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2)
돌계단은 여양산의 땅속 끝까지 곧장 이어져 있었다. 그 엄청난 깊이를 직접 확인하고 나니, 일전에 균열 주위를 파보려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중도에 포기했던 것, 그리고 이토록 오랜 세월을 아무에게도 안 들키고 보존되어 온 것이 납득이 갔다.
이윽고 돌계단의 끝까지 내려가자 거대한 청동문이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땅 위에서는 은은하게나마 반짝이던 진법의 광채가 정작 땅 밑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했다. 악노천 등을 비롯한 세력가들이 서로 눈치를 보더니 자신의 수하들 중 힘이 센 선천경 무사들을 시켜서 청동문을 열게 했다. 그러나 선천경 무사들 여러 명이 힘을 합쳐봤자 그저 잠깐 흔들리다 말뿐, 청동문은 전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유적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들어갈 수가 없다니, 이런 낭패가 또 어디에 있을까. 그러자 백무기가 냉소를 짓더니 누군가에게 명을 내렸다.
“하나같이 쓸모없는 놈들이구먼. 셋째야, 네가 한번 힘을 써보거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백무기의 수하 가운데 키가 족히 삼 미터는 되어 보이는 장신의 거인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는 문에 붙어있던 무사들을 거칠게 옆으로 밀쳐버리고 자신이 걸치고 있던 늑대 가죽 외투도 벗어 던지더니 곧바로 진기운행에 들어갔다. 그가 외마디 기합 소리만 냈을 뿐인데도 온몸의 기혈과 근육이 울끈불끈 튀어나오더니 몸 전체가 엄청나게 부풀어 오르고 퍼런 힘줄이 전신을 뒤덮은 모양새가 흡사 괴물을 방불케 했다.
“여형의 힘으로 저자를 당해낼 자신이 있어?”
초휴가 여봉선에게 속삭이듯 묻자 그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자는 신력(身力) 타고난 데다, 육신의 담금질에 최적화된 무공 위주로 수련해서 그 신력이 더욱 증강되었어. 그러니 힘만으로는 당하지 못하지. 그러나 너무 육신과 힘을 단련하는 데만 치우치고 다른 방면으로는 수련을 소홀히 한 탓에, 전쟁터에서 용맹한 장수 노릇은 잘 할지 몰라도, 나더러 저자를 죽이라 한다면 식은 죽 먹기일 걸.”
그 말에 초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여봉선이 상대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등 출수가 과격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건 자신에 비해 힘이 턱없이 부족한 상대를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싸우기 시작하면 그도 나름대로 전략과 전술을 겸비한 창술을 구사할 줄 알았다.
이윽고 극북표설성의 무사가 전력을 다해 청동문을 밀자, 놀랍게도 선천경 여러 명이 동시에 달라붙어도 꿈쩍하지 않던 문이 대번에 열렸다. 그러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안에서 시커먼 안개가 훅하고 빠져나오더니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강한 부식성을 띤 그 연기는 극북표설성 무사가 피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그의 몸을 뒤덮었다. 사람들은 그의 처절한 비명 소리를 듣자마자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안개가 흩어져 더 이상 몸에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자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뒤늦게 극북표설성 무사가 죽은 걸 알아차렸다. 삼 미터의 장신이던 그의 우람한 몸이 마치 미라처럼 온통 말라비틀어진 한 구의 시신으로 변해 있었다.
“시체에서 나온 독기로군. 만 년 가까이 쌓여있던 독기가 이제야 밖으로 나온 거야. 원래는 이렇게 독하진 않았을 텐데, 지하에 만 년씩이나 팽개쳐져 있다 보니 치명적인 독성을 품게 된 거지. 이걸 보니 저 안에 적지 않은 시체들이 있는 게 분명해.”
앞서 문을 열려다 실패한 무사들은 섭동류의 설명을 듣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만약 북극표설성의 무사가 자신들을 밀어내고 혼자 독박을 쓰지 않았더라면 그 독기는 고스란히 자신들이 뒤집어썼을 게 아닌가 말이다. 이때 백무기는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애먼 무사를 잃은 것을 불길한 징조라 느낀 까닭이다.
