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01)
701화 꺼져!
손장명은 낙비홍과 초휴가 매우 절친한 사이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낙비홍의 성격이 어떤지도 잘 알았다. 낙비홍과 초휴가 연인 사이일 가능성은 전혀 없을 터였다.
물론 초휴가 맞다고 한다면야 그로서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순간 초휴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떠올랐다.
“이치? 이 초휴는 평생 이치 같은 걸 따지지 않고 살아왔다는 걸 알아야지.”
손장명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초휴가 어깨를 으쓱였다.
“가급적 앞으로는 멀찍이 꺼져 달라는 뜻이지.”
손장명의 얼굴에 노기가 드러났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초휴가 먼저 싸늘하게 말했다.
“당신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두는데, 구분당은 원래 내가 말을 꺼내 만들어졌다. 그러니 행여 그걸 꿀꺽 삼킬 생각일랑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야. 당신네 손씨 내부에서 개떼처럼 얽히고설켜 무슨 짓을 벌이는지 나는 관심도 없고, 끼어들 생각도 없어. 하지만 정말 내 성질을 건드렸다가는 평생 후회하게 될 거다, 당신을 죽이지는 못해도 평생 손가의 후계자가 되지 못하게 만들어 주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초휴의 말은 뜬금없게 들렸다. 낙비홍은 다소 어리둥절했으나, 강호 물정에 밝은 막야자는 초휴의 말뜻을 이해했다.
기실 초휴가 낙비홍의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손장명이 여자에 미쳐 맹목적으로 날뛰는 무뢰한같이 들렸다. 그러나 낙비홍이 아무리 남자처럼 군다 한들 여자 아닌가. 개인적 감정이 섞여 손장명의 진짜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강호에 나선 지 일 년 만에 이름을 날리며 용호방 십삼 위에 들었다면 아무리 무뢰한이라 해도 나름대로 능력이 있는 건 분명한 것이다.
초휴가 대놓고 모욕을 주었음에도 손장명은 꿋꿋이 참아 넘겼다. 그걸로 봐서 행동거지나 어투가 오만불손하긴 해도 아예 머리가 없는 자는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막무가내로 낙비홍한테 들러붙는 것일까?
낙비홍이란 여자 하나만으로는 그가 이렇게까지 행동할 이유가 없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일 터였다. 낙비홍의 뒤에 있는 어떤 것 때문일 터.
지금 낙비홍은 낙가에 반기를 뛰쳐나온 상태니 그녀가 가지고 있는 배경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구분당이다.
낙비홍의 말에 따르면 손장명은 손씨의 적통 제자이지만 후계자는 아니라고 했다.
자리란 아주 까다로운 것이다. 영백록이나 방칠소처럼 어떤 세력 안에서 후계자로 확정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종문이 행사하는 권력 일부를 대표했다.
그러나 손장명은 아직 후계자가 되지 못했다. 강동 손가 제자 중 명성은 제일 높을지 몰라도, 지금 손씨의 존장들에게 그가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었다. 아직 경쟁자들을 완전히 따돌리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낙비홍에게 장가들면 강한 실력을 갖춘 아내를 얻을뿐더러 놀랍게 발전하고 있는 구분당의 세력까지 가지게 되는 것이다. 후계자 쟁탈전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작용을 할 게 뻔하지 않은가.
초휴는 무력을 써서 그를 죽여 버릴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손장명이 주제를 모르고 덤빈다면 자신한테 득이 안되더라도 상대의 일을 망쳐버릴 결심이었다.
어차피 한두 번 해본 일도 아니잖은가. 손장명의 힘을 깎는 만큼 다른 손가 제자들은 강해질 것이고, 그가 열심히 쌓아 놓은 기반은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다.
손장명은 분노와 꺼림칙함이 담긴 눈길로 그를 노려보았다.
초휴의 짐작이 다 들어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팔할쯤은 정확했다. 그가 낙비홍을 쫓아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구분당 때문이었으니까.
구분당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후계자 쟁탈전에서 승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로 낙비홍을 원하는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다.
