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70)
670화 성녕와 맞붙다
배월교 성녀가 막 나타나기 직전, 초휴와 장승정은 이미 대결을 멈추기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장승정이 배월교 성녀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근자에 당신네 배월교가 대단한 활약을 했으니 이만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소? 천사부는 이미 일년 동안의 봉문을 결정했건만, 여긴 또 왜 나타난 것이오?”
그러자 배월교 성녀가 가볍게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천사부에서 정말로 봉문을 했다면 당신은 왜 여기에 나와 있는 거죠? 그렇게 예민하게 굴 필요 없어요. 나는 그저 누굴 데려가려고 왔을 뿐이니까. 천사부에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데려가다니, 누굴?”
성녀가 한옆에 숨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원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군요.”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로 향했다. 창졸간에 이처럼 살벌한 주목을 받은 그는 두려운 건 둘째 치고 어찌할 줄을 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은마의 초휴, 배월교의 성녀, 소천사 장승정. 각자 은마, 명마, 정도, 이 세 계파를 대표하는 준걸로서 장차 자기 세력을 책임지게 될 존재들이 아닌가.
이렇듯 막강한 인물들이 모두 자신을 원하고 있으니, 원길은 자기가 언제부터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 되었는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이번엔 초휴가 입을 열었다.
“이거 공교롭게 되었군. 나도 마침 원길대사를 북연으로 모셔가려던 참이었소이다. 성녀 대인, 한발 늦으셨구려.”
“산 좋고 물 맑아, 도 닦기에 딱 좋은 이 서초 땅을 버리고 북연으로 간다는 말인가요? 에이, 설마요. 그리고 이런 일은 선착순으로 처리될 문제가 아니죠.”
성녀가 배시시 웃으며 받아치자 장승정이 끼어들었다.
“원길대사는 우리 천사부의 좋은 벗이오. 어디로 가든 본인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요. 만약 용호산에 계속 있겠다면 아무도 그를 데려갈 수 없소!”
세 고수 간의 팽팽한 신경전 한복판에 놓이게 되자 원길은 정신이 가출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결국, 초휴가 단도직입적으로 정리에 들어갔다.
“원길대사, 아무래도 대사가 직접 결정하셔야겠소. 어쩔 테요? 북연으로 돌아가시겠소, 아니면 용호산에 남을 겁니까!”
원길은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 장승정에게 정성껏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송구한 심정으로 말했다.
“소천사의 호의는 정말 감사하오만 노도가 반드시 서초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겠소? 어차피 조만간 떠날 생각이었소이다.”
이 세 젊은이 중 장승정이 그나마 원길이 죄를 짓기가 만만했다. 그건 장승정의 실력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번듯한 정도 출신으로서 다른 둘에 비해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데다, 소천사라는 신분 때문에라도 점잖게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초휴한테 퇴짜를 놓으면 어찌 될까. 자신의 몸뚱이는 북연으로의 귀향길이 아니라 황천길로 향하는 여정에 오르게 될 게 뻔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배월교 성녀를 뿌리치자니 배월교의 끔찍한 고충술을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자고로 후환을 생각해서라도 악인에게 죄를 지어선 안 된다고 했으니, 미안함을 무릅쓰고라도 유일한 호인인 장승정에게 죄를 지을 수밖에······.
장승정이 특유의 잔잔한 눈빛으로 원길을 쳐다보더니 초휴와 성녀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좋소. 천사부는 이일에 관여하지 않으리다. 다만 한 가지. 이곳은 용호산이니, 만에 하나 그대들이 이곳에서 문제를 일으킬 시에는 천사부의 처사가 매정하다고 원망해선 안 될 거요.”
말을 마친 장승정이 뒤돌아서 가려는데 장전종이 튀어나오더니 원길을 노려보며 호통쳤다.
“원길! 네놈이 이렇게 배은망덕하게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이럴 줄 진작 알았더라면 네놈을 사람대접하여 용호산에 정착하는 걸 애써서 돕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나약해 빠진 쥐새끼 같으니라고! 그리도 마도 놈들이 두렵더냐? 우리가 그토록 보호해주려 애썼는데도 모두 뿌리치고 따라갈 만큼?”
원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에게도 예를 갖췄다. 정말이지 이 오랜 벗을 볼 면목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목숨은 하나뿐이다. 아무리 둘도 없는 벗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그래도 배신의 끝이 이 정도에서 그친 게 다행이지 싶었다. 적어도 친구의 등에 칼을 꽂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니까.
장승정이 장전종을 만류했다.
