대로, 급이 다른 고수가 멋대로 끼어들면 술잔은 터져버리고 술은 아무도 못 먹게 될 게다.”
사소루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득 말했다.
“급이 다른 고수가 끼어들면 안 된다는 말씀은, 사부님이 진화련신의 고수라고 자화자찬하신 건가요?”
퍽!
진청제가 머리를 한 대 갈기는 바람에 사소루는 땅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진청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태연히 말했다.
“진화련신이 뭐? 한 대로 안 죽으면 두 대를 패는 거지! 진화련신이 네놈 같은 애송이에게야 하늘처럼 높아서 올라갈 수 없는 경지로 보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하늘 따위가 다 뭐냐? 나는 손으로 별도 딸 수 있다!”
* * *
여봉선과 낙비홍 일행의 가세로 관중성 바깥 전장은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번 싸움은 초휴가 기습이나 계략을 쓸 수 있었던 북연 때와는 달랐다. 정말로 자신의 모든 힘을 다 쓰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다 불러오는 등, 가지고 있는 모든 패를 꺼내서 정면으로 맞붙은 싸움이었다.
서초 쪽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초휴는 알지 못했다. 사소루에게 전갈을 보내 도움을 청했으나 시간이 너무 촉박해 사소루의 답신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초휴는 사소루가 자신을 도와주리라 믿었다. 진청제의 실력이라면 서초에서 당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니 일단 서초 쪽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싸워도 될 터였다.
계속 천자망기술을 써서 서로 공격을 탐색하는 방칠소와의 대결은 정신력의 소모가 막심했다. 찰나마다 쌍방의 초식이 쉴 새 없이 변화하며 상대방을 탐색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격렬하지 않은 싸움 같아도 실제로는 위험하지 않은 구석이라곤 없었다.
백잠이 지켜보니 방칠소는 정말 봐주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 초휴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친구 사이였지만 용호방에 함께 이름이 오른 청년 준걸이기도 했다. 지금 온 힘을 기울여 싸우는 것은 이익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무도를 증명하려는 마음에서였다.
초휴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이만큼 오래 싸우니 그도 방칠소도 상대방의 변화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이 싸움도 끝날 때가 된 것이다.
천마무를 꽉 움켜쥔 초휴의 기세가 돌변했다. 도세가 가볍고 흐릿해지더니 기이한 기운이 퍼져 나와 주변의 시간과 공간에 영향을 끼치는 듯했다.
일순간 초휴는 공간의 통제를 받지 않는 듯했다. 기이하기 이를 데 없는 기운이었다. 그저 한 손을 살짝 들어 올리는 도세일 뿐이었으나 모든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
초휴가 발휘한 도세는 옛날 독고유아가 쓰던 홍진표묘참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강대한 기술이었다. 초휴는 도온의 힘을 소모해 가면서 일단 그것들을 마음속에 새겨 넣어 천천히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는 이 기술을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고, 온전한 홍진표묘참을 구사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지금 초휴의 일도는 허장성세에 불과했다. 억지로 구사한다면 그 자신이 먼저 다칠 터였다.
그러나 그 기수식(起手式)만으로 수많은 사람이 기겁했다. 천인합일은 말할 것도 없고 무도종사들조차 그 일도가 뿜어내는 기운과 힘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초휴에게 비장의 패가 많다는 것은 방칠소도 짐작했으나, 이런 것까지 숨기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방칠소는 그것을 막아보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전력으로 인과 검도를 운용해 온 힘을 다해서 피하려 했다.
다음 찰나 방칠소는 갑자기 선혈을 뿜더니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대체 무슨 도법인가? 인과의 도를 쓰는 순간 반작용이 올 정도라니!’
초휴는 즉각 도세를 바꿨다. 천마무가 원한도의 힘을 흩뿌리자 방칠소는 그대로 십여 보를 밀려나고 말았다.
초휴는 출수를 멈추고, 방칠소를 향해 두 손을 펼쳐 보였다.
“방 형, 미안하게 됐네.”
엄밀히 따지면 초휴는 속임수를 써서 이긴 것이었다.
방칠소의 인과 검도는 상대하기 정말 까다로웠다. 정면승부를 한다면 초휴가 절대적 힘으로 압살해서 방칠소를 이길 수 있다 쳐도, 그러기 위해서 얼마만 한 힘을 써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심백 등 다른 인물들도 호시탐탐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해서 초휴는 이런 잔꾀를 쓸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무공인 홍진표묘참을 펼친다면, 방칠소가 습관적으로 인과 검도를 사용할 것이고 그 순간 반작용을 맞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것이야말로 초휴의 배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방칠소에게는 인과의 도가 결정적인 수단이었다. 반면 초휴는 천자망기술을 쓸 수 있어도 천자망기술이 비장의 패는 아니었던 것이다.
방칠소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과할 필요 없네. 내 실력이 모자라니 진 걸 어쩌겠나. 그래도 하늘이 공평하군그래. 나 정도로 잘생기고 멋있으면 하나쯤 부족한 데가 있어야 할 테니까.”
방칠소의 헛소리가 여전한 것을 본 초휴는 안심할 수 있었다. 방칠소의 성격상 그리 심각한 타격을 받지는 않은 듯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잠시 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생기고 멋있어서 실력이 부족한 거라고? 그럼 이긴 나는 못생겼다는 소린가?’
초휴와 방칠소의 일전이 끝나자 치견이 말했다.
“아미타불. 백 당주, 이제 대결이 끝났으니 우리가 출수해도 되겠지요? 만일 또 막는다면 검왕성이 은마와 손을 잡겠다는 뜻이 아니겠소?”
백잠이 코웃음을 쳤다.
“싸우고 싶으면 싸우시든가. 하나 스님, 식사는 아무거나 먹을지언정 말은 아무거나 내뱉으면 안 되는 법이오. 당신이 대광명사나 수보리선원과의 관계가 좋은 것은 알고 있소만 그래도 거기 사람은 아니잖소?”
백잠이 더는 막지 않겠다고 하니 치견도 불필요한 말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 * *
치견, 왕쌍군, 그리고 심백까지 세 사람이 즉각 초휴를 향해 달려들었다.
초휴는 방금 방칠소와 싸웠고, 결국 마지막에 잔꾀를 써서 방칠소를 이겼으나 자신의 심신도많이 소모된 상태였다. 그들은 초휴에게 힘을 회복할 시간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방칠소는 그 광경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세 사람은 도리고 공정이고 다 내버리고 초휴를 죽일 작정인 게 분명했다.
백잠이 담담히 말했다.
“너는 나더러 초휴를 죽이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 봐야 초휴는 이 위기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칠소, 가자.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결과를 볼 것도 없을 거다.”
방칠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모릅니다. 제 생각에는 초 형이 버텨낼 것 같아요.”
백잠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무슨 수로 말이냐?”
방칠소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제 직감이죠. 남자의 직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