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84)
684화 초 형, 도와주시오!
그때 옆에서 시중을 들던 극북표설성 무사가 머뭇거리며 초휴의 식탁을 가리키더니 우물쭈물 말했다.
“대인, 지금······ 여기 이 자리는······.”
그러자 방호가 마땅찮은 투로 말했다.
“왜? 생일잔치에 왔으면 먹고 마시는 게 중요하지, 뭘 따지려 들어? 나는 여기서 밥 먹으면 안 되나? 참, 여기 이 닭이 맛있던데 두 마리 더 내오거라.”
무사는 감히 더 뭐라 말하지 못하고 잔뜩 기가 죽어 주방으로 갔다.
잠시 후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그릇이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돌아보니 방금 닭요리를 가지러 갔던 무사가 따귀를 맞는 바람에, 방호가 달라던 닭요리 접시를 떨어뜨린 것이었다.
화려한 백색 옷에 서른 좀 넘어 보이는 청년이 손가락질하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
“일을 어떻게 하는 거냐? 법도도 몰라? 내 자리가 어딘지도 몰라서 남이 내 자리에 앉게 두었단 말인가!”
그 작태를 본 방호는 그제야 깨달았다. 방금 그 무사가 우물쭈물 말하려던 것은 자신들이 남의 자리에 앉아 있으니 비켜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생일잔치에서 앞쪽 자리는 신분과 지위가 높은 사람의 몫으로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극북표설성은 초휴 일행이 올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으니, 그들의 자리를 준비해 놓았을 턱이 없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 무사가 따귀를 맞고 자신한테 갖다 주려는 닭까지 못 먹게 되자 방호는 벌떡 일어섰다.
“애송아! 이 몸이 네 자리에 앉으셨다, 그게 잘못되기라도 했느냐?”
시비가 벌어졌으나 초휴와 매경령은 계속 바쁘게 먹을 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 청년의 실력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서, 삼십 대에 이미 외강경 수준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와 초휴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쥐뿔도 아닌 자 때문에 직접 나서는 것은 격이 떨어지는 일이다. 방호가 처리하게 놔두는 편이 나을 터였다.
청년은 방호를 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선배님, 자리는 하인들이 안배하는 것입니다. 이미 앉으신 거야 어쩔 수 없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제가 하인을 좀 책망한들 선배님과 무슨 상관입니까?”
그 말을 들은 초휴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 청년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방호가 일어서서 으름장을 놓을 때 곧장 숙이고 들어왔다면 더 볼 것도 없는 허수아비요 빛 좋은 개살구일 터였다.
반면 숙이고 들어오지 않고, 감히 방호에게 패악을 부릴 정도로 멍청하다면 머리도 뭣도 없는 부류에 불과했을 터.
하지만 그는 방호가 누군지 알아보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하는 말도 조리가 있었다.
초휴 일행이 그의 자리를 차지했다지만 그가 보는 앞에서 빼앗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초휴 일행한테 뭐라고 할 게 아니라, 자리를 제대로 안배하지 않은 하인을 혼내야 하지 않겠는가.
근거도 있고 이치에도 맞는 소리였다. 문제는 그가 혼낸 것이 극북표설성의 하인이었다는 점이다.
개를 때릴 때도 그 주인이 누군지 알아보고 패는 법이라고 했다. 극북표설성 안에서 극북표설성 하인을 혼냈다는 것은 그가 극북표설성과 아주 가까운 사이거나 극북표설성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강하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방호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웃었다.
“애송이가 제법 말은 잘한다만, 네 스승이나 윗사람이 가르쳐 주지 않더냐? 강호 선배에게 말할 때는 쓸데없는 도리를 들먹이는 게 아니야. 이 몸이 옳다고 하면 옳은 것이고, 틀린다고 하면 틀린 거란 말이다!”
방호의 기세가 일순간 강대하게 솟구치더니 엄청난 압력이 청년을 뒤덮었다.
방호는 이미 무도종사의 실력이었으니 기세로 누르면 청년을 땅에 무릎 꿇리고도 남았다. 그러나 순간 누군가 청년 앞을 막아서며 코웃음을 쳤다.
“고작 후배 상대로 위세를 부리면서 잘난 척 깨나 하는군!”
방호와 청년 사이를 가로막은 것은 우람한 체구에 냉랭한 얼굴의 중년인이었다.
