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52)
752화 원천방의 복수
정마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배월교는 치명타를 입었고 정도 종문도 휴식기에 들어간 상태다. 하필 이런 때 은마를 건드려서 또 한 차례 정마대전이 야기된다면 대광명사도 버틸 힘이 없을뿐더러, 정도 종문들이 지원군을 보내준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허언이 미워죽겠다는 듯이 초휴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럼 도대체 어쩔 생각인가? 대광명사 주변의 그 시끄러운 자들이 계속 난장을 피게 둘 참인가? 그건 절대 불가하네!”
초휴는 바로 이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불쑥 손가락 세 개를 내밀며 답했다.
“딱 석 달만 참아주시구려. 내게 석 달의 말미만 주시면 항륭에게 둘러댈 구실을 만들어 내고도 남습니다. 구실만 만들어지면 즉시 철수시키겠소이다. 물론 절대로 석 달씩이나 참아주지 못하겠다면 그 성가신 자들을 죽여도 무방합니다. 그토록 성가셔서 기어이 끝장을 봐야 할 정도로 귀찮다면 난들 어쩌겠습니까. 사정을 봐 드리는 수밖에.”
허언이 냉랭히 콧방귀를 뀌더니 등을 돌려 나가버렸다. 초휴의 하나 마나 한 소리에 대꾸하기도 귀찮았다.
대광명사가 사람을 죽일 줄 몰라 여태 저들을 내버려 두었겠는가. 죽여버리고 끝날 일 같았으면 애당초 초휴를 뭐하러 찾아왔겠는가. 저벅저벅 걸어 나가는 허언의 뒷모습을 보는 초휴는 미소를 머금었다.
허언이 대답 없이 가버리긴 했어도 그건 암묵적 동의나 마찬가지였다. 이로써 적어도 석 달 동안 대광명사의 방해를 받지 않고 육강하가 숨겨둔 것들을 찬찬히 찾을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 항륭 쪽에도 둘러댈 핑계가 생길 터였다.
‘내가 싸우기 싫어서가 아니라 대광명사가 응수를 안 하니 어쩌겠습니까, 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법이니까요.’ 이렇게 둘러대면 그만 아니겠는가.
한옆에서 묵묵히 지켜만 보던 백무기가 의구심을 표했다.
“대인, 정말로 대광명사가 출수하지 않으리라 확신하십니까? 저들이 여태 해온 작태로 봐서는 눈에 티끌 하나만 들어가도 못 견뎌서 마구 비벼댈 자들입니다. 인내심이 그렇게까지는······.”
“못 견디면 어쩌겠나. 뾰족한 수라도 있을 것 같나? 티끌도 티끌 나름이야. 대광명사를 탁한 진흙에서 피어났음에도 전혀 더럽혀지지 않은 연꽃 정도로 생각하면 곤란해. 강호에서는 뭐든지 실력이 말해주는 거니까. 악한 짓을 저지른 거로 따지면 내가 남천리보다 족히 수천 수백 배는 더 많을 걸세. 그러나 어째서 아무도 나를 처단하려 들지 않지? 그건 내 실력이 남천리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일세. 내 배후가 남천리보다 훨씬 더 든든하기 때문이란 말이네! 대광명사가 정말로 티끌 하나 용납하지 않는 자들이었다면 오백년 전에 이미 멸문당하고 말았을 거네!”
* * *
연경성 밖. 흑포 차림을 한 음산한 인상의 노인이 눈앞의 성벽을 바라보며 굵직한 목소리를 내었다.
“저것이 연경성인가? 북방의 야만스러운 땅이라서 그런지 번화한 중원에 비할 바가 못 되는군. 서초보다도 별반 나을 게 없겠어.”
그의 주위에는 여러 명의 무인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중 얼굴 생김새서부터 간교한 사악함이 묻어나는 무인 하나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사부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북연은 수십년 전부터 동제에 눌려 지내다가 근자에 와서야 간신히 기지개를 켜는 처지니까요. 그러고 보면 이 정도 규모를 갖춘 것만도 대견하다고 해야겠지요.”
그러자 노인이 냉소를 터뜨리며 내뱉듯이 말했다.
“초휴 놈이 그 좋은 중원 땅을 놔두고 하필 이런 쓸모없는 땅에 굴러왔다는 말이지? 배포 크기가 간장 종지만도 못하구나. 쳐죽일 놈 같으니라고!”
이에 곁에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소리를 높였다.
“맞습니다. 이번에 사부님께서 친히 오셨으니 사형의 복수는 문제없습니다. 초휴 그놈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십방노마(十方老魔)’ 원천방(袁天放)과 그의 제자들이었다. 지난번 정마대전 당시 초휴는 원천방이 가장 아끼는 제자 형사도를 죽임으로써 그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위서애가 때맞춰 나서서 만류한 데다, 동황태일도 초휴의 역성을 드는 바람에 초휴를 어찌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 게다가 그 뒤에도 이성적으로 대처하라고 은마권 장로들이 충고해왔던 터라 여전히 그를 죽일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를 죽일 여건이 못 되었다.
