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05)
705화 슬픈 제원례
“초휴, 이놈! 죽고 싶으냐!”
형사도가 호통을 치며 장검을 뽑아 들었다.
장검 한 자루는 흉악한 혈살의 기운을 띠고 있었다. 검이 칼집에서 빠져나오자 핏빛이 요동치는 듯해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한 자루에는 어둡고 깊은 죽음의 기운이 감돌았다. 장검이 뽑혀 나오는 순간 애달픈 귀곡성이 울리면서 두려운 느낌을 주었다.
이 두 자루 마병을 주조하기 위해 형사도는 무수한 사람을 죽였고, 정파인들에게 천 리를 쫓겨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구음과 홍연을 뽑아 들 때마다, 그게 치를만한 대가였다는 보람을 느꼈다.
초휴가 손으로 결인을 맺자 온몸에서 눈부신 금빛 불광이 번쩍였다. 기혈이 끓어오르며 환일대법이 펼쳐졌다. 초휴의 등 뒤에 대일여래의 법상이 나타나고 무색정대수인의 힘이 천지를 뒤집을 듯이 닥쳐들었다.
금빛 불광이 모든 것을 비틀어 버렸다. 혈살의 기운을 박살 내고 무한한 마기를 사멸시키는 힘이었다. 초휴와 형사도 두 사람을 중심으로 강기가 폭발했다. 지하 궁전이 진법으로 수호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일격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초휴는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형사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두 자루 검을 거두고 손을 장포 안에 말아 넣고 있었다. 떨리는 손을 남이 볼까 두려웠던 것이다.
장내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진화련신 고수를 죽인 일로 초휴는 명성이 자자했다. 비록 속임수를 좀 썼다지만 전적은 전적이었다. 적어도 그 정도의 실력은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지금 초휴의 출수를 보니 과연 명성에 걸맞은 위세였다.
초휴가 도불마 삼맥의 무공을 모두 익혔다는 것은 모두가 알았다. 지금 초휴는 불문 무공만을 사용해서, 과거 풍운방에도 이름을 올렸던 무도종사 형사도와 백중세를 이뤘다. 만일 그 유명한 칠마도라도 썼다면 형사도가 버텨냈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물론 사람들은 사실 형사도가 조금 전 일격조차 간신히 버텼다는 것은 몰랐다.
초휴는 냉소했다.
“형사도, 쓸데없는 잔머리는 집어치우시오. 정마대전이 일어나려는 판에 아직도 이런 장난질을 해야겠소? 나는 당신과 어울려 줄 만큼 한가하지 않소. 지마당 잔당을 박멸하는 일은 각자 능력껏 합시다. 난 당신 일에 관여하기 귀찮으니 당신도 내 일에 시비 걸지 마시오.”
초휴가 그리 말하고 손짓하자 매경령과 육 선생도 그와 함께 떠나 버렸다. 본래 위서애 일맥과 사이가 좋던 무사들 역시 초휴를 따라갔다. 그리고 비교적 실력이 약한 무사 중 일부도 잠깐 생각하더니 초휴를 따라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 자리에는 붉은 장포를 입은 삼십대오 보이는 청년이 하나 있었다. 그는 픽 웃더니, 역시 초휴 일행을 따라 떠났다.
자리에 있던 열 명의 무도종사 중 초휴 편에 끼인 자가 네 명이었다. 다른 무사 역시 삼십여 명이 초휴를 따랐으니 이미 절반 가까운 수였다.
형사도의 낯빛이 시퍼렇게 어두워졌다.
‘초휴는 은마에 들어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인맥을 만들었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건 형사도의 생각이 지나친 것이었다. 사람들이 초휴를 선택한 것은 형사도의 명성이 은마권 내에서 그리 좋지 못한 탓이었다.
초휴로 말하자면, 정도 쪽에서야 일제히 욕을 퍼붓긴 하지만, 그가 은마권의 누군가를 해쳤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은마에 기반과 인맥이 없다지만 방금 펼쳐 보인 실력만으로도 사람들이 그를 따르기에는 충분했다.
전각을 떠난 후 육 선생이 붉은 장포의 청년을 발견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보냈다.
“심혈응(沈血凝), 당신이 웬일이오? 당신네 적련마종 노야는 원천방 쪽과 퍽 사이가 좋으신 걸로 아는데?”
