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
초씨 가문의 저택은 웅장하고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비록 수백 년을 이 지역에 자리 잡아온 심씨 가문에는 비할 바 못 되지만 그래도 명실상부 통주부의 세도가라 할 만했다.
초휴가 둘째 부인을 따라 회의실로 들어서니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제일 상석에는 건장한 체구에 용모가 단정한 비단옷 차림의 중년인이 살짝 눈을 감은 채 앉아있었다. 바로 초휴의 부친이자 초씨 가문의 가주인 초종광이었다.
초종광도 나름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였다. 이십여 년 전 수십 명의 식솔들을 거느리고 이곳으로 옮겨온 후 자수성가하여 오늘날 통주부의 삼대 가문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으며, 심지어 그 위상이나 세력이 통주부에 백 년 넘게 군림해 온 이씨 가문을 능가할 정도였으니까.
다만 초휴가 부친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한결같이 냉랭한 모습뿐이었다. 어려서부터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부친을 몇 번 만난 적도 없었다.
물론 초종광이 유독 초휴에게만 쌀쌀했던 건 아니다. 다른 아들들에 대해서도 대동소이했으니 말이다. 그나마 그중 나은 대접을 받는 게, 이 집안 넷째이자 막내인 초상이었다.
예전의 초휴 같으면 복잡한 생각을 할 리가 없는데, 시공간을 뛰어넘어 환생한 지금의 초휴는 이런 부친이 새삼 괴이하게 느껴졌다.
초종광은 이미 쉬체경과 응혈경을 넘어서 선천경에 이르렀다. 체내의 기혈과 근골이 갓난아기처럼 불순물 하나 섞이지 않고 한데 통하는 그런 경지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미 쉰 살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흔 남짓 된 둘째 부인보다도 젊어 보였다.
선천경을 터득한 무공인은 무도에서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오른 것으로 평가받는다. 바깥세상에서야 무명지졸 취급을 면하는 정도에 불과할지 몰라도, 이 통주부 지역에서만큼은 절대 고수로 대접받았다.
그런데 기억 속의 부친은 늘 폐관 수련 중이었다. 수련에 몰두한 나머지 그저 몇몇 큰일에나 자신의 생각을 밝혔고, 평소에는 집안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지내왔다. 초씨 가문에서 초종광의 무공실력이 가장 세니까 그렇게 집안일에 무심해도 가주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폐관 수련을 즐기는 것은 무림세가인 초씨 가문에서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강호에서는 실력이 모든 걸 말해주기 때문에, 힘들게 권세에 빌붙어 이익을 도모하느니 차라리 본인의 실력으로 직접 상대를 누르는 게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초종광이 이십 년이 넘도록 온갖 노력을 다해 수련에 정진했지만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타고난 깨달음이 부족해서 시간만 낭비한 것인지, 죽어라 폐관수련을 해도 고수의 꿈을 이룰 수가 없었다.
초종광의 아래에는 다섯 명의 노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젊어 보이는 이도 육십 세는 넘어 보였다. 이들이 바로 초씨 가문의 장로이자 초종광의 손위 연배 어르신들로, 나름 가문의 실세들이었다.
장로들 옆에는 총관들과 집사들이 서 있었다. 이들 중 더러는 장로들의 후손이었는데, 그들마저 집안의 실권을 나눠 갖고 있었다.
양옆에는 초종광의 부인들과 초휴의 형제들도 앉아있었다. 개중 큰부인만이 유일하게 초종광이 통주부로 오기 전에 얻은 아내였고 명문대가 출신이었다.
첫째아들 초개는 체구가 장대하고 얼굴에는 오만한 기색이 가득했다. 아들 넷 중 가장 무공실력이 뛰어나 응혈경에 도달한 상태였다.
셋째 초생은 약간 여윈 체구에 온화한 표정을 짓고는 있으나 초휴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예사롭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가 살아 돌아온 것이 꽤 의외인 모양이었다.
