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78)
778화 원념
물샐 틈 없이 귀신들에게 둘러싸인 사람들은 순식간에 위축되었다.
공포심을 느끼는 정도는 아니어도 소름 끼치는 느낌이 없을 수는 없었다. 물론 그들은 진단경까지 올라오는 동안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적잖게 겪었다.
그러나 사람이야 죽여 봤다지만, 귀신을 죽여 본 일이 없으니 어찌 상대할지 막막했다. 혹시 장승정의 뇌법이라면 좀 통할까?
줄곧 말이 없던 심포진이 입을 열었다.
“귀신 놀음은 그만둬라. 사람이 죽어 모두 귀신이 된다면 세상은 진작에 요괴 소굴이 되었겠지. 너는 수천에서 만 명 정도의 원념이 모여 만들어진 흉령(凶靈)에 불과하다. 천연의 진법이 형성되는 우연이 없었다면 너는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천연의 진은 뿌리라고 할 만한 것이 없지만, 이 진의 핵심은 너겠군!”
그 말을 듣자 성격이 불같은 독고이가 코웃음을 쳤다. 타오르는 강기가 허공을 가르며 곧장 귀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화염이 불타더니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귀신을 전부 불살라 버렸다. 칠흑 같은 공간이 불길로 훤하게 빛났다.
그 순간 초휴는 여봉선을 발견했다.
사라졌던 여봉선은 귀신의 뒤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기척이 몹시 희미해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발치에는 핏빛 진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진은 사람이 새겨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귀신들이 삽시간에 불타 사라지자 다들 얼떨떨해졌다. 이것들은 실력자인 여봉선을 쥐도 새도 모르게 바꿔치기한 데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독고이의 일검도 받아내지 못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독고이와 위서애 모두 낯빛이 썩 좋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그 공간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괴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귀신이 다시금 허공에 나타나더니 크게 웃었다.
“헛수고하지 마라. 나는 이곳에서는 불사의 존재다. 너희는 나를 죽일 수도 없고 여기서 나갈 수도 없다!”
다들 어떻게 된 것인지 깨달았다.
조금 전의 귀신 무리는 전부 허상이었던 것이다. 옛날 희생되었던 천하검종 무사들이 남긴 원념의 투영에 불과했다.
심포진의 말대로, 만 년의 세월 동안 원념들은 천연의 진법 속에서 하나의 흉령으로 변했다. 그러니 ‘그것’은 곧 ‘그것들’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모두의 원념이 하나로 뭉친 집합체인 것이다.
그러나 독고이는 끝장을 보겠다는 듯,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출수했다. 귀신은 아예 방어조차 하지 않고 그가 공격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로 허공에 떠 있었다. 힘을 전혀 잃지 않는 것 같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들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어떤 적이 가장 상대하기 어려울까? 지금 저것처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적이 가장 난해한 법이다.
귀신이 여봉선을 가리키며 기괴하게 웃었다.
“옛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제 너희도 다 알고 있겠지. 일할은 살고, 구할은 죽었다. 옛날 우리의 종주 대인께서는 참으로 지독하셨는데, 어디 너희는 어떨지 궁금하군. 이 젊은이의 몸에는 여온후의 기운이 들어 있다. 만년이 지난 뒤에도 상고 시대 흉악한 마신의 전승과 혈맥이 남아 있으니 참으로 뜻밖이군그래. 어쨌든 간에 이자의 기운은 내가 몸을 빼앗기 딱 알맞단 말이지. 하지만 여온후가 남긴 기운이 반항하고 있다.”
“내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마. 나를 도와 이자의 원신을 무너뜨리고 내가 이자의 몸을 가질 수 있게 해 다오. 그러면 내가 여기를 떠나면서 너희도 풀어주겠다. 한 사람이 죽을 것인지, 아니면 십여 명이 죽을 것인지는 너희가 결정해라! 다수와 소수. 어느 쪽을 살릴 건지 현명한 선택을 할 거라고 믿겠다.”
말을 끝낸 귀신은 괴이한 웃음소리를 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일로 갈등하는 것이 몹시 즐거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착각일뿐이었다. 초휴 외의 다른 사람들은 여봉선과 별 교분이 없으니 갈등이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여봉선 하나를 희생해 이 귀신 소굴을 떠날 수 있다면 크게 수지맞는 장사였다.
