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45)

745화 여봉선의 실력

사극종 사람들을 대하는 초휴의 태도는 그야말로 기. 고. 만. 장. 그 자체였다. 하긴 마도 내에서 초휴의 신분과 위상은 이미 배월교 구대 신무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으니, 배월교에 빌붙어 지내는 사극종 쯤이야 우습게 보이는 게 당연했다.

더욱이 지난날 사극종은 곤륜마교를 배신하지 않았는가. 은마권 종문 대부분이 이를 갈며 혐오하는 저들에게 초휴가 말이 곱게 나갈 리 만무했다.

안류빙의 낯빛이 순식간에 똥이라도 씹은 듯 변했으나 이내 침착을 되찾고 받아쳤다.

“초휴,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날뛰다가 땅에 떨어지면 그대 몸만 바스러지지 않겠는가. 같은 마도 동도로서 충고 한마디 하지. 우리 사극종은 그대가 북연에 진무당을 세우고 일하는 내내, 한 번도 그대를 난감하게 한 일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건 사극종과 극북표설성 간의 사사로운 문제이니 그대는 참견할 자격이 없다!”

그 말에 초휴가 한바탕 웃어젖히더니 섬찟할 정도로 정색하며 말했다.

“자격이 없다고?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 따위가 없다! 정녕 나와 자격을 논하고 싶으면 사극종 종주를 불러와라. 자격이 없는 당신은 빠지고!”

세상에 이보다 더 방자하고 오만하기도 어려울 터. 하지만 지금의 초휴에게는 이렇게 굴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이건 안류빙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당당한 무도종사에다 무려 제마전 전주로서 지위가 지위인지라, 사극 종 내에서 알아주는 거물이라 할 수 있었다.

만약 초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의 면전에서 이처럼 모욕적인 언사를 떠들었다면 진작 잡아다가 마신의 제물로 삼아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꺼지라는 초휴의 폭언에도 감히 대들지 못할뿐더러,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먼저 나서 초휴와 이치를 따지고자 했다. 무력에 앞서 말로 해결을 보려는 건 대개 열세인 쪽에서 시도하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이것만 봐도 그는 은연중에 자신의 위상이 초휴보다 아래라고 느끼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초휴의 폭언이 이어지자 그의 울화도 치밀어올라 인내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의 일신에서 흘러나온 삿된 검은 기운이 눈 덮인 지면으로 스며들더니, 순백의 눈을 칠흑빛 독설(毒雪)로 만들어 버렸다.

뒤이어 흑포를 뚫고 검은 연무가 피어오르더니 마신의 허상으로 응집되어 그의 몸 뒤에 형성되었다.

초휴의 눈도 매섭게 빛났다.

초휴는 어차피 쓸데없는 얘기나 주고받느니 맞바로 패 버리고 싶던 참이었다. 상대가 사극종이 아니면 대화로 풀어볼 여지가 있겠지만, 애당초 저들에게는 그럴 필요조차 못 느꼈으니 말이다.

초휴가 막 출수에 들어가려는 순간. 여봉선이 앞으로 나서더니 초휴를 만류하며 말했다.

“초 형, 저깟 잔챙이를 자네가 직접 나서서 상대할 필요가 있겠나? 너무 격이 떨어지잖아. 그냥 내게 맡기게.”

여봉선이 방천화극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초휴 앞에 우뚝 섰다. 사실 초휴는 일일이 체면을 의식해가며 일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이 아닌가.

그는 한번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은 상대에 대해서는 남자건 여자건, 신분의 고하가 어떻건, 심지어 실력의 강약이 어떻건 간에 길게 따지지 않고 바로 출수하곤 했다. 그러니 이 밉살맞은 사극종 무리라고 해서 직접 못 나설 건 없었다.

그런데도 여봉선이 대신 나선 건, 이제는 위상이 달라진 초휴의 체면을 세워주려는 의도가 있었다. 물론 그간 초휴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졌다는 생각에서 나선 것이기도 했다.

지난번 초휴가 포위 공격을 당했을 때 자신이 도움을 주긴 했다. 하지만 당시 여봉선의 도움은 그저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 어차피 초휴 혼자 힘으로도 충분히 타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에 영검대회에서 초휴가 그를 구했던 건 얼어 죽게 된 사람에게 숯불을 안긴 격이 아닌가.

여봉선은 타인에게 하나를 빚지면 셋으로 갚을 만큼 보은(報恩)에 철저하다 못해 도를 넘기 일쑤인 사람이다. 그런 그가 초휴에게 자그마치 열을 빚졌으니, 대체 어찌 갚아야 할지 몰라 난감하던 참이었다.

