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81)
681화 비춰보니 피바다 속 마주(魔主)의 모습이
여하튼 식겁하여 오줌까지 지릴 뻔했던 원길은 초휴 앞에서 잔머리를 굴려보려던 생각을 완전히 접고 말았다. 까짓것 마도에도 가입하라고 하면 가입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지금 그런 게 무슨 대수라고.
원래부터도 그리 선량하고 착실하게 살아온 인생도 아니었잖은가. 솔직히 남의 점괘를 봐준다는 빌미로 사기도 부지기수로 쳐온 그였다.
점술대가라고 하면 일반인들에게는 꽤 고고하고 냉엄한 존재로 비치기 마련이다. 제대로 대접해서 받들어줘야 비로소 손가락을 짚어가며 점을 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는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뻗어 이렇게 으름장을 놓는다.
‘당신 얼굴에 마가 낀 것을 보니 머지않아 피비린내 나는 횡액을 당하겠구먼!’
물론 이건 원길이 보통 사람한테 허세를 부릴 때나 해당하는 얘기다. 초휴의 수하가 된 지금은 겁을 먹고 절절매던 비굴한 모습 그대로였다.
원길을 처음 본 매경령은 눈에는 확실히 그가 신통치 않게 보였다. 그녀가 의아한 눈빛으로 초휴를 힐끗 쳐다보았다.
고작 이런 사람을 데려오려고 서초에서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켰냐고 묻는 거였다. 초휴가 그녀의 눈빛에 담긴 뜻을 알아채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진 마십시오. 원길대사가 이래 봬도 실력 하나는 끝내줍니다.”
초휴의 이 말은 결코 괜히 해보는 소리가 아니었다. 겉보기엔 저래도 서초에 갔을 때 그를 지키기 위해 천사부가 나섰고 배월교와도 쟁탈전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점술에 대한 조예도 이미 확인하지 않았는가.
주위 사람들에게 원길을 인사시킨 초휴는 그를 밀실로 데려갔다. 사신옥을 그에게 주어 삼생조영비법(三生照影秘法)을 시전케 할 생각이었다.
사실 서초에서부터 해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자기 기반이 아닌 그곳에서는 어떤 의외의 일이 닥칠지 몰라 불안했다. 해서 꾹 참고 북연에 돌아온 지금에서야 점을 쳐보려는 것이었다.
사신옥을 건네받은 원길은 혀를 차며 감탄했다. 점술의 도를 수련하는 사람 중 이것을 갖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의 당대에 평범한 점술가들이나 잔뜩 양산되었을 뿐, 개중 제대로 된 고수 한 명이 없어 감히 동가로부터 탈취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좌우간 초휴의 표정만 봐도 더는 지체할 일이 아니었다. 해서 즉시 사신옥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도인(道印)을 결하자 순식간에 현묘한 기운이 사신옥에서 방출되었다.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초 대인, 대인의 몸이 정말로 빙의나 환생의 결과여서 영혼과 신체가 애초의 모습 그대로 하나가 아니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삼생조영비법이 효과를 발휘하는 동안, 별개의 두 모습을 동시에 보실 수 있게 될 겁니다.”
초휴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길의 동작과 더불어 그의 정신력이 초휴의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초휴의 몸은 아무 거부반응도 일으키지 않은 채, 서서히 어떤 회백색의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그곳에서 두 존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전생의 존재인 임엽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초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원길의 논리대로라면 자기 몸이 빙의나 환생의 결과가 아닌 바에야 전생의 임엽과 이생의 초휴 모습이 동시에 보여야 했다. 그런데 한 모습만 볼 수 있다니, 그것도 왜 전생의 모습이란 말인가?
그러나 초휴가 길게 생각하기도 전에 임엽의 모습이 변환을 일으켰다. 전생의 임엽에서 이생의 초휴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환한 광채가 잇달아 번뜩이더니, 한 몸에서 두 가지 얼굴이 번갈아 가며 나타났다.
마침내 희뿌옇던 장면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하더니 주위의 모든 게 핏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세상천지가 온통 지옥의 피바다에 잠긴 듯했다!
