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43)
643화 때를 알다
초휴는 담담히 말했다.
“이미 저지른 일은 감출 수 없는 법이오. 심 방주, 당신이 해온 일들은 세세히 캐 볼 필요조차 없었소. 그저 지금까지는 조사한 사람도 없었고, 의심한 사람도 없었을 뿐이지. 하지만 공교롭게도 나란 사람은 남을 어둠 속에 밀어 넣어 보는 것을 좋아하는 성미라서 말이지. 방대통이 의심 많은 성격도 아니고 주도면밀한 자도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이오? 당신이 부려온 자잘한 수작은 방대통에게는 엄청난 금기였을 테니 말이지.”
심비응은 맥이 빠져 주저앉았다. 남몰래 들키지 않게 잘 해 왔다고 자신했건만, 눈이 날카로운 자가 보기에는 이렇게 허점이 뻔히 드러난단 말인가.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요?”
심비응이 뒤이어 물었다.
“간단하지. 그저 내 편이 되면 족하오. 거령방에서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내가 다 해결해 주리다. 물론, 나를 배반하면 안 되오. 내일부터 당신은 심 방주가 되는 거요. 앞에 ‘부’ 자를 붙이지 않는 진짜 심 방주 말이오.”
초휴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반쯤 넋이 나간 심비응은 초휴가 어떻게 떠났는지 눈치채지도 못했다.
그는 밖을 응시하다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얼굴에 사납고 독한 표정이 드러났다. 평소 거령방에서 보이던 온화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
그동안 거령방을 위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던가?
방대통보다도 더 많이 공헌해왔지 않은가?
방대통이 실력 외에 무슨 자격이 있어 방주를 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 실력이라는 것도 거령방의 모두가 땀 흘려 번 돈으로 구입한 수련 자원 덕분인 것이다. 이제는 심비응 자신이 그런 혜택을 누릴 때가 된 것이다.
* * *
다음 날 아침, 심비응은 씻자마자 곧장 집을 나서서 거령방 본부로 향했다.
심비응을 본 사람들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심 부방주는 온화한 사람이라 평범한 제자들에게도 항상 먼저 인사를 건네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표정이 사뭇 음울해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었다.
정청에는 방대통과 풍천익 등 장로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심비응이 온 것을 보고 방대통이 인사하며 웃었다.
“아우님 오셨군. 얼른 앉게. 좋은 소식이 있다네.”
심비응은 자리에 앉으며 무표정하게 물었다.
“무슨 소식입니까?”
방대통은 의기양양했다.
“진무당 개관식에 갈지 말지로 골치를 썩였잖나. 이제 해결됐네. 별로 고민할 일이 아니었어. 그 진무당이라는 것은 그저 껍데기일세. 북연 무림의 크고 작은 세력 중 한 군데도 가지 않았다네. 심지어 초휴와 함께 진무당을 담당하는 대총관인가 뭔가 하는 자도 참석하지 않았다더군. 그야말로 내우외환 아닌가. 초휴의 진무당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네.”
풍천익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조심해야지요. 우리 거령방은 극북표설성처럼 풍파를 견뎌낼 실력이 없잖습니까.”
방대통은 찡그린 얼굴로 뭐라 대꾸하려 했으나, 심비응이 한발 먼저 일어서자 슬쩍 미소지었다.
심비응은 그의 심복이자 의형제였다. 평소 방주인 그가 직접 나서서 입씨름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심비응이 대신 나서서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방대통에게는 매우 익숙한 광경이었다. 거령방에서 논쟁이 벌어질 때 그가 입을 열면 심비응이 편을 들며 용맹하게 싸워주곤 했다.
풍천익 같은 자들은 어쨌거나 거령방의 장로이니만큼 방주인 그가 언쟁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았다. 해서 그런 일에는 보통 심비응이 나섰다.
심비응이 일어서는 것을 보자 방대통은 마음이 느긋해졌다. 이 아우는 한 번도 그를 실망하게 한 일이 없었다. 그가 안정적으로 방주 노릇을 해온 데에는 심비응의 공로가 지대했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선 심비응의 시선은 방대통을 향했다.
“방주는 그게 좋은 일이라 보십니까?”
방대통은 순간 얼이 빠졌다.
“좋은 일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심비응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진무당은 몰라도 초휴는 허수아비가 아닙니다. 저번 주마연맹이 궤멸당할 때 초휴의 위력을 직접 보셨잖습니까? 섭인룡마저 그자의 손에 죽었건만 어떻게 초휴가 하는 일이 껍데기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북연 조정은 진작부터 우리 무림 세력을 손볼 계획이었던 겁니다. 해서 작심하고 공을 들여 초휴를 데려와 진무당까지 세운 판인데, 그걸 우습게 보시다니 말이 됩니까!”
