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6)
초휴는 받아든 물건들을 자신의 공간 비전함에 집어넣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여봉선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 원래 진씨 가문에는 진원직 부자 외에 다른 직계 가족은 없었다.
그런데 그 둘이 죽고 말았으니 이로써 직계 혈통이 완전히 끊어진 셈이었다. 이에 초휴가 떠나기에 앞서 아무 방계나 골라 가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자고로 한번 권력을 맛보면 이성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특별한 기준도 없이 외부인의 말 한마디로 가주가 선정되었으니 앞으로 방계들끼리 진흙탕 싸움을 벌여대겠지만, 그건 초휴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초휴는 자신이 입은 부상의 심각성을 감안하여 급히 여양진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외진 야산을 찾아 요양부터 할 생각이었다. 가는 길에 여봉선이 문득 말을 꺼냈다.
“초형, 이번에 나를 도와주었으니 그 자엽수유는 전부 초형이 가지게. 나는 전혀 관심 없네.”
“여형을 도와주고 말고를 떠나서 처음부터 내 목표는 자엽수유였어. 게다가 이번에 여형이 흑호방 놈들을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나도 허중양을 해치우지 못했을 거야.”
초휴의 말에 여봉선이 단호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건 엄연히 의미가 다르지. 내 입장에서는 분명 자네한테 도움을 받은 거야.”
여봉선이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자, 그의 성격을 잘 아는 초휴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원래 여봉선은 한 번 도움을 받으면 상대에게 열 번은 대갚음해 줘야 직성이 풀리는 위인이었다. 이런 까닭에 원래 게임 줄거리에서도 섭동류가 의도적으로 여봉선을 옭아맨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진한 여봉선은 끝까지 섭동류를 돕기 위해 애썼고 급기야 누명까지 쓰고 모진 세월을 감내해야 했다.
“아 참, 초형. 내가 할 말이 있네. 그런데 자네가 내 말을 들을지는 모르겠군.”
말을 꺼낸 여봉선이 힐끗 초휴의 눈치를 보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 성질이 욱한 면이 있다 보니 자칫 무고한 살생을 저지를까 걱정이 돼서 말이야. 오늘 일만 봐도 그 진씨 방계는 안 죽여도 될 목숨이었잖아. 물론 강호 생활을 하다 보면 피치 못하게 살인을 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너무 살기에 휩쓸리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우리 사부님이 말씀하시길, 지난날 북연군에서 복무하던 시절에 동제군과 교전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한참 미친 듯이 적을 베다 보니 종내에는 눈이 시뻘개져서는 자기편도 죽일 뻔했다는 거야. 이처럼 마음이 한번 충격을 받고 나면 향후의 수련에 지장을 초래하기 쉽거든.”
여봉선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초휴의 무분별한 살생을 나무라는 의도라기보다는, 그가 이런 식으로 살생을 하다가 자칫 마도에 빠지게 될까 걱정하는 마음에서였다. 이에 초휴가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여형, 내가 사실은 살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믿어줄 거야?”
여봉선은 말없이 초휴를 향해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으냐고 되묻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초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사람을 죽이는 건 지금 나에게 있어 그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해. 이보다 더 빠르고 간편한 방법이 있다면 나도 굳이 살생을 하고 싶지는 않아.”
“대부분의 경우, 살인이 문제해결을 위한 최상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 조금 전만 해도 저들을 생사의 갈림길 위에 세워놓으니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었잖아. 이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두려워하거든. 사람 하나를 죽여서 힘과 시간이 절약될 수만 있다면 이 또한 남는 장사인 거지. 하지만 내가 살기에 휘둘릴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내가 지금 수련하는 무공 중에는 마도의 것도 있는데, 천지간의 살기들을 응집시켜 적을 상하게 할 수 있지. 근접거리에서 이를 발출하면 강기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해. 하지만 그게 무엇이건 간에 나한테는 그저 수단이고 도구일 뿐이야. 모름지기 사람은 도구에 지배당하지 않아. 단지 도구를 이용할 따름이지.”