해서 상황이 되는 대로 그때그때 힘껏 돕고 볼 생각이었다. 그런 마음을 초휴가 어찌 모르겠는가.

더욱이 여봉선이 무도종사가 된 후 어느 정도나 강해졌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해서 그는 굳이 말리지 않고 흔쾌히 그를 내보냈다.

“알았네. 그럼 여 형이 처리하게.”

이처럼 초휴와 여봉선이 자신을 치워버릴 물건 취급하듯 주거니 받거니 하자, 안류빙은 화가 치밀어 올라 버럭 노호성을 내질렀다.

“이놈들이 죽고 싶어 환장했나!”

얼마 전에 무려 진화련신도 참살한 바 있는 초휴는 버거운 상대가 분명했다. 하지만 갓 진단경을 뚫은 여봉선 정도야 안류빙의 눈에 가소롭게 보였다.

근자에 치고 올라오는 신세대 중 초휴, 장승정, 종현 등은 천인합일 시절에도 감히 그 어떤 무도종사도 우습게 보지 못할 만큼 독보적이었다.

이들이 일군이라면 이군으로는 방칠소, 영백록, 그리고 여봉선 등을 들 수 있다. 이군도 실력 면에서 비범하긴 하나, 대부분 강호인은 여전히 일군에 비해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다.

일군 대신 이군이 나서겠다는데 안류빙이 겁을 먹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여봉선은 아무 대꾸 없이 방천화극을 높이 치켜들며 걸어 나올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여봉선도 꽤 교양 있는 편에 속했다. 초휴 같았으면 싸울 때, 독사도 울고 갈 독설을 퍼붓기도 하고, 폭풍 속의 벼락이 내리치듯 화도 낸다지만, 여봉선이 교전할 때 언제 한 번이라도 쌍스러운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안비연과 월녀궁이 그에게 몹쓸 수작질을 부렸을 때도 그는 담담히 할 말만 했을 뿐, 격한 언사는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물론 입은 꾹 다문 채 다짜고짜 급소부터 명중시키고 보는 이비렴 같은 자와는 달랐다.

여봉선은 앞으로 나서자 안류빙을 향해 공수의 예부터 갖췄다. 이를 본 안류빙이 코웃음을 친 순간, 방천화극이 곧장 광포한 기세를 터뜨리며 떨어지니 하늘도 갈라지고 땅도 쪼개질 듯했다!

그건 그 어떤 기교나 변환도 가하지 않은 순수하게 극강의 힘만으로 발현된 위력이었다. 본격적인 교전에 앞서 상대에게 지독한 절망감부터 안기고 보는 그런 힘 말이다.

안류빙은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오랜 연륜 덕에 금세 정신을 가다듬고 양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일신에 흑색 마기가 크게 일더니 머리에 뿔이 두 개 솟은 마신이 형상화되기 시작했다.

그 마신이 고막도 찢을 분노의 노호성을 연발하며 시커먼 연무 사이로 걸어 나오더니 여봉선의 일극을 받아내려 했다.

원래 사극종의 공법은 기본적으로 ‘삿될 사(邪)’에 주안점을 둔다. 엽천사가 사람의 몸으로 흉수의 공법을 수련한 것만 봐도 알조가 아니겠는가.

더욱이 안류빙은 제마전을 맡고 있는지라 상고시대부터 전해오는 마신의 해골을 매개로 하여 주야로 제사를 올림으로써 마신의 진의를 터득해냈다. 그런 다음 자신의 강기로 그 모습을 본떠 구현해내니, 그 삿된 속성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짙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여봉선의 일극에 산산이 격파된 마신은 이내 흑무가 되어 피어올랐다. 안류빙의 동공이 흔들린 것도 잠시. 흑색 마기가 그의 몸 뒤에 뭉쳐 양 날개를 만들어 냈다.

한줄기 흑영이 번쩍하며 터져 나온 순간, 어느새 그는 수십 장 밖으로 날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여봉선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그가 있는 곳을 향해 거침없는 일극을 한 번 더 내질렀다.

일극이 내리꽂힌 지면에 수십 장 크기의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서 움푹 파여 있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지진이라도 난 양 지면이 격렬히 흔들리더니 거대한 균열이 끝도 모르고 죽죽 뻗어 나갔다. 그 일극에는 천지의 위력이 고스란히 실려 있던 것이다!

곧이어 마신무쌍극이 궁극의 위력을 발하며 안류빙을 향해 광포한 기세를 계속 터뜨렸다.

