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89)
689화 거래
연경성에 돌아오자 항륭이 초휴에게 사람을 보내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초휴는 길게 설명하지 않고 경과만 보고했다. 그는 북지에 곧장 군을 주둔시키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백무기 건은 언급하지 않았다.
보고를 들은 항륭은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초휴가 자신의 명령대로 임무를 완수했다고 해야 할까?
완수했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항륭은 초휴더러 극북표설성에 가서 상의해 보라고 했을 뿐이다. 극북표설성이 조정의 요구를 수락해 무력을 쓰지 않고 북연군이 주둔하는 것이 최상의 결과였다.
극북표설성은 수락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지금 그 일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다. 수락하건 안 하건 아무 상관이 없게 된 것이다. 조정이 그냥 북지에 군을 주둔시켜도 극북표설성은 참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번 일은 잘 마무리되었다고 해도 좋았다.
항륭은 일을 깔끔히 하는 사람이었다. 과정이 어쨌건 결과가 제대로 나오는 쪽을 선호했다. 이리저리 생각해 본 끝에, 초휴가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해 냈으니 상을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진무당에 돌아온 초휴는 궁리하다가 일단 임천리를 찾아가 떠보기로 했다. 원래 무력을 휘두르는 것은 예를 먼저 갖춘 뒤에 취하는 행동이 아니겠는가. 초휴는 예를 아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임천리는 북연 진국오군의 대장군이기도 했고, 처신도 그 정도면 이성적인 편이었다. 아마 용건과 무관한 일에 감정적으로 나오며 화부터 내지는 않을 터였다.
해서 초휴는 곧장 항무를 찾아갔다. 그를 징검다리 삼아서 임천리에게 밥을 살 생각이었다.
진국오군 대장군 중 가장 젊은 항무였으나 실력은 대단했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북연 황족이라는 신분도 있었다. 해서 항무가 말을 꺼내자 임천리는 흔쾌히 응낙했다.
연경은 북연의 수도인 만큼 내로라할 주점도 적지 않았다. 초휴는 이런 곳을 잘 몰랐으나 항무는 훤히 꿰고 있었다. 식도락은 몇 안 되는 그의 취미 중 하나였으니까.
해서 그들은 비봉루(飛鳳樓)의 ‘천(天)’ 자 일 번 방에 모였다. 항무가 가운데 앉고 초휴와 임천리가 각각 양편에 앉았다. 분위기는 미묘하게 어색했다.
임천리는 성난 눈초리였으나 초휴가 꼬리를 내리고 사과할 턱이 없었다. 그러니 양쪽 모두 서로를 보는 눈이 원수를 만난 듯했다.
항무가 껄껄 웃었다.
“아니, 두 분. 밥은 드셔야 할 것 아니오. 이 집은 튀긴 향초 맛이 일품이외다. 주방장이 내게 귀띔을 받고 연구해서 만들어 낸 것인데 순식간에 온 연경성을 휩쓸었다오.”
초휴는 접시에 놓인 그 거무죽죽한 것을 힐끗 보았다. 보기만 해도 식욕이 뚝 떨어지는 듯했다.
비봉루 주방장이 만들 줄 아는 게 이런 것뿐이라면 진작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항무의 귀띔이 아니라 협박을 받아 만들었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초휴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임 장군, 극북표설성에서 우리 사이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건 사실이요. 하지만 은원이 꼭 이익에 영향을 미치란 법은 없소. 나는 임 장군과 거래를 하고 싶어 만나자고 청한 거요. 피차에 이익이 된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소?”
임천리는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투로 물었다.
“거래? 무슨 거래 말이오?”
초휴의 성격상 쉽게 꼬리를 내릴 리 없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초휴가 그에게 거래를 제안한 것은 예상 밖이었다.
초휴는 헛기침을 했다.
“임 장군 일맥이 우연히 천지교정음양대비부 중 하나를 발견했다더군요. 아시겠지만 나도 대비부 중 몇 가지를 갖고 있는데, 완전판을 다 모으고 싶어서 말이오. 해서 그쪽의 대비부를 내가 가지고 있는 동급의 무공과 교환하고 싶소. 거기다가 진무당에서 나오는 영약 같은 것도 얹어 드리지요.”
초휴의 말을 들은 임천리는 괴이쩍은 표정을 지었다.