“그만 하세요, 사숙. 두 분의 인연이 여기까지인 것 같으니 어쩌겠습니까. 이만 돌아가십시다. 이러다간 정말 다들 배를 곯겠어요.”
장전종이 벌레라도 보듯 원길을 노려보더니 못 이기는 척 장승정과 함께 가버렸다. 이로써 셋 중에 둘이 남게 되자 배월교 성녀가 초휴를 향해 미소지으며 말했다.
“초 대인, 원길대사를 내게 양보해주지 않겠어요? 당당한 사내대장부께서 나처럼 나약한 아녀자와 험악한 싸움을 벌여서 저분을 빼앗아 가려는 건 아닐 테지요?”
초휴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원길대사는 내게도 매우 중요한 사람이오. 절대 양보할 수 없소. 더욱이 역대 배월교 성녀치고 나약한 아녀자가 어디 있다는 말이오. 그대가 나약하다면 그간 당신의 고충술에 죽은 자들은 뭐가 됩니까? 연약한 아녀자한테 힘도 못 써보고 숨진 한심한 사람들밖에 더 되겠소?”
이에 배월교 성녀도 기분이 살짝 상한 듯 보였다.
“난 눈치 없는 남자는 정말 질색이라니까. 이봐요, 관점을 바꾸어서 생각 좀 해봐요. 우리 배월교가 정도 종문들에 대항해서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지 않았으면, 당신이 북연에서 그렇듯 떵떵거리며 활개를 치고 다녔을 것 같은가요! 명마나 은마나 다 같은 마도 식구 아닌가요. 그러니 이번에 당신이 양보해주면 배월교가 정도 종문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얼마라도 부담을 덜게 될 거예요. 배월교를 돕는 게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이득이라는 걸 알아야죠. 그렇지 않은가요?”
하지만 이번에도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거라면 모를까, 원길대사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소. 성녀 대인은 ‘왕관을 쓰고자 하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라는 말도 못 들어보셨소? 배월교가 마도 제일 대파를 자처한 이상, 그 자리의 무게도 응당 감수해야 할 터! 부담스러워 그리 못하겠다면 우리 은마한테 그 자리를 넘기시구려. 사양치 않을 거외다.”
“정말 타협의 여지가 없는 건가요?”
그녀가 한숨을 내쉬자 초휴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탄식이 다시 이어졌다.
“여자들은 보통 억지를 쓰는 경향이 다분하죠. 예쁠수록 더 그렇답니다. 나 같은 절색의 미인은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굳이 여러 말을 하지도 않아요. 당신하고 이렇게 오래 얘기한 것 자체가 매우 드문 경우인데, 당신은 끝내 내 말을 들어주려 하질 않는군요.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했나 봐요. 애당초 나 같은 미인이 누구와 시시비비를 논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죠. 누구를 죽이는 거라면 모를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지진이라도 난 양, 초휴의 발밑이 흔들리더니 눈앞이 새까매질 정도로 많은 고충 떼가 떠올랐다. 별의별 색깔을 다 띠고 있는 고충들은 일제히 초휴를 향해 미친 듯이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이건 초휴도 미처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사전에 어떤 조짐도 못 느꼈건만, 발밑에 이리도 많은 고충 떼가 매복해 있었을 줄이야!
지금 배월교 성녀는 아직 진단경에 오르기 전으로, 이제 막 천인합일을 뚫은 실력에 불과했다. 하지만 항시 이처럼 많은 고충 떼로 무장하고 있으니, 지난번 정마대전 당시 무도종사들도 천인합일인 그녀에게 호된 맛을 본 것이다.
초휴가 불인을 결하자 구인합일이 이루어지며 쾌만구자결이 연달아 시전되었다. 일신을 찬연히 물들인 불광이 바퀴처럼 끊임없이 휘돌며, 그가 인법을 격출할 때마다 고충들을 사정없이 짓이겨 버렸다.
자신의 필살기인 고충 떼의 공세가 초휴에게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하자 성녀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래서야 고이 키워온 고충들을 몰살의 장으로 내몬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런 상항이 계속되자 고충들은 초휴에게 바짝 다가가는 족족 한 마리도 예외 없이 그의 기세에 위축되어 주저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녀가 비술로 그것들을 억지로 움직이게 조종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더 이상의 공격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신이 비법까지 써가며 키워낸 고충 떼가 전멸했어도 그녀는 그다지 애통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전멸할 지경에 이르도록 제대로 된 공격은커녕, 상대의 털끝 하나 못 건드렸다는 게 너무도 억울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배월교 성녀는 초휴에게 유리금사고 같은 게 있을 줄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유리금사고 건은 벌써 이십 년도 더 된 옛날 일이고, 당시 성녀는 배월교에 입교하기도 전인 어린아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랜 세월이 지난 지라, 그 옛날 유리금사고 쟁탈전에 참여했던 무사들을 제외한 제자들 대부분은 그것의 존재를 배월교에 내려오는 고서적에서나 보고 아는 정도였다.
