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66)
666화 원길대사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 사내를 응시하던 초휴의 입에서 의외로 차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는 대로 다 말해 보아라. 내가 그리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지.”
“제, 제가 다 말씀드리기만 하면 용,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사내가 덜덜 떨며 묻자 초휴가 담담한 얼굴로 답했다.
“첫째, 지금 너는 나와 조건을 논할 자격이 없다. 둘째, 네깟 놈은 귀찮아서라도 죽일 생각이 없긴 하다만, 설마 나한테서 무슨 약속을 받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부터 하면 곤란하지. 셋째, 너는 이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내 질문에 거짓으로 답했다간 절대 곱게 죽지 못할 거라는 것! 알아듣겠는가?”
사내는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해서 불필요한 말로 계속 에두르는 대신, 떨리는 목소리로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초 대인께서 섭동류를 죽이신 후, 장주······, 아! 이젠 아니지. 섭인룡이 대인의 행방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불러들인 자가 북연의 이름난 점술가인 원길대사였습죠. 그런데 그자가 점을 치던 중 무슨 문제에 부딪힌 것 같았습니다. 피까지 토하면서 말하길, 대인은 존재해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요. 그 뒤로 어찌 되었는지는 정말 저도 잘 모릅니다. 그저 제가 헛소리를 지껄인 셈 치시고 부디 보내주십시오!”
사내는 어찌나 심하게 겁을 먹었던지 울먹이기까지 했다. 자기가 정말로 천인공노할 악행을 저질러서 죽는 거라면야 누굴 원망하겠는가. 이 정도면 딱히 못 누리고 산 인생도 아니니 억울할 건 없었다.
하지만 순전히 입을 잘못 놀려 죽는 거라면 지옥에 떨어져서도 분하지 않겠는가.
차분하던 초휴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존재해선 안 될 사람이라고?’
“그 원길이라는 자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서초에 있습니다! 대인의 행방을 점쳐서 알아내자마자 냅다 서초로 도망쳐버렸습니다. 섭인룡이 그자를 찾아오라고 난리 쳤었지만 이미 도망친 뒤니, 결국 찾질 못했고요.”
잠시 생각하던 초휴는 공황상태에 빠진 사내의 넋 빠진 모습에 성가신 듯 손을 내저었다.
“되었으니 가보거라.”
사내는 태산처럼 무거운 짐이라도 내려놓은 양,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빼버렸다.
격려 차원에서 심장명에게 상을 내린 초휴는 좀 더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서초로 가서 원길이라는 자를 만나봐야 할 듯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간 자기 신상에 드리워진 비밀에 대해 나름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여태껏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이제라도 실낱같은 단서나마 얻을지 모르니 원길을 안 만나볼 이유가 없었다.
그는 매경령 등에게 대충 상황설명을 한 후 혼자 서초로 향했다. 다른 이들을 대동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초는 그의 본거지가 아닌 만큼 머릿수만 많다고 크게 도움 될 것 같지가 않아서였다.
게다가 요즘 서초는 배월교 때문에 한창 어수선하여 위험할 수도 있었다. 공연히 많은 수가 움직였다가 눈에 띄어서 성가신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지 않은가.
작금의 강호에서 제일 혼란스러운 곳이 바로 서초였다.
배월교의 급속한 성장과 더불어 야소남이 적극적인 공세를 취해서 용호산 노천사와 수보리선원의 ‘신승’ 라마를 연달아 격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천문의 문주 군무신이 쉽사리 강호에 발을 들이지 않고 자재천의 천주 종신수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지 않을 거라는 전제하에, 야소남은 당분간 명실상부한 강호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될 터였다.
이 무렵 마도 일맥의 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대광명사를 비롯한 주요 정도 세력들도 속속 서초로 향하고 있었다.
이처럼 천하의 고수란 고수는 죄다 서초에 운집하는지라 작금의 서초는 일촉즉발의 긴박한 형국이었다.
* * *
서초 강주부(江州府)는 그야말로 작은 주부에 불과했다. 원래 서초는 전국을 통틀어 제대로 된 큰 성 하나 없고 대부분 이처럼 고만고만한 규모의 주부들뿐이었다
그나마 강주부는 용호산에 인접한 덕에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었다. 대개 용호산에 향불을 올리러 오는 참배객이나 천사부를 방문코자 하는 무인들 대다수가 강주부에 숙소를 마련하곤 했다.
