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58)
658화 위군으로 가다
불빛이 흐릿한 대전.
항륭이 만면 가득 노기를 띤 채 오앙도인과 초휴를 내려다보았다.
“짐이 그대들을 믿고 진무당을 맡겼건만, 이런 식으로 보답하려는 건가? 중인환시리에 한 편끼리 그렇게 싸워댔으니, 이건 세간에 웃음거리가 되고도 남을 일이 아닌가. 하나는 한 종문의 수장이오, 다른 하나는 은마 일맥의 승계자라는 자가, 그것도 무도종사씩이나 되는 자들이 대국적 견지에서 처신해야겠다는 생각을 왜 못한단 말인가!”
항륭이 호통을 치자 오앙대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변명에 들어갔다.
“폐하, 부디 굽어살펴 주소서. 빈도는 은밀히 연회남을 영입할 계책을 차근차근 이행해나가던 중이었나이다. 성공을 바로 눈앞에 두었건만, 초휴 이자가 별안간 끼어들어 일을 망쳐놓았나이다. 이는 공무를 빙자해 사적인 복수를 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그러자 초휴가 시큰둥한 얼굴로 반박했다.
“공무를 빙자한 복수라니? 헛소리 작작하시오! 그럼 연회남을 상대로 공작 중이라는 얘기를 왜 같은 편인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던 거요? 몰라서 그랬던 게 내 잘못이오? 일전에 북연 무림이 주마연맹을 조직하여 나를 공격했을 때 연회남도 끼어 있었소. 가뜩이나 벼르던 끝에 손을 봐주었기로서니 뭐가 잘못됐다는 거요?”
“흥! 몰라서 그랬다고? 하지만 당신은 내가 상황을 설명해가며 말렸는데도 여전히 그를 죽이려 들지 않았나? 결국, 죽였고 말이지!”
오앙도인의 반격에 초휴도 지지 않고 다시 맞섰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거야 연회남이 먼저 날 죽이려 드는 바람에 그리된 거지. 날 죽이려는 자 앞에서 제발 죽여줍쇼 하고 얌전히 내 머리를 디밀어야 했단 말이오?”
“당신을 죽이려 한 건 연회남이 아니라 그의 여식이었잖소!”
“그럼 좋소. 내가 언제 한번 누굴 시켜서 오앙도인 당신 밥에다 단장고를 넣어두지. 그리고 그놈을 죽인 다음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고 잡아떼면 나는 결백한 게 되는 거요?”
“무슨 그런 억지가 다 있는가!”
두 사람 간의 언쟁은 갈수록 격렬해졌다. 여기가 황궁이니 망정이지, 다른 곳이었으면 둘 다 도검을 빼 들었을 것이다.
“둘 다 그 입 다물라!”
항륭이 보다 못해 소리쳤다.
“그만하면 되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더 따지지 않을 테니 둘 다 한 발씩 양보하라. 피차 시비도 걸지 말고! 그러나 또 이런 일이 짐의 귀에 들어오는 날엔 둘 다 엄벌을 면치 못할 테니 명심들 하라!”
말을 맺은 항륭이 짜증 섞인 손짓으로 그 둘에게 물러갈 것을 명했다. 그리고 초휴와 오앙도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놀랍게도 항륭의 얼굴에서는 격노한 기색이 깨끗이 사라졌다.
언제 화를 냈었냐는 듯, 변검을 방불케 할 감쪽같은 표정의 변화가 아닌가.
줄곧 그림자 숨어있던 노태감이 항륭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갈라진 저음으로 말했다.
“이렇게 간단히 저들을 용서하십니까? 강호 놈들은 날뛰는 야생마와도 같습니다. 매사에 제멋대로인지라 길들여 써먹기가 쉽지 않으실 겁니다.”
“상관없다. 강호 일은 강호인들끼리 해결을 보게 놔둬야지. 그게 바로 짐이 저들을 데려다 일을 시키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짐은 과정은 상관없이 결과만 볼 뿐이다. 저들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싸워도 그로 인해 북연에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책하지 않을 것이다. 한 공공, 진무당이 설립된 후로 강호에 별다른 변화의 조짐은 없었는가?”
한 공공이 잠시 생각 후 아뢰었다.
“큰 변화가 있기는 했사옵니다. 대광명사를 비롯한 북연의 여러 정상급 종문들이 서초로 모여든 상태입니다. 또한, 초휴가 거령방을 장악하고 열 개 남짓한 북연 세력을 굴복시키자 나머지 세력들도 위기감을 느껴 섣불리 날뛰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그럼 된 것 아닌가? 저들끼리 실컷 치고받게 내버려 둬. 결국, 북연 무림을 굴복시킬 수만 있으면 되는 일이니. 신무문이 북연의 대파랍시고 짐의 교화도 우습게 알며 뻣뻣하게 굴더니만 잘된 일이지. 연회남을 굴복시키지 못할 바에야 죽여버리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야. 결과적으로 조정에 유리하게 되었는데 내가 저들에게 왜 벌을 내리겠는가?”
