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56)
756화 인내하다
사람이란 누군가가 미워서 이를 갈다가도 다른 누군가가 더 나쁜 상황을 만들면, 처음 증오했던 상대를 그리워하는 법이다. 지금 여기 모인 사람들이 그런 기분이었다.
초휴가 좀 난폭하기는 했어도 규칙은 지켰다. 최소한 한 가닥 살길은 터주고 몰아붙인 것이다. 그러나 원천방의 제자와 도손 무리는 숨 쉴 여지도 주지 않고 사람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가기만 했다.
초휴는 그들과 헤어진 뒤 뒤 진무당으로 들어섰다.
진무당 내부 문지기조차 원천방의 제자와 도손들로 바뀌어 있었다. 그들은 초휴가 진무당에 들어서자 욕지거리를 하며 막으려 했다.
“무엄한 놈! 예가 어디인 줄 알고 함부로 들어오느냐!”
원천방의 제자들도 행실이 엉망진창이었다. 원천방은 애초에 초휴를 노리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처럼 하찮은 자들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전혀 몰랐고, 심지어 초휴가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했다.
코웃음 소리와 함께 초휴의 몸에서 핏빛이 번쩍이자 그 무사는 거대한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날아가서 벽에 부딪히며 땅에 쓰러졌다.
“건방지구나! 어느 놈이 우리 진무당에서 소란을 피우느냐?”
단구오가 나왔다가 초휴를 보고 잠시 말을 잃었다.
극북표설성의 추운 황야에서 대광명사와 실갱이를 벌이고 있어야 할 텐데, 어떻게 이리 빨리 돌아온 걸까.
“‘우리’ 진무당이라고? 다시 말해봐라. 여기가 누구의 진무당인지!”
초휴는 단구오를 노려보았다. 온몸의 기세가 실체를 지닌 것처럼 응집되더니 먹구름이 온 성을 덮는 듯했다.
단구오는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초휴의 등 뒤에서 피의 바다가 일렁이는 듯하지 않은가.
강대한 위압감이 그의 영혼 깊숙이 침투해 온몸을 떨게 만들었다.
초휴의 머릿속에서 육강하가 냉소했다.
“우리 혈마당 무공을 수박 겉핥기로 익힌 머저리로군. 네가 저놈을 죽이는 데는 삼초면 족할 거다.”
초휴는 담담히 말했다.
“이자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군. 일초라도 버텨내면 운이 좋은 것이지.”
단구오의 머리는 이미 공포로 가득 찼다. 기개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생각은 간절했으나 욕설 한마디 내뱉을 용기조차 없었다.
초휴를 만나기 전만 해도 단구오는 이런저런 계획을 짜 두고 있었다.
‘어떻게 사부를 도와 초휴를 내쫓고 두 번 다시 북연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까?’하고 말이다.
그러나 직접 보니 뼈저리게 알 것 같았다. 그에게는 그럴 능력과 용기가 전혀 없었다.
같은 진단경이라도 어떤 사람은 무도종사라 불리고, 어떤 사람은 그저 진단경에 오른 무사일 뿐이다. 단구오는 후자였다.
북연에서 조금 이름이 있기는 했지만 온 강호가 다 알고 이미 진화련신경 고수를 죽인 적도 있는 초휴와는 실력의 격차가 아득히 멀었다.
그는 줄곧 사제 형사도를 질투했었지만, 형사도의 천부적 자질이 그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형사도마저 초휴의 손에 죽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자신은?
단구오의 마음속에서 공포가 점점 커졌다. 초휴가 한 발짝 내디뎠을 뿐인데 단구오는 당황하여 물러나다가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이건 형편없는 꼴이 아닌가.
사실 단구오가 그리 담이 작고 쓸모없는 자는 아니었다. 그 역시 강호에서 수십년을 보냈고, 진단경에 오르기까지 손에도 적잖은 피를 묻혔다. 더군다나 진화련신의 강자를 사부로 모시고 있는 판이다.
그러나 초휴는 그에게 상극의 별과 같았다. 단구오는 옛날 혈신마공의 자투리를 어쩌다 입수해서 익힌 것에 불과했다.
반면 초휴가 익힌 것은 육강하가 창조한 정통 혈신마공이었다. 그러니 단구오에게는 극한의 압박일 수밖에 없었다. 천적을 마주한 것처럼 마음속의 공포가 백 배는 커졌다.
“이 폐물 같으니! 쓸모없는 놈!”
