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41)
641화 진무당
중년 도사가 얼굴을 싸쥐고 이를 악물었다.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폐하께서 너무하신 겁니다. 우리 음산파가 폐하께 의탁한 이래 그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왔습니까? 비록 진무당을 세우고 우리 음산파를 국교로 봉하겠다고 약속은 하셨지만, 인제 와서 초휴에게 중임을 맡기다니 우리를 신임하지 못하겠다는 뜻 아닙니까!”
“신임? 폐하가 그리 가볍게 나를 믿을 분이었으면 명군일 턱이 없지. 진무당처럼 중요한 자리를 나 한 사람에게 맡겼다가는 결국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 음산파에 딴생각이 없었어도 말이다. 초휴는 딱 좋은 때에 나타난 게야. 어차피 초휴가 아니라도 다른 자가 왔을 것이고.”
초휴는 항륭이 오앙도인을 시켜 자신을 견제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앙도인은 항륭이 초휴를 이용해 자신을 견제한다고 여겼다.
항륭의 권모술수는 노련하기 그지없었다. 초휴건 오앙도인이건 진정 친밀하게 합작하는 관계를 이루기는 불가능한 사이인 것이다.
초휴의 곁에 앉아 있던 매경령이 눈썹을 치켜떴다.
“음산파 녀석들이 생각이 바뀌었나 보군요. 이렇게 그냥 가다니 말이죠.”
초휴는 담담했다.
“안 가면 어쩌겠습니까? 진무당을 열기도 전부터 싸웠다가는 둘 다 체면을 구길 뿐입니다. 다른 게 있다면 어느 쪽의 손실이 더 큰가 하는 거죠. 음산파가 종적을 감춘 세월이 오래되었으니 그간 편히 지내지는 못했을 겁니다. 힘겹게 북연 같이 의탁할만한 땅을 찾았는데 쉽게 포기할 리가 없죠. 일단 그자들은 놔두기로 합시다. 아까 말한 대로 우리는 우리 일을 하고,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겁니다. 선을 넘는 자가 있으면 그 족족 베어 버리면 그만이니까요.”
* * *
초휴는 오앙도인의 관여 없이 개관일을 정했다. 바로 사흘 뒤였다. 동시에 그는 북연 무림 전체에 초청장을 대거 돌려 개관식에 와 줄 것을 청했다. 초청장이 도착하자 북연 무림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초휴가 돌아오다니!’
저번 북연 연맹 때 진정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은 곳은 취의장 하나뿐이었다. 당시 초휴의 목적은 오로지 북연 연맹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북연 무림 전체를 도륙할 생각도, 힘도 없었다.
해서 당시 연맹에 참가했던 세력들도 초휴가 어찌 나올지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설령 이번 위기를 넘기더라도 삼가고 자중하며 지금 가진 기반을 안정시키는 데 최선을 다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항륭이 초휴를 불러들여 진무당 대도독으로 삼다니. 진무당이라는 이름이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명백하지 않은가.
* * *
거령방의 본부는 북연과 동제의 경계에 위치한 산장이었다. 거령방주 방대통은 초휴가 보내온 초청장을 손에 들고 근심에 잠겨 있었다. 아래쪽에 모인 자들은 모두 천인합일 무사로 거령방의 고위층이었다.
한 노인이 침통하게 말했다.
“제가 뭐랬습니까. 우리 거령방은 그렇게 민감한 일에 끼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눈앞의 상황을 보십시오. 초휴가 북연으로 돌아온 데다가 조정과 손을 잡았습니다. 초휴가 우리 거령방을 적대하면 무슨 수로 맞선단 말입니까? 초청장은 벌써 왔는데 가야 합니까, 가지 말아야 합니까?”
방대통은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풍천익(馮天翼), 지금 날 탓하는 거요? 나도 거령방을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 아니오!”
풍천익의 실력은 제법 강해서 이미 반 발짝은 천인합일에 올라 있었다. 그는 거령방의 대장로로 방대통보다도 배분이 높았다. 그러니 내려진 결정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내는 일이 잦았고, 자신의 배분을 믿고 방주인 방대통의 위엄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풍천익이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거령방 수만 명의 미래가 방주의 손에 달려 있지 않습니까. 혼자만의 일이라면 잘못된 결정을 내려도 상관없겠지만 거령방의 수백 년 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단 말이외다!”
