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42)
642화 형제
항무의 말은 아주 직설적이었다. 초휴에게 투자해 놓겠다는 것이다.
초휴가 제대로 북연 무림을 평정하고 그에게 거령방의 장삿길을 넘겨주면, 그는 보답을 위해 초휴를 도울 것이다. 물론 그렇지 못할 경우, 이야기는 끝일 터였다.
당아가 향초 바구니를 든 채 물었다.
“대인, 이 향초는 어쩔까요?”
초휴는 손을 내저었다.
“자네들끼리 나눠 먹게. 다 먹으면 일하러 가세.”
그렇게 말하는 초휴의 눈에 한 줄기 싸늘한 빛이 스쳤다.
당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바구니를 들고 나가려는데 매경령이 손짓을 했다.
“나도 하나 줘.”
당아는 황당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항무 말로는 양기를 보해주는 음식이라고 했는데······. 여자도 양기를 보양해야 하나?’
* * *
연동 경계 제수군(齊水郡), 초휴는 매경령, 당아 및 십여 명과 함께 잠복하고 있었다.
기실 초휴는 이렇게 빨리 거령방을 건드릴 생각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상대는 육대 방파 중 하나로 특수한 위치라 할 만했고, 초휴는 아래부터 시작해서 위를 공략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항무의 부탁도 있거니와 주마연맹 때 방대통이 그를 공격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 초휴는 그에게 기회도 주었으나 방대통은 그것을 차버렸다. 명분도 충분한 만큼 그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서 안 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초휴가 고작 십여 명만 데리고 이러고 있는 이유가 매경령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작 거령방이잖아요? 곧장 쳐들어가서 방대통을 죽여 버리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이라 일초도 버티지 못할 텐데, 여기서 잠복까지 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객잔에서 매경령은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초휴가 잔에다 차를 따르며 말했다.
“방대통을 죽이기는 쉽고, 거령방을 멸문하는 것도 간단합니다. 하지만 그다음은요? 신무문을 없애러 갈까요? 신무문이야 없앨 수 있지만, 또 그다음은? 황보 노야나 극북표설성에 은둔하고 있다는 노야까지 건드리면 북연 무림 전체가 우리를 적대시할 겁니다. 대광명사까지 나오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겠지요. 그렇게 되면 항륭은 다 우리 잘못이라고 몰아붙여 죄를 물을 것이고요.”
매경령은 고개를 갸웃하며 머리를 만졌다. 대국적 형세를 판단하는 것은 그녀의 장기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음마종의 성녀가 아니라 종주를 했을 게 아닌가.
“그럼 어쩔 생각인가요?”
초휴는 담담하게 말했다.
“때리고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방대통을 죽이는 것이나 거령방을 장악하는 것은 사실 완전히 다른 일이 아닙니다.”
매경령이 좀 더 자세하게 물어보려는데 당아가 들어오더니 자료 한 무더기를 초휴에게 내밀었다.
“대인, 말씀하신 거령방 고위층에 대한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초휴의 수하들은 제수군에 숨어 거령방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중이었다. 제수군은 거령방의 본거지로 절반이 넘는 거령방 제자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이 많으면 오가는 말도 많은 법이니 정보를 캐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매경령이 문득 깨달은 듯이 말했다.
“거령방 고위층을 이간질해서 서로 상잔하게 만들 셈이군요?”
초휴는 들고 있던 자료를 매경령에게 건넸다.
“거령방은 우리가 이간질할 필요도 없죠. 제가 하려는 건 어떤 자를 좀 도와주는 정도에 불과하니까요.”
매경령은 자료를 들춰보더니 잠시 후 말했다.
“거령방 대장로 풍천익 말인가요. 쓸 만해 보이긴 하네요. 거령방에서의 경력이 아주 오래되었고, 방대통과는 잘 맞지 않아 자주 충돌한다니 이용 가치가 있겠어요.”
초휴가 웃었다.
“제가 말한 사람은 풍천익이 아니라 방대통의 의형제인 부방주 심비응입니다.”
매경령이 눈썹을 찌푸렸다.