어느 틈인지 원천방이 단구오 뒤에 와 있었다. 그는 단구오를 걷어차 버렸다. 주위의 기세가 더 난폭해졌다. 하늘마저 그 영향을 받아 음침하기 짝이 없게 변했다.
“초휴, 감히 노부의 앞마당에서 소란을 피우기로 작정한 것이냐?”
초휴를 바라보는 원천방의 눈에는 감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살기가 어려 있었다.
“선배의 앞마당이라고요? 진무당을 경영해 온 것은 접니다. 어떻게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선배의 구역이 된다는 겁니까?”
초휴가 싸늘하게 말했다.
원천방이 냉소했다.
“시시해 빠진 진무당 공봉대장로인지 뭔지 하는 신분이긴 하나 북연 황제가 나에게 주었느니라.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황제에게 가서 따져보든가. 함정을 파고 모략을 쓰는 짓을 잘하더니 이제 남의 계략에 당하게 생겼군그래. 여기가 원래 누구의 앞마당이건, 노부가 제일 윗사람이니 당연히 노부의 것이지!”
원천방의 말은 노골적이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항륭조차 안중에 없는 것처럼 폐하도 아니고 북연 황제라고 부르지 않는가.
사실 그는 항륭이 안중에 없긴 했다. 그는 초휴가 모두 보는 앞에서 자신에게 덤볐으면 했다. 그러면 원천방에게도 명분이 생길 테니까. 자신이 초휴에게 시비를 건 게 아니라 윗사람을 우습게 보고 덤비는 초휴를 벌하고 내쫓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마도가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살육을 일삼는다고 생각하면 곤란했다. 특히 은마는 힘의 소모를 피하고자 같은 은마권 무사끼리 적대하는 것을 피했다. 양패구상할 것이 걱정돼서였다.
그러니 초휴가 마도 청년 중 일인자라는 감투를 쓰고 있는 한, 원천방은 대놓고 그를 죽이기가 어려웠다. 위서애와 다른 마도 원로들의 비난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초휴가 먼저 그를 공격한다면 법도를 모르는 하극상을 저지르게 된다. 그때는 원천방이 그를 죽여 버린다 해도 핑계와 명분이 있었다.
그 부분에서는 정도 종문이건 마도건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을 하려면 일단 그럴듯한 핑계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화가 좀 난다고 내키는 대로 죽여 버리면 엉망이 되지 않겠는가?
원천방을 한참 노려보던 초휴의 입가에 문득 웃음이 걸렸다.
“원천방, 당신 제자 때문에 이러는 겁니까? 사람 하나 죽었다고 멀쩡한 동극산을 놔두고 북연까지 찾아와 굳이 내게 시비를 걸만한 가치가 있소?”
초휴가 형사도를 들먹이자 원천방의 눈에 서슬 퍼런 살기가 어렸다.
“노부가 평생토록 공들여 키웠던 전인이 네놈 손에 죽었건만, 그럴 가치가 있느냐고? 초휴, 위서애가 너를 감싸고 있으니 노부로서도 너를 간단히 죽일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북연에 네놈이 몸 둘 땅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네놈에게 선택지를 주마. 스스로 무공을 폐해 속죄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북연에서 쫓겨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진화련신 고수의 사냥감이 되는 기분을 실컷 맛보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자 원천방에게 걷어차여 나가떨어졌던 단구오의 마음에 질투가 불같이 일었다. 형사도가 직계 전인이라니, 그럼 자신은 뭐란 말인가?
초휴가 냉소했다.
“나이를 먹었으면 강호에 나와 구를 생각을 접으면 좋을 텐데. 입에서 나오는 것마다 헛소리군.”
그렇게 말한 초휴는 곧장 내당으로 들어가 버렸다.
원천방이 미간을 찌푸렸다. 초휴는 미치광이라는 소리만 들었는데 정작 직접 만나 보니 아주 침착하지 않은가. 출수할 기미가 없으니 원천방으로서는 다소 의외였다.
내당에는 매경령과 초휴의 수하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매경령이 약속한 대로 원천방의 수하가 진무당을 접수하려 하면 그대로 내주었다.
초휴가 없으니 함부로 맞설 수도 없었다. 원천방이 초휴를 죽일 수는 없겠지만 진무당 사람들을 죽이는 것까지 주저하진 않을 게 아닌가.
초휴가 온 것을 보고 매경령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웬일이람? 싸우지 않았나 보군요. 원천방 그 늙은이와 한 판 하려고 온 줄 알았는데.”