초종광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품위 있고 아름다운 서른 남짓의 셋째 부인은 올해 겨우 열여섯이 된 막내 초상의 생모였다. 초종광이 막내인 초상을 가장 아끼는 것은, 훤칠한 용모가 젊은 시절의 자신을 많이 닮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다.
초씨 가문에는 아들이 넷 있지만 부인은 세 명뿐이었다. 초휴의 생모가 시첩에 불과해 정실부인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초휴는 방에 들어서자 좌중을 향해 예를 올렸다.
“아버님, 큰숙조부님, 셋째 숙조부님, 일곱째 숙조부님, 여덟째 숙조부님, 아홉째 숙조부님, 큰어머님, 둘째 어머님, 셋째 어머님을 뵙습니다.”
초종광은 고개를 까닥이며 건성으로 인사를 받았다.
“돌아왔구나. 가서 앉아라.”
아버지는 그나마 인사를 받은 셈이나, 그 밖의 다섯 숙조부들은 초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초휴보다 두 연배나 위인 어르신들 입장에서야 새카만 어린애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기도 했다. 그러나 초휴가 이 집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알기 때문에 굳이 그에게 신경 쓸 가치가 없다는 이유가 더 컸다.
초종광이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초씨 가문이 통주부로 온 지 이십 년이 넘었고 이만하면 이곳에서 자리도 잡은 셈입니다. 요 몇 년간 아이들도 장성했고 숙부님들께서도 재촉하시니, 이쯤 해서 가주의 승계자를 정해도 좋을 듯합니다.”
그러자 큰부인이 갑자기 나섰다.
“새삼스레 정하긴 뭘 정해요? 이 집안의 적장자인 초개가 버젓이 있고 무공실력도 아들 넷 중 최고인데, 우리 초개가 아니라면 누가 가주 자리를 잇는다는 말씀이세요?”
그 말에 둘째 부인이 냉소를 지으며 반박했다.
“형님, 말씀이 이상하시네요. 우리 집안이 무슨 황실도 아닌데 적장자면 무조건 가주가 될 수 있다고 누가 그럽디까? 다른 무림세가들 좀 보세요. 능력 있는 아들이 가주 자리를 승계하는 걸 모르세요?”
그러자 큰부인이 눈을 부릅뜨며 날을 세웠다.
“그러니까 자네 뜻은 내 아들이 자네 아들만 못하다는 게야?”
둘째 부인이 태연하게 맞섰다.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 형님이나 저나 일개 아녀자인데 무얼 알겠어요. 이렇게 중대한 일은 대인께서 결정하셔야죠.”
그러면서 둘째 부인이 셋째 부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떤가 아우님, 내가 틀린 말 했나?”
셋째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이듯 대답했다.
“소인이야 이런 일에 대해선 잘 모르겠네요. 그저 대인께서 결정하시는 대로 따를 뿐입니다.”
그 말에 큰부인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셋째 부인이 비록 대놓고 입장표명을 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둘째 부인 쪽에 선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초종광이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만들 하시오!”
초종광이 대노한 것을 알고 여인들은 입을 다물었다. 초종광은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는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일이 처리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다들 그만하시오. 가주 계승자를 뽑는 중대사인 만큼 신중히 숙고해야 할 것이오. 여러 숙부님들도 와계시지만 규칙은 내가 정하겠소. 향후 일 년간 초개, 초휴, 초생, 초상 너희 네 명한테 집안의 사업 일부를 나눠주고, 사업실적이 가장 좋은 사람에게 가주 자리를 물려주겠다. 우리가 엄청 큰 가문도 아니고 따라서 사업규모도 큰 편이 아니니, 누구든 두각을 나타내면 금방 눈에 띄겠지.”
여기까지 말을 마친 초종광의 시선이 가장 어린 초상에게로 향했다.
“비록 우리가 무림세가이긴 하나, 너희들의 나이 차를 감안하여 일단 무공실력은 덮어두고 그저 능력만 따질 생각이다. 다들 동의하느냐?”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부인과 초개의 낯빛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말인즉슨, 초개의 가장 큰 강점을 일거에 없던 걸로 해버리고,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린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막내의 편을 들겠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둘째 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대인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셋째 부인도 맞장구쳤다.
