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1)
초휴의 판단은 적중했다. 결국, 섭동류는 초휴와 대결하는 무리수 대신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초형,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어 친구는 못되었지만, 나는 자네가 마도의 길로 빠지는 걸 원치 않아. 북연 강호에서 우리 취의장은 줄곧 악을 징벌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자는 원칙을 고수해왔네. 초형, 이 말을 분명히 명심하기 바라네.”
섭동류가 이 말을 한 의도는 명백했다. 지금 당장 초휴를 건드리지는 않겠지만, 훗날 초휴가 자신이 징벌할 명분이 생기기만 하면 가차 없이 취의장의 정신을 내세워 처단하겠다는 뜻이었다.
섭동류는 일단 여양산의 보물부터 확보하고 볼 심산이었다.
초휴와 여봉선은 피를 보고 나서야 바라던 대로 균열 가까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섭동류 패거리가 차지한 것 다음으로 좋은 자리였다. 그다음 날이 되자 균열은 더 크게 벌어졌으나, 정작 고대하던 보물은 보이지 않고 뜻밖의 인물이 나타났다.
십여 명의 무사들이 인파를 가르고 산 정상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 대오의 선두에는 준수한 용모에 더해 오만한 기색을 풍기는 젊은 공자가 있었다. 비단 도포 위에 은백색의 두툼한 여우 가죽 외투를 걸친 그는 온몸에서 귀티와 부티가 함께 넘치고 있었다. 그의 수하들도 하나같이 두꺼운 옷차림에다 거대한 체격과 험상궂은 인상이었다. 한눈에 봐도 그들이 연동(燕東)지역 출신들은 아님이 분명했다.
이들의 등장에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초휴도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다름 아닌 극북표설성(極北飄雪城)에서 온 사람들로, 극북표설성도 칠종팔파 중 팔파에 속하는 북연의 대형 문파였다. 문파의 위치가 요동의 북쪽 끝자락에 있다 보니 일 년 내내 두꺼운 눈에 덮여 있고 하절기에만 잠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사람도 거의 살지 않고 연나라 군대조차 그곳에는 주둔하지 않았다.
혹한의 황무지에 세워진 극북표설성은 나름 환경적 특성을 살려 육신을 강건히 담금질하는 무공이 발전되어왔다. 솔직하게 평하자면 극북표설성의 영향력은 취의장에 버금갔고, 무공 실력으로는 취의장을 압도할 수준이었다.
지금 대오를 이끌고 온 사람은 극북표설성 백(白)씨 가문의 대공자이자 용호방 십팔 위에 올라있는 ‘벽혈한창(碧血寒槍)’ 백무기(白無忌)였다.
백무기는 얼핏 호강스럽게 자란 대갓집 도련님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어려서부터 극북표설성의 극악한 환경에서 수련해 온 강단 있는 무사였다. 십삼 세 때 자기보다도 키가 큰 창을 메고 금창약 한 병만 지닌 채, 홀로 요동의 숲속으로 들어가 설랑(雪狼)과 갈색 곰을 사냥해가며 수련에 정진했다. 그로부터 이년 후 응혈경에 이르러서야 집에 돌아왔는데, 그때 곰과 늑대 가죽을 바리바리 끌고 와서는 형제자매들 모두에게 외투를 지어 선물했다고 한다.
현재는 용호방에서의 서열이 섭동류보다 낮을지 모르나, 섭동류가 그렇게 높은 서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강호를 뜨겁게 달군 본인의 명성과 빛나는 업적에서 비롯된 바가 컸다. 따라서 실력만 논할 것 같으면 백무기가 떨어진다고 볼 수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백무기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섭동류의 눈에는 경계의 빛이 떠올랐다.
여양산에서 보물이 나타날 거라는 소문은 애초에 멀리까지 퍼지지도 않았고 반향도 그리 큰 편이 못되었다. 따라서 이곳에 보물에 관심을 갖고 나타난 자들은 대다수가 임중군 인근의 일부 세력들이었다. 게다가 극북표설성이 연동지역으로부터 왕복 한 달은 걸릴 만한 먼 위치라는 걸 감안 할 때, 그들이 이 소식을 접했어도 이처럼 빨리 당도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니 백무기의 출현은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백무기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섭동류와 그의 수하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이 최강일 거라 믿고, 이미 보물을 손에 넣은 듯 의기양양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백무기가 끼어드는 바람에 들떴던 마음이 일시에 가라앉고 말았다. 섭동류는 경계심을 애써 감추며 백무기에게 다가가서 아는 체를 했다.