“심비응? 심비응은 방대통의 의형제잖아요. 방대통은 방주가 되자마자 거령방의 일개 향주였던 심비응을 타주로 발탁하고, 결국은 부방주 자리에 앉혔어요. 신임이 아주 두텁죠. 그리고 심비응 역시 은혜에 보답할 줄 알아서 방대통의 명령이면 무조건 따른다고 되어있군요. 그야말로 방대통의 수족이라 할 만한 사람인데 이용하는 게 가능할까요? 아무리 봐도 실패할 듯한데.”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잘못 생각하셨습니다. 친구를 위해 칼이라도 맞을 듯이 구는 자라고 해도 속으로는 그 친구의 등에 칼을 찔러 넣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길 물속은 알아도 열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 누구나 마음속에 마귀가 있는 겁니다. 성녀 대인의 차녀대법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지만 사실은 무공을 써서 억지로 마음을 바꾸는 것 아닙니까. 사람의 진짜 속마음이란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매경령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곧이어 이상하다는 기분이 되었다. 분명 자신이 초휴보다 나이가 많은데 왜 초휴가 더 세상 물정에 밝은 듯한 걸까?
음마종 성녀인 매경령의 무도 재능은 그야말로 천부적이었다. 초휴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놀란 나머지, 원판 줄거리에 나오는 관중형당 변란이 그녀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성녀 대인께서는 아주 천진한 구석이 있었다. 관중형당 변란도 그녀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나이와 심계가 반드시 정비례하는 건 아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리석게 변하는 인간도 많은 것이다.
* * *
심비응은 제수군 성 바깥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첩이 목욕 시중을 들며 피로를 풀어주었다. 목욕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은 후, 서재로 가서 거령방의 잡무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부방주 자리는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낮에는 거령방의 중요한 일을 처리고 밤에는 잡무까지 봐야 했으니, 방주보다 더 바빴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방대통이 방주라지만 만사를 전부 그가 처리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대충대충 결정할 수도 없으니, 크고 작은 일 대부분이 부방주인 그의 몫이 되기 마련이었다.
밤이 깊어서야 심비응은 그날의 일거리를 모두 마쳤다. 막 침실로 가서 쉬려고 할 때 별안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부터인지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그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심비응은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러 사람을 부르려 했다.
그는 귀신이나 요괴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소리도 기척도 없이 이만큼 접근하도록 자신이 전혀 몰랐다니, 그렇다면 이 자의 경지는 얼마나 깊은 수준이란 말인가?
초휴는 손가락 하나를 세워 가벼이 흔들어 보였다.
“심 방주, 진정하시오. 소리 지르지 마시고. 소란을 피우면 당신을 죽일 수밖에 없소이다.”
심비응은 기겁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쪽은 뉘시오? 이 심비응이 뭔가 잘못을 저질러 그대의 심기를 거슬렀소이까? 명확히 말씀해 주시기를 바라오.”
초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심 방주의 일 처리는 물샐 틈이 없는데 무슨 잘못이 있겠소? 나는 나쁜 뜻으로 온 게 아니오. 오히려 당신을 도우려는 것이요. 내 이름은 심 방주도 들어보았을 거요. 나는 초휴라 하오.”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며 말하는 초휴의 얼굴은 한창 젊어 보였으나 심비응의 눈에는 마치 악귀처럼 보였다. 안 그래도 낮에 초휴에 관해 의논했는데, 장본인이 벌써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거령방은 초휴와 주마연맹 건으로 원한을 맺은 데다, 진무당 개관식에도 가지 않았다. 바보 멍청이라도 초휴가 왜 왔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심비응은 뒤로 휙 물러섰다.
“초 대인,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우리 거령방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거령방은 원래 정도 무림에 속하지도 않거니와. 섭인룡 그 자에게 속아서 대인을 공격하려 했던 겁니다. 저번 진무당 개관 때도 원래는 갈 생각이었지만 북연 무림 전체가 꿈적도 안 하는데 거령방만 갈 수는 없었습니다. 혼자 갔다가 모두에게 욕을 먹으면 자칫 북연 무림에서 추방당하게 되니까요.”
초휴는 담담하게 말했다.
“심 방주, 그렇게 흥분하실 것 없소. 나도 다 알고 있는 일이오. 도우러 왔다고 말했잖소. 거령방이 나한테 저지른 일은 엄밀히 말해 방대통 한 사람의 소행이오. 나 초휴는 은원이 분명한 사람이지. 방대통의 업보는 방대통이 갚아야 하지 않겠소? 다른 사람까지 연루시킬 생각은 없소.”