겉보기에 청년 같은 심혈응은 사실 육 선생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그는 적련마종의 무도종사로, 은마권에서의 명성은 높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무명도 아니었다. 그는 매우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은마권에서 적련마종은 ‘독한 사람은 말수가 적다’라는 말의 전형처럼 여겨졌다.
평소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십여 년간 출수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일단 행동으로 옮기면 반드시 멸문지화에 비견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적련마종은 정예제일주의라서 제자의 수가 많지는 않았으나 하나같이 대단했다. 적련마종의 노야는 원천방과 사이가 꽤 괜찮은 편이었다.
해서 육 선생은 심혈응이 당연히 형사도를 따라갈 줄 알았다. 그러나 이쪽으로 오다니 뜻밖이 아닌가.
심혈응이 웃으며 말했다.
“원천방과 사이가 좋은 것은 우리 노야지, 내가 아니잖소. 형사도는 꿍꿍이가 너무 많은 사람이오. 내가 아무 말도 안 하자니 속이 답답할 테고, 뭔가 말을 하면 형사도와 틈이 생기거나 어쩌면 싸우게 될지도 모르지. 그러나 같이 가지 않는 게 낫소. 초 형에 대한 믿음도 있고요. 우리 노야께서도 은마의 청년 세대 중, 초 형의 잠재력이 가장 대단하다고 말씀하셨다오. 위 노선배의 눈에 든 이상 범속한 사람일 리가 없겠지요.”
심혈응은 초휴를 띄워주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적련마종의 노야는 정말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위서애가 은마권에서 명성을 날리는 것은 그의 경력과 신분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눈이 뛰어난 탓도 있었다. 저무기와 매경령도 원래 위서애가 발굴한 인물이었다.
옛날에 무상마종에 찾아갔다가 육 선생을 보고 반드시 큰 인물로 성장하리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위서애가 눈여겨 본 사람 치고 평범한 자는 거의 없었다. 초휴도 마찬가지였다.
심혈응이 그렇게 말하자 육 선생도 수긍하고 더 신경 쓰지 않았다. 적련마종은 은마권에서 신중한 중립 세력에 가까운지라 남의 미움을 산 일이 없었다.
초휴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 형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환영입니다. 사실 이렇게 작은 일에 잔꾀를 부리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만.”
다른 것은 그렇다 치고, 심혈응은 아주 사리에 밝은 사람이었다. 그는 육 선생보다도 나이가 많았고 배분으로 따지면 초휴보다 위였다. 그런데 초휴를 초 형이라 불렀으니 그의 실력을 존중해 준 것이라 해야 할 터였다. 듣는 쪽으로서는 아무래도 마음이 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심혈응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사도는 이미 충분한 준비를 해 놓았소. 아마 어제부터 모든 걸 계획한 것 같더군요. 초 형은 어찌할 생각이시오?”
그러자 다른 마도 무사들도 물끄러미 초휴를 바라보았다. 초휴를 따라온 이상 그들이 어떻게 이득을 얻을지도 초휴에게 달려 있었다. 엄청난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허황한 소망은 없었으나, 국물 정도는 얻어먹기를 바라고 있었다.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움직이기 전에 앞서 계획을 세운다……. 형사도가 제법이긴 합니다. 그가 자료를 준비해 놓았다면 우리도 일단 지마당 놈들의 현재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겠지요.”
심혈응이 이마를 ‘탁’ 쳤다.
“참, 깜박할 뻔했군. 초 형은 천하맹 진청제의 제자인 사소루와 막역한 친구 아니오? 천하맹이 서초에 있으니 그런 정보를 얻는 것은 간단하겠구려.”
초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야지요. 천하맹에서 정보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표면적인 것에 불과할 테니까요. 형사도가 사람을 시켜 알아봤다는 것도 대략적인 정보에 한정된 것일 겁니다. 진정 상세한 자료는 서초가 아니라 동제에 있습니다.”
“그게 어디요?”
“풍만루입니다.”
* * *
동제 남량성의 풍만루 본부, 부루주인 ‘삼목신’ 제원례는 한가롭게 햇볕을 쬐는 중이었다. 옆에는 뜨끈한 차와 누에콩 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콩을 한 알 집어먹고 차를 한 모금씩 마시면 아주 고소하고 향기로웠다.
제원례는 이렇게 한가로이 보내는 시간을 아주 좋아했다. 적지 않은 풍만루 사람들이 부루주치고 너무 게으르다고 투덜거렸지만, 정말 일을 할 때는 빈틈없이 야무지게 처리했다. 다른 부루주보다 훨씬 고단수인 셈이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자 제원례는 미간을 찌푸렸다.
