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33)
733화 끝장을 보다
육강하는 온종일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서 천호를 농락했다. 흉수를 가지고 신공법을 연구한다는 허울 좋은 구실로 말이다.
천호로서는 두 번 다시 기억하기 싫은 끔찍한 나날들이었다. 그러니 지금 육강하와 재회하자마자 당시 느꼈던 공포감이 재생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이 든 것도 잠시. 천호는 이내 퍼뜩 정신이 들었다. 자기가 왜 그를 두려워한단 말인가.
곤륜마교는 수백년 전에 멸망했고 당시 공포의 대상이었던 자들도 죄다 죽어 없어졌다. 지금 눈앞의 저자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한낱 잔혼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러니 두려워할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천호가 노호성을 내지르자 아홉 꼬리가 무섭게 부풀어 오르며 경천동지할 기세를 토해냈다. 이에 초휴가 육강하를 곁눈질하며 비아냥거렸다.
“정말 당신 힘만으로 되겠소? 밖의 세상에서도 충분히 기운을 빼서 죽일 수 있었다고. 공연히 여기로 데려오는 바람에 일만 더 복잡해진 거 아닌가 싶은데?”
“어허, 염려 마시래도 그러는군. 본존은 여태 한 번도 확신 없이 일을 벌인 적이 없었단 말이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육강하가 양손을 결인했다. 거기서 별다른 기세가 느껴지진 않았다.
바로 이때 천호의 머리 부위에서 홍련, 즉 붉은 연꽃 한 송이가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했다. 상처 틈으로 막 새어 나온 핏빛을 연상케 하는 꽃송이였다. 이것이 서서히 피어남과 동시에 천호의 힘도 계속 줄어들기 시작했다.
핏빛 연꽃이 활짝 만개했을 때는 천호의 힘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억제된 상태였다. 그 무지막지하던 크기의 몸뚱이가 졸지에 개만 한 크기로 줄어드니, 그 모습이 꽤 앙증맞게 느껴졌다.
옛날의 곤륜마교는 얼마나 막강했을까. 한마디로 요즘 사람들이 함부로 넘겨짚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노천사처럼 곤륜마교 시대를 살았던 사람을 제외하면 다들 어깨너머로 잡설을 주워들은 거에 불과하니 곤륜마교의 진정한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알 리 만무했다.
예컨대 천지통현의 경우, 야소남이 허자와 영가 노야의 연합 공세를 물리쳤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그 무사가 어떤 경지에 이르건 간에 개인별 격차가 엄청남을 알 수 있었다.
곤륜마교도 이와 같았으니, 사대 마존은 하나같이 천지통현 중에서도 절대 고수 축에 들었다. 그러니 홍련마존이 구미 천호를 쉽게 생포하여 애완용으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천호가 마구잡이로 날뛸 것을 막기 위한 모종의 처치가 이루어졌고, 지금도 천호의 체내에는 당시의 처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홍련마존은 천호가 마구 날뛸 것만 우려했을 뿐, 도주할지 모른다는 걱정 따위는 하지도 않은 것이다.
홍련마존이 해둔 이 비상조치는 본인을 제외하면 육강하만이 알았다. 이건 육강하가 홍련마존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 아니다.
당시에는 천호를 연구할 목적으로 홍련마존에게 물어서 알아냈던 것인데, 오늘 생각지도 못하게 써먹게 된 것이다.
육강하가 손을 휘젓자 급기야 홍련의 빨간 꽃잎이 천호를 완전히 뒤덮기에 이르렀다. 천호는 계속 크기가 줄어들더니 육강하의 손아귀 안에 쏙 들어갈 만큼 작아졌다.
“포획 완료!”
육강하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초휴를 쳐다봤다. 초휴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놀랐다.
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말만 많고 성가시기만 한 줄 알았던 저 어용 마존에게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이야!
물론 육강하는 처음부터 이 방법을 알고 있었으나 입을 다물고 있었다. 천호의 힘이 지금보다 훨씬 강해서 초휴가 참살될 위기에 몰리더라도 육강하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심 초휴가 죽기를 바랐으니까.
초휴가 죽어도 혈혼주는 파괴되지 않는다. 만에 하나 혈혼주가 다른 사람의 수중에 떨어진 후, 자기가 입만 잘 털면 그자가 풀어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그러니 말도 안 통하는 악질 인간 초휴에게 이 방법을 왜 귀띔해주겠는가. 물론 초휴는 육강하가 무슨 꿍꿍이속으로 뒤늦게야 이 방법을 알려줬는지 따지지 않았다.
이건 육강하의 성격상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이런 때조차 미덥고 성실한 태도를 보였다면 그의 본성을 잘 아는 초휴로서는 그게 더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정신세계에서 풀려난 구미 천호는 작아지다 못해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다. 천호를 담는 그릇 역할을 했던 천검도 이미 정기를 잃은 모습이었다.