“백형, 어쩐 일로 임중군까지 발걸음을 하셨소? 요즘 간간히 사냥이나 하시고, 대부분의 시간을 북극표설성에서 수련하며 보낸다고 들었소이다. 취의장에 술이라도 한잔하러 오실 일이지, 서운하게 어찌 얼굴 한번 안 비칩니까?”
그러자 백무기는 귀찮다는 듯이 대충 인사를 건넸다.
“섭형 같이 공사다망한 분을 어찌 내가 방해하러 갈 수 있겠소? 내가 여기 온 건, 부친의 명을 받고 동제로 가던 길에, 이곳에 보물이 나타날 거라는 소식을 듣고 눈요기나 할 겸 와본 거요. 그런데 섭형은 내가 여기 온 게 탐탁지 않은 모양이구려?”
말을 맺으며 백무기는 곁눈질로 섭동류를 슬쩍 쳐다보았다. 두 사람 다 북연의 젊은 준걸로서 서로 알아온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러나 백무기는 섭동류를 볼 때마다 그의 가식적인 태도가 눈에 거슬렸다. 밥맛없는 놈을 보면 맞붙어 싸우면 그만이고, 좋은 물건을 보면 뺏으면 그만이다. 이처럼 백무기는 섭동류와는 달리 매사에 단순하고 거칠었다.
그의 이런 성향은 극북표설성의 성향이기도 했다. 칠종팔파에는 정도종파도 있고 마도종파도 있었다. 그중 북극표설성은 마도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도도 아닌 애매한 존재였다. 포악한 행사로 강호에서 욕도 많이 얻어먹었다.
사실 백무기가 섭동류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게 된 이유는 용호방의 서열문제가 컸다. 자신이 피땀을 쏟아가며 열심히 창을 휘둘러 용호방에 오른 반면, 섭동류는 그저 얍삽하게 잔머리 굴려 잔재주나 피웠을 뿐, 그밖에 할 줄 아는 게 무엇이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물론 고작 백여 명의 인원으로 수천 명에 달하는 흑운 십팔채를 궤멸시킨 건 대단한 업적이긴 했다.
하지만 그 전투에서 목숨 걸고 싸운 건 다른 이들이 아닌가 말이다. 섭동류는 요령껏 뒤에 숨어 이래라저래라 지시만 내리다가, 승부가 사실상 결정 난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찬란한 조명을 받으며 등장한 것밖에 없지 않은가. 백무기는 매사에 날로 먹으려 드는 자들을 혐오해왔다.
한편, 줄곧 섭동류 곁에 빌붙어있던 세력가 출신 무사들은 백무기와 섭동류를 번갈아 쳐다보며 한마디도 끼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극북표설성이 비록 연동지역에 있지는 않지만, 북연의 대형 문파임이 틀림없으니 그들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건 없었다. 이처럼 두 거물의 신경전이 날카로움을 더해가고 있을 때 공연히 끼어들어 불똥을 맞는 것보다는 조용히 뒤로 물러나 있는 게 상책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나름대로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무사의 시선이 얼결에 백무기와 정통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백무기의 눈빛이 어찌나 매섭고도 차갑게 돌변했던지, 순간적으로 그 무사는 뼛속까지 얼어붙어 잔뜩 겁을 먹고 말았다. 섭동류 쪽에 몰려있는 무리들을 아니꼽게 생각하던 백무기는 대놓고 그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거기 당신, 뭘 꼬나보고 있는 거야?”
백무기에게 걸려든 무사는 당황한 나머지 금세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는 애당초 두 사람 간의 일에 끼어들 생각은 전혀 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건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일을 당한 셈이었다.
그러자 섭동류가 그의 앞을 막아서며 달랬다.
“백형, 너무 겁주지 마시오. 백씨 가문의 비전무공인 빙혼신목(冰魂神目)이 완성되면 귀신도 얼려버린다고들 하지 않소. 갓 선천경에 이른 무사가 어찌 백형의 눈빛을 감당해낼 수 있겠소이까.”