잠시 후 사람들이 청동 문을 지나 유적 안으로 들어서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 한줄기만이 문밖에서 새어 들어왔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선천경이나 응혈경 무사들에게 있어 이 정도의 어둠은 별로 문제 되지 않았다. 그들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나면 기혈이 강건해짐에 따라 오감도 크게 발달하기 때문에, 훤한 대낮보다는 못하더라도 물체를 식별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이윽고 유적 안으로 발을 내디딘 사람들은 순간 경기를 일으킬 뻔했다. 보물을 발견해서가 아니라, 그들 주위로 시체들이 한가득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그 유적은 외관이 화려하고 웅장한 것이 지하 궁을 보면 짐작되었다. 그런데 섬뜩하게도 돌기둥마다 자물쇠가 하나씩 둘러쳐져 있고 그 자물쇠마다 미라가 된 시신들이 묶여있었다. 시신의 몸에 뚜렷한 상흔은 없는 대신 처절하게 몸부림친 흔적만은 선명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곳에 묶인 채 굶어 죽은 게 분명했다.
이를 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곳은 마도 종문이 남긴 유적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대개 마도 종문이 남긴 유적은 정도 종문의 것만 못하다고 평가받는다. 왜냐하면, 마도 종문의 것은 잔인하고 악랄한 소지가 다분하여 유적에도 살벌한 장치들이 많이 설치된 데다, 대부분의 마도 무공은 심하게 과격하고 극단적이어서 정도 무사들이 수련하기에 별로 적합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도, 실망할 것도 없었다. 마도의 보물을 손에 넣어 그걸 내다 판다면 대부분의 마도 종파에서 흥미를 보이며 값도 비싸게 쳐줄 게 분명했으니까. 이때 섭동류의 뒤에 서 있던 초휴가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다른 자들은 이곳을 마도 종문의 유적이라고만 여기고 있지만, 초휴는 그 생각이 절반만 정답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이곳은 상고시대 마도의 거물인 ‘절천마존(絶天魔尊)’의 거처였고, 당시 마존은 어기오중의 경지도 뛰어넘은 최강의 존재였다. 다만 살아생전에 워낙 살인을 즐기고 괴팍한 성향을 지녔던지라, 자신의 종문을 세울 실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홀로 지냈었다. 따라서 지금 지하 궁 내에 있는 시신들은 그의 제자가 아니라, 그가 죽을 때 함께 순장된 종복들에 지나지 않는다.
마침내 상황파악을 마친 초휴가 잠시 후 자기를 뒤따라 출수하라는 의미로 여봉선에게 손짓을 해 보였다. 이 정도까지 깊이 들어왔으면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전할 거라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곳은 마존의 처소가 분명하니, 상식적으로도 마존이 자신의 안방 곳곳마다 함정을 파놨을 리는 만무했다.
그 대신 아마도 진법은 설치되어 있어서, 과거에 실력 약한 무사들이 무모하게 난입하려다가 진법에 걸려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물론 만 년도 지난 지금, 진법은 완전히 붕괴하였을 테니 더 이상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지하 궁의 끝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대전이 위치해 있었다. 대전의 제일 위쪽에는 청동으로 만든 왕좌가 놓여있고, 그 위에 검은 도포 차림의 미라가 된 유골이 앉아있었다. 그 검은 도포는 무슨 재질인지는 몰라도 만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혀 삭지 않고 멀쩡했다. 반면 도포 안의 육신은 이미 부패하여 흑수정 같이 새까만 골격만 남아 있었는데, 그건 앞으로 만 년이 더 지난다 해도 여전히 그 상태를 유지할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유골 앞에는 열 개가 넘는 비전함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중 가장 중앙에 놓인 금색 비전함은 어떤 기이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강렬하고 현란한 금빛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얼핏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물건임이 분명했다. 이에 남들이 미처 주의를 기울이기도 전에 초휴가 비전함을 향해 곧장 몸을 날렸다. 그의 목표는 당연히 가장 중앙에 놓인 금색 비전함이었다.