남자가 손을 대충 휙 그었을 뿐인데 하늘을 찢을 것 같은 도의(刀意)가 치솟더니 세찬 기세가 천지를 베어 가를 것 같았다. 그는 도를 들고 있지 않은데도 온몸에서 예기를 발하고 있었다.
갑자기 이런 자가 튀어나올 줄 몰랐던 방호는 방심하고 있다가 기세에 밀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 초휴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가 한 걸음 내디딘 순간, 이미 방호 앞에 가 있었다. 이어서 가벼운 손짓 한 번으로 도의를 파훼해 버렸다. 이미 많이 약해져 있기는 했으나, 초휴가 손짓 한 번으로 짓눌러 부순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노기를 띤 얼굴의 방호가 출수하려는데 초휴가 그를 제지했다. 초휴는 중년인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후배인데 뭐, 어쩌라는 거요? 법도를 모르는 후배야말로 혼쭐이 나야 마땅한 법이지. 자리가 없거든 알아서 찾으면 될 일 아닌가? 본인이 앞줄에 앉지 못하면 문제가 생길 정도로 엄청난 인물이라도 되는 줄 아나?”
그 말에 중년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초휴, 우리 자리로 지정되어 있던 걸 빼앗아 차지한 건 그쪽이요.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지만, 당신도 적당히 하시오. 진무당 대도독이 됐다고 해서 오만무도하게 굴어도 되는 줄 아나? 조정의 위엄을 남용하지 말란 말이외다.”
초휴는 문득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당신은 북연 조정 사람이오?”
중년인은 멈칫하더니 얼굴에 노기가 확 치솟았다.
“나를 모른단 말인가?”
초휴는 어이가 없었다. 그 어조로 봐선 초휴가 그를 모르는 게 무슨 죄라도 되는 것 같지 않은가.
“당신이 누군지 내가 왜 굳이 알아야 하지?”
담담한 반응에 중년인은 싸늘하게 말했다.
“본관은 북위군(北尉軍) 대장 임천리(任千里)요.”
기본적으로 북연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은 진국오군으로, 항무가 맡은 서릉군도 개중 하나였다. 진국오군 중 하나인 북위군의 대장군이라면 북연군 전체에서 다섯 손안에 드는 지위였다.
그러나 초휴는 정말로 북연군에 대해 잘 몰랐다. 항무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는 북연과 합작하는 관계일 뿐 항륭에게 충성을 바치겠다는 말조차 한 적이 없었다.
진무당이 담당하는 범위도 강호라서 사실 조정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러니 굳이 북연군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지도 않았다. 어차피 그와는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연군 대장군이 여기는 왜 온 것일까?
‘항륭이 자신 말고도 따로 사람을 보낸 건가?’
초휴는 더 생각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임 장군이셨군요. 실례가 많았소. 다만 임 장군, 한 가지는 확실히 해 둡시다. 당신은 북위군 대장군이고 나 역시 진무당 대도독이오. 폐하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계급이 같소. 폐하라면 몰라도, 당신은 나를 나무랄 자격이 없다는 말씀이오.”
임천리의 눈에 싸늘한 빛이 스쳤다. 그가 막 뭐라 말하려는데 백한천이 급히 다가와서 말렸다.
“임 대인, 고정하십시오. 고작 자리 하나 아닙니까. 제가 새로 마련하겠습니다. 노야의 생신인데 분란이 일어나서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임천리는 콧방귀를 뀌더니 못 이기는 척 백한천의 인도를 받아 떠났다.
이에 초휴 역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매경령이 픽 웃었다.
“진무당 대도독 자리를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닌가요? 북연 진국오군의 대장군도 못 알아보다니.”
“대도독인지 뭔지가 된 뒤로 한가할 틈이 없었으니까요. 저런 자들에 관한 자료를 언제 보기라도 했어야죠. 혹시 아시는 바가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요.”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자료를 좀 봤지요. 어쨌건 당신보다는 낫겠네요. 임천리는 북연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본래는 북연 조정에서 키운 사람이 아니라 강호인이었다더군요. 그렇다고 종문이나 세가 출신은 아니고, 낭인의 전승이고요.
그의 사부는 ‘공산곡주(空山谷州)’ 방금오(方金吾)예요. 북연 강호의 이름난 원로이자 아주 관록 있는 사람인데 극북표설성 노야와 교분이 있다고 해요. 그러니 임천리는 조정을 대표해 온 건 아닐 거예요.”
