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87)

687화 드러난 진상

백한천이 일장을 후려갈기자 강대한 한빙의 장력이 모든 것을 얼려 버릴 듯 쏟아졌다. 장력이 스치는 곳마다 공기 중의 수분이 강기의 힘으로 얼어붙더니 거대한 빙룡(氷龍)으로 변해 초휴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무수한 강기의 검이 번뜩이며 초휴를 둘러쌌다. 지면에서도 진법의 문양이 빛나며 그 힘이 초휴 일행을 덮쳤다. 이것은 대문파의 저력이었다. 무도종사 급의 고수가 없을 때는 도구를 써서라도 강적을 막아내는 것이다.

“진법을 막아 주십시오!”

초휴는 곧장 천마무를 휘둘러 빙룡을 깨부숴 버리고 백한천을 향해 뛰쳐나갔다.

방호와 매경령은 초휴 대신 진법의 힘과 끝없이 날아오는 듯한 화살을 막았다. 사실 두 사람은 이런 싸움이 불편했다. 정면으로 달려들어 죽이는 게 낫지, 이렇게 포위당한 채로 힘을 소모하기는 싫었다.

이것 또한 대문파의 저력이었다. 무도종사 급의 고수가 나서지 않더라도 도구를 써서 상대 쪽이 물러나게 만드는 것 말이다.

백한천이 마지막으로 초휴를 만났던 것은 그가 무도종사가 되기 전이었다. 그때 초휴는 섭인룡을 죽여 백한천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초휴의 가장 큰 강점은 도법도 아니고 내공도 아니다. 사람을 경악하게 만드는 폭발력이었다. 그런 폭발력이야말로 상대를 절망하게 만든다. 돌연히 터져 나오는 힘에 당하면 죽거나 중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도 초휴는 섭인룡을 죽일 만한 실력자였다. 그리고 지금은 무도진단으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백한천으로서는 그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가늠할 수 없더라도 나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극북표설성의 수천 년 기반이 위태로워질 판이니까.

음산한 냉기가 뼈에 스미는 듯했다. 초휴의 발아래에서 얼음처럼 푸른 진법이 생기더니 백한천의 인결을 따라 움직였다. 땅에서 거대한 고드름이 장창처럼 솟구치더니 날카로운 창끝이 초휴를 향해 찔러 들어왔다.

그러나 천자망기술이 있는 한 이런 공격은 초휴의 근처에도 닿을 수 없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얼음 장창을 모조리 피해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고드름이 허공에서 터져나가며 뼈를 찌르는 듯한 한기가 몸속에 스며들었다. 진기가 그대로 얼어붙는 듯했다.

초휴는 한동안 그 기이한 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갈수록 움직임이 느려졌다.

이것이 남의 소굴에서 싸울 때의 불편한 점이었다. 상대에게 어떤 비장의 패가 있는지, 무슨 준비를 해 놓았는지를 모른 채 싸우게 되니 말이다. 반면 상대는 항상 이쪽보다 준비가 잘 되어있는 것이다.

기회를 잡은 백한천의 손에서 한기가 크게 일었다. 그가 손을 내뻗었다가 확 잡아당기자 끝없는 한빙강기가 모여들어 엉기며 어두운 푸른빛의 장창으로 변했다. 산천을 떨게 할 강대한 힘이 초휴를 향해 덮쳐들었다.

“모양은 갖췄지만, 기세가 없군. 담긴 뜻은 더 없고 말이지. 엉망진창 아닌가!”

창이나 극처럼 긴 병기를 쓰는 무사는 상대를 힘으로 억누르는 기세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법이다.

여봉선이 그랬다. 그가 방천화극을 휘둘러 내리치는 기세는 마치 산을 깨부수는 듯했다. 낙비홍도 그렇다. 그녀의 창법도 매우 시원시원하고 호쾌했다.

그에 비해 지금 백한천의 창법은 낙비홍보다도 못했다.

한빙장창이 찔러 들어오는 순간 초휴는 칼을 거두고 인결을 맺었다. 삽시간에 타오르는 불광이 그를 둘러쌌다. 극한까지 펼쳐진 환일대법이 온몸의 기혈을 불태우기라도 하듯, 한기를 싹 씻어 몰아내 버렸다.

