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28)
728화 생각지도 못한 일
영백록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구보다 열세에 놓였던 적이 없었다. 금기서화(琴棋書畫)와 책략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그 밖의 다른 모든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해온 그다.
무얼 차지하고자 남들과 경쟁하거나 진흙탕 싸움을 벌이지도 않았다. 늘 최고 소리를 듣는데 익숙해진 뛰어난 혈통을 지닌 자만의 여유로움 내지는 무감각함이라고나 할까.
그는 심지어 용호방 순위에 대해서조차 초연했다. 하지만 남들이 바라보는 그런 선입견과는 달리 목석이 아닌 바에야 경쟁자들과의 승패와 우열에 완전히 무심할 수는 없었다. 남들과 다투고 경쟁하는 게 귀찮긴 했지만 말이다.
자신은 이번에 분명히 여봉선에게 패했다. 직접 싸워 승부를 낸 건 아니어도 사랑싸움에서 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 갈구해온 여인이 하루아침에 여봉선의 품에 안긴 것이다. 이건 순전히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되고 결정된 일이니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질 성질의 것도 못 되었다.
해서 여태 그녀에게 단 한마디도 따지지 않았다. 자기가 여봉선보다 뭐가 못한지 캐묻지도 않았다. 그녀가 여봉선을 택한 그 순간부터 자신은 그에게 졌음을 깨닫고 스스로 안비연을 연모하는 감정을 접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 여기에 나타난 것은 안비연을 되찾기 위함이 아니고 여봉선에게 분풀이를 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저 중인환시리에 그와 당당히 일전을 치름으로써 자기가 안비연의 마음을 얻는 건 실패했을지라도 사람 자체가 여봉선보다 못난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남들이야 왜 지금까지 승패에 초연해 있다가 유독 이번만은 그토록 예민하게 구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감히 침해받아선 안 될 우월한 혈통을 지닌 자의 자존심과 직결된 문제였다.
안비연의 입술이 들썩이려는 걸 보자 영백록이 이번에도 가로막았다.
“안 소저, 누차 말하건대 이번 일은 그대와 무관하오. 그리고 영검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지 않았소? 설마 월녀궁은 이 정도 시간적인 여유를 주는 것도 허락할 수 없다는 말인가? 나와 여 형이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저 단순히 승부만 내고자 함이오.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신경 써서 힘을 조절할 테니 혹여 이 때문에 영검대회가 영향받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할 필요는 없소.”
그가 단약 한 병을 꺼내 들며 말을 이었다.
“이건 팔급 단약인 ‘청룡을목회생화생단(靑龍乙木回生化生丹)’이오. 그 어떤 부상이나 원기의 손상도 단시간 내 해결해주는 명약이지. 만에 하나 실수로 다치게 되더라도 이것이 해결해 줄 터이니, 여 형이 영검대회를 그르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거요.”
뒤에서 이 광경을 보던 초휴가 머리를 긁적였다. 청룡을목회생화생단이라······. 어쩐지 낯설지 않은 이름이 아닌가.
* * *
영백록이 여봉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초휴는 끼어들어서 이를 가로막거나 자신의 생각을 떠들어댈 마음은 전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영백록도 월녀궁의 간계에 놀아난 피해자 중 한 명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것도 여봉선 못지않은 지고지순한 순정 때문에 말이다.
신분으로 보나, 인물 및 실력으로 보나 당장이라도 영백록에게 시집가겠다고 나설 규수가 동제에서 서초까지 줄을 세워도 꽉 찰 터였다. 그런 그가 이토록 오랜 세월 한 여인만을 마음에 품어왔으니, 이 정도면 하늘에 닿을만한 순애(純愛)라 해도 좋지 않을까.
게다가 초휴는 그에게서 전혀 살기를 느낄 수 없었다. 이번 일전은 본인이 말한 그대로,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것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안비연은 생각이 달랐다. 영검대회를 앞두고 사소한 거라도 문제가 생기는 걸 원치 않았기에 말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봉선이 나서며 말했다.
“영 형이 그토록 싸우길 원한다면 나도 피할 생각은 없소. 영 형 자신이 남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듯이 나 여봉선도 마찬가지니까!”
그러고는 여전히 말리려 하는 안비연을 안심시켰다.