낭인 출신으로 무도종사가 되는 사람은 소수고, 진화련신까지 오르는 사람은 그중에서도 소수였다. 방금오는 그 극히 드문 소수 중 하나였다.
초휴 역시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는 정마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매우 고생하며 자랐다는 소문이었다. 젊었을 적에 북연 무림을 종횡했다고 하니 극북표설성 노야보다는 나이가 아래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삼백 살이 넘었으니 기혈이 쇠퇴할 단계에 접어들었을 터였다.
고령이 된 방금오는 연남 공산곡에서 폐관하고 있었고, ‘공산곡주’라는 호칭은 거기서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폐관하며 은거하고 있을 뿐, 극북표설성 노야처럼 온갖 안간힘을 써가며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았다. 하루 더 살면 사는 거고, 못 살게 되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매경령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임천리는 방금오가 은거에 들어간 뒤 거둔 제자예요. 자질이 좋아 삼십 년도 못 되어 무도종사의 경지에 올랐다더군요. 사부인 방금오가 종문 세가 출신이 아니니까 북연 조정에서도 그를 경계할 이유가 없었죠. 해서 전공을 세운 즉시 고위직에 올랐어요. 반쯤은 강호인이다 보니, 당신이 오기 전까지 강호 세력과 관련된 일은 거의 임천리 혼자 맡아 봤다더군요. 그리고 방금 그 청년은 임천리의 사제 진금정(陳金庭)이에요. 방금오가 몇 년 전에 제자로 받았다는 인물이죠.”
“흠. 그렇다면 임천리는 내가 자기 일을 가로챘다고 생각하겠군요.”
어쩐지 임천리는 초휴에게 큰 적의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지금 듣고 보니 임천리에게는 진작부터 초휴가 눈엣가시 아니었겠는가.
물론 초휴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강호에 그를 싫어하는 자는 발에 차이도록 많았다. 임천리에게만 신경을 쓸 이유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때 백무기가 초휴에게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초 대인, 오랜만입니다.”
백무기의 목소리는 다소 탄식하는 듯한 어조였다. 그가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한 것은 초휴로서도 뜻밖이었다.
따지고 보면 초휴와 백무기도 안지 오래된 사이였다. 처음 만났을 때는 둘 다 선천경이었다. 그러나 이미 용호방마저 벗어난 초휴에 비하면 백무기는 사소루 같은 이와도 견줄 수 없는 처지였다.
지금까지 수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으나 이제 막 오기조원 경지에 다다른 수준이었고, 전투 경험도 적어 실력도 강하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세계에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초휴는 백무기에게 굳이 시비를 걸 마음은 들지 않았다. 물론 백무기가 먼저 그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지만 말이다.
백무기에게서 별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초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정말 오랜만이오.”
백무기가 술잔을 잡더니 초휴를 향해 들어 올렸다.
“초 형, 옛날에는 우리도 다툼이 좀 있었지요. 하지만 그때는 다들 어린 나이에 피가 뜨거워 그랬던 것 아니겠소. 세월이 이만큼 지나니 좀 알겠더군요. 지난날 우리 사이의 은원이 하잘것없는 일이었다는 걸 말이오. 지금 우리 세대 중, 초 형과 소천사는 이미 용호방을 벗어났으니 앞길이 무궁무진하지요. 나로서는 두 분처럼 걸출한 사람들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이 서글프지만, 동시에 기쁜 일이기도 합니다. 한 잔 듭시다!”
백무기는 한 걸음 다가서서 초휴에게 술잔을 한 번 더 올리더니 곧장 몸을 돌려 떠나갔다.
매경령이 괴이쩍다는 듯이 말했다.
“어머나, 백가 애송이가 아주 똑똑하네. 저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초휴가 술을 한 잔 들이켜더니 매경령에게 슬쩍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글자는 쓰여 있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지극히 세밀한 내력으로 뭔가 눌러 쓴 흔적이 보였다. 조금 더 그대로 두면 저절로 사라질 것 같았다.
종이에 쓰인 말은 단 한 줄이었다. 아주 다급하게 쓴 듯했다.
‘초 형, 도와주시오! 천지교정음양대비부가 어디 있는지 알려 줄 테니 나를 살려주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