뒤로 물러나던 심비응의 걸음이 멈췄다. 그의 눈에 의혹이 어렸다.
‘다른 사람은 연루시키지 않겠다고? 그러면 여기는 왜 왔단 말인가?’
느긋하게 다가오는 초휴의 목소리에 기이한 마력이 어린 듯했다.
“심 방주, 방대통의 잘못은 방대통 한 사람이 책임져야지. 거령방까지 피해를 본다면 안타깝지 않겠소? 나는 이번 일의 원흉을 처단하러 왔을 뿐이오. 그래서 묻는 묻겠소만, 심 방주는 방대통이 죽고 나면 거령방을 손에 넣고 우리 진무당 편에 서실 생각이 없소?”
그 말에 심비응은 그제야 초휴의 속셈을 깨달았다. 배신자가 되라는 것이었다. 방대통을 배반하라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심비응은 낮게 호통쳤다.
“방주님은 나를 친형제처럼 대해 주셨소이다. 지금 내가 누리는 지위는 모두 방주께서 주신 것인데 그분을 배반하라고? 그렇게는 못 합니다!”
초휴는 ‘하하’ 하고 가볍게 웃었다.
“못한다? 심 방주, 솔직히 까놓고 말해 보겠소이다. 당신은 방대통의 의형제로 그가 직접 발탁한 사람이지. 그의 명령이면 무엇이건 따르고, 방대통 역시 말 잘 듣는 당신을 이용해 풍천익 같은 거령방의 늙은이들을 견제해 왔소.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거령방에서 방대통이 죽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이 바로 당신일걸!”
심비응의 낯빛이 확 변했다.
“헛소리!”
초휴는 심비응 맞은편에 앉았다.
“내 앞에서는 가면을 쓸 필요 없소. 심 방주, 사실은 계속 억울하지 않았소? 옛날에는 당신이나 방대통이나 모두 거령방의 보통 제자였지. 하지만 선대 방주가 측근을 뽑을 때 당신은 간발의 차로 떨어지고 말았소. 반면 방대통은 측근에서 시작해 결국에는 심복이 되고 방주의 자리까지 물려받았소. 당신은 계속 방대통이 자신만 못하다고 생각했잖나? 그저 운이 좀 좋았을 뿐이라고 말이오.”
“그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사심 없이 방대통을 보좌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 당신은 방대통을 더욱 독선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왔소. 방대통이 괜찮은 제안을 하면 찬동했고, 좋지 못한 제안을 해도 주저 없이 실행했지. 심지어는 은근슬쩍 부추기까지 했소. 그게 진정한 형제가 할 일인가? 게다가 그간 남몰래 심복과 측근을 양성해 왔잖소. 거령방 고위층은 누구나 하는 일이라지만, 정말 한 점의 사심도 없다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심 방주, 연기는 그만두시오. 당신은 방대통이 언젠가 간부와 방도들에게 버림받으면 자신이 방주가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겠지. 하지만 방대통이 무도종사라는 것은 잊어버린 것 같소. 어느 종문이건 첫째는 실력이거든. 당신이 무도종사가 되지 않는 한 방대통의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오.”
“하지만 거령방은 육대 방파 중에 가장 기반이 약하지. 귀중한 수련 자원은 거령방의 돈으로도 살 수가 없소. 거령방을 다 털어도 무도종사인 방대통 한 명이 쓸 만한 비용을 충당할 정도니, 당신이 무도종사의 경지에 들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겠소? 나는 지금 기회를 주는 거요. 이건 당신에게 주어질 마지막 기회기도 하지. 당신은 거절할 수도 없고, 거절할 이유도 없소.”
초휴의 눈이 심비응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속마음을 전부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초휴는 심마륜전대법이나 천절지멸이혼대법 같은 정신 비법으로 심비응에게 영향을 준 것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심마는 그럴 필요도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초휴가 말했듯이 이런 상황에서 심비응은 거절할 수 없었고,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심비응의 얼굴은 이미 땀투성이가 되어있었다. 그는 쉰 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