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06)
706화 상식 밖의 수법
제원례는 멍하니 서 있는 풍만루 제자에게 단약 병을 건네주며 코웃음을 쳤다.
“네가 쓰면 되겠군그래. 얼른 나가!”
제원례는 개운치 못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초휴가 왔다 가는 바람에 햇볕을 쬘 기분도 다 사라지고 말았다. 생각할수록 밉살맞기 짝이 없었다.
풍만루를 나서는 길, 초휴 뒤를 따라 걷는 심혈응의 얼굴에는 흥미로워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형사도나 자신 같은 은마 무사와 초휴와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행동 방식과 대국을 대하는 자세가 달랐다.
그들 같은 은마 무사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자신이 은마라는 현실에 갇혀 있었다. 특히 형사도 같은 자는 떠돌이 병사나 마찬가지였다.
그 자신의 실력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남을 죽인 뒤에는 도망쳤다가 안전해지면 다시 공격하는 것이 전부였다. 판세를 읽는 능력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초휴는 달랐다. 그는 강호 여기저기에 인맥이 있었다. 물론 원수도 온 강호에 퍼져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형사도는 마도 낭인 무사들을 통해 정보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초휴는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풍만루로 와서 상세한 정보를 얻어낸 것이다.
심혈응은 제원례와 초휴가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보았다. 오늘의 거래는 초휴라서 가능했다. 형사도였다면 아마 풍만루에 억지로 쳐들어가서 피 튀기는 싸움을 벌여야 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은마권 사람 중 당당하게 강호를 활보할 수 있었던 자는 손에 꼽았다. 초휴가 바로 그중 하나였다.
초휴는 정보 내용을 한 번 훑더니 다소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지마당 잔당들도 퍽 흥미롭군요. 모조리 다 신분을 바꾸고 서초 조정과 손을 잡았습니다. 지금은 조정 휘하 비밀조직인 암첩사(暗諜司) 소속이군요.”
지마당의 수법은 초휴와 닮은 데가 있었다. 정도 무림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니 정마를 가리지 않는 조정과 손을 잡은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 초휴에게는 이런저런 선택지가 많았으나 지마당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들에게는 살아남을 길이 오직 하나뿐이던 것이다.
* * *
서초의 수도인 강도성, 암첩사 제 삼위(三衛) 수령 소기(蕭旗)는 잔뜩 지쳐 당구로 돌아왔다.
그의 신분은 암첩사 수령이었지만 진짜 정체는 지마당의 전인이었다. 물론 이 비밀 신분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미친개가 떼로 달려들 테니 말이다.
소기 같은 지마당 사람들이 보기에 은마 무리는 미친개였다. 그것도 완전히 ‘미친’ 개였다. 곤륜마교가 멸망한 지 이미 몇백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그 시절의 은원을 물고 늘어진단 말인가? 그 미친개들이 노려보고 있지만 않았어도 지마당이 배월교와 결탁하지 않았을 거고, 서초 황실에까지 달라붙지는 않았을 텐데!
배월교는 그렇다 치자. 곤륜마교라는 큰 나무가 쓰러지는 판에 미리 기댈 곳을 준비해 둔 것은 다행이었다.
그 뒤에는 서초 황실에 붙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진작 재앙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초 조정 밑에서 일하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근래 들어 지마당의 고생은 말로 다 표현 못 할 지경이었다.
사실 삼국은 제각기 암첩사 같은 세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동제에는 백호당이 있었다. 동제는 돈도 많고 통이 컸으며, 힘도 강대했으니 아예 사령의 하나로 위세가 흉흉한 백호당과 손을 잡은 것이다. 이름을 바꿀 필요조차 없었다.
북연의 경우 최근에 초휴와 손을 잡고 진무당을 세웠다. 소문을 듣자니 꽤 잘 굴러가는 모양이었다.
서초 암첩사는 가장 먼저 만들어졌으나, 가장 일하기 괴롭고 힘든 곳이었다. 곤륜마교의 당구였던 지마당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서초 황실이 너무 약해서였다.
조정과 강호가 합작할 때는 조정이 주가 되기 마련이다. 적어도 충분한 힘을 지닌 뒷배 노릇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초 조정에는 자국 영토의 거대 문파에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는 못난 자들뿐이었다. 촉중 같은 곳에서는 당가보의 말이 조정보다 훨씬 잘 먹혔다.
