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6)
그건 강한 힘을 갖고자 하는 초휴의 열망이 너무 커서가 아니라, 아비도삼도를 무리 없이 익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게임 줄거리에서 아비도삼도를 익혔던 무사들은 모두 실력이 별로 강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바꿔 말하자면 팔급, 구급의 무공을 익힌 고수들은 이처럼 남도 해치고 자신도 해치는 무공을 굳이 수련할 리가 없었다. 따라서 밖으로 드러난 아비도삼도의 영향력만 놓고 볼 때, 실력도 약하고 심지도 약한 무사일수록 이 무공에 휘둘릴 확률이 높았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초휴 혼자만의 근거 없는 자신감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자신의 심지가 매우 굳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가 가진 진정한 자신감은 바로 유리 금사고와 최근에 획득한 천절지멸이혼대법에서 비롯되었다. 본디 대광명사 고승의 불사리에서 탄생한 유리 금사고는 태생부터 정신 정화 및 집중의 힘을 가졌기에 마귀의 기운을 충분히 억누를 수 있었다.
이것 역시 유리 금사고가 지닌 효력 중 하나였다. 요컨대 유리 금사고 자체가 아비도삼도에 대한 최상의 억제제라고 할 수 있었다.
유리 금사고 외에 천절지멸이혼대법도 마찬가지로 아비도삼도에 대해 일정한 억제효능을 가질 수 있었다. 이혼대법이 주로 수련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정신력이었으니 말이다. 따라서 정신력이 강한 무사일수록 굳건히 중심을 잡고 아비도삼도의 영향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처럼 이중의 안전장치를 갖춘 이상, 남과 자신을 동시에 상하게 할지도 모
를 사악한 도법을 수련해도 될 엄두를 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초휴는 서둘러 이 무공들을 수련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빨리 임중군을 벗어나 상망산 깊숙이 들어가는 게 급선무였다. 울창한 숲이 많지 않은 임중군은 장시간 몸을 숨길만 한 곳이 못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취의장이 초휴에 대한 수배령을 내리기라도 하면 임중군에서 숨을 곳을 찾기는 더 어려워질 테니, 최대한 빨리 상망산으로 들어가 위험한
상황을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상망산의 전체 면적은 위군보다 넓었다. 일단 상망산에 들어가기만 하면, 섭동류가 그를 찾고자 취의장의 인력을 총동원해 상망산에 투입해도, 큰 바다에서 좁쌀 한 알 찾으려는 거나 다름없게 된다. 다만 섭동류가 초휴의 예상보다 한발 먼저 행동을 개시한 게 문제였다.
섭동류가 취의장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순전히 자신의 명성만으로 추격 명령을 내림으로써 임중군 무림 전체가 벌써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섭동류의 주요 목표물은 초휴다. 그는 초휴가 여봉선보다 훨씬 더 가증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임중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감지한 초휴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 입고 있던 검은 무사복을 푸른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챙이 넓은 삿갓도 쓴 다음 얼굴에 검은 칠까지 했다. 홍수도는 공간 비전함에 집어넣은 대신 장검 한 자루를 허리에 차고는 상망산을 향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역용술(易容術)을 배우지 않은 그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변장이었다. 벌건 대낮임에도 자신의 모습을 가린답시고 꽁꽁 싸맨다면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좋았다. 지금 그의 모습은 평범한 말단 강호 무사와 별반 차이 없어서, 그와 딱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아무도 그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오후, 초휴는 산양부 외곽의 시골 객잔 구석에 앉아있었다. 앞에 차려진 먹거리를 유유자적 먹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긴박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임중군 무림세력들의 추격도 빨랐지만, 초휴의 도주도 그에 못지않게 신속히 이루어졌다.
사실 임중군 무림세력들의 추격은 별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섭동류는 최후의 순간에 나타나 초휴에게 결정타를 날릴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또 그를 찾기 위해 취의장의 시간과 인력을 낭비할 생각은 없던 터라, 아직 취의장의 정예고수들은 출격시키지 않은 상태였다.
정작 골치 아픈 문제는 상망산이 위치한 위군 현지 무림 세력들까지 풍만루의 소식통을 통해 초휴의 동선을 입수하고 추적을 시작한 데에 있었다. 과연 최고의 전문가라 불리는 솜씨는 남달랐다. 풍만루가 어떤 수완을 부려 초휴의 행적을 알아냈는지는 모르지만, 요 며칠 사이 그가 언제 어디로 가든 간에 그 주변에는 무림 세력들이 어슬렁대고 있었다. 다
행히도 그는 번번이 그들의 시야밖으로 벗어났지만 말이다.