초휴의 정신이 그 피바다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여전히 끊임없이 두 가지로 바뀌는 얼굴을 지닌 몸도 그 피바다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번쩍 고개를 들더니 의미 모를 미소를 머금은 채, 초휴를 빤히 응시하는 게 아닌가. 곧이어 변환을 일으키던 얼굴이 점차 흐릿해져 가더니 그 몸에서 제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건 초휴가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나이도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대충 젊은 듯 보이기는 하나, 어울리지 않게도 세상 풍파를 고루 겪은 사람처럼 노련하고 침착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점차 그의 이목구비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어떻게 생긴 얼굴인지는 여전히 형용할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방금 본 그 얼굴이 막상 상기할라치면 뇌리에서 사라지곤 했다. 바로 지금도 눈앞에 버젓이 있는데 말이다!
그건 정말이지 기이하다 못해 오싹한 느낌이었다. 이 영문 모를 상황의 연속에 그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 존재는 망망 혈해에 발을 내디뎠다. 순간 혈해가 한바탕 뒤엎어지면서 온갖 유골과 원귀들이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한순간에 황천 지옥에라도 떨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도대체 누군지 모를 그 얼굴이 초휴를 돌아보더니 딱히 표현하기도 어려운 어조로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
“드디어 왔구나! 아주 오랫동안 너를 기다려왔다.”
마치 연인을 대하는 듯한 말투에 초휴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자기 목소리와 너무 똑같지 않은가!
순간 굉음이 터지며 눈앞의 모든 게 산산이 조각났다. 뒤이어 ‘쨍강’하는 소리와 함께 원길이 들고 있던 사신옥이 깨지고 말았다.
원길은 수중의 깨진 사신옥과 방금 물동이에서 건져지기라도 한 양, 식은땀에 흠뻑 젖고 창백해진 초휴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삼생조영비술을 시전한 게 이번이 처음이긴 했다. 그러나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적들 속에 이 비법과 관련된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지라 모르는 비술은 아니었다.
이건 평화롭기 그지없는 비법이었다. 적어도 이렇게까지 반작용이 엄청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삼생조영비술로 인한 힘의 소모가 막대하다고는 하나, 사신옥이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사신옥마저 깨져버렸단 말인가!
초휴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이마 한가득 맺힌 식은땀을 닦았다. 그는 다시 눈을 감고 아까의 상황을 떠올려보려 애썼지만, 그 존재의 얼굴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원길이 조심스레 물었다.
“초 대인, 괜찮으시오?”
“별일 아니외다.”
초휴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리고 뚫어질세라 원길의 눈을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오늘 일은 아무한테도 발설해선 안 되오!”
초휴의 날 선 비수 같은 시선에 원길은 심장이 다 오그라드는 듯했다. 방금 초휴가 자기한테 시선을 돌렸을 때, 그 눈은 혈해를 머금기라도 한 듯 핏빛으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단언컨대 착시현상이 아니었다. 그토록 무서운 눈빛을 어찌 잘못 볼 수 있겠는가.
평소에도 초휴가 무섭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건 대부분 성격 탓이었다. 하지만 방금 원길은 영혼마저 악귀에게 죄다 뽑힌 채 지옥 한가운데 놓인 듯한 기분이었다.
어느샌가 초휴의 눈빛은 평소 그 특유의 위협적인 눈빛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여전히 방망이질 쳐대는 심장을 애써 누르며 원길은 빛의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초 대인, 마음 푹 놓으시오. 오늘 노부는 눈이고 귀고 간에 모조리 막혀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으니 말이오.”
그제야 초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봐도 좋다는 손짓을 했다. 사신옥이 일으킨 환각에서 봤던 모든 장면은 자신에 대한 수수께끼를 한층 더 가중시키는 결과만 낳았다.
오리무중에 더 깊이 빠진 기분이었으나, 적어도 막연하게나마 추정 가능해진 사실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아까 그 존재는 왜 ‘드디어 왔구나!’라고 말하며 자기를 반겼을까?
‘자기를 기다려왔다고?’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기다릴 생각이라는 걸까?’
‘그것도 지옥의 혈해 한복판에서?’
‘대체 뭘 하려고 날 기다렸다는 말인가?’
일련의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는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것 같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차라리 당분간 이 일은 생각하지 않는 게 나을 듯했다. 잠시 심신을 가라앉힌 후 그가 밀실에서 걸어 나왔다. 아직도 식은땀에 머리가 흠뻑 젖은 채였다. 그 모습에 아연실색하여 매경령이 물었다.
