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54)
754화 너는 나고 나는 너다.
육강하는 순간 이성을 잃다시피 하며 차마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초휴의 일신에 감도는 저 힘은 지난날 독고유아의 것이 분명했다.
강호 전체를 탈탈 털어도 저렇듯 막강한 마공을 수련한 자는 독고유아가 유일했으니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어찌 몰라보겠는가!
천지 간에 탄생한 ‘마’는 세상과 공존하게 되어있다. 세인들은 입버릇처럼 사마외도 처단을 부르짖지만, 세상에 ‘마’가 없다면 정도(正道) 역시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마’라 함은 천지 간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힘의 속성 중 하나다. 세상과 공존하며 영원토록 불사불멸하는 것이다.
독고유아가 창시한 ‘불멸천마전’, 즉 천하 최강이라 감히 말할 수 있는 이 강력한 무도 진의를 터득하여 대성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불사불멸을 누리며 세상과 공존하게 된다. 세상이 존속하는 한 ‘마’도 존재하는 셈이니, 한마디로 독고유아는 불사의 몸인 것이다!
하지만 이 무도의 진의가 워낙 초인적 경지였던 탓에, 창시자인 독고유아 본인조차도 궁극의 경지까지 터득하진 못했었다. 그럼에도 육강하는 그 힘에 더없이 익숙했다. 저건 의심할 나위 없는 독고유아의 힘이었다.
게다가 고작 선혈 한 방울에 잔류해 있던 무도 진의만으로 구현될만한 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렇듯 정순한 힘이 어떻게, 대체 어떻게 초휴의 몸에 흐르게 되었단 말인가!
순도 십전의 정순한 마기에 휩싸인 초휴의 모습을 바라보며 육강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여전히 해답을 찾을 순 없었다.
그러다 문득 자기가 이 젊은이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예전에야 그를 그저 독고유아의 전승 일부를 차지한 마도의 제자려니 여겼다. 필경 은마 일맥 출신이니만큼 독고유아의 전승을 못 가지라는 법도 없으니까.
그렇지만 불멸천마전과 같은 공법은 독고유아가 단 한 번도 외부로 유출한 적이 없었을뿐더러, 제자를 거두어 전승한 적도 없었다.
아, 정말이지 초휴의 신상에는 너무도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지 않은가!
육강하조차도 도무지 뭐가 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밀이 말이다.
* * *
암흑, 핏빛, 정적, 그리고 끝없는 침몰.
지금 초휴의 주변이 온통 이랬다. 지독한 암흑에 온몸이 짓눌리는 듯했고, 너무도 선연한 핏빛에 소름이 끼쳤으며,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이 짙은 정적에 숨이 막혔다.
그리고 이 괴이하기만 한 감정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며 침몰해갔다······. 보이지도 않는 바닥까지 가라앉았을 즈음, 어느샌가 사방 모든 게 번쩍하며 밝아졌다.
그러나 밝아지자 초휴는 되레 화들짝 놀랐다. 그가 유난을 떨어서가 아니라, 방금 눈앞에 펼쳐졌던 세계가 너무도 소름 끼치도록 두려웠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초휴와 같은 강심장도 이처럼 놀랐겠는가.
마치 망망대해에 몸을 내맡긴 듯한 기분이었다. 수중에 잠긴 발치에서는 누렇게 혼탁한 물이 거세게 휘돌며 코를 찌를 듯한 피비린내를 사정없이 풍기고 있었다.
허공에는 보름달이 세 개나 걸려 있었다. 하지만 달이 세 개씩이나 떴는데도 하늘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기괴하게도 보름달 세 개가 죄다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기괴한 건, 초휴가 거대한 해골 등뼈를 밟고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해골은 족히 십여 장에 달하고도 남을 장신(長身)의 사람 형체였는데, 살점은 이미 썩어 문드러져 뼈대만 앙상히 남은 상태였다.
대체 이게 무엇일까? 거인일까 아니면 상고의 마신일까?
바로 이때 혼탁하던 수면이 요동치는가 싶더니 무수히 많은 악귀와 악령들이 수면 아래에서 몸을 비틀어대며 소름 끼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누렇던 수면이 깊은 곳에서부터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더니 사악한 광채에 둘러싸인 백골 왕좌가 그 혈해를 뚫고 떠올랐다. 거기에는 한 신형이 좌정해있었는데 일신에 흑포를 휘감았음이 분명한데도 몸 전체에서 눈을 찌르도록 강렬한 핏빛 혈광이 번쩍였다.