그러나 용호산이 봉쇄됨에 따라 참배객이건 무인이건 간에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게 되자 강주부는 종전의 북적대던 모습을 잃은 지 오래였다.
이때 강주부 뒷골목의 한 주점에 낭인 무사들 한 무리가 둘러앉아 비도 피할 겸 쉬고 있었다. 서초 날씨는 습하고 비가 많이 내렸다.
매인 곳이 없는 이 무사들은 종문 소속 제자들처럼 엄격한 수행에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해서 집에 틀어박혀 지루한 수련을 이어가느니 차라리 한데 모여 이런저런 강호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형씨들도 들어봤는지 모르겠네. 근자에 배월교가 정도 종문들과 전쟁을 시작한 모양이야. 듣자니 아주 살벌했다더라고.”
“당연히 들어봤지. 배월교의 그 대제사라는 자가 주문을 외워 순양도문 무도종사를 죽였다지? 쯧쯧, 글쎄 영문도 모르게 순식간에 비쩍 말라 숨이 끊어졌다더군.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냔 말이야.”
“하지만 정도 종문 측에서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더라고. 풍운검총의 그 검을 장사지내는 일을 맡은 노야가 원래 다시는 강호 일에 나서지 않고 그냥 검과 함께 묻히리라 결심했었는데, 이번에 그 결심을 깨고 부러진 검을 잡고 나왔다지 않는가. 야소남을 처리한다고 말일세.”
“진무교 쪽에도 그런 움직임이 있다고 하네. 듣자니 ‘선인’ 영현기의 가르침을 받은 적 있는 노야 한 분이 폐관을 접고 나올 준비를 마쳤다더라고.”
“정말이야? 진짜로 영현기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고? 아니, 그럼 오백 살도 넘었다는 얘기잖아. 설마 노천사 외에, 현 강호에 그처럼 연배가 높은 양반이 또 있었다는 말인가?”
“그걸 누가 알겠어? 어쨌거나 정도 종문들의 저력이 만만하지는 않을 거야. 아무래도 서초 무림이 한바탕 요동치지 싶네. 이제 맘 편히 살긴 글렀어.”
“에잇, 나도 몰라. 이렇게 하루하루가 흉흉해서야······. 아무래도 원길대사나 한번 찾아가 볼까 봐. 액운을 피할 방도를 찾아야 할 테니까.”
“원길대사한테 점 한번 보려면 부르는 게 값이라던데, 자네한테 그만한 돈이나 있고?”
“그것도 옛날얘기지. 요즘 천사부가 산을 봉쇄한 바람에 오가는 사람 수가 부쩍 줄었잖아. 원길대사도 먹고 살자면 예전처럼 많은 복채를 받을 수야 있겠나. 깎아주겠지. 계속 그런 식으로 배짱을 튕길 수야 없지 않겠어?”
너나없이 한마디씩 하느라 시끌벅적한 와중에 돌연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들이 지금 말하는 원길이란 자는 어디에 있소?”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옮겨갔다. 그리고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들짝 놀랐다.
언제 왔는지도 모를 흑포 차림의 젊은이가 칠흑 같은 장도를 허리에 찬 채, 주점 밖에 서 있지 않은가.
밖에는 여전히 폭우가 퍼붓고 있건만,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그의 몸에 닿으려는 족족 방향을 틀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치 빗방울에 영성이라도 깃들어 일부러 그와 접촉하는 걸 피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경악시킨 건 그럼에도 그의 일신에서 기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낭인 무사들이 실력은 형편없어도 눈치 하나는 백 단인지라 그 젊은이가 고수 중의 고수임을 알아보았다. 이에 부랴부랴 일어나 공손히 답했다.
“원길대사는 용호산자락 도관에 있습니다. 소인들이 길 안내를 해 드릴깝쇼?”
“고맙소만 그럴 필요까진 없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성큼 한 발 내딛자 축지법이라도 쓴 양, 그의 신형은 십여 장 밖까지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몇 걸음 만에 완전히 빗속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제야 무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정체불명의 사내한테서 받은 압박감이 실로 상당했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가시자 그 빈자리를 호기심이 파고들었다. 젊은 나이임에도 저렇듯 대단한 실력을 갖췄다면 분명 무명지배는 아닐 터.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기억났다! 저자는 초휴야. 은마의 초휴! 북연 조정과 손잡고 진무당을 세워 북연 무림을 압박하는 중이라던데. 그뿐인가! 얼마 전에는 위군에서 검파 제자들도 손봐 줬다지 않는가. 그런데 서초에는 무슨 일로 나타난 거지?”
