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65)
665화 경고하다
과거의 갈등으로 생긴 선입견 탓에, 지금 월녀궁 제자들의 눈에는 초휴가 그리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여봉선과의 관계 덕에 그 갈등이 희석되면서 예전만큼 첨예한 대립을 할 일이 없기는 했다.
그래도 월녀궁 제자들은 무의식중에라도 초휴를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가 안비연 앞에 서서 나직이 말했다.
“나와 여 형이 어떤 사이인지는 당신도 잘 알 테지.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이야 여 형이 나 같은 마인하고 어울리느라 그 흔한 협행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비아냥댈지 모르지. 하지만,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당신도 부인하지 못할 거요.”
“당신이 그에게 하나를 내주면 그는 열로 보답하고도 남을 위인이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하늘은 좋은 사람이 오래 살도록 내버려 두지를 않더군. 내가 애초에 여 형을 몰랐으면야 굳이 관여치 않았겠지만, 그는 내 좋은 벗이니 참견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오.”
“안 소저, 내 한 마디만 충고하지. 앞으로 무슨 일이건 간에 심사숙고한 다음에 행하시오. 강호가 하루 이틀 있어 온 것도 아니고 우리네 인생 또한 하루 이틀로 끝날 게 아니란 말이오. 비 오는 날이 있으면 해 뜨는 날도 있는 법이니, 너무 종문에 얽매이지 말길 바라오. 강호 일이라는 게 내가 머리만 잘 쓴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보장받는 건 아니거든. 공연히 잔꾀를 부리다가 자기 꾀에 넘어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를 나는 허다하게 봐 왔소.”
이에 안비연이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도무지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군요.”
“하하하, 귀로는 못 알아들었어도 마음으로는 알아먹고도 남았을 테니, 내 더는 길게 말하지 않으리다. 안 소저, 부디 자중하시오.”
이 말을 끝으로 초휴는 칼같이 등을 돌려 가버렸다. 멀어져가는 초휴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그녀의 눈가에 뜻 모를 이채가 감돌았다.
초휴가 무리로 돌아가 보니 이미 잔본의 정리를 마친 뒤였다. 그들은 초휴에게, 그리고 막천림한테도 한 부씩 탁본을 내주었다.
그러니 막천림이 가장 운수 대통한 셈이었다. 출수 한번 안 하고 줄 잘 선 덕에 이처럼 막강한 검법의 잔본을 손에 넣었으니 말이다.
여봉선이 초휴에게 참았던 질문을 했다.
“안 소저하고 무슨 얘길 나눈 건가?”
“딱히 얘기를 나눴다고 할 것도 없어. 어쨌거나 안면이 있는 사이니까 인사를 나눈 거지. 듣자니 요즘 월녀궁에 어려움이 많다길래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나 물어봤을 뿐이야.”
초휴는 이내 화제를 돌렸다.
“아 참, 앞으로 가급적 수무상 무리와 떨어져 있지 말도록 하게. 그들이 자네에게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수무상 무리는 그야말로 여봉선에게 뜨거운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여봉선이라는 사람 자체보다는 그의 몸속에 자리한 여온후의 전승에 충성을 다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 머나먼 상고시대부터 존재해 온 자들이니 그 세월을 어찌 살아왔건 간에 알게 모르게 쌓인 경험치라는 게 클 터였다.
따라서 안비연이 아무리 꼼수를 피워도 노련한 그들의 눈에는 죄다 간파될 테니 적어도 여봉선에게 귀띔은 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여봉선은 성격상 순순히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사람이 아니었다.
얼핏 온화해 보여도 고집 세기가 소 힘줄 저리가라인 그는, 자기가 한번 옳다고 여겨 결정 내린 일에 대해서는 절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도 수무상 무리가 없는 것보다는 곁에 있는 게 무슨 도움이 되어도 될 터였다. 일행과 잠시 얘기를 더 나눈 뒤 초휴는 수하들을 이끌고 북연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올랐다.
* * *
초휴는 가는 길에 자기가 획득한 검의 전승에 대해서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 세 가지 검의는 속성만 다를 뿐, 검도 고수가 깨우친 깊이에 있어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었다.
그중 여봉선이 안비연에게 양보한 검의 전승은 생기를 상징했다. 반면, 초휴가 획득한 검의 전승은 살육과 죽음을 의미했다. 검 자체는 병기의 일종이고, 무릇 모든 병기는 흉악한 살기를 맛보며 성장하기 마련이었다.