신형의 얼굴을 본 순간, 초휴의 낯빛이 돌변했다. 바로 독고유아였기 때문이다!
신영의 이목구비가 일전에 환각 속에서 봤던 독고유아의 모습과 너무도 똑같았기에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당시 환각에서 벗어나면 육강하에게 확인할 생각으로 그 용모를 기억하려고 무던히도 애썼었다. 하지만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분명 그 얼굴이 눈앞에 있는데도 시종일관 그 모습을 묘사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심중에 아로새길 수조차 없었건만 희한하게도 지금 그를 본 순간, 직감적으로 그임을 알 수 있었다.
“너는 내게 거부감을 느끼는구나.”
백골 왕좌에 앉은 독고유아가 입을 연 순간, 혼탁한 수면 아래서 격렬히 울부짖던 삿된 것들이 그가 두렵다는 듯 일제히 잠잠해졌다.
경직되었던 초휴의 표정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해서 이것이 독고유아와의 첫 만남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앞의 몇 번은 그가 남긴 영상일 뿐이었지만, 이번만은 진짜로 그인 게 확실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온통 수수께끼투성이라는 걸 알았을 때, 당신이라면 거부감이 들지 않겠습니까? 이거 한 가지만 여쭤보지요. 나는······. 도대체 나는 누굽니까!”
초휴가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오래도록 품어왔던 의문을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대개 미치광이나 바보가 하기 마련이지만, 지금 초휴는 미치광이도 아니고 바보도 아니었다. 그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짙은 안개 속에 갇힌 당사자일 뿐이었다.
“네가 곧 나고, 내가 곧 너다. 동시에 너는 우리이기도 하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대체 나는 당신의 환생인 겁니까 아니면 당신에게 빙의된 겁니까?”
초휴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묻자 독고유아는 옅은 미소를 띠며 답했다.
“천명은 영원하며 마주는 불사이니라. 네가 죽지 않는 한, 나도 영원히 존재한다. 죽지도 않았는데 어찌 환생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내가 내 몸에 빙의되는 건 더더욱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 거부감을 가질 필요 없다. 네가 정상에 오르면 자연히 나를 보게 될 것이니, 그때까지 나는 여기서 너를 기다리겠다.”
또 원점이다. 그의 대답에 초휴의 의문이 풀리기는커녕, 답답함만 도를 더했다.
‘전생도 아니고 빙의도 아니면 대체 나라는 존재는 뭐란 말인가?’
초휴가 도발적으로 고개를 쳐들더니 싸늘히 물었다.
“내가 죽지 않는 한 당신도 영원할 거라고? 만약 내가 여기서 확 죽어버리면 어찌 될 것 같소!”
독고유아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죽는다고? 너는 절대 그러지 못할 거다. 내가 말했지 않은가, 네가 바로 나라고 말이다. 자기 목숨 갖고 자기를 위협한다? 이처럼 우둔한 짓을 나는 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도 할 리가 없는 것이지.”
하지만 웃는 낯을 보인 것도 잠시. 독고유아는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구나. 내 핏방울에 많은 걸 남겨두었다. 그건 씨앗과 다를 바 없으니 잘 키워 보아라.”
초휴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육강하가 오백년 후 내 손에 들어오게 될 줄은 어찌 아셨습니까? 자그마치 오백년입니다! 설마 오백년 후 일도 미리 알 수 있는 겁니까?”
독고유아는 무심하게 답했다.
“천지의 기운을 꿰뚫으면 웃고 떠들면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지 않은가. 너는 천자망기술로 사람만 볼 뿐이나, 천자망기술의 진수는 천지를 꿰뚫는 데에 있다. 천지를 꿰뚫을 수 있건만, 육강하와 같은 사람의 운명 하나를 왜 뚫어보지 못하겠는가. 내가 미리 계획한 바가 아니었다면 오백년 전 육강하가 어찌 감히 내 피를 가질 수 있었을까.”
순간 초휴는 퍼뜩 많은 걸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시공을 초월한 후 게임 원본 줄거리에 기반하여 한발 앞서 예상하곤 했던 그 모든 게 정말 진정한 미래였을까?
그는 자신의 선지적 능력 덕에 많은 걸 얻은 줄로만 알았다. 유리금사고가 그러했고 천자망기술도 그랬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미래에 대해 알고 있던 기억들이 점차 희미해져 갔다. 이제야 알 듯했다. 미래인 줄로만 알았던 게 반드시 진짜라는 법도 없고 반드시 그리 실현된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자기가 알고 있던 미래는 그저 누군가가 설정해둔 미래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게 진짜 ‘미래’인 줄로만 믿게끔 설계해 놓은 것이다.