“일광욕을 할 때는 방해하지 말라고 했잖느냐? 정마대전이 시작된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급해?”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린 제원례는 풍만루 제자 하나가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옆으로 초휴와 무도종사 세 명이 나란히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제 루주, 오랜만입니다.”
초휴가 빙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제원례는 식은땀을 닦고 억지 미소를 지었다.
“부루주, 부루주라니까요. 초 대인, 우리 풍만루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사실 제원례는 초휴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라면 더욱 그랬다.
강호에 폭풍우가 몰아치기 일보 전이었다. 정보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풍만루가 지금 정마 양맥의 상황을 모를 리 있겠는가. 지금 무림 상황은 그야말로 가득 찬 화약통처럼 일촉즉발인데 말이다.
풍만루는 중립 세력이었다. 그들은 마도를 도울 생각이 없었고, 마찬가지로 정도와 척을 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신중하고 얌전하게 행동하며 어느 쪽도 찾아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초휴가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무도종사를 세 명이나 데리고서.
음마종 성녀 매경령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강호에서 꽤 이름난 여자가 아닌가. 물론 대부분은 그녀를 매 부인으로만 알지, 성녀 대인인 것은 몰랐지만 말이다.
무상마종의 신참 무도종사 육진은 보통 육 선생으로 불렸다. 무상마종의 대외 작전을 여러 번 지휘한 탓에 무도종사가 되기 전부터도 많이 알려진 인물이었다.
제원례는 잠시 생각하던 끝에 마지막 한 사람도 기억해 냈다. 적련마종의 ‘음살마검(陰煞魔劍)’ 심혈응이 분명했다.
강호에서 유명한 축에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단 출수하면 그의 검은 반드시 피를 보고 상대의 목숨이 끊어졌다.
그의 손에 죽은 무도종사가 적어도 서너 명은 되었다. 출수가 과감하고 독했으며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은마권 무도종사 네 명이 함께 찾아오다니, 아무래도 좋은 일로 왔을 것 같지 않았다. 느긋하게 햇볕을 쬐려던 기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초휴는 제원례 곁의 탁자 앞에 앉더니 직접 차를 한 잔 따랐다.
“제 루주, 걱정하지 마시지요. 소란을 피우려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풍만루에 온 이상 당연히 정보를 사러 왔소이다.”
제원례는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정보를 사러 왔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이 정마대전이라는 민감한 시기라는 것이다. 지금 같은 때 정도 종문에 관한 정보를 초휴 일행에게 팔아도 괜찮을까?
초휴는 제원례의 안 좋아진 낯빛을 보고 손을 내저었다.
“제 루주, 오해하셨소. 나도 법도를 아는 사람이니 그대를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사려는 건 정도 종문에 관한 정보가 아니오. 옛 곤륜마교의 배반자인 지마당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오.”
그 말을 듣자 제원례는 한시름 놓았다. 마도인이 자기네 마도에 관한 정보를 사려는 거야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는 얼른 옥서를 가져오더니 한참 들춰본 끝에 옥부(玉符)에다 내용을 새겨서 초휴에게 넘겨주었다.
“제 루주, 감사합니다. 가격은 얼마인지요?”
제원례는 얼른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지마당 잔당은 잔챙이에 불과하니 별 중요한 정보도 못되죠. 그냥 가져가셔도 됩니다.”
제원례가 어디 감히 돈을 청할 수 있겠는가. 역신 같은 초휴를 빨리 쫓아 보내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이 초휴는 남의 것을 공짜로 받아가는 버릇은 없습니다. 친분은 친분이고 규칙은 규칙이지요. 이것은 우리 진무당에서 만드는 단약으로 강호에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 루주께 드릴 테니, 쓸모가 있거든 선전 좀 널리 해 주십시오.”
그리 말한 초휴는 제원례에게 약병 하나를 건네준 뒤에야 일행과 함께 떠났다.
북연에 자리 잡은 진무당은 여러 세가로부터 거둬들이는 것이 꽤 많았다. 초휴는 아예 단약 공방을 하나 세워서 전문으로 단약을 만들게 시켰다. 이런 알짜 장사를 남에게 맡겨서야 쓰겠는가.
제원례는 그들이 떠난 후에야 단약의 이름을 보고 거의 피를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건 평범한 회혈단이었다.
결국, 정보를 공짜로 가져간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