“아니, 안에서 그자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이 온몸의 땀은 또 뭐죠?”
“그리 법석 떨 일은 아닙니다. 이것만 여쭤보죠. 혹시 독고유아의 초상화를 가지고 계십니까?”
매경령이 잠시 멍하니 있더니 되물었다.
“독고 교주의 초상화? 없는데 왜요?”
명색이 마도 정통 종문에다 곤륜마교 휘하의 대표적인 부속 종문 중 하나였다는 음마종에, 독고유아의 초상화 한 점도 없단 말입니까!”
초휴의 힐난에 매경령이 그를 흘겨보며 쏘아붙였다.
“그걸 나한테 물으면 나는 또 누구한테 물어야 하나요! 내가 그 당시 사람도 아닌 걸 몰라서 그래요? 그런 일이라면 육진한테 물어봐도 소용없을 거라고요. 이 강호 전체를 탈탈 털어봐도 곤륜마교 부속 종문, 그 어느 곳에서도 독고 교주의 초상화는 찾을 수 없어요.”
“그건 어째서입니까?”
“난들 알아요? 없으니까 없는 거지. 그나저나 갑자기 초상화가 왜 필요하다는 거죠?”
“별거 아닙니다. 왕년에 교주님이 얼마나 근사한 분이셨는지, 그 풍채를 한번 보았으면 해서 그러는 거죠. 다른 뜻은 없어요.”
말을 마친 초휴는 몸을 홱 돌려 가버렸다. 뒤에 남겨진 매경령이 의혹 어린 눈초리로 멀어져가는 초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직감으로 보건대, 그의 심중에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하지만 끝끝내 말을 안 하려 든다면 그녀도 굳이 추궁할 생각은 없었다.
매경령이 초휴를 불러 세우며 말했다.
“아 참, 거기 좀 서봐요. 그동안 당신이 자리를 비운 바람에 진무당에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단 말이에요. 죄다 당신이 처리해야 할 일들이죠.”
그녀는 몇 가지 소식을 초휴에게 들려주었다. 세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진무당에 그새 큰일이 나 봤자 얼마나 났겠는가.
웬만하면 아랫사람들이 처리하고 매경령에게는 보고가 올라올 일도 거의 없을 터였다. 따라서 그녀에게까지 보고가 올라왔다는 건 아랫사람들 선에서 처리하기 곤란한 일이라는 의미였다.
초휴는 보고서를 뒤적거리며 살펴보더니 헛웃음을 날리며 중얼댔다.
“극북표설성 노야 양반께서 사백수 맞이 축하연을 열 계획이라고? 쯧쯧, 여태 살아계셨던 모양이군.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지. 우리한테도 초대장이 왔나?”
극북표설성에 진화련신 노야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은 강호 전체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 어르신께서 십 년마다 축수연을 열어 사람들을 초대해온 것도 역시 모두 알았다.
이치로만 따지면 진화련신 고수는 사백 살까지도 살 수 있다. 물론 이건 이론에 불과했다. 실제로 사백 살을 채울 수 있는 자는 극히 드문 것이다.
극북표설성 노야는 최근 백 년 가까이 출수를 자제해왔다. 듣자니 종문 내에서도 얼굴을 내비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통상 축수연 때나 모습을 드러내면서, 경사로운 날을 맞아 젊은 제자 한 명을 특별히 낙점하여 친히 지도하는 걸 관례처럼 해왔다. 그것도 그 제자만 밀실로 불러들여 가르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이처럼 철저히 폐관 생활을 이어가며 출수 횟수를 최소화해서 신체의 노쇠 속도를 늦추는 일은 강호에서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초휴에게 있어 비웃음거리밖에 안 되었다.
무사에게 있어 침상에서 누워 맞는 죽음은 치욕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무도종사나 진화련신을 막론하고 어쨌거나 본인의 최고 절정기에는 맘껏 강호를 종횡했던 풍운의 인물이 분명했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수명 좀 늘려보겠다고 등딱지 안에 숨은 거북인 양, 밀실에만 틀어박혀 구차한 삶을 이어간다고?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