양측의 감정이 격앙될 조짐이 보이자 비단옷 차림의 반듯하게 생긴 중년 무사가 끼어들어 중재에 나섰다.
“방주님도 거령방을 위해 그렇게 하셨던 겁니다. 황제가 갑자기 초휴와 손을 잡을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가 은마 사람인 것을 뻔히 알면서 진무당을 맡기다니, 항륭의 이번 결정은 호랑이에게 가죽을 내 달라고 한 격입니다. 아마 이제는 늙어서 정신이 흐려진 모양입니다.”
“일세의 명군이 혼군으로 바뀔 날도 멀지 않은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그 이름 좀 보십시오. 진무당이랍니다. 우리 북연 무림을 깔아뭉개겠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초휴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진무당을 맡았을 건 분명합니다.”
중년 남자는 심비응(沈飛鷹)으로, 거령방의 부방주였으며 방대통의 의형제이자 첫째가는 심복이기도 했다.
풍천익이 방대통에게 품은 최대의 불만은 자신과 친한 사람만 쓰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대장로였고 배분도 높아서 부방주 자리에는 욕심이 없었다.
그러나 방대통이 방주가 되자마자 자신의 의형제를 부방주로 승격시킨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풍천익이 싸늘하게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다 옳으신 말씀이고말고요. 그래서 진무당 개관식에는 가는 겁니까, 아닙니까?”
방대통이 코웃음을 쳤다.
“가긴 뭘 간단 말이오? 초휴의 뜻을 모르시겠소? 위세를 과시하려는 겁니다! 북연 무림 전체에 초휴가 돌아왔다고 외치려는 거지. 걱정할 것 없소. 진무당은 북연 무림 전체를 적대하겠다는 거요. 초휴가 대대적으로 움직이면 다른 정도 종문들이 수수방관하지 않을 테니 그냥 놔둡시다.”
역대로 강호와 조정은 계속 대립하는 관계였다. 강호에서도 멸문과 살인을 벌일 때는 상대의 반응을 고려하는 법인데 조정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조정이 회유도 없이 곧장 무림 세력을 짓누르는 포악한 짓을 한다면 북연무림을 모조리 적대시하는 것이니 일이 너무 커질 터였다.
진무당 설립으로 동요하는 것은 거령방만이 아니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모든 종문이 마찬가지 상황이었으나, 그래도 세력이 큰 곳은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극북표설성이나 황보씨처럼 오래된 세력들은 문중에 수양 깊은 노야가 버티고 있었다. 진정한 위기가 닥쳐서 그들이 꺼내게 될 비장의 패는 세인들의 상상보다 훨씬 두려울 터였다.
대광명사 같은 곳은 아예 초청장을 방장에게 전달하지도 않고 그냥 버렸다. 지금 대광명사의 상대는 강호 전체였다.
북연에서 초휴와 상대하며 소란을 피울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초휴가 그들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굳이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기괴한 분위기 속에서, 북연 무림 전체는 침묵을 선택했다.
* * *
사흘 뒤 진무당이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쓸쓸한 개관식이었다. 강호의 종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오앙도인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초휴와 한바탕 싸운 이후, 자신이 말한 것처럼 내부 일만 맡을 작정이었다. 초휴가 책임진 일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그러면 적어도 초휴와 충돌이 벌어지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물론 굳이 와서 초휴를 띄워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항무가 진무당 정청에 들어섰다. 손에는 바구니를 들었는데 향초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항무는 맞으러 나온 당아에게 향초 바구니를 아무렇게나 넘기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개관 기념 선물이오. 양기를 크게 보해주는 물건이지. 그나저나 진무당이 출범하는 모양새가 그리 좋지 않구려. 개관부터 너무 한산하지 않은가. 손님은 한 명도 없소? 폐하도 참, 조정을 통해 천하에 공포하셨어야 했을 터인데······.”
초휴의 얼굴빛은 다소 괴상해졌다.
‘향초 아닌가. 달랑 향초 한 바구니가 선물이라고? 거기다 향초가 양기를 보해 준다고? 누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걸까?’
사실 항무가 인색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향초는 남만과 서초 지역 일부에서만 자라는 과일인지라 북연에서 신선한 향초는 매우 비쌌다. 초휴는 사람을 시켜 항무에게 차를 올렸다.
“오늘이야 한산합니다만, 나중에는 장날 같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축하하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후야께서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는지요?”
