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76)
776화 방칠소의 돼지 흉내
그 일곱 번의 검격은 얼핏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였으나, 마치 시간과 공간을 그대로 뛰어넘은 것처럼 갑작스레 장승정의 검격과 부딪쳤다.
일순간에 뇌광이 점점이 반짝이며 허공으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줄곧 평온하기 그지없던 장승정의 얼굴에 드디어 놀라워하는 빛이 드러났다. 그는 잠시 후에야 살짝 웃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방 형을 얕보았군.”
실수였다. 초휴에게는 저지르지 않았던 실수를 방칠소 상대로 저지른 것이다. 큰 금기를 어겼다. 상대를 얕본 것이다.
사실 방칠소의 행실을 보면 남이 그를 얕볼 만도 했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이 녀석이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청년 세대 검도의 일인자 방칠소라는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검수(劍首)라기보다는 검수(劍羞, 검도의 수치)처럼 보였으니까.
장승정은 남들처럼 성격이 실력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무의식중에서 방칠소를 얕보고 있었다.
좀 전에 방칠소와 교전했을 때도 전력을 다하지 않고 초휴가 온 뒤에야 전력으로 출수를 했었다.
이제야 장승정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과 검도에 대한 방칠소의 이해는 이미 시간과 공간에 간섭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방금의 검격으로 장승정이 날린 검격의 근원을 끊어 버렸다. 근원에서부터 공세를 끊어버린 것이다!
자신이 모든 힘을 쓰지 않았을 때 방칠소는 전력을 다했던가?
장승정은 가만히 돌이켜 보았다. 오랜 세월 동안, 장승정이 전력으로 출수한 적은 있었고, 초휴 역시 목숨 걸고 싸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방칠소가 전력을 다한 것을 본 사람이 있었나?
돼지인 척 꾸미고 호랑이를 잡는 자는 두려워할 게 없다. 정말 두려운 것은 본래 호랑이인데도 돼지가죽을 뒤집어쓰고 태어난 자들이다. 꾸밀 필요도 없이 그 자체로 훌륭한 위장이 아닌가.
쾅!
멸삼련성전이 참적룡의 검신에 부딪쳤다. 무수한 검기가 흩날리고 참적룡의 검광마저 어느 정도 어두워졌다.
그리고 방칠소가 칼자루를 단번에 움켜쥐었다. 장검에서 엄청난 저항력이 폭발했으나, 방칠소는 강대한 검기를 흘려 넣어 그것을 품에 안았다.
참적룡을 쥔 후에야 방칠소는 한숨 놓을 수 있었으나, 초휴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걸 잊지 않았다.
“아니, 초 형. 좀 조심할 수 없나? 무려 명검보 칠 위의 신검이란 말이야. 신검을 이리 험하게 대하는 사람이 어딨는가?”
초휴는 그를 흘겨보았다.
“적당히 좀 하게. 검을 얻은 것만도 다행이지, 무슨 말이 그리 많은가?”
보천남과 격전을 벌이던······ 정확히 말하면 보천남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던 독고이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초휴 대신 보천남을 막아준 보람이 있지 않은가. 참적룡은 결국 검왕성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문득 독고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왜 초휴를 위해 보천남을 막고 있는 걸까? 초휴가 어찌 되든 상관하지 말고 자신이 나서서 참적룡을 빼앗았으면 되었을 텐데?
그러나 독고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산 정상에서 격렬한 진동음이 전해져 왔다. 희미한 진법에서 빛이 퍼져 나가더니 곧장 사라지고, 산 정상이 거대하게 갈라지며 한 줄기 길이 나타났다. 어렴풋이 진법이 새겨진 흔적이 보였다.
방칠소가 제일 가까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조금 뒤에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벌써 외부인에게 다 털린 줄 알았던 이 산에 유적이 하나 더 있던 것이다!
너무 깊이 숨겨져 있었던지라 수많은 사람이 이리 오랫동안 난리굿을 피우면서도 별천지가 또 있다는 걸 몰랐을 뿐이었다.
초휴가 멸삼련성전으로 참적룡을 공격했을 때, 참적룡의 검기와 화살의 힘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그 강대한 파동은 안 그래도 이미 훼손된 상태인 진법을 완전히 망가뜨렸고, 그래서 통로가 드러난 듯했다.