한 공공은 고개만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제의 속내를 속속들이 가늠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일단 황제가 옳다고 여기는 이상, 까마귀가 백로라고 해도 옳은 것이다.
* * *
초휴와 오앙도인은 황궁을 나서자마자 인사도 없이 곧장 헤어졌다. 황제가 아무도 처벌을 안 하긴 했으나, 가장 손해가 막심한 건 오앙도인이었다.
초휴가 거령방에 손대기 시작한 그때부터 오앙도인은 자기 수중의 신무문 선조가 남긴 유물로 연회남을 꼬드겨왔다. 그간의 오랜 노고를 간발의 차로 초휴가 망쳐놓았으니 부아가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다.
초휴는 진무당으로 복귀한 후 근자의 여러 정황을 세밀히 검토했다. 딱히 신경 써서 처리해야 할 일은 없어 보였다.
대광명사는 신경이 온통 서초 쪽에 쏠린 상태고, 황보가나 극북표설성과 같은 종문들은 눈치껏 은인자중하는 터라 그를 골치 아프게 만들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해서 초휴는 위군으로 가려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금번 위군 행차에 수하들을 많이 대동할 생각은 없었다. 당아를 비롯한 쓸만한 실력의 심복 열댓 명 정도면 족하지 않겠는가.
매경령은 진무당에 남겨놓기로 했다. 사실 그녀는 검법 같은 건 애초에 흥미가 없었다. 그저 뭐라도 좋은 걸 건지면 잊지 말고 자기한테도 콩고물을 나눠달라고 당부했을 뿐이었다.
* * *
오랜만에 위군 통주부 대로를 걷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복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은 그의 본가가 기반을 닦아 행세했던 곳인 동시에 그의 신상과 관련된 여러 비밀이 간직된 곳이기도 했으니까.
예컨대 자신의 그 아비 같지도 않은 아비가 용기금군 출신이라는 것?
하지만 이제 와 그 일이 밝혀져도 그는 두려울 게 없었다. 지금 그의 신분과 위상만으로도 동제 조정을 겁낼 이유는 없었다. 하물며 동제 이황자와도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가.
초휴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창란검종은 이미 형편없이 쇠락한 지 오래였다. 류공원이 죽고 심백도 죽은 데다, 정예 제자들이 두광신을 따라 소범천에 들어갔다가 초휴에게 몰살당한 뒤로 창란검종은 존속할 동력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창란검종의 몰락은 초휴와 절대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한마디로 그가 창란검종을 파멸시켰다고 해도 좋았다.
현재 창란검종은 칠종팔파에서 제명된 상태였다. 이대로 쳐들어가 으름장 한번 놓으면 원하는 걸 손에 넣는 건 일도 아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가 일행과 함께 창란검종의 산문께에 이르렀을 즈음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창란검종의 산자락에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빽빽이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북연 무사들뿐만은 물론이고 동제 무사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그 광경에 초휴는 절로 경각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창란검종에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처럼 많은 사람이 모였단 말인가. 그러나 초휴가 모습을 드러내자 정작 그들이 당혹감을 내비쳤다.
“아니 초휴가 아닌가! 저자가 어찌 여기까지 온 거지?”
“뭘 그리 놀라? 심백을 죽이다가 뭔가 짭짤한 걸 발견하기라도 했던 모양이지.”
“듣자니 초휴가 북연에서 또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켰다지? 어이, 거기 북연 형씨들! 뭐라도 들은 거 없소?”
다들 한마디씩 보태느라 시끌벅적한 가운데 초휴는 곧장 창란검종 산문으로 향했다. 이윽고 산 정상에 다다르자 그곳에는 아래보다 더 많은 무사가 운집해 있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대문파 제자들로, 실력이 약해 보이지도 않았다. 대다수가 검파 출신들이고 오대검파 제자들이 그들의 수장격이었다.
그중 초휴가 아는 얼굴만도 적지 않았다. 특히 장검산장의 ‘칠분검’ 정정봉과 좌망검려의 ‘공명검’ 한정일이 눈에 띄었다.
차림새가 한눈에 봐도 풍운검총 출신인 것으로 보이는 검객도 있었으나, 초휴는 모르는 자였다.
초휴가 다가오자 그들이 힐끗 그를 쳐다봤다. 하나같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게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초 형이 여기엔 어쩐 일이야? 도를 쓰는 분께서 이런 자리에도 흥미가 있으신가?”