천검은 애당초 구미 천호의 잔혼을 보관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이제 그 안에 보관할 것이 사라졌으니 그 또한 가치가 없어진 게 당연했다. 이 모든 광경을 임풍아는 멍하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월녀궁의 검혼이 이렇게나 허망하게 사라졌다고?’
차마 믿을 수 없었지만 분명한 현실임을 깨닫자 임풍아는 자신이 월녀궁에 씻지 못할 대죄를 지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이로써 자기 대에 이르러 월녀궁은 사실상 몰락하게 된 것이다.
임풍아 뿐만 아니라 제자들 모두가 막다른 골목에 몰린 건 마찬가지였다. 월녀궁이 오래도록 전승을 이어왔다지만, 월녀궁이 떠받드는 선조는 진정한 그녀들의 조사가 아니었다. 그 옛날 월녀는 아예 제자를 거둔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설 속 월녀는 하늘로부터 검술을 전수받았다. 그녀는 대꼬챙이 하나로 강호의 벌떼같이 많은 고수를 평정했다.
하지만 진정한 월녀검전은 월녀가 물려준 게 아니었다. 그녀는 괴롭힘에 시달리던 여자아이에게 되는 대로 검법 몇 초식을 가르쳐준 후 표연히 사라졌다. 그러니 당시 주먹구구식으로 검법을 배웠던 그 여자아이가 월녀궁의 실질적인 조사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처음부터 월녀검전은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고 공리성마저 다분했다. 이처럼 변질해버린 월녀검법은 하늘이 전수했다는 진정한 월녀검법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제자 중 몇 안 되는 천부적 자질의 소유자만이 그 불완전한 검법에서나마 우연히라도 진정한 검의를 깨우쳤다. 한마디로 월녀궁은 소수 실력자의 운에 기대어 지탱해 온 거나 다름없었다.
더욱이 언제부턴가 월녀궁의 종문 운영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가물에 콩 나듯 우연히 검의를 깨닫는 출중한 제자가 배출되기를 기다리는 대신, 여느 종문들과 마찬가지로 안정된 힘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엄밀히 말해 구미 천호의 존재는 월녀궁의 판단 착오였다. 사실 월녀궁이 내세워야 할 비장의 패는 월녀검법인 만큼, 여기에 모든 정성을 쏟았어야 했다.
그런데도 한낱 외부 물건에 종문의 명운을 맡겼고, 월녀검전에 대한 연구는 갈수록 시들해진 것이다. 오늘의 참담한 결과도 알고 보면 결국 자업자득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임풍아는 순순히 이런 실책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자신의 과오가 있었다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비장의 패를 파괴한 초휴가 이 비극적인 사태의 원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초휴! 우리 월녀궁은 기필코 네놈과 끝장을 볼 것이다!”
임풍아가 노호성과 함께 일신에서 검기를 토해냈다. 검날에 핏빛 허상이 가득한 일검을 내리치자, 그 살벌한 예봉이 피아식별도 못 하던 진법을 파훼하더니 곧장 초휴를 찔러 갔다.
그녀가 정혈을 태워서까지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본 초휴의 입가에 냉소가 그려졌다.
월녀검전은 하늘이 내린 검전이다. 출수할 때의 심경이 담백할수록, 그리고 심지가 하늘의 뜻에 부합할수록 최대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심경이고 심지고 간에 엉망으로 뒤엉킨 상태였다. 상대에 대한 원한과 죽이고야 말겠다는 살의만이 가득할 뿐, 하늘의 뜻이라곤 일 점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월녀검전의 검의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설령 지금이 그녀의 전성기 시절이라 해도 초휴의 적수는 될 수 없었다.
칠흑빛 음산한 마기로 물든 천마무를 내리친 순간, 아귀의 울부짖음과 함께 검기가 소멸하며 임풍아의 장검이 잘려나갔다. 충격으로 멀리 나가떨어진 그녀는 입에서 분수처럼 피를 토했다.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초휴의 눈에 살의가 번뜩였다. 이번 출수는 엄연히 여봉선을 대신해 분풀이해준 것이었으니, 임풍아를 저 지경으로 만든 것만도 할 만큼 한 셈이다.
하지만 초휴의 성격으로 이 정도로 끝낼 수는 없었다. 아예 시작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왕 시작한 다음에야 끝을 보는 게 그의 방식인 것이다.
그는 월녀궁의 검혼을 궤멸해 버렸다. 덕분에 비장의 패를 잃은 월녀궁은 앞으로 근근이 최소한의 명줄만 유지하며 어렵게 버텨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초휴는 그것만으론 양에 차지 않았다. 그 허접한 명줄조차도 확실히 끊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초휴는 이미 월녀궁과 씻을 수 없는 원한을 맺었다. 두고두고 저들의 앙탈을 받아주느니, 원한의 싹이 계속 자라기 전에 뿌리째 솎아버리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어차피 어중간하게 중지할 수는 없게 되었으니 곧장 치고 나갈 일만 남은 셈이다. 물론 아예 멸문을 해 버리겠다고까지 할 수는 없었다.
