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5)
여봉선은 여전히 바위처럼 무거운 표정을 지은 채 묵묵부답이었다. 진동이 자기를 속이려 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진 않았지만, 사실 그런 낌새를 진작에 눈치채고는 있었다. 아까 허중양이 나타났을 때, 초휴와 여봉선이 열세에 처했음을 알면서도 그들 부자는 미약한 힘이나마 보탤 생각은 않고 관망만 하고 있었다. 이것만 봐도 그들 부자가 딴마음을 품었다는 게 확실했다. 자신의 속내가 들통이 나자, 진원직이 거짓 미소를 지으며 되레 어깃장을 놓았다.
“초휴, 그럼 자네는 떳떳한가? 자네도 처음부터 딴마음을 품었던 걸 내가 모를 거 같은가. 애당초 나는 네놈들이 미덥지 않았었다. 특히 초휴 네놈! 처음부터 너는 흑호방과 다를 바 없이 자엽수유를 노리고 내게 접근했던 거야.”
“그 점은 가주의 짐작이 틀렸소이다. 내가 딴마음을 먹었는지 여부도 지금은 중요하지 않고요. 정작 중요한 것은 여형이 진심으로 당신들을 도우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큰 실망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지요.”
그러자 진원직이 여봉선을 힐끗 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다. 순간 그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나는가 싶더니 그의 수중에 있던 금전표(金錢鏢) 네 개가 내력에 의해 붕 떠올랐다. 그러고는 뒤이어 ‘웅웅’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며 초휴와 여봉선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뛰어!”
진원직이 아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초휴는 중상을 입어 폐인이나 다름없고 여봉선도 내력 소모가 심해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러니 이 틈을 노려 죽어라 달아나면 저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 거라는 계산한 것이다. 그러나 맹렬히 날아들던 네 개의 금전표는 방천화극의 방어에 막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봉선은 이에 그치지 않고 방천화극을 높이 쳐들더니 도망가던 진동의 등을 향해 곧장 내던졌다. 정통으로 창에 맞은 진동은 피를 토하며 멀리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앞서 달려가던 진원직이 아들의 비명에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어느샌가 그의 뒤에 바짝 따라붙어 있던 초휴가 살기가 가득한 대기자금나수를 펼쳤다. 그러고는 이내 그의 양팔을 비틀어 끊어버렸다. 초휴는 만신창이가 된 진원직과 진동을 여봉선 앞에 던져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여형, 이번 판은 그대가 졌어. 그럼 자엽수유는 내 차지가 된 것으로 알고 이 두 사람은 여형의 처분에 맡기도록 하지. 어찌할 생각이야?”
여봉선은 초휴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진동을 노려보며 질문을 던졌다.
“애당초 나를 찾아온 목적이 나를 이용해 취의장에 줄을 대려는 심산이었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네도 잘 알지 않나? 그런 일은 터놓고 얘기하면 될 것을 왜 굳이 날 속이려 했지?”
이 광경을 보면서 초휴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아하니 이 어리숙한 인물이 이런 식으로 지인한테 뒤통수를 맞은 게 얼마나 많을까 싶었다. 이번에 진씨 가문은 사람의 욕심이 얼마나 끝이 없는지, 또 그 욕심의 끝이 얼마나 허망한 건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들은 자엽수유를 앞세워 더 큰 욕심을 채우려다가 모든 걸 잃고 말았다. 애당초 자엽수유를 세 패거리에 넘겨주고 자기들끼리 치고받도록 내버려 두었더라면 아무런 불행도 닥치지 않았을 것이다.
초휴가 보기에 자엽수유를 매개로 취의장과 인연을 맺으려 했던 그들의 발상도 어리석기 그지없었다. 아무래도 진 가주가 취의장을 너무 좋은 방향으로만 생각했던 게 분명했다. 취의장도 엄연히 강호의 종문이고, 모든 종문은 태생적으로 이익을 우선시하기 마련이다. 자엽수유를 바쳐서 성공적으로 줄을 댄다 해도, 궁극적으로 본인의 실력이 받쳐주지 않아 취의장에 도움이 못 된다면 쓸모없는 폐물 취급을 받을 것이 뻔했다.
강호에서는 이익의 추구가 영원한 화두다. 그러나 그것도 실력이 받쳐준다는 전제하에 좇아야 할 화두인 것이다. 진 가주는 장송령만도 못한 실력을 가졌다. 초휴가 여태 봐온 선천경 무사들 가운데 단연 약체라고 할만했다.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취의장에 빌붙어보려 했으니, 자기 주제도 파악하지 못하고 날뛴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리라.