따라서 배월교 성녀는 초휴가 배월교에서 만들어낸 지존급 고충을 체내에 품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저 그가 불문 공법을 수련해서 고충에 대한 제압력을 가진 것이려니 짐작할 뿐이었다. 고충술과 같은 삿된 기운으로 가득한 비법이 불문 무공에 맥을 못 춘다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녀가 손을 휘젓자 수중에 어른대던 두 줄기 금색 음영이 마술처럼 사라졌다. 이것이 다시 나타났을 때는 이미 초휴의 코앞에 와 있었다.
그 금색 음영처럼 보였던 물체는 상당히 기이하게 생긴 두 마리의 고충이었다. 외형이 언뜻 매미 같기도 하나, 사마귀를 연상케 하는 낫같이 생긴 앞다리가 달려 있었다.
몸 뒤에 돋친 날개도 기괴하리만치 넓적했으며 표면에 화려하면서도 복잡한 무늬가 보였다.
이 한 쌍의 고충은 배월교 성녀가 종문의 비전 비법을 통해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극강의 고충으로, ‘상사단장고(相思斷腸蠱)’라는 이름이었다. 이것에 비하면 아까의 고충 떼는 탐색전을 위한 것에 불과했다.
상사단장고를 만들어내려면 서로 지극히 사랑하는 연인 아흔아홉 쌍에게서 피 한 방울씩을 뽑아서 매미 유충을 부화시키는 데 써야만 한다.
단, 그중 한 쌍이라도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닐 경우 고충 만들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일단 완성된 한 쌍의 상사단장고는 영원토록 갈라서지 않고 금강석보다도 단단한 금슬을 자랑한다. 겉껍질도 상사단장고의 금슬처럼, 신병조차 뚫지 못할 만큼 단단했다.
가장 특이한 점은 만약 한 마리가 죽으면 남은 한 마리도 수배의 위력을 터뜨리면서 동귀어진한다는 것이다.
초휴의 천마무가 번쩍하더니 고충을 가격하자 고막을 찢을 굉음이 터져 나왔다. 하잘것없어 보이던 그 작은 곤충은 언뜻 칼날에 부딪혀 튕겨 나간 듯 보였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도로 날아와 맹렬히 초휴를 공격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상사단장고의 속도가 빛처럼 빠르다 한들 초휴의 천자망기술을 피할 순 없었다. 해서 그는 벌레 따위에 상처를 입을지 모른다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두 마리 고충이 연신 눈 앞에서 윙윙거리며 어지럽게 날아다니자 상당히 성가셨다. 해서 초휴는 상사단장고를 피하던 속도를 일부러 한발 늦추어 그것이 체내로 뚫고 들어오게 허락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불멸마단의 힘이 작렬하더니, 막강한 마기가 배월교 성녀와 상사단장고 간의 연계를 차단해 버렸다. 하지만 성녀는 별로 당황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고충이란 게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긴 하나, 그 자체로 천지 간에 생겨난 생명체이다. 해서 조종을 통해서도 움직일 수도 있지만, 굳이 조종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목표를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 초휴의 심장에 있던 유리금사고가 미미하게 몸을 떨더니 분노의 감정을 터뜨려 냈다. 고충에게는 본능만이 있을 뿐 영성이 있을 리는 없었다.
그러나 유리금사고에게 있어 숙주인 초휴의 몸은 자기만의 집이기도 했다. 자기 집에 웬 날강도 같은 게 침입했으니 심사가 편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해서 그 작은 몸에서 가닥가닥 금빛 힘이 폭발하더니 천마무로도 쪼개지 못했던 상사단장고에 충격을 가해 단숨에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정순한 힘만 남도록 이를 잘 정제한 후, 초휴의 단전으로 흘려보냈다.
유리금사고한테 이런 능력도 있는 줄은 초휴도 미처 몰랐다.
그는 예전에 접했던 고충들이 너무도 허접해서 유리금사고의 눈에 들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상사단장고는 단연코 수준이 달랐다. 그 한 마리에 대보단(大補丹) 한 알에 상응하는 효능이 있었으니까. 자그마치 꼬박 삼 개월 수련한 것과 맞먹는 효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