항무는 초휴와 별 교분이 없었다. 물론 대화를 나눠 보기는 했고 마주치면 인사를 나눌 정도의 사이기는 했다. 좋게 말하자면 상호 악감정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항무가 직접 축하하러 찾아온 데다 ‘진귀한’ 향초까지 한 바구니 선사했다. 물론 초휴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지는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항무가 하품을 했다.
“가르침은 무슨. 그저 작은 부탁이나 하나 하려고 왔소.”
초휴가 눈썹을 치켜떴다.
“무슨 일인지요?”
“저번 주마연맹에 참가해서 당신을 협공하려던 자 중, 거령방의 방대통이라는 자가 있었지. 솔직히 말해 실력은 별 것 없고 생김새도 우락부락하지만, 장사 수완은 꽤 좋다오. 그자가 북연에서 동제로 통하는 장삿길을 일사불란하게 정리해 놓은 덕에 거령방에서 돈 냄새가 풀풀 나는 판이오. 수만 이상의 내문 제자들이 북연과 동제를 오가고 있소. 거령방을 건드릴 생각이라면 수입은 당신이 가져가되, 그 장삿길은 굳이 망가뜨리지 말고 내게 넘겨주었으면 해서 말이오.”
초휴는 의아했다.
“후야, 돈이 부족하십니까? 거령방의 힘으로 후야를 막진 못할 거 아닙니까? 거령방을 무너뜨리고 장삿길을 빼앗는 것쯤은 쉬운 일일 텐데요.”
항무쯤 되는 사람에게 평범한 보물이나 재화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진귀한 수련 자원 정도 되어야 중요한 가치가 있었다.
항무가 답답하다는 듯이 탄식했다.
“당연히 돈이 모자라지. 서릉군은 진국오군 소속이니 먹고 입는 것이야 넉넉하오만, 당신도 사람을 적잖게 부려 봤으니 알 것 아니오. 수하들을 진정 복종하게 만들려면 당연히 주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오. 제대로 된 밥 한 끼도 못 먹이면서 나를 위해 목숨을 걸라고 할 수 있겠소? 나처럼 대장군쯤 되면 돈 쓸 구석이 절대 적지 않소이다. 향초를 먹는 데에도 돈이 들고, 수하 장졸들에게 상을 내릴 때도 돈이 들고, 장졸들이 전사하면 조정의 위로금 외에 나도 대장군으로서 성의를 보여야 하는 법이니 말이오.”
초휴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항무는 역시 만만찮은 자였다. 겉보기에는 게으른듯했지만 절대 수완이 허술하지 않았다. 초휴가 알기로 서릉군은 본래 진국오군 중 실력이 가장 약했던 부대였다.
그러나 항무가 대장군으로 온 이래 고작 몇 년 만에 서릉군 전체가 나머지 사군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항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왜 내가 직접 나서지 않는가 의아하겠지, 당신도 짐작하겠지만 거령방이 있는 곳은 내 담당구역이 아니오. 그리고 북연의 대장군이 사리사욕을 위해 육대 방파 중 하나인 거령방을 멸문시켰다고 소문이 나면, 대광명사의 화상들이 성가시게 훈계 나부랭이를 해댈 것 아니오. 그자들이야 겁날 거 없지만 그 때문에 폐하께 책망을 받게 되는 건 피하고 싶소.”
초휴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연 조정 역시 결속력이 단단한 쇳덩이 같지는 않은 것이다. 최소한 진국오군 내부는 그런 모양이었다.
아니라면 항무가 그를 찾아왔겠는가. 거령방이 있는 지역을 담당하는 대장군에게 말만 잘해 놓으면 될 텐데 말이다.
“후야는 그렇게나 저를 믿으십니까? 진무당이 북연에서 잘 자리 잡을 것으로 보시는지요?”
초휴가 문득 그렇게 물었다. 항무는 몸을 일으키며 흐흐 웃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믿지 않소. 그냥 걸어 보는 것일 뿐이오. 이기면 당신은 그때부터 내 친구가 되는 거요. 앞으로 북연 조정에서 뭔가 필요해지면 나를 찾아오시오. 만약에 지면······. 뭐 향초 한 바구니 손해 본 셈 치는 거지.”
그렇게 말한 항무는 몸을 돌려 떠났다.
매경령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항무도 퍽 재미있는 사람이군요.”
초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습니다. 정정당당하게 대놓고 실리를 쫓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