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97)
697화 화살 한 대로 부처를 멸하다
젊은 시절 무수한 싸움을 겪은 방금오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공산곡에서 늙어 죽거나 그를 찾아온 옛 원수의 손에 죽는 것보다는 싸우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치를 최후의 싸움이 초휴같이 새파란 후배와의 일전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방금오는 체면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다른 진화련신 무사의 손에 죽는 거야 상관없었다. 그러나 초휴에게 죽다니! 그 분노는 그야말로 원한을 뛰어넘을 지경이었다.
방금오의 뒤에 떠있는 노목금강의 허상에 힘이 모여들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눈부신 금빛 속에서 노목금강의 형상이 부처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그 부처의 얼굴은 아주 흐릿했다. 처음에는 어느 부처인지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빛나는 불광 속에서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부처의 얼굴은 방금오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방금오는 불문 무공을 수련하기는 했으나 불문 무사가 아니었다. 초휴와 마찬가지로, 그가 이해하고 있는 부처는 대광명사에서 받드는 부처와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
청년 시절은 기구했고, 중년 시절은 헛되이 보낸 인생이었다. 일개 낭인으로 시작해 지금은 한 지역을 좌지우지하고 대문파 장문마저 공경하는 북연 무림의 원로가 되었다. 그러나 방금오는 부처를 믿음으로써 이런 성과를 이룬 것이 아니었다.
방금오가 믿은 것은 그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부처였다.
수백 장은 될 듯한 부처의 그림자가 하늘을 덮고 해를 가리며 닥쳐왔다. 성스럽고 고결한 느낌은 없었고 그저 위압감, 끝없는 위압감뿐이었다. 부처가 현세에 강림하여 모든 것을 짓누르려는 듯했다.
방금오는 한 번도 이 초식을 쓴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이 초식이 대광명사와의 관계에 악영향을 줄 우려 때문이었다.
자기 자신을 부처로 받든다니, 대광명사가 볼 때는 부처를 모독하는 행위 아니겠는가.
물론 대광명사가 무공 하나 때문에 방금오와 맞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양측의 관계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터였다.
그러나 지금 방금오는 자신의 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지금 쓰지 않으면 영영 쓸 기회가 없는 초식이었다. 이제 곧 죽을 사람이 다른 세력과의 관계를 걱정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끝없이 거대한 부처의 그림자가 닥쳐왔다. 근처 몇 리의 사람들 모두가 그 강대한 위세를 느낄 정도였다.
그것을 본 무사들은 경악했다. 이것이 진화련신의 힘이라니, 그야말로 신선이나 부처가 따로 없지 않은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땅에 넙죽 엎드려 절을 올리기도 했다. 정말로 부처가 나타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멀리 부처를 바라보며 정원은 불호를 암송했다.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의 옛 친구는 이렇게 그가 보는 앞에서 떠날 모양이었다.
초휴를 향해 달려가던 매경령과 방호 역시 안색이 변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초휴가 상대를 잘못 건드린 게 아닌가.’
그들은 정말 진짜배기를 건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오는 십여 년간 출수한 적이 없는 늙은이였다. 게다가 단장고에 중독당했는데도 이렇게 강맹한 기세라니!
초휴 역시 이 정도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매경령 자신도 예상치 못했다. 그녀는 이번 일이 완전히 초휴의 손바닥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정작 초휴는 하늘을 다 덮을 듯한 부처의 형상을 보며 한숨을 한 번 쉬었을 뿐이었다.
방금오의 강대함은 확실히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러나 상황은 아직 그의 계산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방금오에게 비장의 패가 있는데 그라고 없겠는가? 다만 그 초식을 어떻게 쓸지 좀 더 연구해 볼 참이었는데, 아무래도 지금 써야 할 듯했다.
부처의 형상 앞에 마주 선 초휴의 몸에 마기가 끝없이 몰려들었다. 강대한 마기에 초휴의 두 눈은 새까맣게 물들고, 온몸의 기혈이 끓어오르더니, 엄청난 정신력이 단번에 두 손에 흘러들었다.
모여든 마기는 검은 기운이 감도는 흉측하고 거대한 활로 변했다.
살을 얹어 시위를 둥글게 당기자, 초휴의 등 뒤에서 거대한 마기가 뭉치며 손 모양으로 변했다. 한 손은 활을 잡고 세 개의 팔이 시위를 당기니, 활이 보름달처럼 한껏 휘었다. 마궁(魔弓)으로 모여드는 끔찍한 기운에, 죽음조차 안중에 없던 방금오마저 소름이 돋았다.
