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82)
682화 회유
매경령이 옆에서 비웃음을 지었다.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예요? 당신이 남의 잔치에 나타날 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강호에 어디 있다고, 행여나 당신을 초대했겠군요. 재앙을 불러들여도 유분수지. 그건 그렇고 북연 폐하 양반께서 당신더러 한번 다녀가라고 전갈을 보냈어요. 북연 조정이 극북 지역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일로 극북표설성과 협의하려는 모양이에요.”
그녀의 말에 초휴의 표정이 굳어졌다. 항륭이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이란 말인가. 그 외지고 황량한 극북 땅에 멀쩡한 군대는 왜 주둔시킨단 말인가?
초휴는 극북 황야에 군대를 주둔시키겠다는 항륭의 발상이 마뜩잖았다. 항륭이 미친 게 아닌가 싶었다.
진무당이 서북 강호에 피바람을 불러일으켜도 별일 없는 듯하니, 정말로 북연 강호 전체를 압박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초휴가 이 정도로 항륭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능력 탓이라기보단 배월교 덕분이었다. 배월교가 강호에 파란을 일으키자 초휴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대광명사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 것이다.
대광명사 승려들이 나서지 않은 덕에 초휴는 북연을 종횡무진 누빌 수 있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위서애쯤 되는 사람이 나서지 않고서야 그 대머리들을 당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항륭은 누구를 경계하려고 북쪽에 군대를 주둔시키겠다는 것일까? 혹은 누군가를 도발하려는 목적일까?
극북의 황야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땅 자체는 광활했으나 인구가 매우 적었다.
극북표설성 등의 소수 종문을 제외하면 오래된 마을이 몇 군데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 마을에 사는 건 사냥이나 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로, 털끝만큼도 조정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들을 제외하면 남는 건 사극종과 대광명사뿐이었다. 사극종은 염려할 바가 못 된다. 그렇다면 항륭은 대광명사와 맞서려는 것인가?
매경령이 물었다.
“다녀올 생각인가요?”
초휴는 몸을 일으켰다.
“황제의 명령이라니 가 보긴 해야겠죠. 하지만 담판의 성공 여부는 극북표설성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린 문젭니다.”
무턱대고 대광명사에 쳐들어가라는, 자살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명령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항륭의 뜻에 따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초휴와 극북표설성은 은원이 적잖게 쌓인 사이가 아닌가. 극북표설성을 아예 멸문하지는 못하더라도, 기회가 되는 대로 한 번쯤 엿을 먹여 줄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그는 속이 넓은 사람이 못되니 말이다.
초휴도 강호에 출도한 이래, 꽤 고생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생은 그의 실력 때문이었다. 실력이 남보다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니 탓할 곳도 없었다.
하지만 극북표설성과 취의장의 싸움만은 경우가 달랐다. 겉보기에는 시원시원하고 무식해 보이던 백한천에게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백한천은 그와 섭인룡이 양패구상하기를 바랐고, 그 바람에 초휴는 거의 죽을 뻔했다.
그리고 북연 주마연맹 일도 있었다. 당시 극북표설성이 취의장에 오지는 않았다지만, 실은 가세하려고 오는 것을 방호가 막았을 뿐이었다. 방호가 아니었다면 극북표설성도 초휴를 치려고 모인 무리 중에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방호를 생각하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지금 북연 무림에서 방호의 위치는 아주 애매했다. 한때 그는 조정과 정도 무림 양측한테 적대시 당하는 처지였다.
그리고 지금은 조정과 묵은 원한을 풀었고 북방 삼십육대도는 지나간 역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기련채가 북연 땅에서 떳떳하게 활보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방호의 성격상 정도 종문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을 게 뻔했다.
지금 같은 때 초휴가 그를 포섭하려 들면 방호는 아마 받아들일 것이다. 어쨌거나 초휴에게 진 빚이 있으니까.
물론 초휴가 생각한 ‘포섭’이 방호를 수하로 삼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무리 방호가 그에게 빚이 있다 한들, 지금 초휴의 실력과 경력으로 그한테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은 굴욕을 감수하라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그는 방호에게 합작을 제안할 생각이었다. 그가 진무당에 가입해서 진무당 소속이 되면 북연 조정 사람이 되는 것이고, 초휴 역시 북연 땅에서 동맹군을 얻는 셈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초휴는 극북표설성으로 서둘러 가는 대신 매경령과 함께 방호부터 찾아갔다.