그래서 적잖은 사람들은 쉽게 마음이 움직였다. 정도의 선배건, 무림의 유명인이건, 별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 하나를 희생시키는 것쯤은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초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방을 살펴보며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최대한의 악의가 있으리라는 전제를 깔고 타인을 가늠했다.
그러니 좌중을 상대로, 저 귀신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냐는 설득을 시도할 마음은 없었다. 이럴 때는 도리를 늘어놓아 봐야 통하지 않는 법이다. 그는 나는 듯한 속도로 머리를 굴리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책을 생각했다.
초휴는 여기서 정말 나갈 수 없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 원령의 실력이 정말 그렇게 강하다면 진작 봉인을 깨고 나갔을 것이다. 뭣 때문에 고통스레 계속 갇혀 있었겠는가?
그리 생각한 그는 육강하에게 물었다.
“육강하, 강 건너 불구경은 그만하고, 뭔가 방법이 없겠나?”
육강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본존은 이런 경우를 만나면 대부분 그냥 죽여버렸다. 실력이 워낙 강해서 사대 마존 바로 다음이었으니 어쩌겠어? 그 시절 강호에서는 감히 본존을 죽이려는 자가 없었어. 나를 건드리긴커녕 본존의 개만 건드려도 가만 안 놓아두고, 아예 피를 싹 뽑아서 인간 장작을 만들어 그놈들 종문 앞에 걸어 줬을걸. 그 시절 본존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아? 그러니 네놈도 본존에게 공손히 좀 굴어보란 말이다. 그렇게 이름을 찍찍 부르지 말고 말이야. 본존의 혈신마공을 배웠으니 나를 마존 대인이라 불러도 지나친 게 아니잖나?”
초휴는 육강하가 주절거리는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육강하가 첫 마디를 뱉었을 때 그의 눈은 반짝 빛났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는 다 쳐 죽이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다.
좌중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다들 여봉선의 목숨을 희생해서 이 귀신 소굴에서 나가자는 데에 찬성했지만,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다.
속으로는 흔쾌히 그리 생각한들 쉽게 입밖에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잖은가. 찬동은 표할 수 있어도 제일 먼저 그 말을 꺼내는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말이 없었다.
바로 그때 단천랑의 입가에 사나운 웃음이 걸렸다.
그는 초휴에게 쫓기면서 처참한 꼴을 당했다. 정혈을 태운 데다 비법까지 써 가며 목숨 걸고 도망쳤다. 해서 중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몸의 근원까지 손상이 온 것이다.
앞으로 실력을 회복한다 해도 손상당한 근원의 힘은 돌이킬 방법이 없었다. 좀 괜찮아져도 실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고, 심하면 평생토록 발전은커녕 퇴보하고 수명마저 깎일지도 몰랐다.
단천랑은 절대 이런 꼴을 참아넘길 수 없었다. 그는 초휴가 증오스러워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여봉선이 초휴의 절친한 벗이라는 것은 단천랑도 잘 알았다. 초휴는 죽일 수 없지만 여봉선은 죽일 수 있다. 그러면 초휴는 매우 괴롭지 않겠는가.
그러나 단천랑이 가장 먼저 입을 열기 전에 초휴가 앞으로 나섰다. 사람들은 초휴가 분명 여봉선을 구해야 한다는 호소를 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는 손계례와 손계범 형제를 손가락질하며 싸늘하게 말했다.
“요망한 귀신 놈, 여 형을 사칭한 것으로도 모자라 손 형까지 흉내를 내? 당장 본모습을 드러내라!”
손씨 형제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누가 무슨 흉내를 냈단 말인가? 게다가 그들은 초휴와 친하지도 않았다. 손 형은 무슨 얼어 죽을 손 형인가. 그들은 초휴와 전혀 호형호제할 사이가 아니었다. 배분으로 따져도 초휴보다 한 항렬이 높았다.
손씨 형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일순간 멍해졌다. 그러나 초휴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천마무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마기가 폭발하며 손씨 형제를 공격했다. 무슨 부모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당장에 상대를 동강 내 버릴 기세였다.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초휴가 뭘 어쩔 작정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가짜네 뭐네 하는 소리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귀신이 여봉선 흉내를 낸 것은 여봉선의 몸을 빼앗기 위해서였다. 이제 거의 다 성공한 판인데 무엇하러 손씨 형제를 흉내 내겠는가?