초휴는 공리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했고, 언제나 이해관계를 기초로 생각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손장명이 어렸을 때 낙비홍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오군은 강동 바로 옆에 있었다. 손장명이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옛날 낙비홍의 아버지가 어린 그녀를 데리고 손가에 놀러 왔을 때였다.
그 후로도 그는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줄곧 가문 내에서 폐관 수련을 해야 했고,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후에야 강호에 나가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하후무강이 낙비홍을 쫓아다닐 때는, 가문의 이름을 동원해서라도 하후세가에 경고하고 싶었으나 어른들에게 혼만 났다. 그때의 손장명은 특출난 데가 없이 평범했다. 수많은 제자 중 두각을 나타내기 전이었으므로 발언권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드디어 강호를 휩쓸고 다닐 기회를 얻었고, 명성도 꽤 쌓았다. 그리고 낙가를 뛰쳐나온 데다 구분당까지 장악한 낙비홍을 봤을 때, 더는 망설일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영백록이 안비연을 쫓아다닌 것은 오로지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은 일념에서였다. 그러나 손장명은 낙비홍과 구분당, 둘 다 제 손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치사하고 비열한 수단도 가리지 않으려 했다. 물론 이렇게 초휴와 마주칠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말이다.
분노와 수치로 가득 찬 얼굴의 손장명을 보면서 초휴는 담담히 말했다.
“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나? 내가 정말 당신 계획을 다 망쳤으면 좋겠나? 아니면 아예 지금 내 손에 죽고 싶은 건가!”
초휴의 어조는 평온했으나 손장명은 싸늘한 한기가 자신을 옥죄는 느낌이었다. 그는 초휴가 정말 그렇게 할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진화련신의 고수도 죽인 자가 무슨 짓인들 못 하겠는가?
초휴가 방금오를 죽이자 최소한 한 가지만은 온 강호인이 인정하게 되었다. 그것은 초휴의 대담함이었다.
그때 누군가 손장명 앞에 나타나 초휴의 위압적인 기세를 막고 웃음 지었다.
“우리 집안의 제자가 물정을 모르니 초 대인이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구려. 후배 상대로 꼬치꼬치 따져서야 쓰겠소.”
초휴 앞에 나타난 사람은 무도종사의 실력자인 중년인이었다. 그를 본 손장명은 비로소 한시름 놓았다.
“넷째 숙부님!”
강동 손가의 규모는 방대했고 가문 내의 계파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넷째 숙부 손계례(孫啓禮)는 손장명의 아버지와 한편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가주 자리를 노릴 때 함께 싸웠던 진정한 우군인 셈이었다.
강동 손가에서 손장명처럼 젊은 나이에 강호에서 명성을 쌓은 제자가 나온 것은 십년 만의 일이었다. 가문의 다른 사람들이야 신경 안 쓰는지 몰라도, 그의 아버지는 그럴 수 없었다. 해서 밖에서 가문의 사업을 맡아 보던 손계례한테 아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손장명이 경호산장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들은 손계례는 즉각 쫓아왔다. 손장명이 일시적인 충동으로 경호산장과 원한을 만들지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막야자 한 사람과 척을 져도 손씨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막야자는 누가 뭐래도 병기 주조의 대가 아닌가. 그와 거래할 일이 언제 생길지 모르는 일이니 신중하게 처신하는 편이 좋았다.
해서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막야자와 무슨 일이 생기기도 전에 훨씬 까다로운 상대인 초휴와 얽히게 될 줄을 어찌 알았으랴.
초휴가 손계례를 응시하는 순간 강대한 위압감이 그를 덮쳐왔다. 눈앞의 초휴가 마신처럼 보였다. 끝없는 혈우(血雨)가 휘몰아치며 귀신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기세에 손계례는 숨이 막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후배? 후배는 말실수에 책임질 필요가 없단 말이오? 후배에게 꼬치꼬치 따지지 말라니, 그럼 당신에게는 따져도 상관없겠군? 안 그런가?”
손계례의 낯빛이 변했다.
사람의 이름이란 나무의 그늘과 같다. 초휴는 얼마 전에 방금오를 죽였다, 정말 두려운 실력을 지녔다는 말이 온 강호에 좍 퍼진 것이다.