“비연, 당신과는 무관한 일이니 나서지 마시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사끼리의 도전은 응해야 하는 법이오. 그렇다고 영검대회가 늦춰지진 않을 테니 염려 말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봉선이 방천화극을 집어 들며 걸어 나왔다. 안비연의 미간 주름이 깊어졌으나 더는 말릴 명분이 없었다. 근자에 여봉선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으니 그의 성격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한번 결정한 일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행해야만 하는 그 성격을 말이다.
여봉선이 순순히 응하자 영백록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여 형, 시원시원해서 참으로 좋구려!”
그리고 영백록의 일신에서 검은 강기가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분노한 용의 포효성이 그의 전신에서 울려 퍼지더니, 강기가 용의 기세로 화해 순식간에 절정으로 치달았다.
당대 용호방은 그야말로 젊은 준걸들의 화려한 각축장이었다. 특히 근자에 세간의 이목은 대부분 장승정, 초휴, 종현의 세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용호방에서 풍운방으로 이적하는 강자는 수백년에 한 번 나오기도 어려울 텐데, 당대에 와서는 무려 세 명이나 그런 실력자가 배출된 것이다.
하지만 세인들이 간과한 바가 있었다. 초휴를 비롯한 세 사람은 물론이지만 방칠소와 영백록도 당당히 한 세대를 이끌고도 남을 준걸의 자격이 있음을 말이다.
초휴는 영백록이 터뜨리는 기세를 보고, 그가 일전에 자신과 싸울 때보다 한두 단계 성장한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방천화극을 쳐든 여봉선의 전신에도 마기가 휘돌기 시작했다. 지독하리만치 짙은 마기에 그 잘생긴 얼굴마저 가려지면서 마신의 강림을 느끼게 했다.
여봉선을 바라보는 초휴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의 실력도 어느새 저만큼이나 늘었구나 싶어서 놀란 것이다.
지난번 초휴가 구소연마금신을 운용했을 때만 해도 이 공법에 대한 자신의 조예가 여봉선보다 크게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여봉선의 조예 또한 자신에 비해서 별로 손색이 없지 않은가.
물론 육신의 강도로만 보면야 경지의 차이를 배제하더라도 초휴가 우위인 건 당연했다. 그는 대금강신력도 함께 수련했으니 말이다. 불문의 금신(金身)과 마문의 연체(煉體)를 터득했으니, 여기에 도문의 현공(玄功)마저 더한다면 초휴는 당대 삼대 계파의 연체공법을 전부 정복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여봉선이 방천화극을 힘주어 내리치자 경천동지할 위력이 터져 나왔다. 어찌나 그 여파가 컸던지 월녀궁 전체가 흔들리며 하마터면 호종진법이 가동될 뻔했다.
육강하가 초휴의 뇌리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원 이거야! 순전히 힘의 무도로만 승부를 보려는 자로구먼! 참으로 의지가 대단한 친구야. 저렇듯 힘의 무도만을 견지하여 절정의 경지까지 도달한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야.”
힘으로 만법을 깨뜨린다는 게 듣기에는 간단해 보일지 몰라도 막상 해보면 절대로 쉬운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온갖 무예와 초식을 익히는데 자신만은 초지일관 힘으로만 승부를 보려는 게 어찌 쉬울 수가 있겠는가.
초휴는 이처럼 어려운 길을 고집하는 경우를 딱 두 사람에게서 보았을 따름이다. 바로 진청제의 철권과 여봉선의 방천화극을 통해서였다.
그런 식의 수련은 일반적인 수련보다 훨씬 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설령 오백년 전 수많은 군웅이 배출되었던 그 시대였을지라도 이처럼 힘으로만 승부를 보려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여봉선이 방천화극을 내려침과 동시에 광대무변한 기세가 마신의 재림을 강렬하게 알렸다. 심지어 마신의 노호성마저 환청처럼 메아리치는 것이, 듣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 방천화극은 여온후가 썼던 신병 무쌍은 아니었다. 무쌍은 사용하기에 시전자의 기력을 너무 소모하는 데다,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끝장을 보려 하는 속성 때문에 생사결이 아닌 비무에서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방천화극에도 무쌍에 버금갈 강맹한 힘이 실려 있었다. 자리에서 지켜보던 무도종사들마저 순간 심장이 뛰다 못해 곤두박질칠 정도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여봉선의 방금 저 일격을 막을 수 있었을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영백록은 위축되는 대신 일신의 강기가 화한 용을 거느린 채, 당당히 권인을 결하여 그 무지막지한 일격에 맞섰다.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양측의 강기가 폭발을 일으켰다. 지축이 뒤흔들릴듯한 충격에 월녀궁을 지켜온 진법이 잇따라 격한 소리를 울려대며 오작동을 일으켰다.