“우리 거령방은 극북표설성이나 황보씨만큼 강력한 기반이 없습니다. 한 발짝이라도 잘못 디디면 그대로 끝장이란 말입니다. 거령방의 수만 명 목숨이 방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방주의 한마디 말이 거령방 전체의 안위와 존망을 흔들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주마연맹에 참가하기로 한 것은 방주의 선택이었지요. 결과적으로 주마연맹은 패했고 우리 거령방은 초휴라는 강적에게 원한만 사고 말았습니다. 초휴가 진무당에 왔으니 만일 거령방이 개관식 때 먼저 찾아가서 사죄하고 원한을 풀었다면 그래도 상황을 해결해 볼 여지가 있었을 게 아닙니까. 하지만 이젠 상황이 극도로 악화된 게 아닙니까. 그런데도 좋은 일이라니요. 이게 어떻게 좋은 일일 수가 있단 말씀입니까?”
심비응의 말에 좌중의 모두가 굳어 버렸다.
거령방 장로들 방대통과 사이가 안 좋긴 했지만, 대부분 작은 일로 싸운 것이었다. 마치 조금 전 풍천익이 방대통의 태만한 태도를 참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 심비응의 말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방대통더러 아무 생각 없이 멋대로 굴어서 거령방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 머저리라고 욕하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누가 뭐래도 방대통은 무도종사요 거령방의 방주였다. 풍천익처럼 배분이 높은 장로들조차 방대통에게 그런 식으로 말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심비응이 미치기라도 할 걸까?’
거령방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었다. 심비응은 방대통의 의형제였고, 좀 심하게 말하자면 방대통의 충견 혹은 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공개석상에서 방대통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실성한 게 아니면 뭐겠는가?
방대통은 잠시 아연했으나 분노가 폭발해 벌떡 일어서면서 소리 질렀다.
“심비응! 자네 미쳤나? 어디 다시 한번 말해 봐!”
줄곧 예 예, ‘네, 네’ 하며 무슨 말이건 옳다고 굽신거리던 심비응이 아닌가. 그런 인물이 난데없이 이럴 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심비응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얼마든지 말해 주지. 방대통, 당신은 방주 노릇을 할 자격이 없는 자야! 노방주의 자리를 넘겨받은 이래 그 오랜 세월 동안 해놓은 게 뭔데? 그동안 우리 거령방의 실력이 반 푼이라도 늘었던가? 오히려 당신 때문에 우리 방이 번번이 위기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인가 말이야. 노방주를 뵐 면목이 있나?”
다들 눈이 둥그레지고 입이 떡 벌어졌다. 이제는 정말 확신할 수 있었다. 심비응은 확실히 미친 것이다!
방대통은 깊은숨을 들이쉬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여봐라, 부방주를 모셔가거라. 몸이 불편해서 당분간은 업무를 볼 수 없을 듯하니 말이다.”
그는 몸을 돌려 심비응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형제의 정을 맺었으니 너를 죽이지는 않겠다. 얌전히 처박혀서 반성하고 있어!”
심비응의 얼굴에 기괴한 미소가 떠올랐다.
“형제의 정을 생각해서 살려주겠다고? 방대통, 그동안 네가 나를 형제로 여기기는 했다는 말인가? 웃기는 소리! 네가 날 봐주겠다고? 똑똑히 명심해라. 사람의 앞일은 누구도 모르는 법이라는 걸 말이지. 네가 방주 노릇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심비응이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자 방대통은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이냐?”
바로 그때,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뜻은 무슨 뜻! 죽은 사람은 방주 노릇을 못 한다는 뜻이지. 방대통, 나는 일전에 네게 기회를 주었다. 너는 애석하게도 그 기회를 걷어찼지. 그런데도 이만큼이나 더 살게 해 주었으면 응당 고마워해야 하지 않겠나. 잠시 유예해 준 너의 처형을 이제 집행해야겠다.”
초휴가 매경령 및 다른 십여 명 무사들과 함께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에게 달려들거나 도주하려던 무사들은 매경령이 가볍게 눈짓할 때마다 강대한 정신력에 관통당해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초휴!”
