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30)
730화 이변이 일어나다
육강하가 뭐라고 떠들거나 말거나 초휴는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구미 천호의 잔혼(殘魂)을 바라보았다. 여차하면 언제라도 출수할 기세였다.
이윽고 구미 천호의 잔혼이 사뿐사뿐 여봉선에게 다가오더니 아홉 개의 꼬리로 단번에 그를 휘감았다. 이를 본 수무상 등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월녀궁의 간교한 계집들이 자신들의 주공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지 않은가. 초휴가 여기에 와있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그들은 이미 칼을 빼 들고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당신들도 뭔가 준비해둔 바는 있겠지?”
초휴가 불쑥 수무상 등에게 물었다. 그들 넷은 누가 뭐래도 여온후와 더불어 전장을 누볐던 전사들이다. 여봉선이 끝끝내 고집을 피운다고 해서 그들이 속수무책으로 구경만 할 리는 없었다.
수무상이 웃으며 말했다.
“준비해둔 게 있긴 하오. 월녀궁 진법에 장난질을 좀 쳐놓았으니까. 하나 초 대인이 여기 와 있으니 그런 장난질이야 보조 역할이나 하겠지.”
막강한 초휴가 여기에 버티고 있는 한 여봉선에게 별 탈은 안 생기리라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초휴가 없었으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 자리를 난장판으로 만든 다음, 여봉선을 데리고 도주할 생각이었다.
바로 이때 구미 천호가 자신의 꼬리로 휘감은 여봉선을 흡족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월녀궁은 천호에게 이른바 ‘먹잇감’을 바쳐왔다. 그런데 이번 먹잇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먹음직하지 않은가. 일단 더없이 청정무구한 힘과 한 점도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먹음직스러웠고, 정기신도 최정상급에 속했으니 말이다.
아홉 꼬리에서 뻗어 나온 사악한 기운이 여봉선의 심지를 파고들어 그의 정기신을 빨아들이려 했다. 앞서 세례받았던 월녀궁 제자들은 사전에 단단히 세뇌 교육을 받은 데다, 구미 천호의 힘이 워낙 정신력 쪽으로 편향된 것인지라, 정기신을 뺏기면서도 아무런 기미도 눈치챌 수 없었다. 다만 온몸이 좀 나른하다고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천검의 세례를 받느라 일시적으로 자신의 기력이 과도하게 소모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정기신을 다 뺏기고 나서야 본인의 실력이 급속도로 곤두박질치는 걸 느꼈지만, 그때 깨달아봤자 이미 일은 다 끝난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무슨 이유에선지 구미 천호가 아무리 애를 써도 먹잇감의 심지를 침습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계속 쓸모없는 시도가 이어지자 여봉선도 불현듯 뭔가 이상하게 돌아감을 깨달았다.
초휴가 말한 게 사실이었다! 안비연이 그를 속인 것이다!
사랑 때문에 마음이 다치는 일은 초휴나 육강하 같은 이들에게는 감정의 낭비나 진배없었다. 돈 한 푼 안 내고 기루를 기웃거리는 방칠소 같은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여봉선이나 영백록 같은 순정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여봉선은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배신을 당한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지난날 초휴가 그와 친구가 되었을 때, 그의 벗들 가운데 충직하고 믿을 만한 자도 있었지만 배은망덕한 인간말종도 적지 않음을 지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 배신감의 수위가 달랐다. 친구의 배신은 그저 마음을 다치게 하는 데 그치지만, 안비연의 배신은 이를 넘어서 그의 마음을 죽게 할 듯했다.
그녀에게 모든 진심을 쏟았기 때문이다. 그녀를 위해 치른 대가가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자신의 모든 헌신과 진심이 순식간에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때 안비연도 여봉선의 심경을 눈치챈 듯, 두 눈에 참담함과 부끄러움이 가득했다.
사실 그간의 사정은 이러했다. 천검 세례가 목전에 다가왔건만 월녀궁 전체를 통틀어 구미 천호의 요구조건에 부합할 만한 적격자가 아무도 없었다.
사부는 고령이라 안 되고 안비연 자신은 실력에서 불합격이었다. 게다가 용호방에 순위를 둔 준걸들 가운데 여봉선 외에는 마땅한 자가 없었다.
