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90)
690화 초휴의 사냥개
항무는 초휴와 사이가 좋은 편이었으나, 능력이 되는 한도에서 초휴를 도와주겠다는 것뿐이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초휴의 무게감이건 둘의 교분이건, 항무가 발 벗고 나서서 전력을 다해줄 정도는 아니었다.
“후야를 번거롭게 했군요.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초휴가 침중하게 말하자, 항무는 돌연 고개를 쑥 내밀었다.
“혹시 방금오 일맥을 건드릴 생각 아니오? 그렇다면 일단 침착하게 생각해 보시구려. 일단 방금오의 실력은 그렇다 칩시다. 지금 그자의 상황은 욕심 없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 그대로요. 금방 땅속에 들어갈 늙은이가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있단 말이지. 해서 어느 쪽에서도 그와 척을 지려고 하지 않는 형편이오. 폐하조차도 아무 배경 없고 조정과 적대하지 않는 강호 낭인을 건드리려 하지는 않소. 괜히 몰아붙였다가 반기를 들면 골치 아프니까.”
“그리고 내게 좋은 생각이 있소. 기다리는 거요. 방금오가 늙어 죽을 때까지! 그 늙은이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이번 생에 진화련신경을 넘어서기는 불가능하지. 그러니 이렇게 젊은 당신이 그자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니겠소.”
“방금오가 죽으면 임천리는 당신 적수가 못 되니 신경 쓸 것도 없고, 진금정은 욕심만 많을 뿐 재주는 별 것 없소. 타고난 자질은 잘 봐 줘야 그럭저럭 평범한 수준밖에 못되오. 용호방 수준에 비해도 한참 떨어진단 말이지. 그러니 그때가 되면 무슨 방법을 쓰든 대비부를 빼앗아 오는 건 문제도 아니지. 지금 당장 위험을 무릅쓰고 성급히 나설 필요가 없단 말이오.”
객관적으로 보면 항무의 생각은 괜찮은 방법이긴 했다.
초휴의 장점은 무엇인가? 젊다는 것 아니겠는가. 초휴가 정말 버틸 작정이라면 그의 원수들이 다 늙어 죽을 때까지 버티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그러나 초휴는 길고 긴 만 년을 지루하게 버티느니 촌음을 다투며 살기를 원했다. 시간의 힘에 의지해 적을 죽이는 것은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며 웃어 보였다.
“강호에 발을 들인 이상 둘 중 하나지요. 빼앗거나, 싸우거나. 후야께서 말씀하신 방식은 저와 맞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한 초휴는 자리를 떠났다.
항무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어쨌거나 할 말은 다 했으니, 자신은 구경이나 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상에 남은 요리를 훑어보던 항무는 크게 외쳤다.
“튀긴 향초 한 접시 더 내오게!”
* * *
진무당으로 돌아온 초휴는 즉각 수하를 시켜 백무기에게 몰래 연락을 취했다.
은마권 수하 중에는 무공만이 아니라 각종 잡기에 능한 사람도 있었다. 백한천과 백한풍의 이목을 피해 연락하는 것쯤이야 간단한 일이었다.
며칠 뒤, 백무기는 연경성 비봉루의 객실에서 초휴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는 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초휴에게 약점을 잡혔으니 안 왔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일이 아닌가.
문을 열고 들어선 초휴는 괴이쩍은 얼굴로 물었다.
“아니, 변장도 안 하고 그냥 온 거요?”
백무기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변장이고 뭐고, 지금 극북표설성은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닙니다. 찾아와서 시비를 거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압니까? 우리 같은 후배들에게 참견할 사람도 없습니다. 누가 밖에 나가도, 잠시 피해 있으려고 그러나 보다 여기는 거지요.”
초휴는 백무기 앞에 마주 앉았다.
“그렇군. 긴말 늘어놓지 않겠소. 당신이 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불렀소.”
“그게 뭡니까?”
백무기는 저항을 완전히 포기한 상태였다. 초휴를 따르기로 한 이상 삐딱하게 나가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더 끔찍하게 죽게 될 뿐일 텐데 말이다.
초휴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대신 이렇게 물었다.
“진금정과 꽤 친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좀 이야기해 보시오. 진금정은 어떤 자요?”
백무기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일단 무도의 자질을 보면, 아주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 나쁘지도 않지요. 적어도 낭인 무사 중에서는 그만한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방금오의 제자가 되지 못했겠죠.”