셋 중 방칠소 몫으로 돌아간 검의 전승이 가장 흥미로웠다. 딱히 특정한 속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유는 그 전승이 검도의 근원에 대한 검도 고수의 깨우침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세 가지 검의 중 가장 진귀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초휴가 한껏 정색한 채 수중의 천마무를 뽑아 들자 삽시간에 한줄기 흑색 힘이 천마무 전체를 뒤더니 검은 도기가 뻗어 나와 초휴의 전신을 휘감았다.
비단 초휴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무사들의 도까지, 도기의 부름에 화답이라도 하듯 연신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윽고 초휴는 검의의 힘을 흩은 후 천마무를 거두어들였다.
‘도를 쓰는 자는 검의 전승을 이해 못 한다고? 웃기는 소리!’
모든 무도의 근원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초휴가 터득한 무도가 잡다하니 많긴 해도 그의 무도는 도에 있지도 않고 검에 있지도 않았다. 다만 ‘무’를 궁극의 경지까지 추구하는 행위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북연으로 돌아온 후 매경령을 만나자 그녀는 지금 북연 무림은 별다른 문제 없이 안정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녀가 한 손을 불쑥 내밀었다.
“창란검종에 가서 뭐라도 좀 건져왔어요? 혼자서만 먹으려 들지 말고 내놔봐요.”
초휴가 만검귀종 잔본의 탁본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제일 요긴한 걸 건져오긴 했지요. 다만 그게 검의 전승이라서 남과 나눌 수는 없고 대신 심백의 공법이 남아있길래 잔본이나마 챙겨왔습니다. 이게 이래 봬도 꽤 막강한 절기랍니다.”
하지만 그녀는 몇 번 눈길을 주더니 이내 한옆으로 던져버렸다. 제아무리 막강한 절기라 해도 그녀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그녀는 초휴와는 달리 복잡하게 이것저것 여러 공법을 들쑤실 마음이 없었다. 그저 차녀대법을 궁극의 경지까지 대성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뿐, 그 외의 검도니 뭐니 잡다한 것들에 정신을 쏟고 싶진 않았다.
초휴는 검도 고수의 전승을 단시간 내 완전히 체화하지는 못했다. 일단 그 전승에 대해 깨우침이 선행되어야만 했고 그런 뒤에도 자기만의 무도에 맞게끔 다듬을 필요가 있으니 아무래도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해서 급한 일만 마무리 짓고 곧장 폐관에 들어갔다.
* * *
그로부터 보름 후, 초휴의 폐관이 아직 끝나기도 전에 조승평이 급한 보고가 있다며 찾아왔다. 초휴가 밀실 문을 열고 나서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심가장의 심장명이 말하기를 누굴 좀 찾아냈는데, 그자가 대인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나와 관련이 있다니? 그자가 누군데?”
“취의장 제자인데 밖에서 대인과 관련된 말을 떠들고 다닌다는군요. 심장명이 그자를 찾아서 여기로 데려왔답니다.”
초휴가 눈썹을 치켜떴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하지만 별일 아닐 게 뻔할 듯했다. 섭인룡이 죽은 취의장은 명운을 다한 지 오래였다. 제자들 대다수가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들었지만, 초휴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섭인룡 없는 취의장이 무슨 대수라고 신경을 쓸 것이며, 쟁반 위 모래알에 불과한 자들이 무슨 위협이 되겠는가.
더욱이 그중 하나가 뒤에서 초휴를 좀 욕했기로서니, 새삼 그게 무슨 호들갑 떨 일이라고 심장명은 그자를 여기까지 데려왔단 말인가.
하지만 그를 질책하지는 않았다. 자기 나름대로 잘해보자고 한 짓인데 위에서 그 마음도 몰라주고 타박만 하면 너무 기를 꺾는 게 되지 않겠는가.
“일단 데려와 보도록.”
잠시 후 나갔던 조승평이 심장명과 함께 돌아왔다. 심장명은 초휴를 보자 깊이 허리 굽혀 인사를 올린 후 아첨기가 다분한 어조로 그를 치켜세웠다.
