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9)
섭동류의 추종자들이, 초휴를 혼쭐 내주어 우리 소장주의 분함을 풀어줘야 한다고 너도나도 목에 핏대를 세우자 섭동류가 두 손을 휘저으며 진화에 나섰다.
“그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니 다들 이러실 것까지야 없소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여러분이 알아주면 그걸로 족하오. 진정들 하시오.”
그러나 사람들은 눈짓을 주고받은 끝에 암묵적 합의를 보았다. 소장주가 말리기는 하지만, 그럴수록 소장주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초휴를 혼내줄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의 그런 의중을 눈치챈 섭동류가 재차 말리고 나섰지만, 정작 그의 눈빛은 남몰래 차갑게 번뜩이고 있었다.
사람을 꼭 칼로만 죽이라는 법은 없다. 때에 따라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목적을 이룰 수도 있었다. 그의 부친의 별호가 왜 ‘복수건곤(覆手乾坤)’인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에게 오늘날의 큰 명성을 안겨다 준 절기의 명칭이 ‘건곤능운수’인 탓도 있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손을 한 번 뒤집어 구름을 만들고, 또 한 번 뒤집어 비를 내리는 것에 버금갈 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재간이 절묘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사람의 힘에만 기대어 불과 삼십 년 만에 취의장을 인화육방 가운데 하나로 키워냄으로써 오늘날 명실상부한 강호의 주요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부친의 영향을 받고 자란 섭동류도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저급한 하수로 치부해왔다. 용호풍운지존방에서 상위 십 위도 아닌 이십 위까지만 봐도 내강경의 고수들이 상당수 포진되어있다. 그런 쟁쟁한 경쟁 상대들을 제치고 그가 육 위에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비단 실력뿐만 아니라, 그의 사람 마음을 다루는 수완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한편 초휴 쪽에서는 여봉선이 한창 얘기 중이었다.
“그 취의장 소장주를 만만히 봐서는 안 될 것 같아. 이번에 자네가 그를 열 받게 해서, 눈 밖에 났을까 걱정이 되는군. 좀 전에 그냥 눈 딱 감고 취의장에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그러자 초휴가 담담히 대답했다.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야. 여양진에서 벌어졌던 싸움을 목격한 이들이 적지 않아. 장백도가 ‘소장주’라고 외쳤을 때 그들도 모두 들었을 거란 말이지. 내가 당장은 시치미 뚝 떼고 섭동류 밑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그가 여양진 쪽에 알아보기만 하면 내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 금세 들통나고 말걸. 생각해 봐, 장백도가 소장주라고 칭할 만한 인물이 북연 땅에 또 누가 있겠어?”
“거기 사람들도 다 알아챈 사실을 정작 난 몰랐다고 우겨본들 그가 믿을 리 없지. 그러니 불가능한 일이란 거야. 그렇지만 난 상관없어. 눈 밖에 나면 좀 어때? 매인 곳이 없어 자유로운 건 우리 낭인 무사들만의 특권이지. 처음부터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뭐가 두렵겠나? 강호상의 그 어떤 문파도 영원토록 천하무적이거나 전지전능할 순 없지. 그건 천 년 전 강호를 삼켰던 곤륜마교도 예외는 아니었어.”
이에 여봉선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자네 말이 맞아. 듣자니 수천 년 전 삼청도문 중 하나인 용호산 천사부의 장씨 가문 직계혈통이 서초 쪽의 마도 신예, ‘엽심인마(獵心人魔)’ 동개태(童開泰)의 손에 죽었는데, 놈이 어찌나 잔인무도하게 시신을 토막 냈는지 심장까지 파갔다더군. 눈이 뒤집힌 용호산에서 고수들을 대거 파견해 그자를 뒤쫓았지만, 결국 놈은 서초를 빠져나갔고 지금까지 행방도 묘연하다지. 그 신출귀몰함 덕분에 그자는 용호방 이십삼 위에 올랐고 말이야.”