대일여래의 허상이 초휴의 등 뒤에서 빛을 뿜으며 손을 합장했다. 불인의 위력에 한빙장창은 가루가 되어 부서지고 백한천은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 백한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초휴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연이어 백한천을 공격했다. 일장을 날리자 환일대법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더니, 백가 노야가 폐관하던 건물의 진법이 깨져나가고 문짝마저 부서지고 말았다.

그때쯤 되니 다른 사람들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초휴가 극북표설성 안에서 이토록 날뛰는 것은 그야말로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행패가 아닌가. 그런데도 백가 노야가 아직 나서지 않는 이유가 뭘까? 혹시 어디가 안 좋기라도 한가?

초휴는 아직도 공격할 태세였다. 백한천의 낯은 거의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는 어떻게든 막으려 했으나 초휴의 속도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또 한 번 불인이 폭발하자 백가 노야가 폐관하던 건물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그 순간 드러난 것은 그들이 생각했던 진화련신의 고수가 아니었다. 진법이 수호하고 있는 빼빼 마른 시체, 아직도 진화련신의 위압감을 뿜어내는 시체였다. 줄곧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던 백한풍이 마른 시체 옆에서 진법을 가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 모든 사람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눈치챘다.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말라붙은 시체를 본 순간, 또 지금까지 극북표설성이 보여온 행태를 떠올린 순간 모든 게 분명해졌다.

왜 그동안 극북표설성 노야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노야가 진작에 죽었으니까!

왜 극북표설성 노야는 십 년마다 반드시 생일잔치를 열었는가?

백한천 등은 극북표설성 노야가 죽었다는 사실을 온갖 방법을 써서 감추려 들었다. 뭔가를 감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짜’를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백한천과 백한풍의 낯빛은 새하얗게 질렸다.

들켰다. 수십 년을 애써 감춰 왔던 비밀이 결국 탄로 난 것이다.

사실 극북표설성 노야는 죽은 지 오래였다. 폐관 은거에 들어가서 내공을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가 나는 바람에 고질병이 도져서 절명한 것이다.

백한천은 이 소식이 외부로 새어나가게 할 수가 없었다. 극북표설성을 미워하며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백가 노야가 진화련신경이 된 이후 극북표설성은 미치광이처럼 세력을 넓혔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의 원한을 샀다. 원수가 얼마나 많은지 극북표설성에서 그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백가 노야가 버티고 있다면야 극북표설성은 계속 거리낌 없이 지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노야가 죽었다는 게 알려지면 어떤 상황에 부닥치게 될지, 백한천으로서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해서 그는 온갖 궁리 끝에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극북표설성 비전의 진법을 이용하여 시신에 힘 일부를 남겨두고, 십년마다 생일잔치를 열었다.

잔치가 열리면, 진법을 통해 시신에 기운을 불어넣어 짧게나마 축하객들에게 모습을 보이게 했고, 노야의 말은 백한풍이 숨어서 흉내 냈다. 모든 게 백가 노야가 아직 살아 있다는 허상을 만들어내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백가의 그 진법은 원래 시신을 보존하기 위한 게 아니라 산 사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중상을 입은 무사가 빈사 상태에 빠질 경우, 치료할 방법을 찾아낼 때까지 일단 목숨을 유지케 하는 용도였다.

그리고 진법을 유지하려면 보통 사람의 힘은 소용이 없었다. 그 무사와 가까운 혈연관계에 해당하는, 젊고 활력이 넘치는 사람의 신선한 피가 필요했다.

해서 백가는 노야의 생일잔치를 치를 때마다 출중한 재능의 젊은 제자를 불러, 그의 피로 진법을 가동했다.

진번에 한 번 피를 흘려 넣으면 십년은 유지할 수 있었다. 피를 바치는 무사가 죽지는 않았지만, 원기가 크게 상해 평생 폐인으로 살아가야 했다. 게다가 그들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목격자가 되는 셈이기도 했다.

물론 그들 역시 극북표설성 제자이기는 했으나, 백한천은 잘 알고 있었다. 극북표설성 제자라고 해서 하나같이 가문을 위해 자신의 앞날을 희생하려 하지는 않는 법이라는 사실을.

백한천은 그들이 이 비밀을 외부에 누설하지 못하도록 가둬 둘 수밖에 없었다. 외부에는 노야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 장기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고 둘러대었다. 폐관이 끝나면 강호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했다.

