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11)
711화 대전에 나서다 (1)
지금 보이는 광경, 느껴지는 위세, 허도는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허자는 이미 천지통현의 경지에 도달했다. 강호 지존방에 오르고도 남을 힘을 손에 넣은 것이다.
지금 허자의 실력이라면 그가 대광명사를 나서는 순간, 그간의 유언비어는 씻은 듯이 사라지지 않겠는가. 방장의 자리 역시 이름만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것으로 바뀌게 될 터였다.
다음 순간 금빛 불광과 함께 경이롭기 그지없던 대불도 함께 사라졌다. 붉은 가사를 걸치고 눈을 반쯤 지그시 감은, 자비로운 얼굴의 노승이 홀연히 허도 앞에 나타났다.
“허도 사제, 또 술을 훔쳐 마셨는가.”
허도는 화들짝 놀라서 얼른 말했다.
“술이 아닙니다. 방장 사형, 보세요. 물이라니까요.”
허자는 고개를 저었다.
“자네 마음에 술이 있으면 무엇을 마셔도 술이지. 계율을 어겼으니 벌을 받아야겠군그래.”
허도의 낯빛이 시커메졌다.
“아니, 방장 사형. 지금 저를 놀리실 때입니까? 보아하니 이미 천지통현 경지에 들어서신 것 같은데요?”
이미 짐작이 가기는 했으나 허자에게 직접 들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허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천지통현의 경지는 문과 비슷해. 밀어서 열리면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거야. 밀어서 열리지 않는다고 억지로 부수고 들어가려 했다가는 더 굳게 잠길 뿐이고.”
허도는 할 말이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천지통현이 된 후에도 무슨 소린지 종잡을 수 없게 중얼거리는 습관은 여전하지 않은가.
‘좀 쉽고 간단하게 말해 주면 어디가 덧나나?’
“배월교 쪽은 어찌 됐나?”
허자가 물었다.
그는 폐관하긴 했으나 매일 폐관하는 선방에 와서 바깥의 상황을 알리는 제자가 있었다. 해서 중요한 일은 손바닥 보듯 환하게 알고 있었다.
허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야소남은 배월교 총단을 떠나 단장애에서 마병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마병의 틀은 배월교를 창설한 선조가 남긴 것인데, 기이하고 강대한 위력을 지녔다더군요. 역대 배월교주는 다 그것을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고요. 하지만 일단 만들어내기만 하면 옛 곤륜마교의 삼대 마병과 비견할 수 있을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야소남도 꽤 웃기는 자 아닙니까. 병기 하나 만들자고 거기까지 가다니요. 그 큰 배월교에 그거 하나 만들 자리가 없었을까요?”
허자는 먼 곳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야소남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를 만난 지도 오래되었군. 정말 문 안에 틀어박혀 우리보다 더 멀리 갔을까?”
허도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 했다. 그러나 허자는 한 발짝 내딛기 무섭게 이미 허공에 떠오르더니 금색 빛줄기로 변했다. 그는 곧장 먼 곳을 향해 쏘아가더니 찰나 간에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엄격히 말해 어공비행(御空飛行)은 천지통현 경지의 강자만이 쓸 수 있는 것이었다. 무도종사가 떠오르는 것은 어공이라 할 수 없었다. 좀 더 높이, 그리고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뛰어오른 것일 뿐이다.
진화련신이라면 할 수는 있었으나 오랜 시간을 지속하기는 힘들었다. 진화련신의 어공은 자신의 강대한 강기를 써서 주변의 천지 원기를 움직여 어공의 효과를 낸다. 그러니 결국 자신의 힘을 소모하는 셈이었다. 물론 아주 강한 자라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을 테지만 말이다.
천지통현에 도달한 사람은 무도로써 천도를 깨우친 것과 같아서, 이미 천지의 일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천지의 규칙마저 바꾸어 천지의 힘이 비행을 돕도록 만드는 것이니 그야말로 진정한 어공이라 해야 할 것이다.
허도는 날아가는 허자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크게 소리쳤다.
“사형, 잠깐만요! 저도 데리고 가야죠!”
부옥산 정마대전은 아무래도 규모가 작았다. 이번 정마대전은 곤륜마교 멸망 이래 가장 규모가 큰 정마대전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얼마나 짜릿한 광경이겠는가.