방칠소는 잠시 생각하다가 굳이 기회를 선점하려 하지 않고 뒤로 두어 발짝 물러났다. 사실 그는 매우 신중한 성격이었다.
미지의 목표물이 나타났을 때는 다른 사람을 먼저 가게 두는 편이 나았다. 가장 좋은 것을 갖지 못할지언정 남의 길잡이가 되어 희생당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때 주변에서 여러 사람의 기척이 느껴져 왔다. 십여 명의 무사들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었다.
참적룡이 칼집에서 나온 순간 하늘로 뻗어 나간 검광은 백 리 바깥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자연히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은 이미 늦었다. 신검은 제 주인을 찾은 뒤였으니까.
올라오는 사람 대부분은 무도종사였고 진화련신이 세 명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위서애였다. 초휴도 비로소 한숨 놓고 위서애한테로 다가갔다.
나머지 둘 중 하나는 좌망검려의 심포진이었고, 다른 하나는 북연 동산군 대장군인 ‘광도’ 북궁백리였다. 북궁백리는 백색의 단정한 장포를 입은 중년인으로 겉보기에는 온화한 성품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대장군 나리의 손에 직간접적으로 죽은 사람은 수십만을 넘을 것이다.
초휴는 다가오는 사람 중 강동 손가의 손계례와 손계범 형제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씨 형제를 훑고 지나는 초휴의 눈빛에 살기가 스쳤다. 그들은 황사월이 초휴를 추격할 때 옆에서 길잡이 노릇을 했으니 말이다.
초휴를 본 위서애가 다가왔다.
“또 싸우느라 힘을 다 쓴 게야? 비경에서는 그렇게 처신하면 좋지 않다.”
어떤 적이나 위기를 맞닥뜨릴지 모르는 비경에서 힘을 전부 소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위서애도 경험이 있어 한 말이었으나 초휴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라고 이러고 싶었겠습니까. 보천남을 만나는 바람에 이렇게 됐습니다.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으면 그 미친놈은 정말 절 죽였을 겁니다.”
위서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혹시 황사월도 건드려 놓은 것 아니냐?”
“제가 왜 먼저 그를 건드리겠습니까. 황사월이 저를 건드린 거지요. 선배님은 황사월을 보셨습니까?”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진조선이 봤는데, 미친놈처럼 너를 찾아서 헤매고 있다더군. 혹시 황사월에게 상처라도 입혔느냐?”
초휴는 코를 문질렀다.
“대수로운 건 아니고, 그냥 잔꾀를 써서 따돌려 버렸습니다.”
그는 혈영 한 갈래를 쏘아서 황사월을 따돌렸었다. 혈영은 힘이 소진되었을 때 따라잡혔을 것이고, 황사월은 그제야 제가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터였다.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안 황사월이 펄펄 뛰며 격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초휴는 그냥 그러려니 싶었다.
위서애는 정말이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초휴의 실력과 사고를 치는 능력은 그야말로 정비례하지 않는가.
여기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진화련신 강자 두 사람과 시비가 붙은 것이다. 그것도 절대로 시비 붙으면 안 되는 종류의 인간들로만.
“한동안 나와 같이 다니자꾸나.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은마라는 간판이 작지는 않다만, 누구나 은마의 체면을 고려해 주는 것은 아니니까.”
초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서애가 말하지 않았어도 그리할 생각이었다. 그간 원한을 너무 많이 쌓은 것 같기는 했다.
좀 얌전하게 지낼 필요가 있었다. 가끔은 외부적 상황이 그를 얌전히 지내지 못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당장은 산 정상 통로로 내려가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한쪽에 몰려들어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 유적에 들어온 무사들은 비교적 수준이 높아, 대부분 진단경에 도달한 무도종사였다. 실력이 좀 약한 사람들도 강호 경험은 풍부했다.
젊은 후배들처럼 덤벙대다가 이득이 보이면 위험이 있거나 말거나 벌떼처럼 몰려가는 일은 없었다. 다들 몹시 침착했다.
초휴는 소모한 진기를 회복하면서 다른 이들처럼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잠시 살펴본 것만으로도 미간이 찌푸려졌다. 다른 자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통로는 아래로 계단이 쭉 뻗어 있었는데 너무 깊어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알쏭달쏭한 무늬가 핏빛으로 새겨져 있는 게, 그림 같기도 하고 문자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안에서 전해져 오는 기운에 소름이 돋았다.