현재 초휴는 은마 일맥의 간판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아니, 비단 은마 뿐만 아니라 마도 전체를 통틀어도 젊은 세대 가운데 그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
이런 독보적인 존재가 정도 무림도 아니고 자기편에게 죽는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원래 마도는 명마와 은마로 양분된 데다, 이마저도 은마 일맥의 경우는 결코 단결된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쟁반 위의 모래알처럼 따로 노는 양상이건만, 거기에 더해 자기편에게 죽는 일까지 생긴다면 마도의 체면은 어찌 되겠는가.
이런저런 까닭으로 원천방이 초휴를 죽이려면 그가 더는 남들의 주목을 받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위서애를 비롯해 그를 편 들었던 원로들까지 그에게 실망하여, 원천방이 그를 죽이건 말건 개의치 않을 정도가 되어야 죽여도 후환이 없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초휴의 실력 및 그간 선보인 잠재력을 보건대, 그런 날이 언제나 올지가 문제였다. 지금도 이미 적지 않은 연령인 자신이 그때까지 과연 살아 있을지가 의문 아닌가.
생각할수록 울분을 참기가 힘들어진 그는 우선 분풀이라도 할 생각에 북연에서 굴러먹는 제자들을 앞세워 초휴에게 시비를 걸러 온 것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 초휴를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그게 가능할 거 같으면 진작 죽였지, 여태 살려두었겠는가.
일단은 아쉬운 대로 초휴가 북연 어느 곳에서도 발붙이지 못하게끔 벼랑 끝까지 몰아붙일 생각이었다. 이때 어디선가 짜증 섞인 질책 소리가 들려왔다.
“똥개처럼 길을 막고 서서 뭐 하는 거냐! 가지 않을 거면 당장 비켜라.”
알고 보니 원천방 무리가 성문 입구에 서 있었던지라 성안으로 들어가려는 작은 세족 상단의 앞길을 가로막은 모양새가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비켜서 갈 수 있었으나 그 상단은 워낙 짐수레가 많은지라 여의치 않았다.
소리를 지른 자는 상단 맨 앞쪽의 젊은 공자로, 표정에 짜증이 한가득했다. 곁에 있던 집사는 그를 만류할 생각이었다.
집 밖에 나온 이상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매사에 몸을 사릴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공자의 입이 만류하려는 그의 동작보다 한발 앞선 것이다.
원천방이 무표정하게 공자를 힐끗 돌아보았다. 슬쩍 시선을 주다 말았을 뿐인데도 공자는 일순간 지독히 무서운 것을 본 양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혀 얼굴이 허옇게 질리고 말았다.
괴이하게도 다른 상단 사람들은 아무런 기세도 못 느꼈건만, 그 혼자 제 자리에 얼어붙기라도 한 듯 꼼짝도 못 하고 있지 않은가.
이윽고 원천방이 시선을 원위치시키며 제자들과 함께 연경성 내로 들어선 그제야, 상단 사람들도 뭔지 모르게 몸이 풀리는 걸 느꼈다.
“공자! 공자!”
멍하니 선 채 꼼짝도 안 하는 그를 집사가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연신 부르짖었다. 그러자 갑자기 공자의 몸 전체가 한여름에 얼음이 녹기라도 하듯 흐물흐물 무너지는 게 아닌가. 여전히 공포가 가득한 안면 거죽만 남긴 채, 근골이며 살점이 삽시간에 진흙처럼 뭉개지며 흘러내리고 말았다.
한바탕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성문 입구가 난장판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 난리를 뒤로하고 거리를 걷는 원천방은 콧방귀를 꼈다.
“야만스러운 것들이라 예의범절이 뭔지 알 턱이 없겠지. 공손히 비켜달라고 청했으면 저 지경은 피했을 거다만. 황궁은 어딨느냐? 앞장서라. 당장 항륭부터 만나봐야겠다.”
일국의 황제를 만나기가 그리 쉬울까. 하지만 원천방과 같은 수준의 강자들에게는 간단한 일이었다.
그는 황궁 입구에 버티고 서더니 보란 듯이 진화련신인 자신의 기세를 조금씩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궁 대내에서 고수가 나와 몇 마디 질문한 후 공손한 태도로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대전 단상의 황좌에 앉은 항륭이 원천방을 내려보며 물었다.
“원 선생께서 우리 북연에 어인 일이시오?”