그제야 여봉선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의 뜻을 표했다. 이처럼 초휴도 나름대로 생각해 둔 바가 있다고 하니 적잖이 마음이 놓였다. 초휴가 피력한 이론이 얼핏 괴이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여하튼 이를 계기로 여봉선도 깨달은 바가 있었다.
한강부에서 치른 격전에서 초휴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허중양은 명실상부한 내강경 고수답게 그의 근골을 으스러뜨렸고 내장도 파열시켰다. 보통 사람이 이런 공격을 당했다면 지금쯤 숨만 간신히 붙어있어도 기적일 터였다.
그러나 초휴는 유리 금사고를 몸속에 지닌 덕에 보통의 경우보다 열 배는 빠른 속도로 쾌유 되고 있었다. 초휴가 부상당한 후, 유리 금사고가 초휴의 몸에서 더 이상 기혈의 힘을 빨아들이지 못하게 되자 본능적으로 자신의 힘을 방출하여 초휴의 내상 치료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싸움의 최대 전리품인 육급 영약, 자엽수유도 몸을 치료하는 데 한몫했다. 제아무리 육급 영약이라도 단약으로 제련되고 나서야 최상의 약효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단약으로 제련하자면 일정한 비법이 있어야 하는 데다, 경험이 풍부한 단약 제련사의 손길도 필요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런 비법이나 제련사는 대형 문파에서나 갖추고 있는지라, 일개 무명 무사인 초휴가 막대한 비용을 치른다 한들 비법을 갖춘 전문가가 흔쾌히 응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초휴는 자엽수유를 아예 꿀꺽 삼켜 뱃속에서부터 흡수하기 시작했다. 자엽수유는 보통의 산수유와 외관이 비슷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잎사귀가 자수정 빛을 띠는 모습이 특이해 보인다는 정도랄까.
일급에서 삼급에 이르는 보통의 약초들은 대부분 대량 재배가 가능했다. 그러나 영약으로 불리는 사급 이상부터는 인공적인 재배가 불가능해서, 그것이 들은 비전함을 재수 좋게 손에 넣거나 무작정 깊은 산속을 헤매면서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들은 사용하면 없어지는 소모품이나 다름없어서, 바깥세상에 노출될수록 그 수도 줄어들어 갔다.
자엽수유를 삼킨 초휴는 단전에서부터 발원된 뜨거운 기운의 흐름을 느꼈다. 그리고 자엽수유를 체내로 흡수하자 기특하게도 유리 금사고가 자신의 힘으로 약 성분의 흡수를 도왔다. 이는 초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게임 내용 소개에서도 유리 금사고의 이런 효능은 언급되지 않았었다. 물론 배월교가 이것을 지니고 있었던 시간이 워낙 짧아서 그런 효능까지 알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약효를 완전히 흡수한 초휴의 몸은 완치되어 있었다. 자엽수유의 약효는 확실히 놀라웠다. 초휴는 자신의 내력이 약효에 힘입어 한 단계 더 상승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내강경의 문턱은 넘지 못했지만 말이다.
초휴가 폐관에 들어가 있는 지난 일주일 동안 줄곧 그의 호위 노릇을 자처해왔던 여봉선은 그가 출관하여 나온 것을 보자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초형, 이렇게나 빨리 부상이 다 나은 거야?”
여봉선은 초휴가 허중양의 주먹에 맞아 얼마나 처참한 몰골이 되었었는지 똑똑히 봤으니, 이렇게 빨리 완쾌된 게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초휴가 겸연쩍게 웃으며 둘러댔다.
“내가 무공을 배우는데 천부적으로 뛰어난 편도 못되고 자질도 평범하지만, 남들보다 상처가 빨리 낫는 재주 하나는 기가 막히거든.”