* * *
시간이 흘렀지만 기련채는 별로 변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은 산채 지부들을 완전히 없애고 요동 숲속의 본부만 남겨둔 채, 은인자중 힘을 기르는 중이었다.
초휴가 온 것을 보자 기련채 사람들은 환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같은 편이 되어서 싸웠던 만큼, 기련채 사람들은 초휴를 친근하게 여겼고 꽤 좋은 인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방호가 대소하며 걸어 나왔다.
“임 공자······ 아니, 이제 초 아우님이라고 불러야겠구려. 최근 북연에서 아주 위풍당당하시더군. 눈이 부실 지경이니 말이지.”
흔쾌한 표정으로 다가오던 그는 매경령을 보자 엉거주춤했다. 그는 바보처럼 허허 웃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매경령······ 성녀님은 어쩐 일로 오셨나?”
매경령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왜, 나는 기련채에 오면 안 되나? 당신 말이야. 어째 갈수록 점점 변변찮아 져? 옛날 북방 삼십육대도 때는 그래도 호걸이라 쳐줄 만했지. 하지만 지금은 취의장에 당해 그런 꼴이 되고 말이지.”
방호는 다소 억울한 눈치였다. 옛날 북방 삼십육대도 시절에는 힘을 합칠 사람이 서른여섯이었다. 지금은 혼자뿐이지 않은가. 사실 이 정도 해낸 것만도 보통은 훨씬 넘었다.
하지만 매경령 앞에 선 방호는 마치 머리 하나가 작아진 듯했다. 억울함에 얼굴이 시뻘게졌으면서도 반박도 제대로 못 했다.
초휴는 이 둘 사이에 분명 뭔가 있었으리라고 직감했다. 하지만 굳이 묻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방 채주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 찾아왔소이다. 내가 북연 황제 항륭과 손을 잡고 진무당을 세운 것은 잘 아시겠지요. 혹시 우리 진무당에 들어올 생각은 없습니까? 진무당에 가입하면 방 채주는 진무당 소속으로 조정 사람이라는 신분이 생깁니다. 조정이라는 껍데기를 두르면 아무래도 움직이기가 편해지지요. 우리가 잘 아는 사이니만큼 터놓고 말하겠습니다. 진무당에 무슨 일이 생겨서 방 채주의 힘을 빌려야 할 때는 내가 따로 상의할 겁니다. 종속 관계가 아니란 뜻이죠.”
본론으로 들어가자 방호도 좀 전처럼 우물쭈물하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좁혔다.
“초 아우님에게는 큰 은혜를 입었고 매 성녀도 있으니, 나 혼자라면 즉각 수락했을 거요. 하지만 기련채 전체가 달린 문제 아닌가. 아무리 내가 채주라도 휘하 형제들의 앞날을 혼자 결정하는 건 좀 그렇구려. 초 아우님이 양해해 주신다면 형제들과 상의한 후 결정하고 싶소이다.”
초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호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상급자인 방호가 부하들을 제쳐놓고 자기 맘대로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이야말로 경솔하고 무책임한 일 아니겠는가. 얼핏 거칠고 무식해 보이는 방호였으나 오랜 세월 채주 노릇을 한 만큼, 결코 멍청한 자가 아니었다.
방호가 자리를 뜨자 매경령이 말했다.
“어때요, 저자가 수락할 것 같아요? 옛날 북방 삼십육대도는 서로 사이가 좋았어요. 그러다 북연 조정의 손에 완전히 무너졌죠. 진무당에 가입하라는 권유가 명분상의 껍데기일 뿐이라지만, 기련채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예요.”
그 말에 초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반대입니다. 내 생각에는 마음 편히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북방 삼십육대도는 이미 죽었지만 기련채는 여전히 살아 있으니까요. 진무당에 가입해서 해로울 게 없어요. 이미 죽은 자들이 산 사람의 길을 막아서야 되겠습니까.”
과연 일각이 지나기 전에 방호가 돌아와 답을 주었다. 기련채는 진무당에 가입하기로 결정했다.
소수였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있기는 했다. 명분일 뿐이라 해도 조정의 개가 되는 건 싫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대부분이 가입에 찬성했기에 결과적으로 진무당에 가입하게 된 것이었다.
기련채 무사들은 대부분 장년이었다. 기련채의 현재 상황으로서는 요동 숲에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다. 한두 해는 괜찮을지 몰라도 그 이상 길어지면 버티기 어려울 게 분명했다.