대비부의 이름은 수많은 강호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비부 중 하나만으로는 강력하기는 해도 구급을 넘지 못했다. 해서 대비부를 전부 모으려는 무사 역시 적지 않았다. 하지만 초휴도 그런 야심을 품고 있었다는 건 의외가 아닌가.
그러나 항무도 임천리도 초휴가 천지교정음양대비부를 전부 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그 오랜 세월 동안 그걸 다 모은 자는 없었으니까. 강호에 떠도는 말로는 제일 많이 모은 사람도 여섯 종류를 모았을 뿐, 마지막 하나는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임천리는 초휴가 가진 천지교정음양대비부가 적지는 않아도, 완전히 모으려면 한참 모자란 수준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초휴가 자신도 모르게 위장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천탁지돈대혼원공과 천이지전대이혈법은 모두 내공에 속했다. 남들 앞에서 펼친다 한들 알아볼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다. 그가 대비부 중 마지막 한 종류만 남겨놓고 죄다 모았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극북표설성에서 충돌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진심으로 싸우지는 않았다. 그러니 화해를 못 할 것까진 없었다. 임천리는 즉각 말했다.
“동급의 무공으로 교환하고 싶다는 말이오? 다른 것은 필요 없소. 밀종 비전의 인법인 쾌만구자결, 그리고 담연대사에게 전승받은 신공 환일대법과 무색정대수인! 그 세 가지를 내준다면 교환하겠소.”
방금오 일맥이 순수하게 불문 무공만 익힌 것은 아니지만, 근원은 불문 무공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다. 북연 무림에서 방금오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이들 역시 불문이었다.
초휴가 도불마 삼맥의 무공을 모두 익혔다는 것은 강호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에게 우리 불문의 무공이니까 내놓으라고 을러대는 승려는 없었다. 중들이 도리를 알아서가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천하의 불종 중에는 선종이 으뜸이었다. 그리고 선종의 승려들은 쾌만구자결 같은 밀종 무공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환일대법과 무색정대수인의 경우, 선종의 무공이기는 했으나 담연대사의 전승이었다. 성승 담연대사의 명성이 얼마나 높은가. 그가 전인을 잘못 골라 초휴 같은 대마두에게 전승을 넘겨주었다고는 하나, 감히 문파의 이름을 내걸고 그것을 빼앗아 갈 사람은 없었다.
초휴가 구사하는 불문 무공의 강대한 위력은 무수한 실전을 통해 증명되었다. 그 세 가지 무공을 얻어낸다면 방금오 일맥의 실력은 크게 향상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초휴는 냉소했다.
“임 장군, 욕심이 너무 큰 거 아니오? 그 세 가지 무공이 어느 정도 급인지는 본인도 잘 아시지 않소? 나는 당신이 가진 대비부와 급이 같은 무공으로 교환하겠다고 했소. 혹시 완전판 대비부라도 쥐고 있소이까?”
임천리가 담담히 말했다.
“초 대인의 말씀은 틀렸소이다. 대비부는 하나라도 빠질 수 없는 것이오. 여섯 개나 다섯 개나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지. 해서 교환하고 싶다면 완전판 대비부의 값어치를 매기는 것이 마땅하지. 그렇지 않소?”
초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성심성의껏 제안했는데, 인제 보니 임 장군은 영 성의가 없으시구려.”
임천리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초 대인, 사실대로 말씀드리지요. 대비부는 내가 아니라 사부님이 갖고 계시오. 그리고 진금정은 사부님의 관문제자이고 말이오. 당신이 저번에 남들 보는 앞에서 진금정을 혼쭐낸 일은 사실 별거 아니오. 당신이 진금정과 배분도 같고 나이도 별로 안 많기는 하지만, 실력으로 따지면 그의 선배 대접을 받고도 남으니까. 그럴 수 있는 일이니 나도 굳이 더 따지지 않았던 거외다.”
“문제는 사부님께서 당신 때문에 매우 불쾌해하신다는 거요. 아시겠지만 우리 노인네도 나이가 많으셔서, 힘이니 권력이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대신 체면은 누구보다도 더 따지시지. 당신이 사제를 혼쭐낸 것은 사부님의 체면을 땅에 내팽개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오.”