그러니 암첩사가 뭘 어쩌겠는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소기가 당구로 들어섰을 때는 다른 위의 수령도 몇 명 모여 있었다. 다들 천인합일의 실력자로 강도성 주변 순찰과 경계를 맡은 자들이었다. 소기를 보고 누군가 물었다.
“오늘은 무슨 일 없었소?”
소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없었소. 하지만 산에 비가 쏟아지려면 바람이 세게 부는 법, 정마대전이 터지기 직전이니 신중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겠소.”
누군가 냉소했다.
“실컷 싸우라지요. 이참에 미친개 같은 은마 놈들도 말려들어서 양패구상하면 제일 좋을 텐데 말이지.”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건 모두 알고 있었다. 은마 사람들이 머저리도 아니니, 이런 일은 끼어들지 않을수록 좋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소기가 갑자기 물었다.
“참, 그 초휴란 자도 은마 소속 아니오?”
“그런 것 같소. 은마는 조용히 지낸 지 오래인데 그 녀석은 상당히 시끄럽더군. 북연에서 진무당을 맡고 있는데 위세가 대단해서 북연 무림이 꼼짝 못 한다고 합디다.”
다들 부럽고 질투 나는 표정이 되었다. 초휴는 북연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있었다. 서초 황실과 손을 잡고서도 황실 뒤치다꺼리나 하느라고 쩔쩔매는 그들과는 처지가 다르지 않은가.
소기가 냉소했다.
“이번 일에 초휴까지 말려든다면 더할 나위 없지. 그자가 사라지면 우리가 북연에 가서 황제와 손잡고 일하는 건 어떨지 당주께 건의해 보겠소. 진무당의 주인이 되면 지금처럼 고생할 일 없을 테니까.”
“내가 진무당을 넘겨주면 너희가 굴릴 수나 있을 것 같나?”
난데없는 목소리에 지마당 사람들은 온몸의 털이 거꾸로 서는 듯했다. 소름이 오싹 끼쳤다.
여기는 암첩사의 비밀 당구였다. 밖에서는 평범한 약재상처럼 보이고, 안에도 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 기척도 없이 나타났는데 진법조차 반응하지 않았다. 실력이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고개를 돌린 사람들의 눈에 검은 옷의 남자가 보였다. 온몸에 마기를 두르고 기괴하게 웃고 있는 준수한 얼굴의 청년이었다.
정말 그들을 전율하게 한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그것은 마치 아무렇게나 죽여 버려도 상관없는 돼지 한 무리를 보는 눈이었다.
“웬 놈이냐!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소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이 저 유명한 초휴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초휴와 얽힌 적이 없어서였다. 조금 전까지 초휴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별 의미도 없는 한담에 불과했다. 저쪽은 북연, 이쪽은 서초였다. 초휴가 자신들 앞에 나타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풍만루까지 가서 초휴의 화상을 돈 주고 살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무슨 초휴의 추종자도 아니고 말이다.
“내가 이끄는 진무당의 주인이 되겠다고 떠들지 않았나? 그러면서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소기가 몸서리를 치며 외쳤다.
“도망쳐!”
초휴가 진무당 사람인 것은 알 바 아니었다. 진정 무서운 것은 초휴가 은마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그들과 은마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것이다!
자리에 있던 다섯 명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다.
살기(煞氣)로 새빨갛게 물든 장검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개중 한 명을 가볍게 관통했다. 심혈응의 솜씨였다.
옥 같은 손이 가볍게 힘을 불어넣자 마기가 춤추듯 휘날렸다. 무사 하나가 온몸을 뒤틀며 칠공으로 피를 흘렸다. 그 꼴이 된 자의 얼굴은 괴상하게 웃고 있었다. 매경령의 솜씨였다.
한쪽에서는 거대한 마기의 손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 무사 하나를 고깃덩이처럼 짓이겨 버렸다. 난폭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기술이라 부르기도 뭣한 그 출수를 한 자는 육 선생이었다.
세 사람의 출수를 본 초휴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풍만루에서 정보를 얻어냈으니 일단 암첩사의 거점 하나를 찾아낸 뒤, 지마당의 상황을 천천히 심문해 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이분들을 좀 보라지. 나서자마자 다짜고짜 무지막지한 살수를 휘두르지 않는가. 모두 죽여 버리면 누굴 붙들고 물어본단 말인가.
“다 죽이면 안 됩니다!”
초휴는 손을 휙 내저었다. 두 줄기 정신력이 뻗어 나가더니 마지막 남은 두 사람을 거칠게 후려갈겨 땅바닥에 때려눕혔다. 그 둘까지 죽게 둘 수는 없었다.