“방 채주, 현명한 결정을 하신 겁니다.”
초휴가 웃었다.
“참, 혹시 요즘 한가하십니까? 나와 성녀 대인은 극북표설성에 가 보려 합니다만.”
방호가 의아하게 되물었다.
“거기는 무슨 일로? 설마 극북표설성을 치려는 거요?”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칠 생각이면 단둘이 왔을 리가 없죠. 항륭이 지시를 해서 말이죠. 극북표설성 노야의 생일잔치에 다녀오라는군요. 괜찮다면 방 채주도 같이 가서 구경이나 하시지요. 아마 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방호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가의 그 늙어빠진 거북이 생일이 또 돌아왔군. 마침 별일도 없으니 함께 갑시다.”
초휴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거북이? 극북표설성 노야는 북연 무림에서 평이 별로 안 좋은가 봅니다?”
초휴가 북연 출신이기는 했으나 북연에서 오래 지낸 것은 아니었다. 반면 방호는 이 땅에서 힘을 키운 진짜배기 북연 호걸이었다. 해서 북연 강호의 온갖 이야기를 초휴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었다.
방호가 냉소했다.
“그 거북이 놈은 젊었을 적에도 별 볼 일 없었소. 그자가 성주였을 때가 극북표설성의 힘이 가장 약했던 시기였으니까. 극북표설성을 통틀어 무도종사라고는 그 하나뿐이었지.”
“그래서 대광명사에 온갖 아첨을 하며 빌붙고 심지어 백가의 사당에 불상을 모시기까지 했다오. 그렇게 참고 견디며 대광명사의 도움을 얻어서 진화련신이 되었고, 극북표설성에서도 무도종사가 몇 명 나올 수 있었지. 그러자 그자는 비굴했던 태도를 싹 걷어치우더니 대광명사를 멀리하고 다른 세력을 탄압하기 시작했지.”
“지금 북지 상황을 보시오. 극북 황야에서 진정 내세울 만한 세력은 셋뿐이오. 대광명사와 사극종, 그리고 극북표설성. 대광명사의 승려들이야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사극종도 그간은 매우 얌전하게 지냈지. 그러나 극북표설성은 사극종보다도 사람을 더 많이 죽였을 거요!”
그러나 초휴는 극북표설성의 겁쟁이 노야가 그렇게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제법 효웅의 자질이 있지 않은가.
실력이 약할 때는 고개를 숙이고 얌전하게 지내다가, 실력이 강해지고 악독하고 과감하게 반대편을 짓누른다.
‘뭐가 잘못됐지?’
초휴 자신이라도 그렇게 했을 터였다.
다만 그렇게 구차한 수단을 써서 억지로 목숨을 이어가는 것만은 초휴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북연 강호에서 극북표설성 노야의 생신 잔치란 대단한 일인 동시에 별 것 아닌 일이었다.
극북표설성의 지위를 생각하면 별난 일이었다. 극북 황야만이 아니라 북연 전체를 통틀어도 극북표설성은 내로라하는 큰 세력이었으니까.
노야의 생신 잔치가 북연에서 별 것 아닌 일 취급을 받는 이유는, 극북표설성 노야의 생신이 너무 자주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무도종사의 수명은 삼백 년이고 진화련신에 들면 사백까지 사는 게 가능했다. 물론 이론상 그렇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대부분 이삼백 년은 거뜬히 살았다.
그렇게 오래 살면서 해마다 생일을 챙기면 무슨 꼴이 나겠는가?
그러니 다들 백 세, 이백 세, 혹은 백팔십팔 세처럼 의미 있는 해에나 친한 벗을 두루 초대해 축하연을 열었다.
하지만 극북표설성 노야는 폐관하고 은거한 뒤로 십 년마다 생일잔치를 열었다. 북지 세력들로서는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생신 잔치에 참석하려면 뭐가 됐든 선물을 가져가야 할 게 아닌가. 너무 가벼운 선물은 내놓자니 체면을 구기는 데다가 극북표설성과 척을 질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다들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극북표설성 노야에게 바칠 선물을 구했다. 그러나 그 짓도 계속하다 보니 더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해서 바치는 선물의 값어치는 점점 내려갔다.
극북표설성 측에서도 별말이 없는지라 다들 안심하고 꼬박꼬박 생신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극북표설성 노야의 생신 잔치는 재물을 긁어모으려고 여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을 잔뜩 불러다 시끌벅적한 잔치를 벌임으로써 극북표설성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