그러나 초휴의 지역과 멀리 떨어져 사는 이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가 눈앞에 나타나자 손계례는 실감했다. 초휴는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두려운 자였다!
초휴는 경호산장 바깥쪽을 가리키며 담담하게 한 마디 뱉었다.
“꺼지시오.”
손계례는 시퍼렇게 굳은 얼굴로 공수를 올렸다. 그리고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손장명을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
막야자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강호란 곳이 어떤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나, 막상 이런 광경을 보니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력이 강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다.
병기만 만들 뿐 남과 싸울 줄 모르는 무도종사인 그 앞에서는 손장명 같은 후배조차 감히 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반면 초휴의 꺼지라는 말 한마디에 손계례마저 찍소리도 못하고 꽁무니를 뺀 것이다. 이게 바로 격이 다르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낙비홍의 낯빛은 다소 기괴했다. 초휴가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낙비홍이 초휴와 처음 만난 것도 제법 오래전이었다. 옛날 삼화취정의 경지에 오르기도 전이었던 신병대회에서 만났으니까.
해서 그녀는 초휴와 명성과 실력을 잘 알기는 했으나 정작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명확히 몰랐다. 지금에서야 초휴가 강호에서 어느 정도 위치인지를 알 듯했다. 구대 세가 중 하나인 강동 손가마저 물러나게 만드는 인물이 아닌가.
초휴가 뒤를 돌아보더니 낙비홍을 향해 웃어 보였다.
“이제 골칫거리가 해결되었군그래.”
낙비홍은 잠시 멍해 있다가 곧이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당신이 간 뒤에 저 파리가 또 들러붙을지 모르잖아요?”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나를 무시한다는 말이 되겠지. 그때는 내가 직접 강동 손가에 찾아가 젊은 제자를 어떻게 교육하는지 따져 볼 거요!”
* * *
경호산장에서 십여 리 떨어진 곳까지 온 손계례의 안색은 여전히 시퍼렜다.
강동 손가는 가급적 강동을 벗어나지 않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업은 경영해야 했다. 손계례는 남에게 미움을 산 적이 없었고 실력도 쓸 만한 축이었다
해서 바깥 일을 맡아보게 되었고 강호에서도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위명이라 할 정도까지는 못 되어도 말이다. 그러나 강동 손가의 이름이 있으니, 지금까지는 감히 누구도 그의 면전에서 대놓고 꺼지라고 한 적은 없었다.
손장명 역시 분노를 참기 어려운 기색이었다.
“초휴 저 건방진 놈! 넷째 숙부님, 우리 손가가 이런 모욕을 당하고 그냥 참고 넘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손계례가 콧방귀를 뀌었다.
“허튼 생각 말아라. 이 일에 손가까지 끌어들이지 말란 말이다. 모욕을 당한 것은 너와 나 둘뿐이다. 네 둘째 숙부와 다른 사람들이 이런 일 때문에 손가 전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할 거 같으냐? 앞으로는 낙비홍에게도 관심 두지 말아라. 여자가 낙비홍 하나뿐인 것도 아니잖느냐? 구분당도 마찬가지다. 세력이 갖고 싶으면 네 손으로 착실하게 쌓아 올리란 말이다. 지금의 너로서는 초휴에게 밉보이는 위험을 무릅쓰는 건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저자는 그냥 미친놈이야! 정말 건드렸다간 이쪽이 엄청난 손해를 볼 거란 말이다.”
손장명은 낙비홍을 포기할 수 없었고, 손계례 역시 초휴의 태도에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공리를 쫓는 자였다. 이득 앞에서는 체면을 잠깐 내려놓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원한은 기억해 두었으니 언젠가 다시 갚으면 될 터였다. 그들에게는 지금 당장 초휴를 건드릴 배짱은 없었다.
초휴는 진화련신 고수였던 방금오를 죽인지라 명성이 승천하는 기세였다. 그의 기반도 북연과 관중형당이니 손씨의 힘이 닿을 수가 없었다. 일단은 굴욕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경호산장에 왔다가 겸사겸사 낙비홍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준 초휴는 슬슬 떠날 준비를 했다.
천마무를 신병으로 만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이니, 여기서 무작정 기다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