“하하하, 수하랍시고 감싸려는 거요? 걱정 마시오. 내 빙혼신목은 아직 완성되려면 한참 멀어서 사람을 상하게 하지는 못하오.”
백무기가 호탕하게 웃어젖혔으나 섭동류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 섭동류에게는 그저 형제와 친구만 있을 뿐 수하는 없소이다.”
그러자 백무기가 듣기 싫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자자, 그저 장난 한번 쳐본 것뿐이니 좀 봐주시게. 그나저나 나도 보물에 흥미가 있어 이번에 끼어볼까 하오. 최근 몇 년간 계속 운이 따르질 않아 고민이었는데, 이처럼 우연찮게 보물 소식을 듣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슬슬 운이 트일 모양이오. 물론 섭형은 좋았다 말았겠지만 말이야. 여기서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다가 자칫하면 나한테 선수를 뺏기게 생겼으니 어찌 안 그렇겠소, 하하하!”
그 말에 순간 섭동류의 눈이 예사롭지 않게 빛났다.
“애당초 나는 여기서 내가 제일 강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소. 저쪽에 소속 문파도 없는 젊은 실력자 두 명이 있는데, 저들이 동급 무사를 해치운 얘기를 들은 후, 나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던 참이외다. 이따가 쟁탈전이 벌어지면 나는 저들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울 테니, 백형이 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소.”
그 말에 백무기의 시선이 섭동류의 눈길을 따라 옮겨가다가 한옆에 서 있던 초휴와 여봉선에게서 멈췄다. 뜬금없이 냉소를 터트린 그는 옆의 수하에게 귓속말로 몇마다 이른 후 섭동류에게 말했다.
“사람이 많을수록 흥미진진한 법이지. 몇 번 싸워보지도 않고 덜컥 보물을 손에 넣으면 너무 싱겁지 않겠소?”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옆으로 붙어 섰다. 더 이상 섭동류 같은 가식 덩어리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윽고 좀 전에 백무기에게 지시를 받고 갔던 하인이 돌아와 최근 여양산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일들에 대해 보고했다. 그제야 섭동류가 그 두 사람 때문에 체면이 깎인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섭동류가 은근히 자신을 부추겨 그 둘을 손보려 했던 속셈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섭동류가 한 말이 죄다 거짓은 아니었다. 저 두 사람의 실력이 동급의 무사를 애호박 채 썰듯 단칼에 해치울 만큼 강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평상시 같았으면 싸우길 좋아하는 백무기가 그들에게 흥미를 느끼고도 남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 여양산의 보물이 과연 무엇일까에 모든 신경이 쏠려있었다.
백무기가 합세하니 여양산은 더욱 북적였다. 하지만 초휴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사람이 많다고 해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많아지면 혼전 양상도 심해질 것이고, 그러면 자신이 뜻밖의 횡재를 할 가능성도 커질 터였다. 정반대로 한 세력만 독보적인 우세를 띄게 된다면, 그가 보물에 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그로부터 사흘 후 여양산의 균열이 갈수록 커지더니, 급기야 그 틈에서 짙은 녹색 빛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뒤이어 여양산 전체가 뒤흔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균열이 ‘쩍’하고 갈라지면서 세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을 거대한 통로와 돌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입구를 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안색이 돌변하여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돌계단의 존재는 여양산 땅속 전체가 유적인 지하 궁이 자리 잡고 있음은 물론, 그 안에 수많은 보물들이 무더기로 있음을 의미했다. 뒤에 처져있던 낭인 무사들은 이곳에 보물이 하나 건, 여러 개건 간에 자신들의 차지가 될 확률은 극히 미미한 터라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었다. 하지만 땅속 전체가 유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이제 그들에게도 콩고물이나마 얻어먹을 희망이 생긴 것이다.
돌계단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균열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이를 밟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반면, 초휴는 서두르지 않고 여봉선과 함께 사람들의 후미를 뒤따랐다. 진법의 힘이 완전히 소실되었다고는 하나, 그게 곧 땅속이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위험을 무릅쓰고 앞장서서 길을 열어준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끝
ⓒ 봉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