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14)
714화 시늉만 하는 초휴
배월교 산문에서 몇 리쯤 떨어진 작은 산속, 은마 사람들이 모여 아래쪽의 동향을 관찰하고 있었다.
초휴는 위서애 뒤에 서 있었다. 형사도가 간혹 악의에 찬 눈길로 노려보았으나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를 박살 내겠다고 벼르는 자는 강호에 부지기수로 널려있었다. 형사도 따위가 대수겠는가.
대광명사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은마는 즉각 지원에 나서지 않았다. 약속을 어기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말한 바가 있어서였다. 그들은 배월교를 위해 앞장서서 목숨을 내놓을 생각은 없었다.
본래 첫 번째 공세가 가장 위험한 법이다. 은마가 나설 차례는 배월교가 자력으로 이 공세를 버텨낸 다음이다. 배월교가 이것조차 버티지 못한다면 은마로서도 굳이 죽음을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
배월교 쪽 분위기는 극도로 긴장되어 있었고, 은마도 마찬가지였다.
매경령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옛날 천하의 정도 종문이 연합해서 성교를 공격했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으려나?”
초휴는 대답할 수 없었고, 위서애는 코웃음을 쳤다.
“배월교를 너무 높이 쳐주는구나. 성교에 비하면 아직 한참 멀었느니라 그때는 무림의 모든 정도 종문이 연합해서 성교를 포위했었지. 중립이라 할 만한 세력조차 없었다. 풍만루 같은 곳마저 정도 종문의 편에 서서 정보를 제공했을 정도니, 얼마나 중요한 싸움이었는지 알 만하지 않으냐. 그야말로 존망이 달린 싸움이었다.”
“정도 종문에서도 뻔히 알고 있었던 게야. 우리 성교가 멸망하지 않는 한 그들은 영원히 공포에 떨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아무도 망설이지 않았고, 망설일 수도 없었지. 지금은 어떠냐? 저들이 배월교로 몰려는 왔다만 무림 전체라고 하기에는 한참 모자라지. 정도 종문의 늙다리 괴물들은 아직 나서지도 않았다. 노천사와 나마가 신용을 잘 지키는 자들이라서, 봉문하겠다, 출수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고 안 나오는 것 같으냐?”
늙고 교활한 위서애는 무림이 돌아가는 이치를 환히 꿰고 있었다.
그들이 대화하는 사이 양측은 이미 진세를 펼치고 대치하기 시작했다. 위세와 인원수로 보자면 배월교가 분명 열세였다. 그러나 배월교는 결사 항전의 자세를 갖춘지라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허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배월교를 향해 말했다.
“야소남 쪽의 상황은 당신들도 알 거요. 여럿이서 하나를 치는 게 자랑할 일은 못 되오만, 효과만은 확실하지. 야소남이 살아서 배월교로 돌아올 수 있을 성싶소? 여기서 죽을 때까지 싸운들 아무 의미가 없소. 지금 칼을 놓고 돌아선다면, 내가 그대들을 부처로 만들어 주진 못해도 당신들의 심마는 계도해 드리리다.”
허운의 성품을 아는 사람들은 기괴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투항을 권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기를 치는 것일까?’
강호인에게 허운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실력만이 아니라 수완이 대단하기로도 이름이 높았다. 허자가 폐관하고 있을 때, 대광명사를 관장하던 사람이 허운이었다. 그는 항상 과감하고 강경했다.
허운 앞에서 조건을 흥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남들은 그가 너무 강경하다고 욕했으나, 과감하기 그지없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배월교더러 투항하라니, 성격이 바뀌었단 말인가.
그러나 허운은 대광명사가 너무 엄중한 손실을 보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동황태일이 야소남을 믿는 만큼 허운도 허자를 믿었다. 결국, 승자는 허자일 것이다. 허자가 이기리라는 희망이 있는 이상, 아군의 인원이 많건 적건 주전장은 여기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기서 굳이 목숨을 걸고 싸워 양패구상을 하겠는가?
허운의 말에 동황태일은 웃음을 터뜨렸다. 온몸에서 마기가 타오르며 해를 가릴 것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심마를 계도해? 애석하게도 내 마성은 너무 깊어서 허운 당신이 구제하기는 불가능하오. 설령 부처가 온다 해도 나를 구원할 자격 따윈 없소!”