초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시기가 아니니 말이지요. 게다가 지금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어쨌든 진화련신 아닙니까. 원천방의 실력은 방금오와는 비할 수 없죠. 지금 원천방에게 단장고를 쓴다 해도 전성기 시절 방금오와 비슷한 정도의 전투력을 발휘할 겁니다.”
“게다가 내가 원천방을 죽이면 그것대로 문제죠. 은마권 작자들이 다른 건 몰라도 오지랖과 암투는 끝내주니까요. 원천방은 은마권의 원로 중 한 사람입니다. 제가 그를 죽이면 규칙을 어기고 하극상을 저지르는 게 되지 않겠습니까.”
매경령이 눈썹을 찡그렸다.
“정 안 되면 위 선배라도 모셔와야 할는지······.”
초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용없습니다. 원천방은 항륭의 명령을 받았으니 명분이 있어요. 위 선배님이 오신들 어쩌겠습니까? 기껏해야 서로 팽팽히 대치하는 정도겠죠. 그러다 결국은 양패구상하게 될 테니 손해 보는 건 우리가 되겠죠.”
“오래도록 진무당을 꾸려온 건 납니다. 원천방이 진무당을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다 때려 부수면 그만입니다. 원천방이 한 말 중 하나는 맞습니다. 진화련신 강자의 사냥감이 되는 기분은 결코 좋을 게 없을 테죠.”
매경령과 다른 사람들도 얼굴이 안 좋아졌다. 정말 그렇기는 했다. 가끔은 실력이 모든 것을 끝장내 버리는 것이다.
지금이 그렇다. 원천방은 초휴를 찾아올 때 이렇다 할 계획 같은 게 없었다. 계책이라고 할 것은 더 없었다. 그냥 곧장 찾아왔다. 초휴가 뭔가 하는 족족 다 망가뜨릴 작정으로 말이다. 초휴로선 괴로운 일이었다.
“그럼 어떻게 할 건가요?”
매경령이 묻자 초휴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일단은 기다려야죠. 천시, 지리, 인화, 지금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어요. 물론 원천방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죠?”
초휴는 다소 업신여기는 투로 말했다.
“원천방은 늙었습니다. 걱정도 많고 겁도 많죠. 좀 심하게 말하면 그 제자 형사도만도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원천방은 언제나 미치광이 같은 마도 악당일 뿐이었다. 천사부를 제외한 삼대 도문을 한 번씩 쓸고 다니며 살육을 벌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원천방의 마음속에는 온갖 망설임이 가득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원천방이 예전처럼 거리낌 없이 패악질을 부리며 기분 내키는 대로 죽이는 성미였더라면 어땠을까? 그 무엇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초휴를 찾아와 체면 불고하고 기습했을 것이고, 초휴는 설령 죽진 않더라도 엉망이 되어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저것 따져보느라 대놓고 초휴를 죽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바로 그 부분이 빈틈이었다. 그러니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초휴가 보기에 원천방은 늙어 빠진 겁쟁이에 불과했고, 사서 걱정을 하는 머저리였다. 그러나 원천방이 생각하는 초휴도 마찬가지였다.
진무당으로 돌아온 후 초휴는 거북이처럼 안에 박혀 지냈다. 얼굴도 내비치지 않았다. 원천방과 그 수하들은 갈수록 제멋대로 굴었고, 그야말로 세상천지에 거칠 것이 없었다.
북연 무림의 원성은 높아만 갔다. 북연 조정에서조차 완곡하나마 이대로는 곤란하지 않으냐는 말이 나왔으나 항륭은 끼어들지 않았다.
항륭의 예상을 벗어난 것은 초휴가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항륭은 그 점이 매우 이상했다. 그러나 초휴가 도대체 얼마나 버티는지 두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항륭의 기다림이 끝나기 전, 먼저 초휴를 찾은 사람이 있었다. 오앙도인이었다.
초휴가 아직도 진무당 안에서 폐관 중인 것을 본 오앙도인은 참을 수가 없다는 투로 물었다.
“초 대인, 원천방 그 늙은이가 저렇게 설치는데 그냥 두고 보기만 할 생각이오?”
초휴가 진무당을 장악한 후로 오앙도인의 권력은 매우 작아졌으나, 적어도 그 알량한 권력 자체를 빼앗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새로 진무당을 장악한 원천방의 제자와 도손들은 방자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게 아닌가.
오앙도인이 쓸 수 있었던 작은 힘조차 전부 빼앗기고 말았다. 단구오는 오앙도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원천방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