한두 번은 그런 핑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자 극북표설성 내에서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나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생겼다. 백무기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처음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신을 해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다가 단서를 발견하게 되어 조사를 시작했고 결국 진상을 알게 되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정말 그를 희생시킬 생각이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자기 아들을 서슴없이 폐인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이 순간 백무기는 한편에 존재감 없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나 눈에는 서글픈 빛이 역력했다.

일전에 극북표설성이 초휴와 연합해 취의장에 맞섰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초휴가 섭동류를 죽이자 섭인룡은 대로하여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았던가.

그때 백무기는 백한천에게 이렇게 묻고 싶었다.

‘제가 남의 손에 죽으면 아버지도 섭인룡처럼 목숨 걸고 복수하려 덤벼드실 건지요?’

그러나 감정만 상할까 봐 결국은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말은 아예 물어볼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지금의 현실이 백무기에게 모든 것을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백한천에게는 극북표설성이 아들인 백무기보다 훨씬 중요했다. 그래서 그는 극북표설성의 이익을 위해서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한 것이다. 게다가 아들이 백무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백무기가 죽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호랑이가 아무리 사납고 독해도 제 새끼는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손으로 이만큼 키워 놓은 아들한테 희생 좀 하라는데, 그게 큰 문제겠는가?

초휴가 조소 어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쯧쯧, 백 성주. 이렇게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인 줄 미처 몰랐소이다. 시체 하나를 가지고 그 오랜 세월 동안 극북 무림에 위세를 떨어왔다니. 거 참. 재미있군.”

“초휴, 이 죽일 놈아!”

백한천의 얼굴이 확 일그러지더니 미친 듯이 초휴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동시에 백한풍 역시 격노한 얼굴로 초휴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 형제는 오랜 세월 동안 이 비밀을 지켜 왔다. 백가에 다시 진화련신의 고수가 나올 때까지만 버티면 백가 노야는 편안히 세상을 떠난 것으로 온 강호에 발표할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초휴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되고 말았다. 비밀은 탄로 났고, 내일이면 북연 무림 전체가 이 사건을 알게 될 터였다.

극북표설성은 수많은 세력의 화살받이가 될 판이었다. 극북표설성과 척을 진 세력들은 어떻게 복수할지 너도, 나도 머리를 굴리기에 바쁠 것이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만 해도 불만을 품을 게 뻔했다. 그간 극북표설성에 바친 선물이 얼마인데, 이미 죽은 지 오래인 자의 몫이었다고? 수십 년 동안 이미 죽은 사람의 생일을 축하하고 장수를 기원해 왔다고?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이렇게 지독한 농락을 당하고 어찌 참을 수가 있단 말인가.

초휴가 뒤로 물러서는 듯하더니 원신의 힘을 응집시켜 연속으로 멸혼전을 내쏘았다. 그 강대한 정신력에 다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수 발의 화살이 발사되자 백한천과 백한풍은 일순 발이 묶였다. 그러자 초휴는 매경령과 방호에게 소리치며 내달렸다.

“갑시다!”

극북표설성의 비밀은 모두 탄로 났다. 굳이 여기서 백한천 무리와 죽도록 싸울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어쨌거나 극북표설성은 수천 년을 내려온 세력이다. 초휴 일행 셋이서 극북표설성을 멸망시키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극북표설성 성내에는 아직 비장의 패가 더 있을 터였다.

그러나 앞으로 극북표설성은 골치깨나 썩이게 될 게 분명했다. 그간 원한을 맺었던 적과 오늘 미움을 산 적으로부터 무수히 시달리게 될 테니까.

그런 자들이 개별적으로 덤빈다면 극북표설성의 상대가 되기에는 어림없었다. 그러나 뭉쳐서 공격하면 극북표설성으로서도 쉬울 리가 없었다.

방호와 매경령도 초휴와 함께 그 자리를 벗어났다.

평범한 극북표설성 제자들이 도구의 힘을 빌려 그들을 한동안 붙잡아 두는 것은 가능했다. 그러나 정말 도주하려고 작정했을 때는 어쩔 수 없었다.

그곳을 벗어날 때 초휴는 백무기를 곁눈질하며 손짓해 보였다. 그는 백무기가 무슨 뜻인지 알아봤으리라 믿었다. 감히 초휴에게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