여봉선에게 질책을 당하자 진동의 얼굴에는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여봉선을 속인 일을 후회하는 게 아니었다. 애당초 초휴가 여봉선과 함께 있는 걸 보았을 때, 그 둘을 자기 집까지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였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진동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여형, 이번 일은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죽이시고 제 아비는 용서해주세요.”
이 말은 적을 대할 때는 가차 없어도, 친구에게는 차마 모질게 굴지 못하는 여봉선의 사람됨을 노리고 한 말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진원직이 쉬어 터진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두 분 소협! 모든 게 나 혼자 계획한 일이니, 내 책임이오. 나만 벌하고 아들은 풀어주시오!”
여봉선이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초휴에게 말했다.
“초형이 알아서 처리하시오.”
그러고는 방천화극을 집어 들고 문 입구로 가서 섰다. 진동의 예상대로 여봉선은 차마 지난날의 벗에게 독하게 굴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동을 용서해주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초휴의 성정을 잘 아는 여봉선은 그가 어찌 나올지 알 것 같았다. 그에게 처분을 넘겼으니 어떻게 처리하건 간에 자신은 그저 지켜보면 될 일이었다.
여봉선이 진씨 부자를 용서하는 대신, 그 처분을 자신에게 넘기자 초휴는 의아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지금의 여봉선은 게임 중의 인물이 아니고 지금 이 세상도 엄연히 현실 세계이다. 처음 설정된 내용대로 끝까지 가는 게임과는 달리,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여봉선이 게임 중에 겪었던 일들을 지금의 세상에서도 같은 체험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게다가 초휴가 끼어드는 바람에 원래 겪기로 되어있었던 일들이 비켜 갈 가능성마저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초휴는 문득 마음 한편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줄곧 소홀히 여겨왔던 일, 바로 나비효과였다. 그가 환생한 이후로 이 세상은 이미 게임 줄거리와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초씨 가문의 멸문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해도, 초휴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그 와중에 심묵이 죽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당장은 이런 소소한 일들이 게임 줄거리의 큰 맥락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초휴의 실력이 강해지거나 그가 접촉하는 인물들이 많아지면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지는 초휴 본인조차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미래의 일을 예측할 수 있다는 그의 유일하고도 남다른 강점이 점차 소실되어갈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초휴는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떨쳐내고 냉정함을 되찾으려 애썼다. 나비효과가 일어나도 괜찮고 극 중 줄거리가 바뀌어도 상관없다. 여하튼 지금 이 세상에서는 실력이 모든 걸 말해준다. 그러니 자신이 최강자가 되겠다는 초심만 잃지 않고 앞만 보고 나아간다면, 또 그리하여 최정상의 위치에 우뚝 선다면 다른 근심 걱정은 불필요할 터였다.
전생에서 그는 오랜 세월을 참고만 살아왔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만큼은 용맹스럽게 돌진하고픈 마음밖에 없었다. 물론 눈뜨고 있어도 코 베가는 세상에서 살얼음판을 걷듯 매사에 신중을 기해야만 진정한 최고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했다.
그는 이런 생각들은 접고 진씨 부자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몸에서 자엽수유가 나오지 않자 초휴가 물었다.
“부자간의 정이 어찌나 돈독한지 눈 뜨고는 못 봐주겠군. 이제 작작 좀 하고 자엽수유를 내놓으시지?”
여봉선이 진씨 부자를 초휴에게 넘긴 그 순간부터 그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틀에 불과하긴 했으나 초휴가 어떤 인간인지는 충분히 파악한 상태였다. 자신들의 명줄이 그의 손에 쥐어진 이상 요행을 바라는 건 무리였다. 그래도 진동은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놓지 않고 물었다.
“자엽수유를 내어놓으면 우리를 놓아줄 겁니까?”
“아직도 내 말뜻을 못 알아들었구나. 자엽수유를 내놓으라는 말이 그렇게도 알아듣기 힘들더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초휴가 진동의 가슴에 칼을 찔러 넣어 숨통을 끊어버렸다. 아들이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걸 지켜본 진원직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초휴가 진동의 가슴에서 칼을 뽑으며 보란 듯이 말했다.
“당신도 마찬가지야. 한 마디만 말할 기회를 주지. 자엽수유를 내놓아라.”
그러자 진원직이 시뻘겋게 실눈 터진 두 눈을 부릅뜨며, 미친 듯이 초휴를 향해 부르짖었다.
“꿈 깨라. 자엽수유는 내가 워낙 잘 숨겨둬서 네놈이 제아무리 온 집안을 샅샅이 뒤져도 흔적조차 없을 것이다! 그게 네놈이 내 아들을 죽인 대가인 줄이나 알아라!”
이에 초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혼잣말을 했다.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 또 하나 있었군.”