심혈응은 검을 거두고 다소 계면쩍게 말했다.
“미안하오. 버릇이 되어놔서.”
매경령과 육 선생은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었다. 밉살맞은 배반자라 무심결에 손속을 심하게 휘둘렀다는 투였다.
소기와 나머지 한 명을 끌어온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말해 봐라. 지마당의 다른 지부는 어디 있고,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옛날 곤륜마교에서 가져갔던 물건들은 어디에 두었나?”
몸부림치던 지마당 무사는 콧방귀를 뀔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마당과 은마간의 원한은 이미 수백 년이 되었다. 그들이 서초로 피하기는 했지만, 아예 중원에 나선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서초 내에서도 은마 사람에게 들켰다 하면 죽을 때까지 싸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마당 무사들은 어려서부터 선배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받았다.
배월교 같은 명마권 사람과 마주치면 극진히 존중해야 한다. 그냥 내가 아랫사람이라 생각해라. 정도 종문의 무사를 만나면 꽁무니를 빼도 좋다. 하지만 은마 무사와 마주쳤을 때는 끝장을 보든가, 죽어서 끝나든가 둘 중 하나다.
지마당 무사의 태도를 본 초휴는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그는 손을 내뻗어 그대로 그의 목을 움켜쥐고 부러뜨려 버렸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지마당 무사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설마 이렇게 간단히 죽일 줄은 말이다!
이자는 상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인가?추궁하려는 것 아니었나?
한 번 대답을 안 했다고 바로 숨을 끊는다고? 협박이나 회유는? 엄혹한 고문은? 그 많은 단계를 모조리 생략한다고?
사실 그 지마당 무사가 죽기 직전 떠올린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죽음이 두려웠다.
사실 그는 기개 있는 사람이 못 되었다. 초휴가 한 마디만 더 몰아붙였다면 그대로 다 털어놓았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초휴는 더 말하기조차 귀찮았다.
초휴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소기는 다급히 부르짖었다.
“말하겠소! 다 말하리다! 지금 우리 지마당 부당주는 경성에서 암첩사 총수령 노릇을 하고 계시오. 나머지 여섯 개 지부는 서초 각지에 흩어져 있고, 모두 무도종사 급의 실력자들이 지키고 있소. 곤륜마교에서 가져온 물건은 전부 당주와 부당주가 계신 곳에 있소. 나 같은 자는 접근할 자격조차 없소.”
단숨에 아는 것을 다 쏟아놓은 소기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초휴를 바라보았다.
“초 대인, 아는 대로 다 말했으니 나를 살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앞으로 저는 지마당 사람도 아닙니다. 서초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겠습니다!”
초휴는 그의 머리를 두드리며 웃었다.
“안심하시오. 듣고 싶은 답은 다 들었는데 내가 뭐 하러 죽이겠소.”
그렇게 말한 초휴는 곧장 몸을 일으키더니 등을 돌려 자리를 떴다. 그러나 소기가 한숨 돌리기도 전에 태연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분께 맡기지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참혹한 비명이 들렸다. 깊은 원망과 한마저 배어 있었다.
초휴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죽인 것은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이 죽일지 어떨지는 그가 신경쓸 문제는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초휴는 지마당 사람들에게 원한이 없었다.
그들이 곤륜마교를 배반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초휴가 곤륜마교 출신도 아니었으니 원한 같은 게 있을 턱이 없었다.
그들의 생사는 자신과 무관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마당이 가진 물건은 매우 탐이 났다.
곤륜마교의 물건치고 명품 아닌 것은 없다. 이것은 강호에서 공인된 사실이었다.
형사도는 오래된 마병을 만들어냄으로써 한 가닥 하는 고수가 되었고 초휴가 얻은 마심당의 전승도 쓸 만했다. 지금 지마당에는 그들의 선조가 남긴 것에다 곤륜마교의 다른 당구 물건들도 있었다. 그 얼마나 진귀한 것들이겠는가.
다만 지마당의 실력은 초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약했다. 옛날 곤륜마교는 당구 하나에서도 강자가 무더기로 나왔다.
곤륜마교 당주쯤 되면 대문파의 장문이나 노야와 비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초휴가 생각하기로는 마심당 전승만 놓고 추측해 봐도, 마심당 당주 남궁무명의 실력은 최소한이 진화련신경일 듯했다.
지마당은 같은 편을 배반하고 기습하여 수많은 이득을 챙겨 달아났다. 지금 같은 꼴이 될 바에야 뭣 하러 그런 고생을 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