초휴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가 넓다지만 세상은 그보다 훨씬 더 넓다. 설령 천하제일 정보조직인 풍만루나 삼대 황조(동제, 서초, 북연을 일컬음)일지라도 모든 개개인의 동향을 정확히 다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차하면 깊은 산에 들어가 숨어 있으면서 그 사건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지길 기다렸다가 다시 나오면 될 일이었다. 지금 강호에는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온갖 대형 사건들이 터져대고 있으니, 계속해서 한 사건만 죽어라 파고 있을 만큼 한가한 바보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건 위군 쪽 상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위군의 종문들이 처음에는 창란검종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자신들의 본거지를 중심으로 초휴의 동정을 주의 깊게 살폈으나, 수개월이 지나도록 아무 소득이 없자 어느덧 그 일은 흐지부지되어버렸다. 정작 수배령을 내렸던 창란검종마저 그 일을 잊어가는 마당에, 도대체 누가 아직까지 그 일을 신경 쓰고 있을까. 물론 심백만은 예외겠지만 말이다.
그 무렵 여양산에는 이미 많은 무사들이 운집해있었다. 개중 떡하니 한가운데 자리를 꿰차고 앉은 건 단연 섭동류 및 그에게 빌붙은 대형 문파 제자들이었다. 이윽고 밤이 무르익자 한줄기 몽롱한 녹색 빛이 땅 밑에서 올라오는가 싶더니, 땅이 마치 갈라지기라도 하는 듯 흔들리는 느낌이 뒤따랐다. 그러자 현장에 있던 하급 무사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사도 똑같은 사람이다. 특히 쉬체경에 지나지 않는 무사들은 천지의 힘 앞에서 일반인들과 별 차이 없이 나약했다.
다행히 그 흔들림은 오래 계속되지 않고 잦아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여양산 동쪽 지대의 지표면에서 갈라진 틈이 발견되었다. 환한 낮인데도 그 틈으로 짙은 녹색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땅속에 보물이 묻혀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변에 있던 주요 세력가 및 문파 사람들이 자신의 제자들을 앞세워 손바닥만 한 크기로 벌어진 틈을 중심으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틈이 얼마나 깊었던지 파도 파도 끝이 없는지라,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 대신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그 균열에 가까운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보물의 위치는 확인된 셈이니, 미리 좋은 자리를 확보해놓는 건 매우 중요했다.
물론 현장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실력으로 보나 지위로 보나 제일 좋은 자리는 섭동류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주위를 섭동류와 가까운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나머지 잔챙이들은 그 외곽에서나마 나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제야 초휴가 여봉선에게 말했다.
“여형, 이제 가봅시다. 우리도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지.”
이윽고 초휴와 여봉선도 균열이 있는 곳에 당도했다. 그곳은 이미 쉬체경, 응혈경, 선천경, 할 것 없이 수많은 무사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여양산의 기이한 조짐이 요 며칠 사이 인근 도시들에 널리 알려지면서, 몰려든 선천경 무사들만도 부지기수였다. 초휴와 여봉선이 온 것을 보자, 뜻밖에도 평범한 선천경 무사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두 사람에게 길을 터주었다.
다른 지방에서야 초휴를 몰라볼 수도 있지만, 이곳 여양진에서는 그가 누구인지 몰라보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일전에 초휴가 장백도 일당을 참혹하게 해치우는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본 사람만도 수십 명이었고, 당시 그가 어떻게 상대를 해치웠는지 자세한 내용이 입소문을 타고 사방으로 퍼진 것이다.