허도는 자신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허자가 그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천지통현 강자의 속도는 두려울 정도라 눈 깜박할 사이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허도만 얼빠진 표정을 한 채 혼자 남겨지고 말았다. 허운이 놓고 간 것으로도 모자라 허자마저 그를 두고 간 것이다. 결국 그는 집이나 지킬 수밖에 없었다.
야소남의 움직임은 강호에 풍운을 불렀다.
동제, 상수 영가 저택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누각이 하나 있었다. 창문이 일절 없는 누각의 안에는 실낱같은 빛 한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별안간 누각 문이 열리더니 웅장하기 짝이 없는 기세가 터져 나왔다. 마치 깊이 잠들어 있던 거대한 용이 눈을 뜬 듯했다.
누각에서 엄숙한 얼굴을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그의 장포에는 구름을 노니는 흑룡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은빛 머리는 흐트러짐 없이 빗어 올렸고 손은 뒷짐을 졌는데, 군왕과도 같은 패기는 당세의 명군 북연 항륭을 능가하는 듯했다.
그 앞에는 같은 옷을 입은 중년인이 서 있었다. 중년인 역시 웃음기라고는 전혀 없는 엄숙한 얼굴이었다. 마치 노야와 같은 틀에서 찍어낸 것 같았다.
“노야, 직접 가시렵니까? 사실 이번 일에 우리 상수 영가가 꼭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노인은 담담히 말했다.
“삼서(三書), 명심하거라. 세상에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없다.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뿐이지. 정도와 마도? 그래 봐야 이익 때문에 싸우는 것일 뿐, 마도를 박멸해서 무림에 정의를 세우자느니 하는 건 헛소리다. 아직 배월교가 강호에 무슨 화를 끼친 것도 아니지 않으냐.”
“그럼 굳이 왜 가시려는 겁니까?”
허공을 올려다보는 노인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
“오백년 전 곤륜마교가 천하에 위세를 떨쳤을 때, 강호인들은 오로지 독고유아만 알아주었다. 그 후 영현기가 우뚝 솟아오르자 다들 선인 영현기의 이름만 기억하게 되었지. 그 난세 속에 얼마나 많은 영웅호걸이 굴기했는지, 뛰어난 재능을 품은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누가 알아나 주더냐? 그들과 한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인 동시에 유감스러운 일이기도 하지.”
거기까지 말한 노인은 잠시 말을 멈췄다.
“삼서, 나도 이제 늙었다.”
말로는 늙었다고 하지만 노인은 등이 꼿꼿했고 기운도 강대했다. 눈빛도 젊은이보다 예리하여 노쇠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상수 영가를 위해 흑탑에서 오십년을 갇혀 있었다. 아마 강호인들 대부분은 내 이름을 잊었을 테지. 상수 영가의 뒷일은 너희에게 맡기마. 나는 침상에 누운 채 늙어 죽고 싶지는 않다. 오백년 전 수많은 영웅이 떨쳐 일어나 풍운을 일으키던 시대는 놓쳤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다. 배월교의 야소남은 독고유아 이래 천하 마도의 일인자라 할 만하지. 그런 자와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는다면 나이를 헛되이 먹은 것밖에 더 되겠느냐?”
그렇게 말한 노인의 몸은 한 줄기 검은 빛살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중년인은 멀어지는 노인의 그림자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같은 시각 동제 진무교.
진무교 대전에는 가부좌를 튼 수십 명의 도사가 있었다. 노인, 중년, 그리고 드물게 젊은 도사도 보였다.
대전 가득히 타는 향의 연기가 마치 안개 같았고 분위기는 침중하기 짝이 없었다.
가장 앞에 앉아 있던 회색 태극 도포의 늙은 도사가 탄식했다.
“나무는 조용히 지내고 싶어도 바람이 그치지 않는구나. 야소남이 대놓고 마병을 제련하는 것은 우리가 출수하도록 몰아가려는 것이다.”
아래에 있던 사람이 권했다.