추격을 피해 다양한 경로를 모색한 그는 결국 어찌어찌하여 산양부까지는 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곳이 마지막 경유지인 셈이었다. 일단 이곳에서 배를 채운 후 다시 며칠간 길을 걸으면 상망산에 진입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여기서 쉬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몸에 지녔던 건량이 다 떨어진 데다, 도처에서 임중군 무림세력들이 그를 노리고 있으니 자신의 체력과 정신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 시킬 필요가 있었다. 제대로 먹은 것도 없이 기진맥진한 채로 그들과 맞닥뜨리기라도 하는 날엔 죽은 목숨일 게 뻔했다.
객잔에는 이 지역을 오가는 객상들 여러 명과 강호를 떠도는 무사들이 밥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밖에는 워낙 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서 다들 서둘러 길을 떠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때 갑자기 객잔 문이 벌컥 열리더니 열 명 남짓한 무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 중 가장 앞에 선 명문대가 공자님 차림새의 청년은 바로 산양부 도씨 가문의 대공자인 도의(陶毅)였다. 그의 곁에 있던 중년의 총관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공자님, 하루만 더 가면 산양부가 나올 텐데, 귀가하셔서 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위군에서 사 온 약초들도 비에 흠뻑 젖었습니다.”
그러자 도의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었다.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 거야? 젖은 지가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뭘 그래? 고작 하루 차이일 뿐이야. 위군에서 산양부로 오는 동안 따뜻한 밥을 언제 먹어봤는지 기억도 안 나. 이 공자님께서 이제 더는 참을 수가 없다 이거야. 아버지도 참 너무하시지, 굳이 이런 장마철에 약초를 사오라고 하실 게 뭐냐고. 아예 청원진 그쪽에서 사면 될 걸, 그깟 돈 몇 푼 아
끼자고 굳이 위군까지 가서 사와야 하느냔 말이야.”
가뜩이나 크지도 않은 공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고 나니, 객잔 안은 앉을 자리도 없이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이에 부쩍 짜증이 난 도의가 초휴가 앉은 쪽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기 너희들, 나한테 자리 좀 비켜줘야겠다. 그만 처먹고 썩 꺼져.”
그에게 지목받은 강호인들은 젊은 놈의 버릇없는 행패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들 중 한 명이 분을 못 참고 벌떡 일어나려 들자, 옆의 일행이 그를 눌러 앉히며 귓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였다. 그제야 다들 화를 삭이고 순순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산양부에서 제일가는 도씨 가문의 대공자를 누가 감히 건드리겠는가.
초휴도 아무 말 없이 대충 먹고 일어나 자리를 내어주려 했다. 저런 놈이야 손에 살짝 힘만 주어도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지만, 이런 일로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는 건 내키지 않았고 그럴 가치도 못 느꼈다.
그때 초휴의 동작이 굼떠 보였던지, 참을성 없고 성질이 급한 도의가 그새를 못 참고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가 쓰고 있던 삿갓을 손바닥으로 후려쳐 날리며 으름장을 놓았다.
“당장 꺼지라는 말 못 들었어? 굼벵이도 너보다는 빠르겠다. 이 공자님이 엉덩이를 차서 내쫓아주랴?”
삿갓이 날아간 순간 초휴의 시커먼 얼굴이 도의의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주의 깊게 보지 않던 그가 문득 뭔가 생각이 난 듯, 동공이 크게 흔들리더니 필사적으로 표정 관리에 들어간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게 두 뺨에 경련이 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윽고 그는 결심이 선 듯, 초휴를 등지며 몸을 홱 돌렸다. 그러고는 탁자 위에 남겨진
음식들을 보며 깔보는 말투로 말했다.
“참 내, 시골구석이라 먹을 것도 형편없군. 이런 걸 사람이 먹으라고 내놓은 거야? 돼지 먹이가 아니고? 되었다, 이따위는 안 먹고 말지. 산양부로 곧장 가자.”
그러자 상단의 총관은 입을 쩍 벌리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변덕을 부려도 정도껏 이어야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간만에 따끈한 밥을 꼭 먹어야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이제는 먹을 것이 없다며 나가잰다.
어찌 된 게 대공자의 팥죽 끓듯 하는 성질머리는 해가 갈수록 점점 도를 더해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때 도의의 얼굴에, 미처 억누르지 못한 놀라움과 공포심이 서린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도의는 본의 아니게 초휴의 얼굴을 알아보고 말았다. 그와 말을 섞어본 적은 없어도 산양부 경매 대회 때 그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았었지만, 뒤늦게 그가 저지른 일을 듣고 난 다음부터 그에 대한 인상이 날로 깊어졌다.