용호방 일 위에서 풍운방으로 이적한 초휴는 이제 알려질 대로 알려져서 굳이 얼굴을 가리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다들 그를 알아보았다.
주점 내 무사들이 서로 눈빛으로 무언의 말을 주고받더니 너도나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비교적 강호 돌아가는 상황에 빠삭한 이들은 초휴가 속한 은마권과 배월교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도 대충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초휴는 마도 인물이면서도 배월교의 마도와는 엄연히 구분되는 인물이었다.
이런 시국에 정도 쪽도 배월교 쪽도 아닌 그가 두 세력의 싸움이나 중재하고자 여기 나타난 것은 아닐 터. 그의 등장이 서초 무림에 혼란만 더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그들을 엄습했다.
물론 아무리 혼란이 가중된들 그들과 같은 말단 낭인 무사들에게까지 미칠 영향은 미미하겠지만 말이다. 기껏해야 모여 앉아서 떠들어댈 이야깃거리나 풍성하게 추가되지 않겠는가.
원길의 소재 파악을 마친 초휴는 용호산 방향으로 향했다.
사실 아까 그는 주점에 불쑥 나타났던 게 아니라, 진작부터 그들이 강호 얘기를 떠들어대는 걸 듣고 있다가 원길의 소재를 물은 거였다.
물론 여기 오기 전에 대충 서초의 정황을 듣긴 했다. 그러나 워낙 하루가 다르게 정세가 급변하는 중이니 멀리서 전해 들은 것보다 직접 와서 현지인들의 입을 통해 듣는 게 더 정확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서초의 상황이 생각보다 한층 더 격렬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각 대문파가 비장의 패까지 거의 다 동원한 지금, 바야흐로 제이차 정마대전이 발발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물론 그런 위기감이 느껴졌다고 해서 걱정이 되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내심 배월교가 계속 세를 키워나가기를 바라기까지 했으니까. 배월교가 앞에 나서서 정도 측 화력을 흡수해주지 않았더라면 은마의 무사들이 이렇듯 여유를 부리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용호산 아래에는 도관이 적지 않았다. 전부가 다 천사부 직속인 건 아니라도 대개가 천사부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도문 인사들이 운영하는 도관이었다.
다시 말해 용호산자락에 도관을 열었다는 건 자기가 천사부와 가까운 사이인 걸 넘어서 심지어 천사부를 떠받드는 입장에 있으며, 여차하면 천사부에 빌붙어 비호받을 자격도 있음을 의미했다. 원길의 도관도 그중 하나였고, 나름 꽤 유명하기까지 했다.
그가 무공 실력은 변변치 않아도 점술 실력만큼은 탁월한 축에 들었다. 해서 도문 출신 무사가 드문 북연 같은 곳에서는 최고의 점술대가로 인정받기까지 했다.
물론 서초로 옮겨왔다고 해서 그 실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닌지라 천사부 주변에 도관이 수없이 포진해있는 중에도 여전히 두각을 나타내며 인정받고 있었다.
급기야 서초로 옮겨오자마자 천사부의 초대까지 받은 그는 현지 점술가들과 교류하며 깨우침을 얻을 기회를 얻기도 했다.
* * *
원길의 도관에는 그 흔한 이름 하나 없이 입구 편액에 큼지막하게 아래의 문구만 쓰여있었다.
‘사흘 내 일을 정확히 알려드립니다’
이 문구는 절대 과장이 아니고 허언도 아니었다. 이 편액을 걸어놓은 지도 꽤 되었건만, 점이 틀렸다고 홧김에 떼 내려는 자도 없이 멀쩡히 붙어 있는 것만 봐도 알조가 아니겠는가.
이 무렵 원길은 도관 내에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홀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밖에는 줄곧 큰비가 쏟아지는 데다, 천사부에서 산을 봉쇄하며 인적이 끊긴 뒤로 그는 줄곧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진작 도관 문을 닫고 귀가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여쁜 첩실들을 끼고 자식 하나 없는 박복한 팔자를 어떻게든 바꿔 보려고 노력 중일 터였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오늘따라 줄곧 마음이 뒤숭숭한 게 당최 안정되지를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결국 찻잔을 내려놓은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기분이 이 모양인 건지 점을 쳐보기로 했다.
바로 그때, 도관 밖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 운명을 점칠 준비를 하려는가 보오? 이를테면 과연 당신이 오늘 자신의 피 냄새를 맡게 될지 아닐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