“장문, 옛날 곤륜마교가 위세를 떨쳤을 때도 우리 진무교의 영현기 조사께서 그 광풍을 막아내시지 않았습니까. 조사께서 실종되신 이래 진무교는 줄곧 쇠락해 왔고, 절정기의 힘을 회복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번에 우리가 또 희생해야만 합니까?”
“야소남은 이미 천지통현에 올라 보천심경의 대성을 이뤘습니다. 실력을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노천사와 수보리선원 신승 나마도 이미 그에게 패했습니다. 적을 추켜올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장문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 진무교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됩니다.”
늙은 도사는 진무교의 현임 장문인 ‘현진진인(玄辰眞人)’ 육장류(陸長流)였다.
영현기가 죽은 후 진무교에는 뛰어난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 육장류 역시 마찬가지였다. 풍운방 육 위에 올랐으니 한 발짝씩 힘들게 내디뎌서 얻어낸 것일 뿐, 그가 일평생 쌓은 전적 중 대단하다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가 대단하다고 할 만한 유일한 점이 있다면, 다른 진무교 제자들은 어린 시절 입교하여 수행한 데 비해 육장류만은 스무 살이 넘어서야 무도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전까지 그는 평범한 서생이었다. 그저 도문을 좋아하여 무교에 향을 올리러 오는 손님이었다. 그러다 애정 문제로 괴로움을 겪고 홧김에 입문한 뒤 외문 제자로 수도하기 시작했다.
본래 진무교의 외문제자는 도를 닦을 뿐 무술을 배우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도사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육장류의 도가 경전에 대한 이해력이 진무교 내문의 고위층을 놀라게 했다. 해서 그는 파격적으로 내문 제자가 되어 무도를 수련하게 되었다.
육장류는 단번에 세상을 놀라게 한 게 아니고 한 발 한 발씩, 발자국을 남겨가며 지금의 자리에 도달했다. 젊은 시절 용호방에 오른 적도 없었고, 중년 시절에도 풍운방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
육장류가 장문이 된 것은 그가 진화련신에 도달하고 선대 장문과 선배 무사들이 모두 죽은 뒤의 일이었다. 그때는 이미 늙은 도사가 되어있었다.
풍운방 육 위에 오른 것은 진화련신의 실력을 갖추고 행한 몇 번 안 되는 출수에서 모두 상대를 이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진무교 장문이라는 것도 큰 몫을 차지했다. 그 자리에 앉았다는 것 자체가 강호를 흔들 수 있는 실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 모인 진무교 무사 대부분은 육장류가 나서기를 바라지 않았다.
진무교는 과거에 이미 나서지 않았던가. 지금은 영현기 때처럼 지존방의 강자가 버티고 있어서 하늘이 무너져도 독야청청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백년 전에야 진무교가 제일 강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닌 것이다.
육장류는 탄식했다.
“옛날 조사님은 독고유아를 이길 수 있을지 어떨지 본인조차 모르셨지만, 그래도 그 길을 가셨다. 지금 우리 진무교가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물러서고, 다른 종문에서도 승산이 안 보인다고 물러서고, 그러다 보면 누가 남겠느냐?”
“하늘이 무너져 내리면 키 큰 이가 우뚝 솟기 마련이지. 하지만 그런 사람마저 고개를 숙이겠다면 키가 커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진무교는 반드시 나서야 한다. 물러나면 마음에 빈틈이 생길 것이고, 조사님의 얼굴에도 먹칠을 하는 셈이니까.”
“더는 막을 것 없다. 나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가야겠다. 조사께서 남기신 불진을 가져갈 것이다. 물론 아직 살 만큼 다 산 것도 아니니 무모하게 죽음을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천사부가 진무교를 대신하여 도문의 영수가 되었다지만, 진무교에는 여전히 적잖은 패가 남아 있었다.
육장류가 말한 불진은 옛날 영현기가 남긴 것으로 그의 독자적인 무도 표지가 새겨진 것이었다. 그러나 신병은 아니었다. 그 안의 기령은 옛날 영현기가 실종된 뒤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표지의 효과만으로도 신병보다 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육장류가 마음을 굳히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저을 뿐 더는 막지 않았다.
육장류는 성격이 온화했다. 평소 진무교 일을 처리할 때도 과격하게 구는 법이라고는 없었다. 그러나 육장류가 일단 결정을 내리면 그 누가 만류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