이에 질세라 안류빙이 기합을 토하자 흑무 속에서 양 날개가 돋친 괴이쩍은 형상의 무수한 마신들이 응집되더니 여봉선을 향해 진격했다. 하지만 이것들마저 마신무쌍극에 의해 잇달아 최후를 맞았다.

엄밀히 말해서 제마전에서 모시는 마신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마신이 아니었다. 그저 옛날 강대했던 상고시대의 흉수 몇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온갖 사악한 힘으로 무장한 그 미지의 존재들에 겁을 집어먹은 상고시대 군왕들이 어리석게도 그것들을 마신으로 떠받든 것이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사극종은 이런 존재들을 적지 않게 찾아냈다. 따라서 제마전에서 섬기는 마신은 비단 한두 종류에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마신들은 여봉선 앞에서는 일극도 못 받아낼 만큼 취약하기 짝이 없는 미물에 지나지 않았다.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 진작 예상했던 초휴의 얼굴은 표정 변화가 전혀 없이 담담했다. 대개의 강호인이 여봉선을 과소평가했던 것과 달리, 초휴는 그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하등 걱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강호 곳곳에 원한을 뿌리고 다니는 초휴와 비교하면 여봉선은 죽자사자 결판을 내야 할 만큼 깊은 원한을 맺은 원수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싸울 때 전력 출수할 기회는 매우 드물 수밖에 없었고, 이것만 본 강호인들은 그의 실력을 평가절하한 것이다.

특히 안류빙이 강기로 마신을 형상화하는 수법으로 여봉선과 정면 대결을 벌인 것은 초휴가 보기에는 죽여달라고 사정하는 거나 진배없었다.

애당초 여봉선이 누구의 무공을 전승했던가. 다름 아닌 마신의 재림이라 일컬어지는 여온후인 것이다!

상고시대에 진정한 마신들조차 고개를 조아렸던 그 막강한 존재 앞에서 감히 강기로 본뜬 흉수의 허상 따위를 갖고 까불었으니 어찌 무사하기를 바라겠는가.

자신의 공세가 연달아 무위로 돌아가고 그 여파로 몇 발짝이나 뒤로 밀려난 안류빙은 그야말로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가 미친 듯이 포효하자 몸에 두른 흑포 자락이 정신없이 펄럭였다.

그 사이로 마기가 솟구치는 가운데, 그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러자 그가 늘 얼굴을 흑포로 휘감고 다니는 이유를 절로 설명이 되는 듯했다. 흑포 자락이 휘날리며 드러난 그의 얼굴은 사람의 형상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몰골이었기 때문이다.

온통 시커멓게 물든 왼편 얼굴에는 핏빛 마문(魔紋)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편 얼굴에는 굵직한 혈관이 여기저기 부풀어 올라 흉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도대체 이게 어디로 봐서 사람의 형상이란 말인가? 수련 과정상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제마전에 전승되는 공법이 워낙 독한 마성을 품어서인지, 그 원인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윽고 광대무변한 마기가 그의 왼손에 응집되자 순식간에 그 손은 핏기를 모두 잃고 창백하게 변했다. 한꺼번에 혈관의 피가 모조리 뽑혀나간 것처럼 말이다.

곧이어 그 손을 내뻗자 일순간 마운(魔雲)이 빽빽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마기의 응집으로 형상화된 거대한 손 하나가 하늘의 해도 가릴 기세로 여봉선의 정수리를 덮쳐왔다.

거칠 것 없이 대담하고 광포했던 젊은 시절, 안류빙은 어쩌다가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기이한 손뼈를 발견했다. 극강의 힘이 함축된 그 뼈를 시험 삼아 자신의 왼팔에 이식했더니 이처럼 엄청난 마신의 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컸다. 이처럼 사람다운 용모를 잃게 되었으니까.

얼굴 왼편의 마문도 그때 생긴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 손에 막강한 괴력이 실리긴 했으되, 일단 한번 출수하면 기혈의 힘을 죄다 뺏겨야만 했으니 소모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정말로 절박한 상황이 아니면 마신의 손을 사용하길 꺼려왔다. 그런데 지금 사용하려 하는 건, 여봉선이 그만큼 그를 절박한 수준까지 몰고 갔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일격에도 여봉선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그의 수중에 들려있던 방천화극이 어느샌가 신병 무쌍으로 바뀌었나 싶더니 광포하고 흉맹하기 짝이 없는 위세가 고스란히 터져 나왔다.

무쌍의 일격에 마신의 손이 속절없이 파훼 된 데 이어서 안류빙의 몸뚱이마저 허공에 붕 뜨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