일단 영백록은 일찌감치 선택지에서 제외였다. 상수 영가의 승계자를 위험에 빠뜨렸다가는 월녀궁이 멸문당할 거라는 건 삼척동자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방칠소도 곤란했다. 배후의 검왕성은 말할 나위도 없고, 방칠소 본인도 그녀와 얽히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자 남은 적격자는 이비렴 정도였으나 워낙 신출귀몰한 인물이다 보니 어디 가서 찾아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러니 남은 인물은 여봉선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목석이 아닌 이상 어찌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겠는가.
처음에는 눈 딱 감고 여봉선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녀의 심경에도 점차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아까 여봉선도 말했듯이 그녀는 영검대회가 열리기 전 어떻게든 실력을 올려보려고 고된 수련을 계속했다. 그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야말로 뼈를 깎고 영혼을 갈아 넣는 고행이었다.
자신의 실력이 구미 천호의 요구조건에 부응할 수만 있다면 굳이 여봉선을 끌어들이지 않고 자기가 세례를 받을 작정이었던 거다. 월녀궁이 향후 백년간 천검의 비호를 받을 수만 있다면, 설령 자기가 폐인이 되더라도 월녀궁은 또 다른 승계자를 양성해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간의 노고가 무색하게도 그녀의 무공은 시종일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영검대회가 눈앞에 닥쳐왔다. 여봉선에 대한 남다른 감정과 종문의 이익을 두고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후자를 택한 것이다.
대신, 앞으로 평생 여봉선을 돌봐주겠노라 마음먹었다. 월녀궁이 건재하는 한 여봉선도 무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초휴의 두 눈이 매섭게 빛났다. 그의 손은 이미 힘이 들어간 채, 천마무에 올려져 있었다. 여차하면 서슴없이 뽑을 생각이었다.
“일단 기다려 보자고. 자네 친구가 뭔가 낌새를 눈치챈듯하니 말이야. 자신의 의지력으로 구미 천호의 힘이 침습하려는 걸 막고 있군그래. 어허, 심지 하나는 정말 굳건하다니까!”
육강하, 이 어용 마존은 못 미더운 구석이 좀 있어도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했다. 그의 말에 초휴는 도를 쥐었던 손에 잠시 힘을 풀었다.
이때 천호의 아홉 꼬리에 묶인 여봉선의 전신에서 마기가 표표히 흘러나오더니 그의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지금 그는 침습을 시도하는 구미 천호의 힘에 온전히 자력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고고하고 유유한 자태를 뽐내던 천호는 슬슬 당혹해하고 있었다.
‘이 먹잇감이 대체 무슨 재주를 부리길래 이처럼 오래 버틴단 말인가?’
여태 헛되이 힘만 썼을 뿐, 천호는 상대의 정기신을 조금도 흡수하지 못한 상태였다.
빨간 석류알이 박힌 것처럼 곱던 천호의 눈동자가 어느샌가 험악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무리 외양이 예쁘다고는 하나, 결국 상고의 흉수인 것이다.
그 옛날 상고시대에 천호가 간식 삼아 집어삼켰던 무사들만도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타고난 성질머리 또한 온순할 리가 만무했다.
자신의 정신력 공격에도 여봉선이 전혀 허물어질 기미가 없자 구미 천호는 그를 감싼 아홉 꼬리를 더욱 옥죄며 모종의 기세를 터뜨려 냈다. 이를 본 사람들은 그제야 이상 조짐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임풍아와 안비연의 안색도 흙빛으로 변했다. 지금까지의 영검대회에서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기현상이 지금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무언가 변고가 생긴 게 틀림없다!
바로 이때 여봉선이 번쩍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더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이미 핏빛으로 짙게 물든 눈동자가 끊임없이 강력한 마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뒤이어 흑색 마기가 가닥가닥 피어올라 그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 마기는 어느샌가 명주실처럼 세밀하게 변하더니 갑옷 형상으로 응집되어 온몸을 감쌌다.
여봉선의 일신에서 뿜어나던 기세도 더없이 흉맹하게 변해 있었다. 천호의 실력으로도 그 흉맹함을 차단할 수가 없어서 아홉 꼬리 틈으로 연신 그 기세가 새어나갔다.