세가의 전승은 혈통을 따른다. 윗대의 실력이 강하면 그들에게서 태어나는 자손도 대부분 자질이 크게 떨어질 일은 없는 것이다.
종문의 전승은 명성에 의지한다. 명성이 대단하고 장악한 지역이 넓을수록 제 발로 찾아와 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그러니 우수한 제자를 뽑을 수 있는 선택의 여지도 넓어지는 것이다.
방금오 같은 낭인 무사의 경우, 개인의 실력이야 강하지만 제자를 키우는 데에는 작은 종문보다도 불편함이 컸다. 수련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 진금정 정도 자질의 제자를 거둔 것만도 썩 괜찮은 성과인 셈이었다.
백무기가 이어 말했다.
“천부적 자질을 빼면 눈에 띄는 장점은 없습니다. 사람됨도 딱히 좋게 볼 구석이 없고요. 잔꾀는 좀 부릴 줄 알지만, 막상 행동에 나설 때는 어리석고 단순무식합니다. 참을 줄 아는 것 같지만 기실은 감정에 쉽게 좌우되기도 하고요. 겉으로는 겸손해 보이나 사실은 오만불손하죠. 자신이 방금오의 제자란 이유만으로 아주 비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남에게 호감을 줄 만한 성격이 아닙니다. 평소에 내가 그와 어울려 놀던 것도 그 사부 때문에 밉보이기 싫어 그랬던 건데, 오히려 진금정 쪽에서 꼭 달라붙더군요.”
초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일이 쉬울 듯했다. 그는 백무기에게 낮은 소리로 몇 마디 지시한 뒤 그곳을 떠났다.
* * *
며칠 뒤, 백무기는 진금정을 비롯한 북연의 청년 무사 몇몇과 함께 연경성 비봉루에 모여 술판을 벌였다.
백무기가 사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모인 청년 중 백무기의 실력이 가장 강했고 뒷배도 가장 대단했다. 그러니 그가 밥을 사겠다는데 거절할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온 사람 대부분에게는 백무기를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백 형, 다 지나간 일이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시구려.”
극북표설성 사건은 강호에 널리 퍼져 이제 진상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앞서 사라졌던 극북표설성 제자들이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두가 알았다. 막판에 초휴가 소란을 피워서 진상을 밝혀내지 않았다면, 백무기도 폐인이 되지 않았겠는가.
그 자리의 청년 중 몇몇은 대문파 출신이었다. 가문과 종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해서 다들 백무기의 불행을 고소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위로해 주려 했다.
백무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의 호의에 감사드리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니 더는 이야기하지 맙시다.”
그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화제가 돌고 돌다 어느 순간 초휴와 조정 이야기에 다다랐다. 그러자 진금정의 낯빛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절반은 술에 취해서였고 절반은 화가 치밀어서였다.
“지금 강호의 청년 준걸을 논하자면 당연히 용호산의 장승정과 은마권의 초휴가 첫째로 꼽히지 않겠소. 어떤 이들은 그 둘을 같은 반열에 올리기도 합디다. 정도의 장승정, 마도의 초휴. 정마 양맥이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고 말이오. 쯧, 우리 정도 무림에 소천사가 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마도보다 뒤처질 뻔하지 않았나.”
사람들이 초휴를 추켜올리자 진금정의 얼굴이 더욱 달아오르더니 은은한 노기가 드러났다.
그는 먼젓번 극북표설성에서 초휴에게 당한 치욕을 생각하면 분노와 수치심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공산곡에 돌아간 후 사부에게 복수해주십사 요청했으나, 되레 실컷 혼쭐만 났다.
애초에 방금오가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렇게 사소한 일에 직접 나설 턱이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 울분은 고스란히 남아 진금정의 가슴을 틀어막고 있었다.
사람들의 말을 듣던 진금정은 더 참지 못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초휴가 뭐라고 소천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단 말이오? 헛소리! 그깟 놈이 대체 뭔데? 제 주인을 배신한 파렴치한 소인배일 뿐이잖소! 초휴가 그간 무슨 짓거리를 해왔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단 말인가!”
“초휴는 원래 청룡회 출신이었소. 그러나 중도에 배반하고 관중형당으로 갔지. 관중형당의 철면판관 관사우가 그에게 얼마나 잘해 주었소? 하지만 몰래 은마에 들어가서 관중형당을 집어삼키려 도모했단 말이오!”