방대통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초휴가 제일 먼저 자신부터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때 주마연맹에 참가한 세력 중에는 그보다 실력이 강한 자도 있었고, 약한 자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독하게 싸웠던 자는 매우 많았다. 하지만 그런 자들은 다 놔두고 정작 자신을 제일 먼저 찾아오다니, 정말 뜻밖이 아닌가.
그러나 사실은 방대통이 운이 나쁜 것뿐이었다. 본래 초휴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움직이려 했는데, 거령방이 돈깨나 만지는 바람에 항무의 목표가 된 탓이었으니까.
권력자의 부탁을 받았으면 충실히 이행해야 하는 법이다. 초휴는 항무의 향초 바구니를 받은 김에 최우선 목표를 거령방으로 정한 것이다.
방대통은 초휴 곁에 선 심비응을 독기 품은 눈으로 노려보았다.
“심비응! 네가 감히 나와 거령방을 배반하다니!”
심비응이 코웃음을 쳤다.
“나는 널 배반하지 않았다. 그간 내가 당신한테 무슨 은덕을 입었다고 배반이라니? 당신이 내 득을 본 게 아닌가! 그리고 거령방을 배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간 내가 거령방을 위해 쏟은 피땀이 당신보다 더 많단 말이다!”
“초 대인이 북연 조정과 합작해 진무당을 세우셨으니, 이제 북연 무림 전체가 폭풍 속 같은 혼란에 빠져들 거다. 우리 거령방의 실력으로는 줄을 잘 서야 이번 폭풍에서 온전히 살아남을 게 아닌가. 방대통, 먼젓번에 넌 줄을 잘못 섰다. 나는 그런 실수를 할 생각이 없다!”
초휴는 담담히 말했다.
“때를 아는 자야말로 준걸이라 할 수 있지. 심 방주는 때를 잘 알았을 뿐이오. 방대통 당신이야 뭐······ 됐소. 이제 곧 죽을 자한테 불필요한 소리를 더 해서 무엇하겠나.”
초휴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방대통은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초휴! 나를 죽였다가는 북연 정도 무림 전체의 반발을 살 것이다! 진무당이 북연 무림을 진압한답시고 육대 방파 중 하나인 거령방부터 손을 댄다면 후환이 없을 거 같은가!”
초휴는 비웃었다.
“사람이 주제를 알아야지. 정도 무림이라, 거령방이 정도라 불릴 자격이 있나? 게다가 나는 거령방에 손을 쓰려는 게 아니야. 당신 한 사람을 죽이려는 것뿐이라고!”
초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대통은 몸을 날려 도망치려 했다. 그는 이미 초휴의 말에서 진득한 살기를 느꼈던 것이다.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절대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터였다.
초휴는 방대통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지만 쫓아가지 않았다. 그는 장탄식하더니 손을 들어 보름달처럼 둥글게 활을 당겼다.
원신을 활로 삼고 정신력을 화살로 쓴 멸혼전이 폭발하듯 쏘아져 나갔다. 정신력이 마치 실체를 갖춘 것처럼 사나운 소리를 내며 모든 사람의 머리를 아프게 울렸다.
멸혼전이 정신력을 응집하여 만들어내는 것이라고는 해도 화살이 쏘아져 나갈 때는 천지 원기를 끌어들이게 되어있었다. 회오리바람이 일면서 모든 사람의 눈에 그 궤적이 보였다.
기이하게도, 그것은 겨냥이 빗나간 화살이었다. 초휴가 어쩌다 빗나간 화살을 쏜 것일까?
그러나 곧 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초휴가 그 화살을 쏘는 순간, 경악한 방대통이 무의식적으로 피하려다 하필 빗나간 멸혼전이 날아오는 쪽으로 들어선 것이다. 마치 그가 일부러 멸혼전의 궤적에 뛰어든 것처럼 보였다.
폭음이 울리며 방대통의 원신은 중상을 입었다. 일순간 칠공으로 피를 흘리는 방대통의 눈에 경악이 가득했다.
그는 중상을 입은 원신의 격통을 누르며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초휴가 가뿐한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한 손가락을 세웠다.
방대통은 노호하며 모든 힘을 끌어모아 일권을 날렸다. 그러나 사기(死氣)를 일으키며 만물이 시들게 하는 듯한 초휴의 일지 앞에서 모든 게 새까만 죽음의 기운으로 뒤덮이고 말았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방대통의 이마에 작은 구멍이 생겼으나 괴이하게 한 방울의 피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방대통의 시체는 회백색으로 변하더니 마치 강시처럼 땅바닥에 쓰러졌다.
초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 경악의 빛이 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