동황태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분천보감이 펼쳐졌다. 하늘 가득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마염의 위세는 엄청났다.
허운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몸에서 불광이 거세게 일어났다. 범어 영창이 한 음절씩 흘러나올 때마다 허공이 진동하며 메아리가 되돌아왔다.
여섯 개의 음절을 모두 뱉어내자 영창이 하늘 가득히 경문처럼 휘돌며 천지를 울렸다. 그 부처의 목소리 속에서 마염은 녹아들고 번쩍이는 불광으로 변해 버렸다.
두 사람의 대결이 시작되자 다른 무사들도 일제히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일순간 배월교와 정도 종문이 한데 섞이면서 산문 앞은 냄비처럼 끓어올랐다. 무수한 강기가 폭발하고 검기가 휘날리며 서슬 퍼런 도검의 날이 사방에서 번쩍였다.
첫 교전에서는 역시 배월교가 밀렸다.
배월교의 실력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구대 신무제 외에도 십여 명의 무도종사가 있었다.
윗배도 있고 신참도 있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제자들을 이끌고 첫 번째 공세를 막아냈다.
배월교 대제사는 제일 후방에서 주술을 펼쳤다. 진화련신의 고수라도 그의 환마혈신주(幻魔血神呪)에 걸리면 버티기 어려웠다. 무도진단경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주술에 걸려 죽었다.
게다가 여기는 배월교 산문이었다. 아무런 준비가 없을 리가 있겠는가? 싸움이 벌어진 순간 배월교의 진법이 빛을 뿜더니 정도 무사들을 살상하는 마도인들에게 힘을 보탰다.
그러나 배월교가 아무리 준비했고 실력이 제법이라 해도 정도 종문이 지닌 단 하나의 강점만은 이길 수 없었다. 그것은 인원수였다.
대문파 하나만 놓고 보면 대광명사라 해도 배월교보다 수가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크고 작은 수십 개 세력이 모인 것이다.
이편은 무도종사가 한 명인데 저편은 천인합일이 여럿인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는 배월교의 실력이 강하다 해도 당해내기 어려웠다.
특히 상층부의 전력으로 보면, 동황태일의 실력이 군계일학이기는 했으나 정도측에도 그와 필적할 만한 허운이 있었다. 순양도문이나 풍운검총, 하후씨 등의 다른 대문파에도 진화련신의 고수가 있었다. 이런 판에 배월교가 어찌 버티겠는가.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거요!”
동황태일이 갑자기 노호성을 질렀다.
허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가 보고 있다는 것인가? 배월교는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동산에 서 있던 위서애는 기지개를 한 번 켜더니 담담히 말했다.
“어쩔 수 없군. 모두 가보세. 배월교 무리한테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야 없으니.”
위서애의 몸에서 마기가 폭발하더니 곧장 전장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 뒤로 무수한 은마 무사들이 강대한 마기를 터뜨리며 위서애의 뒤를 따랐다.
배월교와 격전을 벌이던 정도 무사들의 안색이 돌변했다.
‘은마에서 참전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명마와 은마 간의 원한은 강호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은마는 명마가 배반자라고 여겼다. 곤륜마교의 멸망을 수수방관하다 못해 불난 집에 부채질까지 했다며 그들을 원망하고 있다는 건 정도에서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양측의 원한은 정도와 마도 간의 원한에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은마가 나섰다면 배월교는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른 것일까?
위서애 무리를 본 허운이 탄식했다.
“그동안 정도 종문에서는 전력을 기울여 은마를 말살하려 한 적이 없소. 훤히 보이는 살길을 열어주었건만, 왜 굳이 흙탕물 속에 뛰어들겠다는 게요?”
“살길? 일시적인 살길은 필요 없소. 당신들의 연합 공격으로 배월교가 멸망하면 다음 차례는 우리 은마가 되지 않겠나?”
위서애가 냉소했다.
허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은마권이 날로 쇠약해져 간다지만 그래도 총명한 사람은 있는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지내는 거야 누구든 할 수 있었다. 그런 자들과 총명한 사람의 차이는 언제 움츠리고 언제 출수해야 할지를 안다는 것이었다.