“그리고 이제는 조정과 연합하여 진무당을 세우고 조정의 개 노릇을 하느라 정신이 없소. 그자 때문에 북연 무림 전체가 온통 뒤숭숭하오. 그러니 놈의 작태가 후레자식과 다를 게 뭐요? 예의염치라고는 한 오라기만큼도 없는 놈이 아닌가! 그런 개잡놈을 어떻게 소천사와 나란히 놓을 수 있겠소?”
진금정의 폭언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간 크게도 떠들어대는구나!’
초휴는 북연 무림에서 악명이 자자했다. 사실 그를 욕하고 싶은 사람이야 많았다. 그러나 뒤에서 몰래 욕할 뿐, 대놓고 당당하게 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백무기마저 반쯤 넋이 나갔다. 일부러 자극하기는 했지만 진금정이 이렇게까지 거침없이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건 초휴와 원수가 되겠다고 작정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백무기는 곧 정신을 차리고 타이르듯 말했다.
“진 형, 과음하신 것 같구려. 여기는 연경성이고, 초휴와 조정의 코앞이오. 언사를 신중히 하셔야 합니다!”
진금정이 냉소했다.
“조정의 앞마당? 초휴의 앞마당? 웃기는 소리! 천하는 그야말로 온 세상 사람들의 천하인 것이요. 언제 조정과 초휴의 것이 되었단 말이오?”
때와 장소가 지금과 달랐다면 진금정의 말은 제법 멋있고 장렬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죽음의 길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문이 쾅 열리더니 청년 무사 하나가 수하들을 이끌고 들어서며 노호했다.
“무엄하구나! 진금정, 감히 초 대인을 모욕하다니!”
그 청년 무사는 내강경 정도로 보였고 수하들의 실력도 그리 강하지 않은 듯했다. 진금정은 냉소를 흘렸다.
“난 또 누구라고. 꼬리 치며 남의 개 노릇이나 하고 다니는 심명양(沈明陽) 아니신가? 네 아비는 형제를 배신하고 출세와 권력을 위해 초휴의 개가 되었다며? 지금 보니 너도 마찬가지로 수치를 모르는 개 노릇을 하고 있군그래. 부끄럽지도 않으냐!”
심명양은 거령방 심비응의 아들로, 진금정이나 다른 사람들과도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진금정은 술에 취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심명양이 안중에도 없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독살스러운 욕을 퍼부었다.
심명양이 냉소했다.
“나는 초 대인의 개로 살지언정 최소한의 배짱은 있다. 너 같은 놈과는 달라! 초 대인이 극북표설성에서 손가락질하며 혼쭐냈을 때, 너는 찍소리도 못하지 않았나? 지금도 여기 숨어 남몰래 초 대인을 깎아내리는 것밖에 못 하는 주제에 입만 살아서는! 개만도 못한 놈 같으니!”
진금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권인(拳印)을 맺더니 곧장 심명양을 향해 덤벼들었다.
진금정이 출수하던 순간 바로 옆에 있던 백무기에게는 그를 막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백무기의 입꼬리에 아주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진금정의 실력은 심명양보다 훨씬 강했다. 심명양은 전력을 다해 그의 일권을 방어하려 했으나, 사정없이 나가떨어지며 문짝에 부딪혀 피를 토했다.
그러나 심명양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맞은 일권은 앞으로 초 대인이 열 배, 백 배는 보상해 줄 터였다.
진금정이 다시 출수하려는데 별안간 당아가 나타났다. 금빛 용미추혼표가 살며시 움직여 진금정의 목을 가로막았다. 그는 꼼짝도 못 하고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당아가 싱긋 웃었다.
“욕할 때는 속이 다 후련했겠지? 때릴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통쾌했을 테고. 그럼 이제 나랑 같이 진무당에 다녀와야겠다. 초 대인께 직접 욕을 하고 싶을 테니 말이다. 마주 앉을 기회를 줄 테니 어디 실컷 욕해 보거라.”
모두 등골이 서늘해졌다.
‘진금정이 진무당에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있을까?’
나서서 말려 보려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생글생글 웃는 당아의 눈에 살기가 가득한 걸 보자 아무도 진금정을 위해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입 간수도 제대로 못 한 멍청이를 누가 지켜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