“소인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큰부인만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여 핏대를 세웠다.
“저는 동의 못 해요! 엄연한 무림세가에서 무공실력은 따지지도 않고 가주를 선정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린가요?”
가만히 지켜보던 초휴는 지금까지 오고간 말만으로도 좌중 인물들의 성격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가문의 어르신들은 장식용 병풍에 불과해서, 각자 자기만의 속셈이 있다 해도 대놓고 가주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또한 큰부인과 큰형은 모자지간 아니랄까 봐 오만방자하기가 똑같았다. 방금 하는 말만 봐도 큰부인은 명문대가의 여식답게 거침없이 초종광에게 맞서고 있었다.
하지만 큰부인은 실수를 하고 있었는데, 이유는 그녀가 아무리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고 해도 여기는 그녀의 친정이 아니라 통주부라는 것, 그리고 이런 식으로 초종광에게 대들어봐야 가주의 미움만 살 뿐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둘째 부인은 초휴가 체험한 바와 같이 악랄하기가 이를 데 없으나 능구렁이 같은 구석도 있었다. 반면 그녀의 아들 초생은 제 어미보다 한참 수가 얕아 초휴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살기를 감추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셋째 부인은 큰부인과 둘째 부인이 나이가 들어 미모가 시드는 틈을 타서 초종광의 총애를 독차지한 영리한 여인이었다. 겉으로는 누구와도 얼굴 붉히지 않으면서 순진한 척 하지만 물밑작업에 능란했고, 초종광이 가장 사랑하는 자식도 바로 그녀의 아들인 초상이었다.
초종광 본인은 성가신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는 게 한눈에 보였다. 말끝마다 가주 승계자를 고르는 게 중대사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초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부친이 폐관수련 하다가 주화입마가 되기라도 한 걸까? 가문의 운명이 걸린 중대사를 어쩌면 저렇게 적당히 처리하려 드는 거지?
큰부인이 돌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초휴야, 비록 서출이지만 너도 이 집안의 가주가 될 자격이 있으니 네 의견을 말해보아라. 아버님의 결정이 어떤 것 같으냐?”
좌중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초휴에게로 향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해왔던 둘째 부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셋째 부인과 초상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긴 했지만, 초휴 저 머저리가 큰부인과 초개 편에 서 있는 게 못내 불편했던 것이다.
초휴의 선택을 이미 알고 있는 큰부인은 의기양양하여 둘째 부인을 향해 눈썹을 찡긋해 보였다. 이로써 2대2가 되었으니, 초종광이 독불장군처럼 초상을 편애해도 결코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갑자기 초휴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초종광을 향해 공손히 예를 갖추며 아뢰었다.
“아버님께서 결정하신 일을 어찌 소자가 감히 판단하겠습니까? 그저 아버님의 결정을 따를 것입니다.”
이 말에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큰부인과 초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초휴를 쳐다보았다. 특히나 초개는 어이가 없었다. 늘 자기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던 녀석이 이제 와서 감히 반기를 들어?
큰부인과 대립하고 있는 둘째 부인도 머리가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초휴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짐작이 안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써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초휴의 언행이나 분위기가 달라진 걸로 봐서, 자기가 그를 죽이려 함정을 팠다는 사실이 발각된 건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편에 서서 큰부인과 맞서려 하다니, 도대체 무슨 속셈인 걸까?
그러나 초휴의 의도는 간단했다. 자신도 가주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해야 하는데, 왜 특정 인물의 편에 선다는 말인가?
예전의 초휴 같으면 경쟁하길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초휴는 가주 자리가 저 버러지 같은 형제들에게 넘어가면서, 집안의 재산도 같이 넘어가게 방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초종광도 의아한 눈빛으로 초휴를 쳐다보았다. 예전부터 안중에도 없었던 저 아들이 어딘가 모르게 일 년 전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남산 광구의 경험이 저 아이를 저렇게 단련시킨 것일까?
끝
ⓒ 봉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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