타지방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산양부 세력들은 그가 장씨 가문을 송두리째 박살 낸 일도, 장백도 등 네 명을 해치운 일도 쉽게 잊지 못했다. 파산검파 출신인 장백도가 세 명의 선천경 고수와 연합해 초휴를 죽이러 갔다가 실패한 것도 모자라, 역으로 그의 손에 처참히 살해당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게다가 도의가 상단을 이끌고 위군에서 연나라로 돌아오던 길에 초휴에 관한 소식이 임중군에 파다하게 퍼져있는 걸 듣게 되었다. 여양산 유적지에서 벌어진 비전함 쟁탈전에서 초휴가 취의장 소장주 및 극북표설성 백무기라는 강호의 양대 준걸들에게 대놓고 엿을 먹였다는 내용이었다.
사람의 배포가 얼마나 크면 그런 일도 거침없이 저지를 수 있는지 도의는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결국, 그는 초휴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불가사의한 악질 또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더 이상 그에 대해 생각지 않기로 했다.
사실 초휴는 그에게 있어 딴 세상의 존재나 다름없으니, 들려오는 사건마다 먼 나라 일처럼 여겨진 것이 사실이었다. 초휴의 적수는 임중군의 주요 세력들, 심지어 취의장, 극북표설성 등 연나라 전국에 걸쳐 이름이 쟁쟁한 대형 문파들이었다.
도씨 가문처럼 산양부에서나 목에 힘주는 토착 세력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런 문파들과 혈투를 벌여온 초휴와 이곳에서 맞닥뜨리게 될 줄 도의는 정말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었다.
지금 초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도의도 잘 알고 있었다. 취의장의 명에 의해 임중군 전역의 고수들이 죄다 그를 잡아 죽이려고 추격 중이니, 만약 그가 초휴에 대한 정보를 저들에게 넘기기만 하면 적잖은 포상금이 들어올 터였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도의에게 감히 그럴 용기가 없다는 데에 있었다. 지금 도의는 자신이 초휴의 정체를 알아챘다는 사실을 그에게 들키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머지 일은 일단 여기에서 벗어난 후 차차 생각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상일은 그의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도의가 막 이곳을 떠나려고 마음먹은 순간, 초휴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도 공자, 이렇게 가버릴 작정이오?”
숨긴다고 숨겼던 그의 겁에 질린 눈빛이 초휴의 촉수에 걸려들고 말았다. 필사적으로 표정 관리를 했다고는 하나, 초휴의 귀에는 어지럽게 뛰는 그의 심장 소리까지도 들렸다. 도의가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 후, 초휴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무······. 무슨 뜻이지? 날 아느냐?”
초휴는 대답하는 대신 공간 비전함에서 홍수도를 꺼내 들었다. 핏빛이 감도는 홍수도의 모습을 보자 정신줄을 놓아버린 도의가 울부짖다시피 외쳤다.
“초휴! 우리 도씨 가문은 당신과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으니, 당신과 만난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소. 나를 한 번만 살려주면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요. 진심으로 약속하리다!”
그러자 눈앞의 이 자가 취의장에서 수배령을 내린 초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도씨 가문의 총관들은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속으로 ‘아뿔싸!’를 외쳤다. 하지만 도의의 부르짖음은 화약에 불을 붙인 격이 되고 말았다. 아까처럼 잠자코 모른 척 했으면 또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그의 정체를 밝힌 바람에, 결과적으로 초휴가 그를 살려둘 수 없게 만들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도의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의 눈앞에는 핏빛 도광이 번쩍하고 나타났다.
“안 돼!”
도의가 또 한 번 부르짖었다. 그는 정말이지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았다. 그놈의 망할 손이 초휴의 삿갓을 날려버렸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에서 개죽음당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문득 그는 부친이 비상시에 쓰라며 주었던 천기문 암기가 자신의 품속에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부친의 설명에 의하면, 잘만 사용하면 선천경의 무사도 다치게 할 수 있는 무기라고 했다.
그가 손을 품속으로 집어넣은 순간, 초휴의 칼날이 핏빛 도광과 함께 번쩍하고 그의 목을 그었나 싶더니 시뻘건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의 머리는 바닥에 떨어졌어도 억울함이 잔뜩 서린 눈빛만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끝
ⓒ (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