강호에서 활동하다 보면 가장 종잡을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었다. 유리 금사고는 초휴의 최대 비밀이었다. 적어도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실력이 생길 때까지는 그 누구한테도 유리 금사고의 존재를 말할 수 없었다. 여봉선의 사람됨을 잘 알기에, 그가 경솔히 떠벌리고 다니지 않을 거라고 확신은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비밀을 말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출수는 과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최대한 신중을 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좋은 선례를 직접 눈앞에서 보질 않았던가. 진씨 가문은 자기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보물을 얻자마자 그걸로 더 큰 이익을 꾀할 궁리나 하다가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초휴가 말한 자신만의 비상한 능력에 대해 여봉선은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강호의 땅덩어리가 이렇게나 넓고 거기서 활동하는 무사들도 수없이 많은데, 그 별의별 무사들 가운데 남다른 자기만의 재주를 하나쯤 가진 자가 있는 게 놀라울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여봉선 자신만 해도 그 하얗고 아름다운 얼굴 뒤로, 방천화극을 장난감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엄청난 신력이 있을 줄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초형,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인가? 애당초 나는 한동안 연나라 구경이나 다닐 생각으로 연서 땅을 떠난 거였거든.”
여봉선의 질문에 초휴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서두를 게 뭐 있겠나. 일단 여양산으로 가보자고. 그곳에 어떤 놀라운 일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잖아. 여양산에서 보물이 나올 거라는 소문이 오래도록 무성한 걸 보니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고 했으니, 거기에 뭐가 있다는 건지 구경은 해봐야 하지 않겠어?”
초휴의 권유에 여봉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이번 출행의 목적은 한바탕 강호를 신나게 유람하려던 것이니,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다시 돌아간 여양산은 전보다 훨씬 더 북적대고 있었다. 그건 최근 며칠 동안 거의 매일 밤 짙은 푸른빛 광채가 어디선가 밝게 투영되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사람들이 제아무리 온산을 뒤져도 특별히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조짐이 보였다는 사실만으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일거에 모여든 것이다. 초휴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걱정이 앞섰다. 여양산의 유적지가 열리는 순간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테고, 그럴수록 보물 쟁탈전은 치열함을 더 해 갈 테니 말이다.
그 무렵 취의장에서도 여양산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보고를 받은 섭동류가 그곳으로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 여양산에서 보물이 나왔는지의 여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취의장에만 틀어박혀서 갑갑함을 느끼던 그로서는 보물이 없다 해도 기분전환이나 할 겸 가 볼 생각이었다.
물론 정말로 보물이 있을 경우도 염두에 두고는 있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다음에 취의장에서 출발하면 도착까지 적어도 열흘은 걸릴 테고, 도착한 뒤면 이미 보물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고 난 뒤일 테니, 지금 출발하는 게 옳았다.
그때 섭동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는 일이 있었다. 일전에 장백도가 죽이려던 그자가 여양산 그쪽에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이에 옆에 있던 제자에게 확인 차 물었다.
“아 참, 장백도는 어찌 되었지? 시일이 꽤 지났는데 왜 아무런 소식도 없는 거야?”
“소식은 진작 왔었습니다. 그런데 소장주님이 폐관 수련 중이시라 전해드리지 못했지요.”
“그럼 장백도는 복수에 성공했나?”
제자의 대답에 섭동류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물었다. 남의 인맥을 빌려 복수에 성공했으면 당연히 다시 찾아와 감사를 표하는 게 사람 된 도리가 아닌가. 그런데 장백도는 ‘먹튀’도 정도껏 해야지, 어쩌면 이리도 예의를 모른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제자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아닙니다. 장백도가 죽이려 했던 초휴라는 자가 도리어 여양진 객잔에서 그들 넷을 몰살시켰다고 합니다.”
그 말에 섭동류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유원해를 비롯한 그 세 명의 실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최강은 아닐지라도 임중군 일대의 문파 없는 무사 중에서는 그래도 센 편에 속했다. 그리고 장백도의 실력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파산검파의 내문 제자인 만큼 기본역량은 충분할 터였다.
애당초 고작 한 명을 상대로 그런 실력자들이 네 명씩이나 움직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웃기는 일인데, 상대를 가뿐히 처치하기는커녕, 도리어 한 명에게 몰살을 당했다니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끝
ⓒ 봉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