초휴가 움직이는 것을 본 여봉선도 곧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자 이들의 모습을 본 섭동류와 백무기가 비웃듯이 코웃음을 쳤다. 가만히 눈 뜬 채 소속도 없는 낭인 무사들에게 선수를 뺏길 그들이 아니었다.
백무기가 품속에서 공간 비전함을 꺼내더니 거기서 삼 미터도 넘는 길이의 은창(銀槍)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 은창은 크기가 워낙 커서 지니고 있기가 불편한 터라, 사용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공간 비전함에 넣어 다녔다.
공간 비전함이 비록 진귀한 물건이긴 하나, 백무기 정도의 신분에서는 그저 평범한 일상용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창끝은 어떤 종류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어딘가 그윽한 느낌이 나는 붉은 핏빛을 발하고 있었다. 백무기는 창을 손에 들자마자 곧장 여봉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때 섭동류도 이미 출수하여 몸을 바람처럼 앞으로 날리더니 양손을 휘감아 회오리치는 기류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초휴를 향해 강력한 장력(掌力)을 내질렀다.
두 사람이 자신과 여봉선에게 출수하는 것을 본 순간, 초휴의 두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혼전이 벌어진 와중에는 먼저 주도권을 잡아야 승산이 있으니, 저들을 정신없이 몰아붙여 생각할 틈을 주지 말아야 했다.
초휴를 비롯한 고수 네 명이 맞붙는 것을 본 나머지 사람들도 결국 너나 할 것 없이 한데 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상태에서 사람들은 지하 궁에 다른 보물이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눈앞의 비전함을 차지하고 보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지하 궁 유적의 주인의 시신 바로 앞에 놓여있는 비전함이니만큼, 주인이 살아생전에 가장 아꼈던 보물들이 들어있을 게 틀림없지 않은가. 어떤 것이 들었든 진귀한 보물일 건 분명했다.
비전함뿐만이 아니었다. 지난날 강호의 정상급 고수로 추정되는 흑수정 같은 시신의 골격도 불문의 고승이 원적에 든 후 남기는 유리 불사리처럼 만년이 지나도록 썩지 않고 있으니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불문 고승의 불사리를 탈취하면 대광명사나 보제선원에게 시달리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것과는 달리, 이것은 마도 무사의 유골이니 그럴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저쪽에서는 이미 백무기와 여봉선이 맞붙어 싸우고 있었다. 사실 그 두 사람은 구사하는 무공이 비슷했다. 한 사람은 보통의 창을 쓰고 다른 한 명은 미늘창을 쓰지만, 짓누르는 압박감을 동반한 강력한 기세만큼은 별 차이가 없었다.
두 개의 창이 부딪힐 때마다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아마 그 일격이 동급 무사의 몸에 명중했더라면 그 몸은 즉시 가루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여봉선에게 타고난 신력이 있다면 백무기에게는 상대의 신력에 대항할 극북표설성의 비전무공이 있었다. 따라서 두 사람은 쉽게 승부를 내지 못하고 팽팽한 접전을 이어나갔다.
한편, 섭동류가 일장을 내리치려 하자 초휴는 즉시 몸을 틀어 황혼세우를 시전하니, 일순간 그의 핏빛 홍수도가 짙은 살기를 띤 현란한 광채로 뒤덮였다. 반면, 섭동류는 병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두 손만으로도 음양의 근본을 이루는 건곤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섭동류의 두 손이 회오리치며 음과 양의 기운을 번갈아 장력에 담아내자, 마치 천지건곤에 변화가 일기라도 한 듯 홍수도의 기세가 흩어졌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강력한 장력이 홍수도의 몸체에 정통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그 강력한 힘을 온몸으로 받아낸 초휴가 연신 뒷걸음치며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초휴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난날 풍만루에서 섭동류를 용호방 육 위에 올렸던 것은 뛰어난 전략전술 탓도 있었지만, 그의 무공실력도 당당히 한몫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섭동류의 실력을 보니 이미 선천경의 최고봉에 오른 지는 오래되었고, 짐작컨대 내강경까지 불과 한 끗 차이만 남겨둔 상태로 보였다.
끝
ⓒ 봉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