칠흑 같은 마기가 화살로 변했다. 그러나 그 화살은 지극히 불안정하여 금방이라도 뭉개져 버릴 것 같았다.
부처의 형상이 닥쳐오는 순간, 초휴는 정혈을 한 움큼 토해내 마기와 융합시켰다. 번쩍이는 마기와 새빨간 핏빛이 섞여 사악한 기운이 가득한 화살로 변했다.
거세게 당겨진 활이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이윽고 활에서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귀를 찢을 듯한 바람 소리가 울렸다. 십여 리 밖에 있던 무사들에게도 들릴 정도였다.
화살이 지나는 곳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부서지며 죽어 넘어졌다. 남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적막뿐이었다.
모두를 경악하게 했던 부처의 이마에 화살이 적중하더니 새까만 점이 나타났다.
그 점이 확 커지면서 파멸의 기운이 뻗어 나갔다. 그리고 불광으로 빛나던 금빛 부처의 온몸에 검은 금이 퍼지더니, 결국 굉음을 내며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화살 한 대로 부처를 멸하다!
옛날 외래 종교가 모시던 신은 화살 한 대로 세 개의 성을 무너뜨렸다고 한다. 마교 교주 독고유아도 같은 화살을 써서 당대 최고의 대문파였던 철황보를 멸망시켰다.
지금 초휴는 진단경으로서 진화련신을 상대하려고 그 화살을 쏜 것이다.
수많은 무사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조금 전 방금오가 만들어낸 부처의 강대한 위세에 다들 진화련신의 고수는 신선이나 부처 같다고 감탄했다. 하지만 그 감탄이 끝나기도 전에 화살 한 대에 그 부처가 완전히 파괴되는 광경을 본 것이다.
초휴의 몸에서 마기가 싹 흩어졌다. 그의 안색은 끔찍할 정도로 창백했다.
정말 최후의 순간이 아니었다면 초휴는 멸삼련성전을 쓰고 싶지 않았다.
홍진표묘참은 일전에 나신군을 상대했을 때 몽롱한 상태로나마 제대로 된 기수식을 구사한 적이 있었다. 억지로 쓰려면 쓸 수는 있지만 완전하지는 못했다. 반면 멸삼련성전은 정말 처음 써 보는 기술이었다.
그는 이 기술을 놓고 오랜 시간 고민해 왔다. 그 자신조차 정말 멸삼련성전을 시전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지금도 초휴 자신의 정혈을 매개로 삼지 않았다면 화살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반작용에 타격을 받기까지 했다.
초휴의 맞은편에 선 방금오의 낯빛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초휴를 바라보며 뭔가 말하려 했으나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순식간에 숨결이 흩어진 그는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조금 전의 부처는 그의 모든 힘과 정기신을 모아 만들어낸 것으로 원신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초휴가 멸삼련성전으로 부처를 멸하는 순간, 그 화살에 담긴 파멸의 힘이 방금오의 몸속을 파고들어 모든 생기를 완전히 멸해버린 것이다.
진단경의 무사가 진화련신 고수를 죽였다. 예전에는 이런 경우가 있었을지 모르나 최근 백년을 통틀어 이런 일을 해낸 사람은 초휴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초휴는 이미 그런 것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멸삼련성전은 초휴의 힘과 진기와 정혈을 모조리 뽑아갔다. 지금 초휴는 원기가 크게 손상된 상태였다.
헐레벌떡 도착한 매경령과 방호는 땅바닥에 쓰러진 방금오의 시체를 보고 경악하고 말았다.
‘초휴가 정말로 방금오를 죽이다니!’
그러나 그들이 뭐라 묻기도 전에 초휴가 손을 내저었다.
“저 좀 진무당까지 데려다주십시오.”
두 사람도 초휴의 상태가 매우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보았기에 얼른 그를 부축해서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원과 황보유명, 그리고 구경하던 무사들이 도착했다. 다들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정원대사는 탄식하며 다가가서 방금오의 부릅뜬 눈을 감겨 주고는, 그 곁에 앉아 불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의 오랜 벗은 결국 이렇게 먼저 떠난 것이다.
* * *
지금 강호는 뒤숭숭했다. 정도와 마도, 조정과 무림세력 간에 분란이 그치지 않았고 큰 사건도 많이 터졌다. 이렇듯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상황임에도, 초휴가 방금오를 죽인 일은 폭약을 터뜨린 것과 다름이 없었다.
초휴가 방금오를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자들은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찾지 못할 지경이었다. 무려 진화련신의 고수 아닌가. 방금오는 강호에서 내로라할 최절정의 강자였다. 그런 인물이 초휴 같이 새파란 후배 손에 죽다니.