‘십방노마’ 원천방의 명성은 강호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에 그가 대전에 나타났을 때는 이미 그에 관한 모든 자료가 항륭에게 보고된 후였다.
원천방 같은 거물이 돌연 들이닥쳤으니 영문을 모르는 항륭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원천방은 중원의 인사였으나 서초 용호산에서 쓴맛을 본 후 요즘은 동해만 인근의 동극산(東極山)에 머물러왔다.
외출 자체를 꺼렸으니 북연에야 더더욱 올 일이 없던 그가 황궁에 왜 나타났단 말인가.
원천방이 고개도 들지 않고 심드렁하니 답했다.
“노부는 고개를 쳐들고 얘기하는 데 익숙지 않습니다.”
진화련신 고수의 눈에는 세간의 황권이니 나발이니 하는 것들이 죄다 우습게 보였다. 북연 및 동제와 같은 당대의 대국도 그에게는 위군의 전신인 위나라 같은 소국과 다를 바 없었다. 진화련신 고수에게는 혼자서도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는 하잘것없는 나라인 것이다.
그러니 지금 면전의 항륭 또한 웬만한 대세력의 장문이나 가주 정도로 취급해서 상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내심으로는 심지어 그들만도 못한 존재로 여겼다. 장문이나 가주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이라도 갖췄다지만, 항륭은 자기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는 노인네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를 이나마라도 대접해주는 이유는 북연 조정에 자기와 맞먹을 만한 대단한 실력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 그 말 한마디 하는 데도 사방에서 만만치 않은 기세가 엄습해오는 게 느껴졌다.
“원 선생 말씀이 옳소. 얼굴을 가까이하고 대화를 나누는 게 편할 것 같군.”
항륭은 언짢아하는 대신 호쾌하게 단상에서 내려와 원천방과 눈높이를 맞춘 후 재차 물었다.
“그래, 여기까지는 무슨 용무로 오신 게요?”
그제야 원천방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초휴를 혼내주러 왔소이다. 그놈이 내 제자를 죽였으니 가만 놔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소?”
항륭이 난감한 기색을 내비쳤다.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이 노인네가 수중에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걸 원천방이 눈꼴 시리게 생각하듯, 항륭 역시 강호의 이 재미없고 골치만 아픈 원한이나 복수 따위에 개입하고픈 생각이 없었다. 해서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초휴와 원한이 있으면 곧장 그를 찾아가 청산하면 될 텐데 짐은 왜 찾아온 거요? 더욱이 원 선생도 잘 알다시피 초휴는 우리 북연 진무당의 대도독으로 있소이다. 그런데 짐한테 와서 초휴와의 원한을 운운하다니, 설마 짐더러 초휴를 죽이게 도와달라는 소리라도 하려는 게요? 짐은 신하를 함부로 죽여대는 폭군은 아닌데?”
그 말에 원천방이 콧방귀를 꼈다.
“흥, 진무당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러시오. 그냥 애들 장난처럼 보이더구먼. 한 말씀만 드리지요. 노부는 초휴란 놈이 북연 어느 곳에도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요. 그깟 놈은 당장 내치시고 그 진무당인가 뭔가 하는 건 이 노부에게 맡기시지요! 노부와 초휴 중 누가 더 폐하께 쓸모가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에 항륭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원천방 정도 수준의 진화련신 강자들은 북연 조정에도 여러 명 있다. 하지만 수가 더 많아지는 걸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모름지기 다다익선 아니겠는가.
그가 원천방의 말에 구미가 동한 건 근자에 들어 초휴를 다루기가 부쩍 버겁게 느껴진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진무당이 명의상으로야 조정에 예속된 기구라지만, 실제로는 초휴 개인의 사조직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가입한 무림 세력들도 조정이 아닌 진무당에 굴복한 셈이었다.
무림인은 어디까지나 무림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야생 호랑이를 애완견처럼 길들이기가 녹록할 리가 있겠는가. 그를 뼛속까지 자신의 신하로 만든다는 게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았다.
이번에 초휴에게 맡긴 일만 해도 항륭은 전혀 흡족하지 않았다. 초휴가 소소하게나마 수작을 부려서 진무당이 일단 극북지역에 진입하는 건 성공했다지만 그것만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갔다.
항륭의 진정한 의도는 초휴 배후의 은마까지 출수하게 해서 대광명사와 정면으로 격돌하게 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초휴가 잔꾀를 부린 바람에 대광명사는 출수를 미루는 중이다.
이는 항륭의 당초 계획과 전혀 동떨어진 전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속내를 초휴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짐은 그대를 미끼 삼아 은마 세력까지 죄다 끌어들여 대광명사와 전면전에 들어가게 만들고 싶다······.’ 이 말을 어찌 그의 면상에 대고 할 수 있겠는가. 십중팔구 그와 낯을 붉히며 갈라서게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