그건 안비연의 목숨도 연루되는 일인 만큼, 여봉선의 정서도 감안해야 했다. 그러나 십분 양보해 안비연은 살려둔다 쳐도 임풍아는 그렇지 않았다.
초휴가 여자를 죽이는 경우가 드물어도 정말로 죽여야 할 때가 되면 남녀의 구별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다. 천마무가 마기를 토하며 임풍아의 모든 걸 집어삼키더니 결국 그녀를 단칼에 참살하려 했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 순양강기로 번뜩이는 장검 한 자루가 돌연 그녀의 앞을 막더니 검신이 삼등분되며 세 줄기 검광이 하나로 합쳐져 초휴의 일격을 받아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순양강기는 눈 녹듯 소멸하고 말았다.
아까의 그 순양도문 노도사가 초휴를 비웃듯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초휴, 정마대전을 요행히 넘겼다고 마도 천하가 된 줄 착각이라도 하는 거냐. 네놈들이 멋대로 설쳐대는 꼴을 정도 무림이 보고만 있을 줄 알았더냐?”
이번 월녀궁 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도 많았다. 순양도문 도사들도 백치가 아닌 바에야 그걸 눈치 못 챘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만약 상대가 다른 인물이었다면 그들도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 눈앞에서 설치는 건 바로 초휴다.
순양도문과 철천지원수인 초휴인 것이다. 순양도문 측으로서는 당연히 개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월녀궁은 누가 뭐래도 정도 무림의 일원이다. 초휴가 속한 마도와 대치 중인 자신들의 동도인 것이다.
오늘 이 많은 정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일한 마도 출신인 초휴가 기고만장 설쳐대도록 어찌 내버려 둘 수가 있겠는가.
이때 손가의 손계례와 손계범도 눈짓을 주고받더니 함께 앞으로 나섰다. 손계례가 헛기침으로 운을 뗐다.
“초휴, 더러는 관용을 베풀 줄도 알아야지. 여기에 사람이 이렇게나 많건만, 굳이 이런 자리에서 월녀궁을 끝장내야만 하겠소?”
강동 손가 사람들은 줄곧 교활하리만치 은인자중해왔다. 순양도문 노도사들처럼 대놓고 앞에 나서 임풍아를 보호하는 대신, 슬며시 우회적으로 초휴에게 압력을 가하려는 것이다.
“흥, 관용이라 했소? 내가 관용을 베푸는 대상은 죽은 자들뿐이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초휴가 원신의 힘을 응집하더니 연달아 멸혼전을 발사했다. 정확히 순양도문 노도사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누가 뭐라건 간에 오늘 임풍아는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저깟 허접쓰레기 같은 도사 놈들이 감히 자신을 가로막다니, 그 어리석음을 일깨워주고야 말리라!
자기를 건드린 이상, 초휴는 저들도 도매금으로 처리해버릴 생각이었다. 순양도문 도사들을 이미 여럿 죽여봤으니 거기에 몇 명 더 추가하기로서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노도사가 초휴를 비웃더니 아까의 세 자루 검을 조종해 삼재검진(三才劍陣)을 응집해냈다. 순식간에 순양강기가 크게 일어나며 대전 전체를 찬란한 금빛으로 물들였다.
원래 멸혼전은 정신 공격의 범주에 속한다. 삼재검진은 신이하게도 순양강기의 파괴력에 힘입어 멸혼전의 위력을 구 할 이상 약화시켰다. 남은 일 할의 위력은 노도사의 실력으로 쉽사리 저지할 수 있었다.
초휴가 성큼 앞으로 나서자 일신에서 마염이 구중천에 닿을 기세로 솟구쳐올랐다. 파해 일도를 내리치자 대전 전체가 그 도세에 휘감기며 예봉의 세례를 맞았다.
도세가 채 닿기도 전에 침습한 도의로 인해서 좌중은 심장에 지독한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한마디로 힘의 극치가 무엇인지 보여준 그 일도에 삼재검진이 속절없이 파훼 되고 노도사는 피를 토하며 뒤로 밀려났다.
이를 본 손계례와 손계범이 다급히 권인을 결하여 한빙강기를 이용한 방패를 응집했다. 이것이 노도사의 가슴팍을 보호하며 미처 사그라지지 않고 남은 도의의 침습에서 그를 보호했다.
이어서 그 얼음 방패는 한 차례 굉음과 함께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얼음 방패에서 비롯된 무진장한 한기가 천지 원기를 모조리 얼릴 기세로 초휴를 덮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