초휴의 일도는 위세가 엄청났다. 손씨 형제는 전력을 다해 막았으나 몇 초 버티지 못하고 열세에 몰렸다.
얼마 전 다섯 사람이 힘을 합쳐 초휴를 공격했을 때도 상대가 되지 못하고 무너졌었다. 그때는 다들 딴 속셈을 품고 있어서 전력을 다한 사람이 없기는 했다. 그러나 손씨 형제는 전력을 다한 지금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자 경악했다.
단천랑은 보천남을 살짝 부추겨 보았다.
“대용수, 초휴는 사람들의 이목을 딴 데로 돌리려는 수작입니다. 저자를 막아야 합니다!”
보천남이 냉소했다.
“굳이 나를 채근할 것 없다. 초휴를 죽이고 싶다는 말이 아니냐?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다. 개를 패려면 그 주인이 누군 지부터 봐야 하는 법이지. 내가 경고했는데도 너를 이 꼴로 다치게 했으니 결국, 이 보천남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단 말이다.”
단천랑은 그 말이 기뻤으나, 잠시 생각해 보니 기분이 묘했다.
‘개를 패려면 주인을 봐야 한다고?’
그가 지금껏 해온 일이 보천남을 따라다니며 앞장서서 아부하는 사냥개 같은 짓이기는 했다. 그러나 보천남 본인에게 직접 그 소릴 들으니 자존심이 상했다.
보천남이 막 움직이려는데 위서애가 일어서더니 담담히 말했다.
“보천남, 청룡회와 우리 은마는 아무 원한이 없던 사이요. 당신은 이미 정도 무림과 척을 졌는데 은마와도 그럴 셈인가?”
보천남은 뒷짐을 지고 섰으나, 온몸의 살기가 거의 실체를 지닐 정도로 응집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체면을 따지는 사람이오. 내 체면을 짓밟은 자는 죽여야지! 대광명사가 우리의 북연 분타를 전멸시켰을 때도 내가 직접 대광명사에 가서 해명을 요구했소. 초휴는 내 수하를 건드렸소. 그것도 내가 경고까지 했는데 그런 짓을 했으니 내 뺨을 친 거나 마찬가지지. 위 옹의 체면을 봐서, 적어도 초휴를 좀 깨끗이 죽여줄 수는 있겠소이다. 하지만 날 막으려 한다면, 은마가 아니라 야소남이 나선다 해도 결과는 똑같소!”
보천남은 온 강호가 공인하는 미치광이라서 움직일 때 뒷일을 생각하는 법이 없었다.
청룡회는 어둠에 숨어 있는 살수 조직에 불과했다. 그러나 천죄 분타가 멸망했을 때 보천남은 대광명사에 직접 찾아가 허도와 싸움을 벌였다. 역대 청룡회 대용수 중 누구도 그처럼 거침없이 행동한 자는 없었다.
사실 그는 청룡회 대용수가 되기 전부터도 상식 밖의 일을 저질러 왔다. 다른 청룡회 살수들은 목표를 죽일 때 보통 암살 기술을 사용했다. 상대가 무방비한 때를 노려 출수해서 일격에 죽인 후 즉각 도주했다.
혹은 초휴가 청룡회에서 살수 노릇을 할 때처럼 계략을 꾸미기도 했다. 초휴가 악가를 멸문시킬 때, 심리전으로 가문 하나를 혼자 힘으로 없애 버렸던 것처럼 말이다. 은밀한 암살, 책략과 음모 모두 청룡회 살수들이 잘 쓰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보천남은 달랐다. 그는 누군가를 죽여야 할 때면 곧장 목표를 찾아가서 너를 죽이겠다고 말한 뒤, 눈앞에 있는 사람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런 뒤에 목표까지 죽여서 임무를 완수했다. 보천남에게 살수란 사람을 죽이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보천남은 가장 많은 임무를 수행한 살수도 아니었고, 가장 완벽하게 일을 처리한 살수도 아니었다. 그러나 죽인 사람의 수는 그가 제일 많았다.
이런 괴짜에게는 만사가 아주 간단했다. 초휴는 그의 체면을 무시하고 따귀를 갈긴 셈이니 죽어 마땅했다.
위서애 앞이라 해도 겁날 게 없었다. 그는 곧장 위서애와 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독고이는 가볍게 제압했으나, 위서애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