초휴는 더 많은 걸 묻고 싶었지만 독고유아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 나는 여기서 너를 기다리겠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의 혈월(血月) 세 개가 혼탁한 바닷속으로 추락했다. 그러자 노한 파도가 거세게 일어 그 많던 악귀와 악령들을 산산이 찢어발기더니 몽환경 전체가 순식간에 붕괴하고 말았다.
어느덧 초휴의 정신이 지하궁으로 되돌아왔을 때 육강하가 혈혼주 안에 잔뜩 웅크린 채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넌 대체 누구냐? 설마 독고 교주의 환생이라도 되는 거야?”
방금 초휴의 몸에서 순간적으로 터져 나왔던 그 힘은 절대적으로 불멸천마전의 힘이다. 오로지 독고 교주만의 힘인 불멸천마전 말이다.
하긴 초휴의 용모가 독고 교주의 지혼화신(地魂化身)과 판에 박은 듯 똑같다는 생각이 든 육강하는 그의 정체를 의심할 법도 했다.
초휴는 말없이 육강하를 바라만 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에게 측은지심이 들었다. 무려 오백년이나 갇혀있었건만, 알고 보니 일이 이리된 게 처음부터 우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는 자기가 잘나서 독고유아의 핏방울을 얻은 줄 알았고 말실수를 저질러서 오백년을 갇혀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초휴에게 그 피 한 방울, 독고유아의 표현을 빌자면 씨앗 하나를 건네기 위해 그의 운명이 설정되어 있던 것이다.
처음 육강하의 사연을 들었을 때 초휴는 그저 독고유아의 성질머리가 보통이 아니었나 보다, 이렇게만 짐작했다. 하지만 인제 보니 이 모든 게 다 독고유아가 미리 깔아둔 포석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날 오앙도인이 속한 음산파의 선조가 한때는 곤륜마교의 일원이었다가 후에 곤륜마교를 배신하고서도 독고유아에게 뿌리까지 응징당하는 참변을 겪지 않았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또한 육강하가 좀 덜 떨어진 나머지 해선 안 될 말을 했기로서니, 그만한 일로 사람의 육신마저 없애가며 봉인해버린 게 너무 가혹하다고 여겼던 것도 새삼 떠올랐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게 다 독고유아가 미리 내다보고 설계한 극본이었다지 않은가!
“좋아. 인정하지. 나는 환생한 독고유아가 맞아. 그런데 교주를 보고도 절도 올리지 않는 건가? 네 비밀을 확 다 불어버릴까?”
육강하는 순간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미쳤다고 그 말을 믿겠느냐는 표정이 역력했다. 차라리 초휴가 계속 뭔가를 숨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으면 정말 교주일 거라고 의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초휴가 이렇듯 대놓고 인정해 버리니 오히려 미덥지가 않았다. 물론 일말의 의혹도 남지 않은 건 아니었다. 뭔가 개운치가 않았다. 하지만 초휴가 끝내 말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 * *
지하궁에서 나온 초휴는 극북표설성에서 한동안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혈영대법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데다, 독고유아가 몸속에 남겨두었다는 그 씨앗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알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씨앗이 대체 무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느껴보려 애써도 체내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감지되지 않았다. 정작 변화는 초휴가 폐관해있는 동안 진무당 쪽에서 일어났다.
원천방 이 인간의 성격이 어찌나 초휴에게 죽은 제자 형사도와 똑같은지, 음험하고 악랄한 데다 매사에 광기가 다분한 것이 전형적인 마도 흉수 그대로였다.
유일하게 형사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원천방은 은마 일맥의 장로로서 그나마 대국적인 시각과 안목이 좀 있다고나 할까. 형사도는 하필 정마대전을 치르는 중차대한 와중에 치졸한 수법으로 초휴를 음해하려 들었지만, 원천방이었다면 절대 그런 방법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원천방의 마음이 자비롭고 손속이 무르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지만 말이다.
그는 항륭의 명이 떨어지자 즉시 제자들에게 진무당을 장악하라고 내보냈다. 동극산 마애동에 머물던 시절, 그는 제자들을 적잖이 거두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소일거리로 거둔 것에 지나지 않는지라, 전승까지도 염두에 둔 진정한 제자는 몇 명 되지 않았다. 형사도가 그중 하나였고, 북연에서 찾아낸 제자 단구오(段九鰲) 역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