정도와 마도의 충돌은 점점 심해져서 혼전을 거듭하면서, 죽은 무도종사가 한둘이 아니긴 했으나 진화련신의 고수가 다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초휴가 배월교보다도 한발 앞서 진화련신 고수를 죽인 것이다.
방금오는 무명지배가 아니었다. 북연 강호의 원로이자 한때는 강호 활동도 왕성했던 인물로 서초나 동제에서도 이름이 있었다.
최소한 두 나라의 노강호들은 대부분 그를 기억했다. 그런데 초휴 같은 후배에게 죽다니 탄식을 금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물론 초휴가 비열하고 파렴치하다고 욕하는 사람도 많았다. 고충을 써서 방금오의 실력을 깎아 놓고 싸워서 이긴 것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초휴가 패했을 거란 소리였다.
그러나 이기면 왕이요 지면 도적이 되는 곳이 강호 아닌가. 초휴는 살아남았고 방금오는 죽었다. 그게 전부였다. 고충을 썼는지 안 썼는지는 큰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단장고에 중독당한 방금오를 초휴가 아닌 다른 무도종사가 상대했다면 일 초도 막아내지 못했을 터였다.
초휴가 방금오를 죽인 다음 날 풍만루는 빠르게 풍운방을 갱신했다. 초휴는 순위가 껑충 뛰어 풍운방 삼십오 위에서 이십사 위가 되었다.
풍운검총 연지의 바로 아래였다. 소천사 장승정이 초휴보다 먼저 풍운방에 올랐으나, 지금은 초휴가 그를 까마득히 앞지르게 되었다.
둘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리라는 것은 많은 사람이 짐작하는 일이었다. 초휴의 실력이 장승정보다 대단해서가 아니라, 천사부가 봉문 중이기 때문이었다.
천사부가 봉문 중이기에 장승정은 조용히 틀어박혀 수련이나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초휴는 강호를 휩쓸고 있지 않은가.
초휴는 진무당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다. 진화련신 강자와의 일전에서 얻은 경험과 깨달음은 컸으나 부상 또한 엄청났다. 방금오의 불멸금신을 마주 받아냈을 때 온몸의 뼈대에 몇 군데나 금이 갔고 내장도 손상을 입었다.
마지막으로 멸삼련성전을 시전했을 때는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은 데다 정혈까지 토한 반작용을 고스란히 받았다. 정말 처참한 상태라 한 달은 족히 지나야 회복이 가능할 듯했다.
초휴 주위에선 방금오의 복수를 하려는 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했다.
하지만 초휴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방금오의 죽음이 세간에 많이 회자될지는 몰라도, 그 일이 직접 끼칠 영향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방금오를 위해 나설 만한 사람이 없을 터였다. 낭인 출신 무사로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누구도 방금오에게 밉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으나 마찬가지로 그의 원한을 대신 갚아주려는 사람도 없었다.
진금정은 이미 방금오의 손에 폐인이 되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였으나 초휴는 굳이 알아볼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스승을 시해했다는 죄명을 뒤집어썼으니 목숨이 붙어 있어도 평생 숨어 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임천리로 말하자면 노련한 사람이라 해야 할 터였다. 바꿔 말해 융통성이 없다고 할 수도 있었다. 초휴가 그의 사부를 죽였으니 당연히 복수가 하고 싶을 터였다. 그러나 복수하고 싶긴 하겠으나 복수할 방법이 있을까?
북연 조정에 몸담은 그의 가장 큰 뒷배는 조정의 고위인사가 아니라 그의 사부였다. 방금오가 죽었으니 조정에서의 발언권조차 예전보다 떨어질 판이었다.
바꿔 말해, 지금 임천리의 지위는 초휴에게 별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임천리가 꼬리를 내리건, 혹은 시세에 맞게 처신하건 상관없었다. 절대적인 자신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의 그라면 초휴에게 시비를 걸기는커녕, 눈에 띄지 않게 최대한 움츠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
강호에도 방금오의 원한을 갚으러 나설 사람은 없었다. 방금오와 황보 노야의 사이가 좋기는 했으나 그냥 좋은 것에 불과했다. 황보 노야가 그 때문에 초휴를 찾아올 리는 없었다.
대광명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휴는 먼저 나서서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허도와 약조한 바가 있었다.
이번 일의 경과를 따져 보면, 진금정이 먼저 연경성 내에서 입을 함부로 놀려서 결국 이런 결말이 난 게 아닌가. 방금오 본인은 죽었고 대광명사가 북연에 신경을 쓸 수도 없는 지금, 이 문제로 초휴에게 출수할 리는 없었다.
해서 초휴는 진무당에서 아무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요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