좌중은 그 기세를 감지한 순간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건만 이게 무슨 천검 세례란 말인가?’
그것은 목숨을 걸고 싸우려는 자에게서나 감지될 만한 기세였다.
이때 여타의 사람들과는 달리, 수무상 등은 감개무량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 기세야말로 만 년 전 당시의 기억을 소환케 해주는 친숙한 것이었으니까.
순간 여봉선이 고개를 번쩍 들자 일신을 휘감았던 막강한 마기가 기류로 응집되어 거센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그리고 핏빛으로 물든 두 눈으로 구미 천호를 노려보며 나직이 일갈했다.
“이런 요망한 것을 봤나! 넌 겁도 없느냐!”
쉬어 잠긴 듯한 그 저음의 목소리는 여봉선의 원래 음성과는 너무 달랐다. 어느 순간 돌변한 여봉선의 외양과 음성에 구미 천호가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갑자기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한 채 말이다.
여봉선을 잘 알지도 못했던 천호가 그의 기세를 감지한 데 이어 그의 모습까지 확인하더니, 만년 전 그 마신과도 같던 존재를 떠올린 것이다.
자기 같은 흉수 정도는 개미인 양 밟아버리곤 하던 과거의 그 막강한 존재를 말이다!
가없는 마기가 연신 응집된 끝에 방천화극을 만들어 내자 여봉선은 한 손으로 이를 잡고 곧장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몸을 칭칭 감고 있던 아홉 꼬리가 굉음과 더불어 뎅강 잘리더니, 천호도 저만치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임풍아와 안비연은 이 돌발사태에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어째서 구미 천호의 힘으로도 여봉선을 제압하지 못한단 말인가.
지금 구미 천호의 힘이 거의 고갈된 상태라고는 하나, 당장 임풍아 열 명을 데려다 놔도 천호의 적수가 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 천호는 여봉선의 정기신을 전혀 흡수하지도 못했을뿐더러, 반격 한 방에 처참히 구석에 처박히기까지 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임풍아가 꿈에도 생각지 못할 내막이 숨겨져 있었다. 이것은 구미 천호가 그렇게 약해빠져서가 아니라, 방천화극에 가격당하기에 앞서 너무 놀란 탓이었다. 여봉선이 아닌 여온후라는 존재 때문에 말이다.
만년 전 마신 여온후는 그게 무엇이건 간에 눈앞에 걸리적거리는 존재는 가차 없이 쓸어버렸다.
마신의 재림을 방불케 하는 그 흉맹한 모습에 정도나 마도를 막론하고 그의 이름만 듣고도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여봉선의 전신을 물들였던 강력한 마기가 점차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와 합체된 건 여온후의 잔혼 축에도 못 드는 원신 조각에 불과했던지라 그 기세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는 듯했다.
방금 그의 힘이 극강의 수위까지 치솟으며 보여줬던 모습은 그저 여온후의 원신 조각이 발한 본능에 지나지 않았다. 여온후가 이미 죽긴 했으나 하찮은 미물에게 치욕을 당하는 일만은 피하고자 한 것이다.
마기가 잦아들자 여봉선의 몸을 감쌌던 마기 갑옷도 서서히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대로 소멸하는 대신, 거친 기세를 발하며 미친 듯이 그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왠지 익숙한 이 광경에 방칠소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다음으로 여봉선의 전신 기세가 점차 강도를 더해가는가 싶더니 한순간 마지막 관문을 뚫고 새로운 경지로 치고 올라갔다.
드디어 여봉선도 무도종사가 된 것이다!
방칠소는 헝겊 인형처럼 의자에 축 늘어지며 두 마디를 토해냈다.
“젠장! 망했어!”
솔직히 말해서 이건 초휴도 미처 생각지 못한 전개였다. 여봉선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압력을 빌어 진단경을 뚫음으로써, 흉사로 끝날 뻔했던 일이 졸지에 경사로 바뀐 것이다.
물론 방칠소는 축하할 입장이 못 되었다. 아무래도 오늘 이 대회로 말미암아 단연 억울할 사람은 방칠소일 듯했다. 일이 이쯤 되자 방칠소는 여봉선과 영백록 두 사람이 작당해서 자기를 농락하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