초휴가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어깨에 검을 걸친 방칠소의 모습이 보였다. 검 끝에는 기름종이에 싸인 통닭구이가, 검병에는 술 호로병 두 개가 걸려 대롱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멜대로 쓰이고 있는 그의 장검은 예전에 방칠소가 쓰던 것과는 다른 모양새였다. 검병과 검집이 모두 짙푸른 색을 띠는 가운데 그윽하면서도 차가운 검망이 감돌고 있었다. 검신이 검집을 벗어나지 않은 상태였어도 종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하긴 그에 대해 들은 소식이 있긴 했다. 방칠소가 용호방 이 위로 올라서면서 검왕성이 앞당겨 그에게 종문의 신병을 주었으니, 다름 아닌 천하 명검보 이십일 위에 올라있는 신검 ‘경예(驚鯢)’가 바로 그것이었다.
초휴가 사방을 두리번거리자 방칠소가 이상해하며 물었다.
“뭘 그리 열심히 찾고 있나?”
“검왕성에서 자네 말고 다른 사람도 왔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자네가 이처럼 신검을 모욕하고 있는 걸 그들이 보면 한 방 날릴 게 뻔하니, 그 술을 입에 댈 수나 있겠어?”
그러자 방칠소가 호쾌하게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걱정도 팔자구만. 이미 나한테 주었으니 멀쩡해도 내 검이고 부러져도 내 검이지. 내가 내 검을 맘대로 쓰겠다는데 저들이 뭐라고 시비를 걸겠나. 엄연히 내가 임잔데.”
내친김에 방칠소가 술 한 병을 그에게 던져주며 말을 이었다.
“아, 내가 깜박할 뻔했군. 무도종사에 오른 걸 축하하네. 하지만 거기에 나도 한몫했다는 걸 잊지 말라고.”
방칠소는 동제 연맹이 초휴를 협공했을 당시 자기가 그와 공평한 일전을 치렀던 일을 언급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일전을 통해서는 천자망기술에 대한 깨우침이 한층 더 깊어진 게 전부였다.
그러니 초휴를 무도종사로 만들어준 진정한 일등공신은 나신군이라고 봐야 했다. 왠지 자기 말을 부인하는 듯한 초휴의 눈빛에 방칠소가 이내 인정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하지만 한몫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개미 똥만큼은 내가 기여하지 않았을까?”
초휴는 그의 말에 답변하는 대신 호로병 뚜껑을 열고 한 모금 마신 뒤 화제를 돌렸다.
“지난번 그 일로 검왕성에 돌아가 처벌받지는 않았나? 게다가 자네를 여기에 혼자 보내기까지 하다니. 정말로 아무도 안 따라온 건가?”
방칠소가 통닭구이를 꺼내더니 다리 한 짝을 떼어 초휴에게 건네며 답했다.
“당연히 처벌 같은 건 없었지. 다행히도 노인네들이 그런 데 신경 쓸 정신이 없더라고. 그럴 만도 하잖은가. 장승정과 자네가 잇달아 무도종사가 되었으니 노인네들 마음이 다급해질 수밖에 없지 않나. 자네와 장승정보다 앞서지는 못해도 그렇지, 최소한 내가 세 번째 순위 이후로까지 밀려나는 건 절대 안 될 일이니까. 온종일 나를 감시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건 그 양반들도 잘 알아. 해서 인심 쓰는 척 놔주더라고. 차라리 밖으로 나돌면서 진단경에 오를만한 기연과 영감이나 얻어보라는 거지.”
초휴가 방칠소의 손에 들린 닭 다리를 힐끗 보더니, 그걸 건네받는 대신 직접 통닭구이에서 다리 하나를 떼어냈다.
“까탈스럽기는!”
방칠소가 입을 삐죽대자 초휴가 한 입 베어 물며 받아쳤다.
“아직 내 질문에는 대답 안 했잖아. 창란검종에는 왜 온 거야? 저들은 또 왜 여기에 떼로 몰려온 건가?”
그의 시선이 다시금 정정봉 등에게로 옮겨가 있었다. 이에 방칠소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아니, 자네도 창란검종에 남겨진 보물 때문에 온 거 아니었나? 듣자니 심백이 그 보물 덕에 자네와 맞설 만한 실력을 갖추게 된 거라던데?”
그 말을 듣자 초휴는 닭 다리를 들고 있던 손에 반사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무의식중에 새어 나온 강기 한 줄기를 맞은 닭 다리는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이에 방칠소가 입을 삐죽댔다.
“사람도 참, 먹는 거 갖고 그러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