이에 당황한 임풍아가 즉시 천인합일 제자 열 명 남짓을 투입하여 진기를 주입하게 해서야 진법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녀들이 전력을 쏟지 않았으면 진법은 얼마 버티기도 전에 파훼 되고 말았을 것이다. 저 두 남자가 한 번이라도 더 힘 조절에 실패한다면 진법이 문제가 아니라, 월녀궁 전체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봉선의 방천화극에서 쏟아진 극강의 힘이 영백록의 흑룡을 와해시킨 데 이어 사람도 몇 발짝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세를 가다듬은 영백록이 잇따라 쌍권을 내리치자 강기 흑룡의 꼬리가 휘몰아치며 사방을 연신 내리친 끝에 상대의 괴력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어서 전신의 먹색 강기가 용의 발톱으로 화하더니 천지를 아우를 기세로 상대의 마기를 움켜잡아 파훼시켰다. 그리고는 여세를 몰아 여봉선마저 잡아채려 했다. 이에 여봉선이 나직이 일갈하며 자기 몸 주위로 방천화극을 돌리며 방어했다.
한 차례씩 휘두를 때마다 하늘을 찢을 폭음이 터져 나오며 마신다운 위용을 부각시켰다. 연이은 방천화극의 공격에 용조(龍爪)는 속절없이 와해되고 먹색 강기도 산산이 흩어졌다. 두 사람의 발밑 바닥에는 균열이 잔뜩 나 있었다.
진청제의 철권이 그렇듯이 여봉선의 마신무쌍극에는 변화가 거의 없이 극강의 힘만이 실린 상태였다. 그 괴력을 막아내면 상대는 승기를 잡게 될 것이나, 그러지 못할 시에는 처참히 바닥에 나뒹굴 일만 남는 것이다.
이때 영백록의 표정은 차분하기만 했다. 그가 손을 한번 휘젓자 흑룡이 노호하며 한 자루의 장도로 화했다.
용 머리는 도병으로, 용 몸체는 도날로 변한 대룡도(大龍刀)가 출격한 순간 온 천하가 그 기세에 몸을 떨었다!
시리도록 날카로운 도망이 광포한 기세와 함께 상대의 극과 충돌하자 엄청난 파동이 터지며 좌중의 숨을 멎게 했다.
그 결과 영백록의 대룡도는 격파되었으나 여봉선의 병기에도 한 줄기 금이 가고 그의 전신을 휘감았던 마기도 옅어지며 영준하던 본모습이 드러났다. 하지만 두 눈만은 여전히 마기에 깊이 물든 상태였다.
영백록은 한 치도 주저하지 않고 먹색 강기를 재편해 용창을 응집해냈다. 그리고 일격필살의 기세를 실어 상대를 찌르자 양측은 다시금 혼전에 돌입했다.
한 차례씩 공세가 몰아칠 때마다 그 맹렬한 기세에 위압된 좌중은 손에 땀을 쥔 채 눈도 깜박이지 않고 이를 지켜보았다. 이거야말로 찬탄을 자아내는 명승부가 아닐 수 없었다.
여기에 와 있는 무도종사들조차 자신이 싸운다면 여봉선과 영백록을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힘에 특화된 여봉선은 자신의 강점에 걸맞게 힘으로만 상대를 제압하는 무도 노선을 견지했다. 영백록도 힘의 근간이 더없이 웅혼한 만큼, 단순히 힘으로만 겨룰 것 같으면 여봉선에게 크게 밀리지 않을 터였다.
무엇보다도 영백록은 무도의 변환이 현묘하기 그지없었다. 병기를 쓰지 않으면서도 강기를 응집해 어떤 종류의 병기든 만들어 냈고, 그것을 능숙히 다루는 모습을 보였다.
해당 병기를 사용하는 실력이 정상급이라고 하긴 뭐해도, 적어도 영백록을 이길 수 있을 자들은 몇 명 안될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