“만일 당신이 공산곡에 찾아가 남들이 보는 앞에서 사부님께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면 어떻겠소? 그리고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고 체면을 살려 드린다면 대비부 하나쯤이야 다른 무공과 바꿀 것도 없이 그냥 주실 수도 있을 거요.”
“반대로 초 대인이 우리 사부님의 체면을 세워 드릴 생각이 없다면. 내가 불문 무공이라도 몇 가지 가져가서 말씀드려보는 도리밖에 더 있겠소? 그렇게 하겠다면 좋은 말로 권하든 거짓말로 속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비부 무공을 가져다드리겠소이다.”
그렇게 말한 임천리는 느긋하게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자신은 아쉬울 게 전혀 없다는 태도였다.
사실 그가 고의로 초휴를 골탕 먹이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로서는 오히려 초휴가 후자를 선택하기를 바랐다. 그러면 자신도 극강의 불문 무공을 손에 넣게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방금오가 극북표설성 일 때문에 엄청나게 분노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북연 무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극북표설성 노야와 배분이 같을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낭인 출신 무도종사로 마도와도 관련이 없었으니, 북연 무림은 그를 매우 존중했다. 대광명사 상좌쯤 되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육대 무원의 상좌가 그렇다는 것이지, 삼대 선당도 그럴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임천리의 말대로 한참 늙은 방금오는 극북표설성 노야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권력, 이익, 그리고 힘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자신의 명성과 체면만 소중하게 여겼다. 그런데 초휴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진금정에게 모욕을 준 것이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일이겠으나, 방금오는 정말 분노했다. 하지만 그 정도 일을 가지고 초휴를 찾아가 성질을 부릴 정도로 노망이 난 것은 아니었다. 해서 그냥 흐지부지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초휴가 그를 찾아간다면 어떨까? 방금오가 좋은 낯으로 환영할 리가 없지 않은가.
초휴의 얼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이 떠올랐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서늘한 한기가 돌았다.
“그렇다면, 거래는 결렬이라는 말씀이구려?”
사람의 사고방식은 자신의 지위에 따라 변하는 법이다. 지금의 초휴가 그랬다.
옛날 그가 약하고 보잘것없던 시절이라면 대비부 같은 무공을 얻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는 일쯤이야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무릎 한 번 꿇는 대가로 절세신공을 얻는다면 무수한 강호인들이 기꺼이 무릎을 꿇지 않겠는가.
남자의 절은 황금과 같다는 말이 있다. 강호에 제 가슴을 탕탕 치며 그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자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무릎을 꿇을 줄도 알아야 한다. 목숨이나 창창한 미래는 황금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 초휴는 예전의 초휴가 아니었다.
그는 장승정과 함께 각각 정도와 마도를 대표하는 청년 무사로 꼽히고 있었다. 이미 재능 있는 동년배 청년들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다.
지금껏 그의 손에 죽은 무도종사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좀 과장되게 말한다면 그는 손짓 하나로 한 지역의 걸물을 쥐락펴락할 수도 있었다.
‘무릎 한 번 꿇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초휴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실내의 분위기가 점점 더 긴장되어가자 고개를 처박고 향초만 열심히 먹던 항무가 얼굴을 들었다.
“임 장군, 서로 한 발씩만 양보합시다. 너무 각박하게 굴지 마시고 내 체면도 좀 세워 주시오.”
임천리가 일어서더니 담담히 말했다.
“후야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았으면 오늘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조건은 나로서도 바꿀 수가 없소. 사부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신 상태라, 절대적으로 이득이 되는 조건이 아니면 내가 말을 붙여 볼 여지 자체가 없단 말이오. 초 대인이 기개가 굳건하여 꼬리 내릴 생각이 없고, 대가를 치를 생각도 없다면, 나로서도 방법이 없소이다.”
그렇게 말한 임천리는 곧장 몸을 돌려 떠났다. 부탁하는 쪽은 초휴였으니 임천리로서는 거리낄 게 없다는 태도였다.
항무가 어깨를 으쓱했다.
“봤지요? 나더러 뭐라 하지 마시오. 내가 나서도 소용이 없는 것을 어쩌겠소.”
같은 진국오군 대장군이었으나 항무와 다른 대장군들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북연 황족이니만큼 다른 이들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능력이 닿는 한 초휴를 도우려 했으나, 애석하게도 이번 일은 그가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