여양산 보물을 구경하러 뒤늦게 나타난 타지 출신들은 이곳에 어떤 실력자들이 와 있는지부터 탐문하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초휴의 이름이 오르내린 건 물론이요, 급기야 요주의 위험인물 중 하나로 지목되기까지 했다. 나름 임중군에서 행세하던 유원해 일당이 자그마치 사 대 일로 초휴에게 덤벼들었는데도 역으로 몰살당했다는 사실은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건 비단 초휴뿐만 아니라 여봉선도 마찬가지였다. 여봉선이 간단한 초식 한 방으로 선천경 무사의 병기를 두 동강 낸 사실을 본 사람들은 그가 몇 초식 만에 동급의 무사를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닐 것이리라 생각했다. 이렇게 막강한 두 사람이 손을 잡으면 내강경 고수도 위협을 느낄 만한 실력이 나올 것이다.
그러니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감히 그들과 자리다툼을 벌일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지금은 아직 보물이 나타나기도 전이었다. 벌써부터 부담스러운 상대에 맞서느라 힘을 뺄 필요가 없다는 건 어린애라도 알 만한 이치였다.
섭동류 곁에 있던 악노천은 두 사람이 균열에 접근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몇몇 수하에게 눈짓으로 뭔가를 지시했다. 그러자 수하들이 빠르게 초휴와 여봉선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악노천이 생각하기에 뒷배도 없는 낭인 무사 둘을 손봐주는 것으로 취의장 소장주의 환심을 살 수만 있다면, 그건 충분히 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악노천이 선수 치는 것을 본 다른 이들은 그저 지켜만 볼 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들도 초휴를 혼내줘서 소장주의 환심을 살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애석하게도 자신들이 데려온 패거리가 너무 적었다. 초휴는 자그마치 일 대 사의 대결에서 협공해온 선천경을 넷이나 죽인 인물이다. 따라서 자신들이 데려온 서너 명의 선천경들로 그를 건드려봤자 득보다 실이 클 소지가 많다고 판단했다.
악노천의 가문은 북릉군에서 가업을 크게 일군 세력가인 데다, 그의 조부는 외강경의 고수였다. 너무 고령의 나이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취삼화의 경지에 이르렀을지도 모르는 거물급 인사였다. 악씨 가문에는 내강경과 선천경의 고수들도 넘쳐나서, 적장자인 악노천이 외출할 때마다 그런 고수들이 일여덟은 따라붙곤 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의 곁에 많은 고수들이 있었고, 악노천의 눈짓 한 번에 이들 모두가 초휴와 여봉선을 압박하러 몰려갔다.
“멈춰라!”
악노천의 무사들이 앞을 가로막자, 초휴가 눈을 날카롭게 뜨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인가? 여양산 전체가 당신들 안방도 아니고 아직 보물이 나타나기도 전이잖아! 벌써부터 이렇게 길을 막고 위세를 부리다니. 이따가 보물이 나타나면 우리 같이 소속이 없는 무사들에게는 콩고물 하나 안 남겨주고 당신들만 독식하겠다는 심보가 아닌가 말이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장에 있던 낭인 무사들 대부분이 그들을 노려보았다. 하나같이 곱지 않은 눈빛이었다. 막강한 세력가의 무사들이 낭인 무사들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거대한 산과 같은 그들 앞에서 낭인 무사들은 그저 흩어진 모래알이나 다름없는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이건 누구나 알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지난날 있었던 보물 쟁탈전에서도 좋은 것들은 그들에게 양보했고, 자기들은 그저 거기서 떨어진 콩고물이나 주워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콩고물조차 남겨주지 않겠다니, 보물이 나타나기도 전에 산을 봉해버리겠다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이냐.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처사였다.
계급의 차이로 인한 갈등은 어디에나 존재해왔다. 평소에도 가뜩이나 세력가 출신들에게 불만을 느껴오던 차에, 때마침 초휴가 꺼낸 이 말은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이처럼 초휴가 말 한마디로 그들의 분노를 부추기는 바람에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자, 악씨 가문 무사들은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이 참았다.
‘제기랄, 우리는 그저 멈추라고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이 자식이 쓸데없는 말로 낭인 무사들을 선동하고 있지 않은가.’
끝
ⓒ 봉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