“위군에서 위명을 떨치시고 보물도 차지하신 걸 감축드립니다. 오대 검파 놈들이 대인 앞에서 헛물만 키고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그새 창란검종에서 있었던 일이 강호에 쫙 퍼져나간 모양이었다.
창란검종에 매우 진귀한 보물이 있어 오대 검파에서 일제히 달려들었으나 결과적으로 초휴와 특별한 연을 맺은 방칠소와 여봉선, 그리고 얼떨결에 월녀궁만 재미를 봤을 뿐, 그 외의 인물들은 건진 게 없다는 사실은 강호인들을 놀라게 할 만했다.
물론 제삼자들이야 그저 흥미로운 화제니까 한번 떠들다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별것도 아닌 일에 심장명은 명색이 초휴의 수하랍시고 주의를 기울였던 모양이었다.
심장명은 안불귀에게 죽은 그의 형 심장평과 천양지차인 인물이었다. 올곧고 강직했던 형과는 달리, 심장명은 기회주의적 성향에다 처세술이 뛰어났다. 한마디로 낯짝 두꺼운 파렴치한의 전형이라 할 만한 자였다.
초휴가 성가시다는 듯이 손을 내저어 그의 말을 끊었다.
“입에 발린 말은 그쯤 했으면 되었네. 듣자니 취의장 사람을 잡아들였다면서? 그자가 내 욕이라도 하던가?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있거든 그냥 내버려 두시오. 하늘 아래 이 초휴를 욕하는 자가 한둘도 아니건만 일일이 다 잡아들이긴 불가능할 테니까. 내 면전에 대고 욕하는 게 아니라면 상관없소.”
이에 심장명이 다급히 말을 받았다.
“그자는 대인을 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보를 유출했습니다. 저번에 대인께서 임엽의 신분으로 취의장 소장주 섭동류를 참살하셨을 때, 섭인룡이 북연의 점술가 원길대사에게 강제로 점을 치게 해서 대인의 종적을 알아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원길대사는 대인의 종적뿐 아니라 그 외의 다른 정보도 알아냈다는군요. 이를테면 대인의 신상과 관련된 것들 말입니다. 여하튼 이를 듣다 보니 대인께 고하는 게 나을 듯하여 데려온 겁니다.”
순간 초휴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그는 요즘 자기 신상과 관련해 부쩍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런데 바로 그 신상에 관한 일이라고 하니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서 자기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자를 데려오도록!”
그제야 심장명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기껏 그자를 힘들여 잡아 온 이유가 뭐겠는가. 바로 공을 치하받기 위함이었다. 초휴가 그자를 만나보겠다고 한 이상, 헛수고를 한 건 아닌 셈이다.
잠시 후 심장명이 서른 살 남짓 된 선천경 사내 한 명을 데려왔다.
그 사내는 초휴를 보자 더럭 겁을 먹더니 자기도 모르게 오들오들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치 없이 입을 가볍게 놀린 스스로를 원망했다.
그는 지난날 취의장의 제자였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섭인룡을 측근에서 모셨던 자였다. 하지만 섭인룡 부자가 죽고 취의장이 공중 분해되었다고 해서 복수를 꿈꿀 정도로 충성심이 깊지는 않았다.
다만 취의장 장주의 심복이었던 자신이 하루아침에 별 볼 일 없는 강호의 떠돌이로 전락한 게 분했다. 해서 다른 낭인 무사들과 어울릴 때면 자기를 이렇게 만든 원흉이나 다름없는 초휴를 통렬히 욕했다.
일단은 속에 쌓인 울화를 풀기 위함이었고, 내친김에 영광스러웠던 자신의 과거를 과시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땅에 떨어진 봉황은 닭만도 못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엄연히 내로라하는 대문파 출신이었던 자신이 아닌가.
그가 공들여 그런 과시를 하고 다닌 덕에 어느덧 그는 낭인 무사들 사이에서 나름 유명세를 누리게 되었다. 울분도 풀고 과시욕도 충족되자 기분이 좋아진 그는 초휴를 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취의장에서 얻어들은 잡다한 얘기들도 조금씩 떠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뭐든지 꼬리가 길면 잡히고 마는 법! 그가 주둥이를 가벼이 놀리는 광경이 심가 사람에게 포착되었고 심장명에게도 보고가 올라간 것이다.
자고로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지 않았는가. 그는 초휴에게 잘 보일 기회를 놓칠세라 냉큼 취의장 무사를 데려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