그러나 이번에는 진원직을 죽이지 않았고, 힘 빼가며 진씨 집안을 뒤지지도 않았다. 대신 내실 깊숙이 숨어 있던 방계제자들과 진원직의 직계 친척들을 협박하여 죄다 밖으로 몰아냈다. 자신이 중상을 입은 상태니, 속히 물건을 확보한 후 적당한 장소에서 요양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니 속전속결로 일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진씨 가문의 실력은 원래 빈약했다. 진원직 혼자 선천경이고 진동 혼자 응혈경일 뿐, 나머지는 죄다 쉬체경에 불과했다. 그러니 진원직은 그들에게 싸움에 끼어들어 애먼 목숨만 날리지 말고 그냥 내실에 틀어박혀 있어라. 밖에서 무슨 꼴이 나든 절대 나오지 말라고 당부해둔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초휴에게 굴비 엮듯 한 번에 끌려 나오고 만 것이다.
초휴가 그들 수십 명을 겁박하여 끌고 나온 것을 보자 진원직이 이를 갈며 말했다.
“초휴, 식솔들은 건드리지 말라는 강호 규칙도 모른단 말이냐?”
“강호 규칙? 누가 그런 규칙을 정했단 건데?”
초휴가 코웃음을 치더니 말을 이었다.
“진원직, 당신은 평생을 강호에서 굴러먹고서도 아직 강호를 모르는가? 손에 칼을 들어야 규칙을 세울 자격도 생기는 것이다. 지금 칼 든 자는 나니까 내 말이 곧 규칙이야.”
초휴는 계속 진원직을 추궁하는 대신 그의 식솔들 가운데 서른 살 남짓한 무사에게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너는 진씨 가문에서 어떤 일을 맡고 있느냐?”
“총관입니다.”
“서른 살에 벌써 총관이라고? 진씨 가문의 방계 혈족이냐?”
초휴의 물음에 자칭 총관이라고 말한 그자가 이를 악물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자엽수유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총관이 잠시 머뭇대는가 싶더니 고개를 저으려 했다. 그러나 제대로 고개를 저어보기도 전에 그만 초휴의 칼날에 머리가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그 순간 진씨 문중 사람들 사이에서 귀를 찌르는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청문 입구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여봉선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초휴가 무고한 생명까지 학살하는 게 못마땅했다. 하지만 진씨 부자가 자신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굳이 말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윽고 초휴가 무표정한 얼굴로 두 번째 사람에게 눈길을 돌렸다.
“너는 자엽수유의 행방을 아느냐?”
두 번째로 지목받은 자는 마흔 남짓한 나이의 방계 혈족이었다. 그는 초휴의 시선이 자신에게 이르기가 무섭게 이성을 잃고 울부짖었다.
“절 살려주세요! 제가 알고 있습니다. 자엽수유는 가주님 방의 밀실에 있는데, 그 밀실 열쇠를 가주와 공자가 하나씩 나눠 갖고 있어요. 그 열쇠 두 개를 합쳐야만 밀실을 열 수 있습니다.”
“그럼 네가 열쇠를 가져다가 밀실을 열어라. 자엽수유 외에도 단약 종류가 있으면 그것도 가져오고. 자신 있으면 모두 가지고 도망가도 좋다. 나보다 더 빠르게 다리를 놀릴 자신이 있다면 말이지만.”
그 방계 혈족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진동의 시신을 뒤져 장식품같이 생긴 구름 문양의 열쇠를 꺼냈다. 그리고 죽일 듯이 노려보는 진원직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그의 몸에서도 비슷한 열쇠를 찾아내었다. 그것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열쇠인 줄도 모를만한 형상이었다. 잠시 후 빛의 속도로 되돌아온 그 방계 혈족은 자엽수유와 함께 바리바리 단약이 담긴 병들을 초휴에게 건네며 말했다.
“대인, 진씨 가문의 보물을 죄다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초휴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잘했소. 오늘부로 진씨 가문의 가주는 당신이요.”
“하지만 가주님은 저기 저렇게······.”
그가 가주를 보며 머뭇거리자 초휴가 냅다 진원직의 가슴에 홍수도를 박아 넣었다. 그리고 이내 도로 빼내어 칼날에 묻은 선혈을 털어내며 말했다.
“이제 가주 자리가 공석이 됐지? 당신이 바로 신임 가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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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전표: 고대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암기의 일종으로 고대 엽전인 대제전의 가장자리에 광을 내어 만듦. 대량 휴대가 간편하고, 숨겼다 사용하기에 용이하며, 주로 이를 던져 적의 눈이나 인후 부위를 맞추게 됨.
끝
ⓒ 봉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