은마에 온통 사리사욕만 쫓는, 생각 짧은 무리만 가득하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그런 무리가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위서애처럼 상황을 볼 줄 아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은마의 명맥이 끊길 때가 아니었다.
“굳이 이 흙탕물에서 놀아야겠다면 은마는 여기 묘강에 뼈를 묻는 수밖에 없을 거외다!”
허운의 몸에서 불광이 빛을 발했다. 무량불국의 힘이 모여들면서 전장의 허공 절반이 불광으로 덮였다.
허운쯤 되는 경지에 이르면 진정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풍만루조차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풍운방 순위 역시, 가장 최근의 출수에서 발휘한 실력에 따라 매겨졌다.
허운의 마지막 출수는 몇 년 전에 있었다. 북연 천죄 분타가 전멸한 건으로 찾아온 청룡회 수장 보천남과 싸웠던 게 그 마지막 출수로, 그때 허운은 전력을 다하지 않고도 단 몇 초 만에 보천남을 패퇴시켰다.
강호인들은 보천남을 미치광이라고 했다. 확실히 그의 행실은 제멋대로였고 미친놈처럼 보였다. 그러나 미쳤다는 게 곧 어리석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허운의 적수가 못 된다는 것을 깨달은 보천남은 목숨 걸고 싸우려 하지 않고 즉각 떠났다.
허운은 이번 정마대전에서 비로소 전력을 드러내어 싸우고 있었다. 그 힘의 파동은 천지통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지였다.
초휴 역시 싸움 한가운데에 끼어 있긴 했으나 적당히 시늉만 하고 있었다. 게으름을 피우는 게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는 전력을 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차피 진정한 승부는 야소남이 있는 단장애에서 결정될 것이다. 여기는 부차적인 전장에 불과했다. 설령 여기서 승리해도 야소남이 진다면 배월교는 버틸 수 없었다.
그리고 허운이나 동황태일, 위서애 같은 진화련신 고수가 겨루고 있지 않은가. 다른 데였다면 강자에 속할 무도종사가 지금 여기는 흔해 빠진 것이다. 잠시 방심했다가는 죽을 수도 있었다.
초휴가 진화련신 고수 방금오를 죽인 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는 잔꾀를 많이 동원했다. 엄밀히 말하면 방금오는 이미 노쇠했던 데다 낭인 출신이었다.
지금 이곳의 진화련신 고수는 전부 대문파 출신이었고 비범한 전력을 쌓아 풍운방에 오른 인물도 있었다. 초휴는 그들 근처에 접근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혼자서 열심히 싸운다고 전세에 영향이 갈 것도 아니지 않은가. 초휴는 적당히 천절지멸대수혼수를 쓰고 다녔다. 아무렇게나 손을 휘두르면 혼백을 뽑아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살인을 위한 도구인 셈이었다. 아주 간편하고 수월했다.
순간, 초휴의 품속에서 갑자기 뜨거운 열기가 전해져 왔다.
임보황의 시체에서 가져온 붉은 구슬이 박동하고 있었다. 아주 명확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은 피를 원하고 있었다. 아주 많은 피를!
초휴는 이 혈주의 용도를 몰랐다. 이 물건을 고른 건, 처음 본 순간 몸속에서 어떤 박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초휴는 진무당에 돌아가 이 혈주를 차근히 연구해 볼 참이었다. 하지만 정마대전이 그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터졌고 배월교는 이미 전장이 되었다. 그러니 그 일은 일단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또 혈주의 박동이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여기다 피로 공양이라도 드려야 하나?’
그러나 이것이 곤륜마교의 물건임을 떠올리자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마도 물건이 사악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초휴는 천절지멸대수혼수를 거두고, 마혈대법으로 상대의 혈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너무나 눈에 띄었다.
천절지멸대수혼수를 쓸 때는 겉에서 볼 때 이상할 게 없었다. 원신의 힘을 완전히 뽑아내 버리면 상대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강기가 밖으로 터져 나올 일조차 없었다.
그러나 전력으로 마혈대법을 펼치자, 그가 지나는 곳마다 마혈대법의 사악한 힘이 미친 듯이 주위 무사들의 피를 빨아들였다. 가닥가닥 흩날리는 핏줄기 한가운데 선 초휴는 마치 인세에 강림한 ‘혈마’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