지독한 원망, 증오, 피비린내, 살육 따위의 부정적 감정들이 모조리 섞여 있는 듯했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의 마음속 악의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사악한 느낌이 아닌가.
이런 기운이 다른 데서 나타났다면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하필 바로 이곳에서라는 것이었다.
여기가 어디인가? 이 산봉우리는 천하검종에서 제자를 훈련하고 교육하던 곳이다. 제자들이 시험을 통과하면 강호에 출도할 자격을 얻게 되는 검괴뢰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통로의 기운은 천하검종이라는 이름과는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 차라리 마굴이었다고 하면 이해가 될듯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하나둘씩 통로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성품이 조심스러운 사람도 있었고, 노련하고 침착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기연을 코앞에 두고도 걸음을 돌릴 만큼 소심하고 간이 작은 사람은 없었다.
주변의 돌벽을 둘러보던 초휴는 어쩐지 그 문자들이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백옥 궁전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상고 시대 문자가 섞여 있던 것이다.
그러나 어딘가 긴가민가하여 이런 문자에 정통한 육강하도 확실히 알아보지는 못했다. 마치 누군가 극도의 광기에 휩싸인 상태에서 새겨 놓은 듯했다. 쳐다볼수록 속이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문자들을 읽던 초휴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뭐라고 쓴 건가······. ‘왜 우리는 안 된다는 건가!’ ‘불공평하다! 불공평하다! 불공평하다!’ ‘똑같은 겁인데, 왜 그들은 구제받고 우리만 당해야 하는가?’ ‘복수하겠다! 복수하겠다! 복수하겠다!’”
초휴의 낮은 혼잣말은 삽시간에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위서애와 독고이도 괴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강호에 상고 시대의 문자를 아는 무사는 거의 없었다. 일부 진법 대사나 점술 대사쯤 되어야 접할 일이 많아서 약간 알아보는 정도였다.
여기 모인 사람 중 옛 문헌에서 이 문자를 약간 배운 사람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말 이것을 읽을 줄 안다고 할 만한 사람은 위서애와 독고이 정도였다.
그들은 대단한 경력의 노강호로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살았고 경험도 많이 쌓았다. 무도에 정통한 만큼 잡학에도 밝은 것이다. 상고 시대의 문자도 그중 하나였다.
초휴 같은 젊은이가, 그것도 초휴처럼 살육과 폭력에만 능할 것 같은 자가 이런 부분에도 박학다식하다는 것은 의외가 아닌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뼈를 찌르는 한기와 원한은 더욱 짙어졌다. 게다가 이 통로는 마치 끝이 없는 듯했다. 다들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건질 게 아무것도 없다 해도 지금쯤이면 바닥까지 내려왔어야 했다. 하지만 통로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위서애가 홀연히 말했다.
“잠깐.”
다들 저도 모르게 그를 바라보았다.
위서애가 침중한 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진법에 갇힌 것 같은데?”
독고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진법이라니? 하나 있던 진법은 위에서 이미 풀었잖소. 안에 무슨 진법이 있단 말인가?”
위서애는 사방 벽에 새겨진 문자를 가리켰다.
“이 글자들은 상고 시대의 문자로 본래부터 천지의 힘을 흡수할 수 있소. 게다가 이 무성한 원기가 만년을 쌓이면서 천연의 진법이 생겨난 듯하오. 사람이 설치한 진법보다 더 까다로운 것 같군.”
그렇게 말한 위서애의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사람이 설치한 진법이라면 비교적 해결이 쉬웠다. 진법을 푸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기술과 폭력이다.
진법 대사, 예컨대 현무문의 복양혁 같은 사람들은 보통 진법의 문양을 해독해서 파훼했다. 그렇게 하면 진법을 망가뜨리지 않고 반작용도 없었다.
폭력의 경우는 훨씬 간단했다. 그냥 힘으로 진법을 깨부수는 것이다. 그러나 반작용을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천지간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진법을 어떻게 푼단 말인가. 진법 대종사가 와도 뾰족한 수가 없을 듯했다.
사람이 만든 진법이 아니라서 이렇다 할 구조라 할 만한 것도 없었다. 힘을 써서 깨는 것도 어려웠다. 만년 동안 힘이 축적된 천연의 진법을 어떻게 깬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